제2의 인생 시작하는 퇴직선배님들 화이팅~

“식당 차리려면 설거지부터 시작해야” [중앙일보]

2010.04.08 03:01 입력 / 2010.04.08 04:22 수정

KT, 명퇴자 5992명 창업·재취업 교육

5일부터 서울 우면동 KT 연구개발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가족 진로 설계를 위한 세미나’에서 지난해 말 회사를 떠난 KT 명예퇴직자들이 창업과 재취업에 대한 강의를 듣고 있다. 이 세미나는 8월까지 전국 8개 지역에서 11회에 걸쳐 열리고, 퇴직자뿐 아니라 가족도 교육을 받을 수 있다. [KT 제공]
“인생 2모작을 해야죠. 애들 공부도 계속 시켜야 하고. 오늘 강의를 들으니 여러 가지 구상이 떠오르네요.”

7일 서울 우면동 KT연구개발센터에서 열린 ‘KT 가족 진로설계를 위한 세미나’. 여기 참석한 김영현(여·49·경기도 부천시)씨는 27년간 KT 고객서비스센터에서 일하다 지난해 12월 31일자로 명예퇴직했다.

전 직원의 16%에 해당하는 5992명이 한꺼번에 정든 회사를 떠나던 때였다. 국내 기업 사상 최대 규모였다. 당시 명퇴자의 평균연령은 50.1세, 평균 재직기간은 26.1년이었다. 지난 1월 12일에는 상무보급 100여 명도 KT를 떠났다.

KT가 이 대규모 퇴직자들을 위한 창업·재취업 교육을 시작했다. 5~8일 열리고 있는 이번 행사가 그 첫걸음이다. ▶나의 창업 적성 파악하기 ▶네트워킹 활용 전략 ▶창업·재취업 시장 동향 ▶개인 역량 업그레이드 전략 등 13가지 강의가 진행된다.

120여 명의 퇴직자가 참석했다. 이번 행사를 시작으로 전국 8개 지역에서 11회에 걸쳐 워크숍을 열 예정이다. 퇴직자 본인뿐 아니라 가족도 참석할 수 있다.

세미나는 유상석 KT 인재경영실 차장의 강의로 시작됐다. “식당을 준비하려면 주방 설거지부터 시작하십시오”라고 말문을 연 그는 생계형 창업자 가운데 1년을 넘기는 경우가 20% 미만이라고 전했다. 그 20% 안에서도 돈 버는 사람은 10명 중 한 명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는 ▶오랫동안 거대 공기업이었던 KT 안의 나와 바깥 세상의 나는 전혀 다르다는 걸 빨리 깨닫고 ▶고객은 물론, 종업원의 마음을 헤아려야 하며 ▶실패를 각오하고 다 날려도 견딜 만틈 소규모로 사업을 시작하라고 당부했다.

17년간 이 회사에 봉직하다 9년 전 창업한 ‘김민영 왕호떡’의 김민영(53) 대표는 “항상 즐겁게 일하고,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라”고 조언했다. “호떡집을 한다고 하니 주변에서 말렸지만, 나는 ‘밑바닥’이 아니라 ‘밑바탕’이 되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는 서울 남영동에서 호떡집을 운영하면서 ‘김민영 호떡믹스’를 만들어 파는 유통업자이자 자신의 경험을 두 권의 책으로 펴낸 저술가 겸 스타 강사다.

33년간 재직한 구강회(53·인천시 남동구)씨는 식당 창업을 구상하고 있다. “회사에서 이런 교육을 해주고 퇴직 사우끼리 네트워크도 만들 수 있으니 좋다”고 말했다.

19년간 고객시설과에서 근무하다 그만뒀다는 형성표(54·서울 중화2동)씨는 “아내와 분식집을 준비하는데 막연하게나마 감이 잡힌다”고 했다.

KT는 치킨 프랜차이즈 ‘BBQ’와 제휴해 교육생들에게 석 달간의 체험실습 기회를 제공할 예정이다. 몸소 겪어봐야 실패를 줄일 수 있다는 취지다. 편의점 프랜차이즈 ‘한국미니스톱’과 스크린골프 프랜차이즈 ‘골프존’은 KT 퇴직자들에게 가맹비를 깎아주는 등 혜택을 주기로 했다.

이 회사는 2005년 말 ‘KT 라이프 플랜’이라는 ‘아웃플레이스먼트(outplacement)’ 제도를 도입했다. 처음에 노동조합은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직원들을 조직적으로 내보내려는 책략이 아니냐는 의심이었다. 하지만 점차 오해가 풀리면서 이제 꼭 필요한 복지제도로 자리잡았다. 김현수 인사담당 부장은 “인생 2모작이 필수인 시대가 된 만큼 회사에서 퇴직 이후의 삶을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박혜민 기자

◆아웃플레이스먼트=회사가 임직원의 이직과 재취업·창업을 돕는 종합 컨설팅 서비스. 1997년 외환위기와 이에 따른 대량실업 사태 이후 국내에도 확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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