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을 넘어 인공지능(AI)·빅데이터 등 탈(脫)통신업으로의 대전환을 통해 ‘디지털플랫폼기업(디지코)’으로 거듭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는 KT 구현모 대표가 취임 후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본업인 통신에서 품질 논란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인데 25일 오전 발생한 KT 유·무선 네트워크 먹통은 전국적으로 피해 규모가 클 것으로 추정돼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KT를 전용망으로 쓰고 있는 삼성증권, 교보증권, DB금융투자, KTB투자증권 등에서도 소송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인터넷 먹통으로 천문학적인 규모의 프로그램 매매가 멈추는 등 실질적 재산 피해가 막심했다는 것이다. 프로그램 매매는 주식을 대량으로 거래하는 증권사 등 기관투자자들이 일정한 전산 프로그램에 따라 수십 종목씩 주식을 묶어서(바스켓) 거래하는 것을 말한다. 피해는 KT 네트워크를 이용 중인 스마트폰 주식거래 사용자, 회사원, 자영업자 등에서도 광범위하게 목격됐다.
통신 업계에서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 인프라인 통신에 투자(비용)를 줄이면서 기업가치 제고를 위해 신사업만 띄운 구 대표의 실책이 어느 정도 작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2019년 3조2570억원이 투입됐던 KT의 시설투자액(CAPEX)은 구 대표 임기 1년 차였던 2020년 2조8720억원으로 12% 줄어든 데 이어 올해 상반기까지 집행 금액은 8640억원으로 다시 급격히 줄어든 상태다. 이 추세로 하반기 투자가 이어진다면 올 한 해 전체 투자액은 2조원에도 못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취임해, 임기 2년 차를 맞고 있는 구 대표는 ‘연임을 위한 카드’로 탈통신 사업을 통해 KT가 계속 성장할 수 있다는 청사진을 보여주는 데 사활을 걸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주가(기업가치)를 올려 주주를 만족시키기 위해 인공지능(AI)·빅데이터(Big Data)·클라우드(Cloud)의 앞 글자를 딴 ‘ABC’ 선두에 있는 KT의 면모를 부각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구 대표가 임기 후 대외업무인 CR(Corporate Relations) 관련 인원을 대거 줄인 것도 잦은 통신망 사고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KT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CR은 대관 업무 등을 담당하는 핵심역량 부서로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는 이를 유지하거나 늘리는 기조로 가고 있으나 KT는 구 대표 취임 이후 관련 인원을 크게 줄이고 있다”라면서 “위험 조짐이 있거나 살펴야 하는 경우 통상 정부·기관은 통신사 CR 담당자와 소통해 이에 대비하는데, 완충 역할을 할 해당 인력 없이 직접 엔지니어가 오면 서로의 언어를 이해해 반영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라고 했다.
실제 KT는 올해 상반기에만 SK텔레콤, LG유플러스와 함께 5세대 이동통신(5G) 품질 논란에 지속적으로 휘말린 데 이어 한 IT 유튜버가 제기한 초고속(10기가) 인터넷 속도 고의 저하 논란으로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이날 오전 발생한 유·무선 네트워크 장애(인터넷 먹통)의 원인은 ‘네트워크 경로 설정(라우터) 오류’ 때문이라는 정부·KT 합동 조사 중간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복수의 업계 관계자는 “이번 피해는 2018년 11월 서울 도심을 ‘통신 대란’으로 몰아넣었던 국지적 규모의 KT아현국사 대형 화재 사고보다 큰 전국적 피해로 예상되는 만큼 구 대표 연임의 최대 위기라 할 만하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