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 담벼락 넘는 노동운동은 어떻게 가능할까

[하부영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장]

“대공장 담벼락 넘는 ‘정의로운 노동운동’ 씨앗 뿌리겠다”

  • 양우람
  • 승인 2018.03.12 08:00

▲ 하부영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장(가로)

그는 수차례 “반대와 부결을 각오하고 있다”고 했다. 내부 이해관계와 충돌하더라도 소신을 잃지 않겠다는 뜻이다. 같은 의미로 “하후상박 연대임금”이나 “대공장노조의 사회적 책임” 같은 표현이 자주 등장했다. <매일노동뉴스>는 지난 7일 오전 서울 합정동 사무실에서 하부영(58·사진)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장을 만났다. 하부영 지부장은 지난해 9월 당선했다.

현대차지부가 대한민국 노동운동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독보적이다. 막강한 조직력으로 조합원들의 복지를 늘리고 고용안정에 주력했다. 반면 산별노조운동에서의 역할엔 물음표가 붙는다. 맏형 노릇을 하는 지부와 현대차그룹 소속 노동자를 더하면 금속노조 전체 조합원의 절반을 훌쩍 넘는다. 현대차그룹은 산별교섭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그러는 사이 사회양극화 원인이자 결과인 비정규직과 원·하청 불공정 거래 문제가 심화했다. 하부영 지부장이 ‘욕먹을 각오’를 다지며 공장 담벼락을 넘는 노동운동을 꿈꾸는 이유다. 그는 “노동운동은 본질적으로 의사가 아픈 환자를 치료하는 것과 같다”며 “공장 담벼락을 넘는 정의로운 노동운동의 씨앗을 뿌리겠다”고 말했다.

“사회연대의식 없으면 부결·반대로 혼란 지속될 것”

– 2017년 교섭이 해를 넘겨 가까스로 타결됐다.

“90% 가량 합의에 이른 교섭을 이전 집행부에서 인계받았다. 예년보다 임금인상과 성과급이 부족해 1차 투표에서 부결됐다. 신임 집행부에 대한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던 것 같다. 생산물량이 줄어 임금이 감소했는데 이를 협상에서 보전받아야 한다는 기대감을 충족시키지 못한 듯하다. 현실과 조합원들의 기대 사이에 부조화가 존재했다. 올해는 더 어려울 것으로 전망한다. 대공장 노동자들에게 중소기업과 비정규 노동자들의 처우개선에 관심을 갖는 사회연대의식이 자리 잡지 못하면 앞으로도 부결과 반대로 혼란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 올해는 교섭을 일찍 시작해 일찍 타결하겠다고 했는데.

“지난 몇 년 동안 신임금체계·주간연속 2교대제 개악을 요구하며 공세적으로 지부를 압박하고 시간을 끄는 회사측 전술에 당했다. 사측에 교섭 주도권을 빼앗겨 발생한 현상이다. 올해는 주간연속 2교대 검증 협상안을 전면에 배치하고, 임금요구안도 하후상박이라는 대의명분으로 수세에서 공세로 전환하는 투쟁을 할 계획이다. 불필요한 논쟁과 시간낭비 없는 압축교섭을 한다면 6월 말 7월 초 투쟁을 거쳐 하기휴가 전에 타결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 최근 현대·기아자동차 비정규 노동자들이 대법원 인근에서 농성투쟁에 들어갔다.

“노사가 과거 6천명에 이어 2021년까지 3천500명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특별채용하기로 했다. 대법원에서 불법파견 확정판결을 받은 직접생산공정 사내하청 노동자들이다. 간접생산공정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지난해 2월 2심 재판부가 불법파견 판결을 내렸다. 현대차는 이들에 대해서는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교섭에 응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대법원에서 불법파견 판결이 나오면 그에 맞게 임금·근속·호봉 등을 인정하겠다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 대법원 확정판결이 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미룰 수는 없는 노릇이다. 대법원이 하루빨리 간접생산공정에도 불법파견 판결을 내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최선이다. 나머지 비정규직 문제는 촉탁직 규모를 2019년까지 지금의 절반으로 줄이는 방식으로 해소하려 한다. 그동안 촉탁직 채용사유를 제한한 노사 합의가 지켜지지 않았다. 상시·지속업무를 하는 촉탁직을 정규직으로 채용하고, 산재 부상자 등 필요한 규모로만 촉탁직을 채용하는 관행을 만들겠다.”

“하후상박 연대임금으로 30년 미래 설계”

– 현대차그룹이 교섭 가이드라인을 운용하면서도 산별중앙교섭에 불참하고 있다고 비판했는데.

“두 가지를 분리해 접근해야 한다. 현대차그룹 차원의 노무관리를 어떻게 돌파하느냐와 어떻게 완성차 대공장을 산별중앙교섭으로 끌어들이느냐다. 회사도 그렇고 대형 지부들도 그렇고 산별교섭에 참여할 메리트가 없었던 게 사실이다. 이번에 금속노조 집행부가 바뀌지 않았나. 김호규 금속노조 위원장이 현대차 출신인데, 산별교섭 문턱을 낮추는 쪽으로 전략을 세운 상태다. 조만간 열리는 금속노조 대의원대회에서 ‘산별임금체계 공동개선위원회’ 구성을 논의한다. 산별중앙교섭에 불참하는 사업장을 공동개선위에 우선 참여시킨다는 계획이다. 우회적으로 교섭 참여를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정권이나 자본도 임금체계 개선에 관심이 높다. 자신들의 요구를 갖고 논의에 참여할 수 있다.”

– 공동개선위원회에서 어떤 논의를 하나.

“노조 산하 사업장 임금은 천차만별이다. 현대차가 최상위에 놓인 반면 최저임금도 못 받는 노동자도 많다. 현대차그룹 가이드라인에 따라 현대차가 교섭을 타결하면, 중소기업은 이를 기준으로 80%, 비정규직은 70%로 임금이 결정된다. 임금격차가 벌어지는 방식이다. 이를 타개해 중소기업은 현대차의 120%, 비정규직은 130%라는 요구를 걸고 싸워야 한다. 산별노조는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과 하후상박 연대임금을 추구해야 한다. 지금 시작하면 30년 후 우리가 꿈꾸던 산별노조를 현실에서 만날 수 있다. 그 길로 한번 가 보자는 얘기다.”

– 반대하는 조합원들이 적지 않을 것 같은데.

“담벼락 안에서 더 많은 기득권 유지를 위해 투쟁하면 노동운동 정당성은 갈수록 약화된다. 결국 지부가 존립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를 것이다. 조합원들 인식이 여기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아직도 더 많은 특근과 더 많은 임금을 요구한다. 사회적 책임을 지는 정의로운 노동운동으로 나아가기 어려운 구조다. 사회적 고립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중소기업과 비정규직의 임금을 더 많이 인상하라는 하후상박 연대임금 전략을 구체적인 실천과제로 삼아야 한다. 사회양극화를 정권과 자본에 의존해 푸는 방식에서 벗어나 노조가 자주적이고 주체적인 임금전략을 세우고 투쟁에 나서야 한다. 향후 수년간 (잠정합의안) 부결과 반대가 일상처럼 일어나지 않겠나. 조합원들을 꾸준히 설득하겠다.”

“조합원 직접민주주의로 ‘자판기 노조’ 넘어설 것”

– 차세대 자동차 상용화를 앞두고 고용위기 우려가 크다.

“빠르면 4~5년, 늦어도 5~10년 사이에 전기차와 자율주행차가 도입된다. 전기차는 기존 완성차 공장 매출을 30~40% 감소시키는 효과를 동반한다. 전기차가 5% 양산되면 기존 인력의 고용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할 것이다. 전기차 전용 생산라인은 기존보다 인원이 40~50% 이상 감소한다. 지금부터 이를 기정사실로 인정하고 고용 연착륙을 위해 노사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 전기차로 인한 여유인력을 유연하게 재배치하는, 과거 30년간 해 보지 않은 새로운 일을 해야 한다. 조합원들이 이해해 줄지 모르겠지만 올해부터 현실로 닥쳐오는 미래 고용환경을 솔직하고 진솔하게 교육하고 토론할 것이다. 현장조직을 초정파적으로 규합한 정책협의체를 꾸려 대안을 마련하겠다.”

– 남은 임기 동안 어떤 활동에 주력할 계획인가.

“조합원 직접민주주의다. 이른바 ‘자판기 노조’는 이제 안 된다. 조합원 8~15명 정도가 분회로 구성돼 있는데 활동이 없다. 분회 토론을 활성화해 투쟁계획 수립부터 교섭 타결까지 모든 과정에 조합원을 참여시키겠다. 지부장으로서 이루고 싶은 최고의 목표다. 하후상박 연대임금 전략과 정의로운 대공장 노동운동으로 새로운 30년을 열겠다. 25년 전부터 자동차산업에 악마의 신기술이 도입됐다. 고용을 지키는 싸움은 심리전이다. 지금부터 심장을 강하고 튼튼하게 만들어야 한다. 조합원들에게는 불편한 얘기겠지만 한국에서의 물량유지를 위해 노조도 대범한 결단을 해야 할 때가 왔다. 적기생산이 필요하다. 맨아워 협상을 회피할 수만도 없다. 노동운동은 의사가 아픈 환자를 치료하는 것과 같아야 한다. 대공장노조는 조합원을 넘어 세상에서 가장 아픈 노동자들의 아픔을 함께하고 문제를 해결해 줘야 한다. 그것이 정의로운 노동운동이다. 어려운 일이라 30년간 못했다. 앞으로의 30년은 달라야 한다. 달라진 노동운동을 위한 씨앗을 뿌리고 싶다.”

양우람  against@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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