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
1. 다시 대의원대회장에 가야 한다. 지난달 31일, 마침내 판결이 선고됐다. 기아차 통상임금사건에 관해 서울중앙지법에서 5년10개월여 만에 판결이 선고된 것이니 노동자대리인으로서 나는 그에 대한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그보다는 7일 금속노조 기아차지부 대의원대회에 가야 한다는 것이 내 머리를 사로잡고 있다. 일부승소였지만 전부승소했던 다른 사건 판결들보다 더 감격했다. 2011년 10월7일에 2만7천500여명을 원고로 해서 소장을 제출하고서 그동안 사건을 둘러싸고 논란이 법정 안팎에서 전개됐다. 그 일들이 판결 선고를 듣고서 562호 법정을 빠져나오는데 한꺼번에 떠올랐다. 이번에는 어떤 말을 해야 하는가. 소송이 무슨 노조 내부의 정치투쟁이라고, 노조 임원선거를 앞두고 세력을 나눠 시끄러운 모양이다. 무엇이 됐든 그동안 재판의 경과와 우리 청구, 그리고 판결 결과에 관해서 대답하게 될 것은 분명하다.
2. 지난주 판결 선고 직후 여러 방송사에서 생방송으로 전화 인터뷰를 했다. 그중에는 판결 선고까지 왜 오랜 시간이 소요됐는지 묻는 질문도 있었다. 소장을 제출하고서 5년10개월여 만에 법원 판결이 선고된 것이니 오랜 기간이 걸린 것은 분명하다. 그 이유를 궁금해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기아차지부 대의원대회에 가서 소송경과에 관해서 보고할 때면 받았던 질문이기도 하다. 소장을 제출한 것이 2011년 10월이다. 원고들에 대한 급여자료 등에 관한 문서제출명령 신청을 하고서 사측으로부터 제공받는 데까지 1년반이 넘게 소요됐다. 원고가 2만7천500여명으로 숫자가 많다 보니 사번 등으로 특정하는 데만도 많은 시간이 걸렸는데 일부 원고들의 주민번호·이름이 오기에다 동명이인·개명자 등 다른 사건에서는 예상되지 않는 문제가 발생했다. 그러던 중에 통상임금 사건에 관해 대법원이 전원합의체 재판부에 회부해 공개변론을 진행하고서 판결을 선고하는 일이 있었다. 2013년에 있었는데 이로 인해 당시 하급심법원은 통상임금 사건에 관한 재판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선고 뒤로 진행하겠다고 미뤘다. 기아차 소송도 마찬가지였다. 2013년 12월18일 갑을오토텍 통상임금 사건에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재직자에게만 지급하는 하기휴가비·선물비·단체보험료 등 복리후생명목 임금은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고,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2011년 기아차 소송이 제기된 이후 2012년 3월 금아리무진 사건에서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있고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대법원은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이라고 판결했던 것인데, 기아차 소송을 제기할 당시에는 하기휴가비 등 복리후생 명목 임금 등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며 청구했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선고가 있자 기아차지부 내부에서는 기존 소송을 취하하고 상여금을 대표소송으로 새로 청구하자는 의견까지 제기되기도 했다. 기존 소송은 패소할 것이 뻔하니 취하하고서 현대차지부처럼 대표자 몇 명을 뽑아서 상여금에 관한 대표소송으로 진행하자는 것이었다. 그것이 2014년 상반기였는데, 이 당시 대의원대회에 참석해서 나는 그렇게 되면 이미 납부한 소송비용도 그렇고 무엇보다도 최고와 소장 제출로 2008년 8월분부터 한 임금청구가 시효 소멸돼 기껏해야 2011년 상반기부터 발생한 것만 대표소송 판결을 받게 될 것이라며 반대했다. 기존 소송을 취하하자는 것은 조합원 2만7천500여명이 청구한 2008년 8월부터 발생한 임금채권을 포기하는 것이었다. 당시 이런 내 의견에 대의원대회, 노조 집행부 결정에 따라 기존 소송을 취하하지 않고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며 2014년 3월 청구취지변경신청을 하게 됐다. 이후 우리는 수차례의 청구취지변경신청을 통해서 협약상 기준에 따른 임금청구를 했다. 협약상 기준에 의한 최대한의 청구를 한 것이니 사측은 법상 기준에 의한 최저기준으로 각종 공제 주장을 했다. 휴일근로의 중복할증 청구에 관해서 사측은 결근·휴가·휴직 등으로 실제 근무하지 않은 것을 문제 삼아 공제를 주장하기도 했고, 우리는 근태자료 제출을 요구해 주 40시간을 초과한 휴일근로였다는 사실을 입증해 우리의 청구취지를 감축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신의칙 법리를 내세워 2014년 이전의 청구는 신의칙 위반이라고 사측은 주장했고, 2015년 8월에 이르러서는 사측의 추가부담액 및 회사 경영상태, 추가부담액에 따른 회사의 경영상 어려움 등에 관한 감정을 재판부에 신청했다. 사측 감정신청은 채택돼서 법원이 지정한 대주회계법인이 감정기관으로 감정을 진행했다. 2016년 12월 감정보고서로 감정결과가 나왔고, 2017년 2월에 재판이 다시 열릴 수 있었다. 이렇게 소송을 돌이켜 보면, 급여자료를 제공을 받고, 통상임금에 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기다리고, 감정 진행과 그 결과보고서를 받으면서 많은 시간이 지나갔다.
3. 정신없는 하루가 지나갔다. 8월31일 운명의 날, 법원은 신의칙 위반이 아니라는 우리 주장을 받아 줄 것인가. 받아 주더라도 얼마나 우리 청구를 인정해 줄 것인가. 서울중앙지법 562호 법정을 비집고 들어가 노동자쪽을 대리하는 변호사로서 맨 앞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서도 온갖 ‘혹시나’가 내 머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원고 청구원금 중 약 절반을 인정하며 사측의 제반 경영상태 등을 고려할 때 신의칙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41부 재판장 권혁중 부장판사의 판결 선고를 듣고서 법정을 나설 때에야 나는 ‘혹시나’를 떨쳐 낼 수 있었다. 법정을 빈틈없이 메웠던 기자들은 법정 밖에서 진행된 즉석 기자회견장에도 몰려와 순식간에 가득 채웠다. 기자들에게 기아차 판결의 의미에 관해서 설명하고 있을 때였다. 기자들 뒤에 최순실의 변호인으로 널리 알려진 이경재 변호사가 쳐다보고 있었다. 통상임금, 따지고 보면 박근혜 전 대통령과 무관치 않다. 2013년 5월 초 미국 순방 중에 지엠 회장의 부탁으로 해결하겠다고 말했다고 언론에 보도됐다. 그 직후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재판부로 갑을오토텍 통상임금 사건을 회부했고, 9월 초 공개변론을 진행해서 2013년 12월18일 상여금 통상임금에 관한 전원합의체 판결이 선고됐는데, 과거 소급분은 신의칙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는 납득하기 어려운 법리로 노동자의 임금청구권에 제동을 걸었다. 박근혜 정권에서 노사정 합의니 뭐니 해서 엉터리 통상임금법안이 추진됐다. 그랬는데 박근혜는 가고, 박근혜 정권 시절 대법원이 판시한 신의칙 법리를 두고 이 나라 노동자들은 치열하게 법적 투쟁을 벌이고 있다. 많은 언론사로부터 연락이 와서 일일이 기아차 통상임금 판결에 관해 답변해 줄 수가 없어 결국 이날 오후 보도자료까지 준비하고 긴급 기자간담회를 해야 했다.
4. 이번 판결에서 관심은 신의칙에 집중됐다. 판결 선고일을 언급하기 시작했던 지난 7월부터 수백건의 뉴스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기아차 통상임금 소송이 노동자들의 청구가 신의칙 위반으로 기각되지 않으면 기아차는 물론 현대차그룹, 자동차산업 등 제조업의 인건비 부담으로 경쟁력이 떨어지고 생산거점을 해외로 이전하는 것을 검토할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사용자 자본의 말을 인용해서 재판에 부담을 주는 기사들이었다. 재판부는 신의칙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점에 관해 판단하면서 2008년 이후 기아차 재정상태 등이 나쁘지 않았다고 언급한 뒤 노동자들의 청구가 근로기준법상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고 사용자는 노동자들의 과거 과외근로로 생산한 이득을 이미 향유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사측은 소를 제기할 때는 하지 않았던 것을 대법원 판결이 있고 나서야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는 청구취지변경을 신청했다며 그 3년 이전의 임금청구에 관한 소멸시효를 주장한 부분에 관해서는, 내가 주장한 바대로 소제기 당시로 인정해 전체 기간의 청구가 인정된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당연한 판단이라며 안도했다. ‘휴일’이라고 명시되지 않고 ‘휴무’하는 날로 정한 토요일이 휴일이라고 그 근로에 대해 휴일근로수당을 청구했는데, 재판부는 휴일로 인정해 근로시 휴일근로수당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동안 일부 사업장사건에서는 하급심 판결이 인정하기도 했지만 다른 사건들에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는 판결을 해서 걱정했었다. 근무시간 중 4시간에 10분·15분의 유급휴게시간도 대기시간이라며 근로시간으로 인정했는데, 의미 있는 판결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주 40시간을 초과한 휴일근로에 관해 휴일근로수당 외에 연장근로수당의 중복지급 청구를 인정하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협약상 기준에 따른 청구에 대해서 법상 기준만 인정하는 판결을 했다는 점은 매우 아쉽다. 기아차 통상임금 사건은 다른 사업장 통상임금 사건에서와는 달리 근기법상 기준을 넘어서 협약상 기준에 따라 청구했던 것인데, 판결 선고가 이뤄질 수 있다고 압박하는 재판부와 승강이를 하면서 내가 버텨 냈던 부분이기도 하다. 통상임금 소송에서 법원이 법적 기준에 따라서만 판단해 왔다는 걸 알면서도, 기아차지부 조합원이나 지부의 의사도 그러했고, 무엇보다 투쟁으로 쟁취한 협약상 권리를 스스로 주장하지 않는다는 걸 나는 용납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청구금액이 6천500억원이었던 것인데, 이 중 휴일근로의 중복할증을 제외하고 법적 기준으로만 인정하고서 재판부는 그 절반을 인정하는 판결을 했던 것이다. 이번 판결이 나오자 사측은 곧바로 판결에 유감이라며 불복해서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통상임금 소송은 노동자들이 받지 못한 초과근로의 대가인 임금을 지급받겠다고 하는 소송이다. 판결이 유감이고 불만이 있다면 오히려 노동자들이 더할 것이다. 그동안 수십년 불법적인 이득을 챙겨 온 사용자가 당당히 불만을 가질 일이 아니다. 어찌 이번 판결을 두고서 만족할 수 있겠는가. 단체협약상 권리로 보자면 불만이 많은 판결이 아닐 수 없다. 신의칙을 넘고, 법상 권리를 인정받은 것으로 만족한다면 노동조합을 통해서 교섭과 투쟁으로 쟁취해 온 노동자권리는 앞으로 통상임금 판결에서는 찾아보기 어렵게 될 것이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김기덕 laborto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