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할 자유’ 대통령 문재인의 일
작성자: 매일노동뉴스 | 조회: 142회 | 작성: 2017년 6월 27일 12:48 오후‘노조할 자유’ 대통령 문재인의 일
승인 2017.06.27 08:00
▲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세상은 그대로인데, 새 세상에 대한 환호성이 넘쳐 난다. 벌써 50일, 문재인의 승리를 촛불혁명의 승리라며 환호하면서 대한민국의 시간은 흘러가고 있다. 여전히 여론조사기관은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70%를 넘는다고 발표하고 있다. 2017년 6월 오늘, 이런 세상의 시간에 맞춰 노동운동의 시계도 돌아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기대가 노동자들을 지배하고, 노동자권리를 위한 노동운동은 대통령 문재인을 바라보며 전개되고 있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고 보고 있다. 그러니 별 수 없이 나도 대통령 문재인을 바라보며 그가 할 일을 말하게 된다.
2. 지난 10일 서울광장에서 6월 항쟁 기념식이 열렸다. 6월 항쟁 정신을 이은 촛불시민혁명의 승리를 말하며 문재인 대통령은 경제민주주의·국민통합·노사정 대타협 등의 실현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기념사를 했다. 6월 항쟁에서 촛불혁명까지 30년, 이제 정치적 민주주의는 촛불집회와 촛불대선을 통한 국민 승리로 달성됐다고 전제하고서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심화시켜 나가자는 연설이었다. 분명히 광장과 거리에 쏟아져 나와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하고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에게는 호헌 철폐와 직선제 쟁취를 통해 전두환 정권을 심판하고, 국정농단 헌법파괴의 박근혜 정권을 심판하고서 대통령선거를 통해 새로운 권력을 선출했으니 주권자 국민의 승리로서 이 나라의 정치적 민주주의를 실현해 낸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 문재인 대통령이 틀린 말을 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특별히 노동에 관한 언급 없이 이 나라에서 정치적 민주주의를 쟁취·실현했다는 대통령의 말에, 나는 지난 30년 노동운동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1987년 6월 항쟁 직후에 7·8·9월 노동자 대투쟁이 있었다. 당시 6월 항쟁과 노동자 대투쟁은 투쟁의 주체와 시기·요구와 상대가 달랐다. 하지만 시민과 노동자 모두 사회의 민주화와 열악한 노동자권리 향상에 관한 열망은 서로 공감하고 있었다. 적어도 서로를 배척하지 않았다. 당연히 6월 항쟁의 시민들은 노동자들의 노동자 대투쟁을 비난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지하고 연대했다. 그 뒤 6월 항쟁으로 쟁취한 직선제 등 정치적 민주주의는 헌법 개정을 통해 국가의 기본질서로 확립됐다. 노태우·이명박·박근혜 정부 등 부침은 있었지만 정치적 민주주의 자체는 부정당하지 않았다. 여전히 이 나라의 정치질서는 6월 항쟁으로 쟁취한 1987년 헌법체제로 작동돼 왔다. 하지만 7·8·9월 노동자 대투쟁은 노동자권리와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는 새로운 노동체제를 실현해 냈던가. 적어도 법률상으로는 실현해 내지 못했다. 여전히 우리 노동자의 권리와 노동기본권 행사는 제약받고 있고, 이것을 우리는 노동적폐라고 말할 수 있다. 돌이켜 보면 분명히 6월 항쟁이 쟁취한 87년 헌법체제의 정치적 민주주의는 실현됐는데, 7·8·9월 노동자 대투쟁에 참여했던 노동자들이 쟁취한 민주주의는 아니었고, 그것은 노동자의 정치적 이해를 대변하지 못하는 협소한 정치질서에 불과했다. 그래서 오늘 문재인 대통령은 촛불집회를 통해 박근혜 정권을 심판하고 촛불대선으로 새로운 정부를 선출함으로써 정치적 민주주의가 실현됐다고 6월 항쟁의 정신을 이어 촛불시민혁명의 승리라고 선언했으나 그것은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승리였고, 노동자에게 정치적 민주주의가 실현됐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 문제는 기본권 문제다. 정치의 민주주의 실현은 인민의 기본권 보장이기도 하다. 정치적 자유 없이 정치적 민주주의는 없다. 정치적 민주주의가 실현됐다는 말은 국민에게 정치적 자유가 보장됐다는 말이기도 하다. 120여년 전 독일 사회주의자탄압법과 다름없는 국가보안법 등을 통해 노동자 정치는 큰 폭에서 제한받아 왔고, 국가질서 전반은 노동의 참여 없이 작동하도록 제도화돼 있다. 특히 단체행동권 등 노동기본권은 법률상 노동자의 기본권 행사로서 원칙적으로 보장받지 못하고, 제한과 금지의 대상으로서 예외적으로 허용되는 것으로 법적으로 봉인된 기본권으로 전락한 상태다. 오늘 노동자의 자유는 단결해서 행동할 자유, 즉 단결의 자유 없이 말할 수 없다.
3. 민중총궐기로부터 시작된 촛불집회에서 민주노총 등 조직노동자들이 커다란 역할을 했다. ‘문빠’라 불리는 문재인 대통령의 열성적 지지자들도 그걸 부인할 수 없다. 그런 노동자들이 문재인 정부에 노동적폐 청산을 요구하고 있다. 촛불집회를 거쳐 촛불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은 적폐청산을 공약으로 내걸었는데, 그 적폐에는 노동에 관한 것도 있었다. 19대 대통령선거에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했던 문재인 후보의 10대 공약에서 노동공약은 ‘일자리를 책임지는 대한민국’이라는 제목의 제1호 공약이었다. 그 구체적인 이행방법으로 문재인은 첫째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일자리 81만개 창출’하고, 둘째 ‘실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를 하며, 셋째 ‘비정규직 격차 해소로 질 나쁜 일자리를 좋은 일자리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그 밖에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실현을 공약했다. 위와 같이 중앙선관위에 등록된 문재인의 노동공약에는 요구하고 투쟁하는 노동운동은 없었다. 노동자권리를 확보해 주겠다고 공약했지만 사용자자본과 권력에 맞서 노동자권리를 요구하고 투쟁하는 노조활동 등 노동운동에 관해서는 중앙선관위 신고 공약에는 없었다. 그러니 유감스럽다 해야 했다. 그런데 더불어민주당이 발간한 정책공약집 에는 ‘노동존중 사회 실현’이라는 제목으로 포함돼 있었다. 노동기본권 보장에 관해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중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 협약’(제87호, 1948, 147개국 비준), ‘단결권 및 단체교섭 협약'(제98호, 1949년, 156개국 비준), ‘강제노동 협약’(제29호, 1930, 171개국 비준)과 ‘강제노동 철폐 협약'(제105호, 1957, 167개국 비준)을 비준”하고, 이러한 “ILO 핵심협약 비준에 따른 국내 법을 개정하겠다”고 공약했다(87면). 아무런 유보·조건 없이 이들 협약이 비준되고, 이에 따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등 국내 법이 전면 개정된다면 우리 노동자는 헌법 33조에서 보장한 대로 노동기본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에 관해 “국가 위상에 걸맞은” 협약 비준이라고 정책 공약집은 밝히고 있지만, 대한민국헌법이 보장한 노동자의 자유·노동기본권을 ILO 협약 비준이라는 방법을 통해서 재확인하는 것에 불과하다. 굳이 ILO 협약 비준의 방법으로 우회해서 우리 노동자에게 단결의 자유를 국가 대한민국이 보장한다고 재확인해 줘야 하는 것인지 나는 의문이다. 어쨌거나 ILO 협약을 비준하겠다는 공약으로 문재인의 노동공약에 관한 내 의구심은 다소 풀렸다고 볼 수 있겠는데 문제는 그 공약의 이행, 즉 실천이고, 그것만이 의구심을 사라지게 할 것이다.
4. 그렇다면 할 일은 무엇인가. 대통령의 권한으로 할 수 있는 것부터 이행하더라도 나는 문재인 대통령을 비판하지 않겠다. 어디 보자. 먼저 노조 설립신고제도를 사실상 허가제도로 운영해 온 노동행정부터 시정해서 노조할 자유가 우리 노동현장에서 실질적으로 보장되도록 해야 한다. 전교조·공무원노조의 법외노조화는 문재인 대통령이 해소해야 할 대표적 노동적폐다. 실직자·구직자·해고자 등도 초기업노조에서는 활동할 수 있도록 하고, 노조법상 근로자에 관한 적극적 해석을 통해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조 설립을 허용해야 한다. 그리고 노조할 자유를 제한·금지해 온 고용노동부 지침 및 행정해석, 대통령령인 노조법 시행령을 폐기해야 한다. 공공기관에서 파업 등 노조활동에 대한 형사 고소·고발 및 손해배상 청구를 당장 중단하도록 한다. 중요한 것은 헌법이 보장한 대로 이 나라 노동자들이 노동기본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불법파업에 대한 형사처벌과 손배·가압류를 자제·중단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파업이 불법·범죄가 되지 않도록 법·제도에서 파업의 자유를 보장하는 일이다. 파업은 범죄도, 불법도 아닌 노동자의 자유가 돼야 헌법이 보장한 노동기본권을 노동자가 행사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나라를 나라답게.’ 공약했던 대로 ILO 협약 87호·98호·29호·105호 비준 절차를 즉각 추진하고, 이와 별개로 노동기본권 행사를 제한·금지하는 노조법 시행령을 즉각적으로 개폐하며, 헌법상 노동기본권 행사를 제한·금지하는 노조법 등 법령의 전면적인 개폐를 추진해야 한다. 이상은 모두가 공약 이행을 위해 대통령의 권한으로 할 수 있는 일이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