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노동자·민중은 자각적으로 혁명화하지 못하고 반동적인 길을 통해 제국주의 모국의 국민이라는 기득권을 지키고자 헛걸음을 걷고 있다

프랑스 대선

김승호  |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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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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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호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프랑스 대선 날짜가 7일이고 한국의 대선 날짜는 9일이다. 실제 시간으로는 하루 반 차이다. 한국 대선에 비해 프랑스 대선은 세계적인 관심사다. 한국 대선은 촛불혁명에서 이미 정권을 교체하도록 국민적으로 결론이 내려진 다음 사후 절차로 치러지는 선거이므로 그 결과가 대체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프랑스 대선은 아직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행동이 아닌 선거가 오히려 (반!)혁명적 파장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프랑스 대선을 주목해야 하는 데에는 이런 문제의식에서 더 나아가는 이유가 있다. 한국 대선은 세계사적 흐름에 비춰 보면 시대를 앞서는 의미가 없다. 박근혜 정권의 존재와 그에 따른 파시즘과 자유민주주의 세력의 대결, 이른바 ‘민주와 독재의 대립’은 시대착오적이다. 그 시대착오를 뒤늦게 세계사 발전수준에 접근시킨 것이 바로 촛불혁명이었다.

이에 비해 프랑스 대선은 좋든 싫든 시대흐름을 앞서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프랑스 대선과 관련해 사람들은 대체로 제 논에 물 대기 식으로, 또는 근시안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정의당의 심상정 후보는 대선후보 TV토론에서 프랑스 대선을 언급하면서 의회에서는 소수당이지만 대선 예선을 통과해 결선에 진출한 프랑스 국민전선과 그 당의 마린 르펜 후보를 주목하도록 환기시켰다. 그의 이 말은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의회에서 가장 많은 의석을 가졌다고 당선을 자만하지 말라는 뜻과 군소정당인 정의당과 여성인 자신을 경시하지 말라는 뜻을 지녔을 것이다. 하지만 프랑스 대선을 주목해야 하는 주된 이유는 그런 외양보다는 내용이다.

프랑스 대선과 관련해 논의되는 내용은 대개 극우정당인 국민전선 후보가 당선될 위험성이 있다는 것이다. 결과는 뚜껑을 열어 봐야만 알 수 있다. 좌파당 멜랑숑을 지지했던 급진좌파 성향의 유권자들은 중도를 자처하는 전진(앙 마슈)당의 에마뉘엘 마크롱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다. 또 사회당과 자매 노동조합인 프랑스민주노총(CFDT)이 공식적으로는 마크롱을 지지하기로 발표했지만 그 구성원들은 심하게 분열돼 있다. 사회당 내 좌파로서 대선에 출마했던 브누아 아몽의 지지자들 모두가 2002년 국민전선의 장 마리 르펜(아버지)이 당선되는 것을 막기 위해 공화당의 자크 시라크를 지지했던 전철을 되밟지 않을 것 같다. 공화당쪽에서도 자유주의자인 마크롱과 극우 보수주의자인 르펜 사이에서 동요하는 층이 있을 것이다. 만약 르펜이 당선된다면 극우정치의 파장이 유럽을 강타하고 나아가 영국의 브렉시트와 미국의 트럼프 당선에 이어 극우 보수주의가 선진자본주의 나라들 전반에서 약진할 것이다. 르펜이 당선되지 않는다고 해도 그녀가 40% 가까운 득표를 한다면 프랑스의 정치지형은 극우 대 반극우의 대립으로 크게 바뀌게 된다.

기성 정치세력들이 대부분 이런 극우 보수주의 득세에 경계를 표하고 있지만 그들은 어째서 정치지형의 이런 변화가 초래됐는지를 잘 말하지 않는다. 중도적 보수주의가 몰락하면서 극우 보수주의로 우경화했는가? 아니다. 프랑스 대선에서 중도보수의 공화당은 프랑수아 피용을 후보로 내세워 3위를 했다. 그가 가족을 보좌관으로 위장취업시켜 세비를 횡령한 사건이 밝혀져 지지도가 급락하지 않았다면 결선에 1위로 진출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프랑스 정치지형 변화는 좌파쪽에서 일어났으며, 특히 중도좌파쪽에서 일어났다. 사회당은 국민 지지를 잃었다. 현 대통령인 올랑드는 지지율이 4%로 급락했다. 이로 인해 당이 좌파와 우파로 분열해 당내 좌파인 ‘프랑스의 제러미 코빈’이라는 별명의 아몽이 대선후보로 지명됐으나 당내 우파는 상당수가 마크롱을 지지했다. 올랑드 대통령과 사회당 지지도가 크게 실추한 데다 분열의 골까지 깊어 아몽은 6.4%의 지지밖에 얻지 못했다. 그 덕에 중도를 자처한 마크롱이 큰 지지를 받았다. 좌파, 더 정확하게는 중도좌파인 사회민주주의의 정파의 이런 쇠퇴가 극우 보수주의의 약진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이렇게 혁명의 나라 프랑스가 지금 정치지형의 총보수화라는 중병에 걸려 있다. 프랑스만 아니라 유럽 전체가 그런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런 움직임을 과학적으로 진단하지 않고 극우 보수주의의 약진을 막아야 한다는 처방만 내리는 것은 별 약효가 없다. 더구나 그 대안이 이명박 정권 같은 중도보수라면 그 나물에 그 밥이다. 중도좌파는 더욱 실망스럽다. 미테랑·조스팽에 이어 올랑드까지 깜빡이는 왼쪽으로 켜고 핸들은 오른쪽으로 돌리는 배반의 정치를 되풀이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대세가 급진좌파에게로 이동하지도 않는다. 그들의 정책은 사이다 같지만 실현가능성이 높지 않다. 그들의 정책은 지금의 현실과는 달리 자본주의와 서구 제국주의가 역동적으로 발전하는 경우에만 실현가능하기 때문이다.

지금 프랑스 대선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들은 세계사적인 맥락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자본주의·제국주의 쇠퇴 과정 속에서 발생하고 있다. 자본주의는 유럽에서 발흥해 외부세계로 뻗어 나갔다. 그 외부세계 없이는 유럽에서 자본주의도 제국주의도 발생·발전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 외부세계가 민족국가 형성과 개방적인 세계시장 형성을 계기로 급속하게 자본주의화하면서 세계 경제를 다중심으로 만들고 있다. 그리고 중국을 선두로 브릭스(BRICS)를 구성한 나라들이 패권세력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미 제국주의 패권의 추락과 더불어 유럽 제국주의의 준패권적 지위도 동반 추락하고 있다.

이런 제국주의의 쇠퇴가 유럽의 쇠퇴를 낳고 있고, 그것이 또 유럽의 사회민주의의 쇠퇴를 낳고 있다. 그런 쇠퇴 흐름 속에서 유럽의 노동자·민중은 자각적으로 혁명화하지 못하고 반동적인 길을 통해 제국주의 모국의 국민이라는 기득권을 지키고자 헛걸음을 걷고 있다. 제국주의에 대한 반대와 인간성 해방의 지향이 없는 유럽 좌파의 실패다. <자본주의는 미래가 있는가>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책에서 이매뉴얼 월러스틴을 비롯한 다섯 명의 학자들은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고찰했다. 일독을 권한다.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seung742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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