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은 결코 약자가 아니다

노동조합은 결코 약자가 아니다

김기덕  |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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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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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모처럼 촛불집회 없는 한 주였다. 그러나 조용하지 않았다. 마침내 ‘박근혜 퇴진’이 헌법재판소에서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라는 주문으로 실현되고서 보낸 ‘박근혜 없는 3월’이었다. 삼성동 자택 주변에서는 파면된 ‘전 대통령’ 박근혜를 지지하는 박사모의 ‘탄핵 무효’ 집회로 소란했다. 무엇보다도 각 당의 대선주자들이 본격적으로 박근혜 다음의 대한민국 대통령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기자회견, 방송토론, 공약발표 등으로 관심을 끌어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던 한 주였다. 일자리와 노동시간단축·안식년제·노동회의소 등 노동공약도 쏟아졌다. 민주노총 노동조합에서 오랜 기간 활동해 왔던 명망 있는 위원장 등 노조간부 출신들이 문재인, 이재명 등 캠프에 대거 참여했다는 소식도 있었다. 이렇게 권력과 정책으로 촛불 이후의 세상을 위해서 분주했던 날들이었다. 거기서 노동자와 노동조합, 노동운동에 관한 것도 빠지지 않았다. 대기업·정규직과 중소영세기업·비정규직의 격차가 노동운동의 문제로 제기됐고, ‘노동조합은 결코 약자가 아니다’ 등의 칼럼 기사로 쏟아졌다. ‘촛불이 승리했다, 우리가 승리했다’고 환호하면서 맞이했던 ‘박근혜 없는 세상’의 한 주는 이렇게 심란했다.

2. “조직 노동자 중 상위 10%는” 기득권에 포함돼 있는데, “민주노총의 주력 부대가 50만~60만명 정도로 추정”되고, 이들은 “과거에 ‘을’이었지만, 지금은 기득권으로 성장해 1천만 노동자들을 꽉 잡고 있”는 “철옹성이”라서, “진보측이 그 세력을 업고 정치력을 행사하려 하면 앞으로도 해결 불가능할 문제다.” 현대자동차의 도시 울산을 찾아 르포 취재하고서 발간한 ‘가 보지 않은 길’을 통해서 서울대 송호근 교수는 현대차의 노동시스템을 혹독하게 비판하면서 ‘노동조합은 결코 약자가 아니다’고 단언했다고 주간지 시사인(2017.3.14. 제495호)은 커버스토리 기사로 보도했다. 50세의 현대차 노동자 연봉이 본봉 5천만원, 성과급과 각종 수당 2천만~3천만원, 특근수당 2천만원 등을 합해서 대략 1억원을 받는데 ‘누가 생산라인에 들어가든 차는 나온다’는 말이 떠돌 정도로 숙련도는 매우 낮고 해외공장 편성효율이 90%인데 한국공장은 60%에 그치는 등 생산성 내지 경쟁력이 떨어져 문제라고 지적했다. 노동조합이 “단체협약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면서 작업장을 거의 완전히 장악하게” 되면서 이렇게 됐다고 주장했다. M/H(자동차 한 대 생산에 들어가는 작업자 수와 작업 시간), HPV(한 대 생산에 걸리는 시간), UPH(시간당 생산 대수) 등 생산성 관련 지표를 조정할 때 현대차 사측은 노동조합과 사전 협의해야 한다며 결국 노동조합으로 인해서 현대차 노동자는 숙련을 버리고 단순한 기계부품으로 전락하는 대신 보상 확대에만 주력해 왔던 것이라고 비판했다.

3. 그렇다. 노동조합은 결코 약하지 않다. 우리가 노동자가 노동조합이 약하다고 노동조합하겠다고 조합비 내고 탄압받으면서도 투쟁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노동조합이 사용자 자본과 맞서 노동자 권리를 쟁취하고 지켜 낼 노동자 조직이라서 노동자는 노동조합하는 것이다. 박근혜를 탄핵으로 파면한 대한민국헌법은 노동자에게 노동조합할 기본권을 보장했다. 노동자들끼리 단결해서 사용자를 상대로 교섭하고 행동하는 노동기본권을 보장했다(헌법 33조). 사업장의 권력 사용자 자본에 노동자가 제 혼자서 대등하게 협상해서 노동계약을 체결한다는 건 어렵기에 집단으로 할 수 있도록 노동기본권을 보장했다. 이런 노동기본권을 행사해서 노동조합으로 단결한 노동자들은 사용자 자본과 대등해야 마땅한 것이고 임단투에서 제 요구를 관철할 힘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노동자는 약해도 노동조합은 결코 약하지 않다. 노동기본권을 보장한 대한민국 헌법의 취지다. 현대차 노동자가 사용자 정몽구 회장 앞에 복종하며 꼼짝을 못해도 현대차노조는 기죽지 않고 노동자 권리를 당당히 주장해서 투쟁할 수 있었던 이유다. 그래서 현대차 노동자는 주야 교대로 잔업특근해 일해서 해마다 수조원의 당기순이익을 실현한 회사에 대해 잔업특근수당뿐만 아니라 주주배당과 회사유보금 만큼 몫을 달라 노조를 통해 요구해 투쟁해 성과급을 지급받아 왔던 것이고, 그래서 본봉 5천만원에 잔업특근수당과 성과급 등을 보태서 연봉 1억원을 지급받게 된 것이다. 현대차에서 노동조합이 약하지 않았기에 말이다. 만약 노동조합이 없었거나 약했다면 그럴 수는 없었을 것이다. 헌법은 그러려고 노동기본권을 보장한 거였다.

4. 뭐 그렇다고 현대차에서 노조가 대단한 노동자 권리를 쟁취해 냈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 회사의 대규모 흑자 실현으로 지급받는 성과급을 제외한다면 1일 8시간, 1주 40시간으로 연장·야간·휴일근로 없이 법정근로시간을 일하고서 지급받기로 정해진 임금은 5천만원이라는 것이다. OECD 국가 대한민국에서 세계적 대기업 현대차에서 정규직으로 25년을 일해 온 노동자가 지급받는 임금으로 많다고, 그걸 받는다고 귀족노동자라고 감히 나는 말하지 못하겠다. 노동자 권리 타령하는 나는 이 나라에서 가장 조직력 있고 투쟁력 높다는 노동조합이 수십년 교섭과 투쟁을 해 왔음에도 아직도 법정근로시간을 실질 근로시간으로 쟁취해 내지 못했다는 것에, 법정근로시간만 일해서는 25년 근속의 정규직이 5천만원만의 임금권리만 인정된다는 것에 놀란다. 고졸 생산직·현장기능직 등을 중심으로 조직된 노동조합이 대졸 사무관리직 등과의 임금격차를 당연하게 인정해 왔던 것 아닐까. 현대차에서 25년 일한 대졸 사무관리직이 잔업특근 없이 성과급 없이 연봉 5천만원 정도 받고 있는가. 현대차 생산라인에서는 주야 맞교대제에서 이른바 주간연속 2교대제로 근무형태가 변경된 것은 불과 몇 년 전이다. 주간연속 2교대제라고 해 봐야 현대차 생산직 노동자들은 아직도 상시적으로 초과근로를 해야 한다. 노동조합은 결코 약하지 않아야 하는데, 현대차에서 노동조합이 쟁취한 근로시간·임금 등 노동자 권리로 보자면 나는 당당하게 그렇다고 말하지 못하겠다. 단체협약을 통해서 M/H·HPV·UPH 등 갖가지 생산수치의 확대에 관한 노조와의 협의를 통해서 “작업장을 거의 완전히 장악하”고서도 이 정도라니 현대차에서 노동조합은 약하지 않다고 말하지 못하겠다. 숙련을 버리고 단순한 생산 기계부품으로 전락하고서 얻은 노동자 권리라고 보기에는 보잘 것이 없다고 말해야겠다. 자동화로 생산효율을 높이겠다는 사용자 자본에 맞서 그나마 이 정도의 노동자 권리를 쟁취해서 지켜 온 것이라고 변명이라도 들었으면 나는 좀 위안이 되겠다. 수십년 민주노조운동의 중심 사업장 노조활동을 통해서 확보한 노동자 권리가 나는 도무지 성에 차지 않는다.

5. 그런데 말이다. 이마저도 이 나라에서는 안 되는 사업장, 노동자 투성이다. 이 나라 노동자 중 10%만 노동조합에 조직돼 있다. 그 10%가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조합원이다. 그런데 특히 민주노총 조합원인 그들이, 민주노총의 주력 부대로 추정되는 50만~60만명의 그들이 기득권으로 1천만명 노동자를 꽉 잡고 있다고 비난을 하고 있다. 50만~60만명이면 민주노총 조합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대다수를 말한다. 촛불집회의 주최자 퇴진행동의 주요 참여단체가 기득권을 대변하는 노동자단체고, 진보측이 “그 세력을 업고 정치력을 행사하려 하면” 이 나라에서 노동문제가 “앞으로도 해결 불가능”하다고 교수는 주장하고 있는데, 여기서 진보란 더불어민주당을 포함한 정치세력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촛불집회를 통해서 박근혜 정권을 몰아내고서 집권할 민주의 당 세력을 두고서 하는 말일 게다.

10%가 문제인가. 노동조합을 조직한 10%가 기득권으로 이 나라에서 노동문제 해결을 가로막고 있는가. 현대차에서 노동조합이 사내하청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방해하고 있는가. 정규직의 민주노총이 비정규직과의 차별 확대를 위해 기득권을 행사해 왔다고는 나는 도저히 인정하지 못하겠다. 이 나라에서는 대기업 정규직의 노동조합으로 기득권을 행사해서가 아니라, 중소사업장·비정규직이 노동기본권을 행사하고 있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고 봐야 한다. 중소사업장·비정규직 노동자가 노동조합을 조직하고 가입하는 걸 사용자 자본이 어떠한 불이익을 주거나 개입하지 않고 노동부 등 국가기관이 적극적으로 노동조합을 안내하고 사용자를 상대로 교섭과 쟁의하는 법을 교육하면서 적극적으로 노동기본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해 왔다면, 지금보다 월등한 수준에서 노동자 권리를 확보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것이 수십년 동안 현대차에서처럼 노동자권리가 켜켜이 쌓아 왔다면, 아마도 그랬다면 그들도 현대차 노동자 수준의 권리 정도는 보장받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그들도 분명히 기득권자라고 교수의 비난을 받았을지 모른다. 앞에서 본 것처럼 기득권이, 현대차 노동자의 권리가 대단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더욱 그럴 거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박근혜 없는 세상’은 노동 없는 세상이어서는 안 되는데, 오늘 촛불집회로 쟁취한 세상에서는 노동은 없다. 촛불은 승리했어도 노동의 촛불은 아니었던 건 냉정한 사실이다. 노동기본권 행사로 쟁취한 노동자 권리를 기득권이라고 비난하지 않는 세상은 약하지 않은 노동조합·노동운동·노동의 정치를 통해서 오게 될 것이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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