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인사로부터 추천 전화 받아”
통신 경험 없이 유력 후보 역전
취임 후 차은택 측근 임원 발탁
최순실 광고회사에 일감 논란도
연임 도전에 악재로 작용할 듯
최근 연임 의사를 밝힌 황창규 KT 회장이 2013년 KT 최고경영자(CEO)로 선임될 당시 ‘청와대 개입설’이 제기되면서 곤혹스런 입장에 몰리고 있다.
삼성전자 출신으로 통신업계 경험이 없는 황 회장을 청와대가 콕 집어 CEO로 낙점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최순실 게이트’ 관련 특검 수사 대상에 KT의 이름이 다시 오르내리는 등 ‘청와대 리스크’가 황 회장의 연임에 악재로 작용할 것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12일 복수의 KT 관계자에 따르면 2013년 12월 14일쯤 KT CEO추천위원회(사외이사 7명ㆍ사내이사 1명) 소속 사외이사 A씨는 청와대 인사로부터 “황창규 전 삼성전자 사장을 추천해 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이 내용을 전해 들은 다른 위원들은 “통신 전문가도 아닌 사람을 왜 추천하느냐”며 반대했지만 황 회장은 15일 최종 후보 4명에 이름이 오른 뒤 16일 면접을 거쳐 CEO로 확정됐다. KT 한 고위관계자는 “A이사가 황 회장 취임 이후 KT 관계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청와대 의중을 다른 위원들에게 전하고 설득하느라 애를 먹었다’고 수 차례 무용담처럼 이야기했다”고 전했다.
당시 면접에 오른 4명은 김동수 전 정보통신부 차관, 임주환 전 전자통신연구원장, 권오철 SK하이닉스 고문과 황 회장이다. 대다수 CEO 추천위 위원들은 한국통신학회 회장을 지낸 임 전 원장에 가장 높은 점수를 준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정부 유관 부처는 비공식 보고서를 CEO 추천위에 전달하며 김 전 차관을 추천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일보가 입수한 문건의 내용을 보면 해당 부처는 KT의 차기 CEO의 조건으로 통신 산업 전문가ㆍ통찰형 리더ㆍ통합형 인사 세 가지 요인을 갖춘 이른바 ‘3통’을 제시했다. 언론에서 후보로 거론되던 10여명의 인사 중 황 회장에 대해선 “전문경영인으로서의 인지도와 (경영) 전문성은 강점이지만 삼성 출신이라는 거부감, 통신 전문성 부족 등이 단점”이라고 지적했다.
KT 안팎에서는 정부 부처의 의견을 뒤집을 수 있는 것은 사실상 청와대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비슷한 시기 권오준 포스코 회장 선임에 최순실과 청와대가 개입했다는 의혹도 이 와 맥을 같이 한다. 당시 CEO 추천위원이었던 B씨는 “초반 유력 후보에 황 회장이 없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확인했다. 면접까지 봤지만 황 회장에 밀려 고배를 마신 C씨는 “KT 회장 자리는 원래 높은 곳에서 낙점하는 것이 관행”이라며 “모 후보는 본인이 낙점될 것으로 알았는데 막판에 뒤집혀 망신만 당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A위원은 “황 회장과 이전부터 친분이 있어 추천하기는 했지만 청와대 압력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A씨는 현재도 KT 사외이사를 맡고 있다.
그러나 황 회장 취임 뒤 KT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은 청와대 개입 의혹을 뒷받침한다는 시각이 만만찮다. 국정 농단 공범인 차은택 측근들이 KT 임원으로 들어갔고, 최순실이 실소유주로 알려진 플레이그라운드는 KT 광고 일감을 가져갔다. 또 KT는 박근혜 정부 주력 사업인 창조경제 정책에 적극 호응해 경기 창조경제혁신센터와 한진이 단독으로 맡았던 인천센터까지 2개나 운영 중이다. 최근엔 황 회장이 지난해 박 대통령과 독대해 경쟁사인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를 막아달라는 민원을 넣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이 때문에 KT 노조 등에서는 황 회장의 연임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KT의 한 직원은 “경영 능력보다 청와대 지원에 힘입은 인선이라면 어떻게 믿고 일할 수 있겠느냐”고 강조했다. 윤종진 KT 홍보실장은 “황 회장 인선은 CEO 추천위에서 정해진 절차에 따라 이뤄졌다”며 “외부 압력이 작용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서희 기자 shlee@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