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리셋 코리아]대주주 견제 위해 주주대표소송 자격 대폭 완화하자
작성자: 최종관리자 | 조회: 95회 | 작성: 2017년 6월 28일 10:45 오전[리셋 코리아] 대주주 견제 위해 주주대표소송 자격 대폭 완화하자
기업 지배구조 개선하려면
지난해 KB금융지주에 인수된 현대증권 소액주주들은 윤경은 전 대표 등을 상대로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했다. 윤 전 대표 등이 KB금융지주에 자사주를 헐값으로 매각해 현대증권에 손해를 끼쳤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법원은 이들의 요구를 기각했다. 두 회사 간 포괄적 주식 교환으로 소액주주들의 주주 지위가 상실돼 소송 제기 자격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주식 교환으로 소액주주들의 주식은 현대증권에서 KB금융지주 주식으로 전환됐다. KB금융지주 소액주주가 됐으니 현대증권 이사들에게 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는 논리다. 현대증권 소액주주들은 “합병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보았는데도 소송 당사자가 되지 못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항변하고 있다.
리셋 코리아 지배구조분과 제안
지분 1% 이상, 6개월 이상 보유 등
제한 엄격해 소송 제기 5년간 7건뿐
일감 몰아주기, 독단적 경영 폐해
제도 활성화되면 사전 예방 가능
미국식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해
회사 자료, 원고 측에 주게 해야
미국이라면 어떨까. 1985년 미국 금융회사인 렉싱턴에 대해 주주대표소송이 제기됐다. 임원들이 500만 달러를 부실 대출한 데 대해 회사 측이 환수할 것을 요구하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도중에 렉싱턴이 다른 회사에 합병돼 사라지면서 주주 자격이 논란이 됐다. 하지만 법원은 주주들이 원치 않는 합병으로 자격을 잃게 됐다며 소송을 계속할 것을 결정했다. 이후 미국에선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하는 주주의 자격을 폭넓게 인정하고 있다. 현대증권 주주대표소송이 미국에서 제기됐다면 재판이 계속 진행됐을 거라는 얘기다.
주주대표소송은 경영진의 행위가 회사 이익과 어긋날 경우 주주가 회사를 대표해 경영진을 상대로 제기하는 소송이다. 가족 회사 일감 몰아주기, 사업 기회 편취 등 지배주주가 경영권을 이용해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대한항공이 조현아 전 상무 등 가족들이 만든 회사에 기내 면세점 사업을 공짜로 줬던 게 대표적 사례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고발한 부영그룹도 가족 회사에 회사 일감을 맡기고 이를 제대로 신고하지 않아 일감 몰아주기 의혹을 받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선 소송 제기 요건과 소송 제기 자격이 너무 엄격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는다. 1997년 참여연대가 제일은행 이사들을 상대로 제기한 주주대표소송 이후 2012년 말까지 판결이 내려진 주주대표소송은 총 58건뿐이다. 이 중 상장사에 대한 소송은 28건으로 1년에 채 2건이 안 된다. 공정위가 집계한 상장사 주주대표소송도 지난 5년간 7건뿐이다. 재계에서 말하는 소송 남발 우려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사실 주주대표소송은 회사를 대표해 주주들이 내는 소송이다. 소송을 이기면 회사가 손해배상금을 모두 갖는다. 소송을 지면 주주들이 그 비용을 부담한다. 턱없는 이유로 소송을 제기할 이유가 없는 셈이다. 김우진 서울대 교수는 “이해관계 상충 가능성이 있는 거래에 대한 경영진의 의사결정 때 추후 소송 제기 가능성이 실질적인 고려 요소가 될 정도로 소송 제기 요건이 완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나마 제기된 소송도 증거 부족 등의 이유로 총수 측이 이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최근 진행된 아시아나항공·현대엘리베이터·KT에 대한 주주대표소송에서 법원은 모두 소액주주의 요구를 기각했다.
세계서 가장 강력한 법 뒀지만 실효성 없어
주주대표소송이 제대로 되면 지배구조 개선과 규제 완화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 복잡한 사전 규제를 없애고 당사자 간 사후 해결에 맡길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지배구조는 후진적으로 평가되지만 법 제도는 후진적이지 않다. 오히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법제도를 두고 있다.
자산 2조원을 넘으면 3명 이상 사외이사를 둬야 하고, 이들이 과반수를 차지하는 이사회와 감사위원회를 예외 없이 둬야 한다. 감사 선임 때 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을 합쳐 3% 이상의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한다. 정관으로 배제하지 않으면 집중투표제를 허용해야 한다. 자본시장법에 따른 준법감시인제도, 외감법에 의한 내부회계관리제도, 상법상 준법지원인까지 의무화돼 있다. 2009년엔 일감 몰아주기를 막기 위해 회사 기회 유용 금지를 명문화한 상법 개정을 했다. 그런데도 오너에 의한 황제 경영이 만연한 게 현실이다. 지배구조 문제가 법의 문제가 아니라 실효성과 기업 현실의 문제라는 방증이다. 이걸 개선하지 않고 막연한 규제를 양산하면 기업에 부담을 줄 뿐이다. 주주대표소송을 활성화하면 이런 폐해를 사전에 예방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1998년 참여연대가 삼성전자 이사진에 주주대표소송을 내 승소한 사건이다. 당시 삼성전자는 보유한 삼성종합화학 주식을 헐값에 계열사에 팔아 회사 손실을 초래했다. 삼성전자 자금 70억원을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뇌물로 제공하기도 했다. 6년여를 끈 소송 끝에 법원은 이건희 회장 등 당시 이사진에 190억원을 회사에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후 회사 자금으로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하는 관행이 점차 사라졌고, 임원배상책임보험 가입이 일반화됐다.
M&A로 지위 잃은 주주도 소송 자격 줘야
중앙일보·JTBC의 국가 개혁 프로젝트 ‘리셋 코리아’ 지배구조분과는 주주대표소송 개선점으로 네 가지를 제시했다.
우선 현대증권처럼 합병 등으로 주주의 지위를 상실한 주주들이 내는 소송도 인정해야 한다. 회사 측이 주식 교환을 해버리면 소액주주의 소송 자격을 박탈할 수 있기 때문이다. 권종호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재 제도로는 소액주주가 합병의 정당성을 다툴 여지도 사라지게 된다”며 “주주대표소송 자격을 폭넓게 인정해 주주대표소송이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둘째, 소송의 공익성을 감안해 너무 엄격한 소송 제기 자격을 완화해야 한다. 현재 주주대표소송은 1% 이상 지분을 보유한 소액주주가 낼 수 있다. 상장사는 0.01% 지분을 6개월 이상 보유해야 한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은 311조원이 넘어 소송을 위해선 311억원 이상이 필요하다. 김우찬 고려대 교수는 “현실적으로 주주대표소송만을 위해 주주들이 6개월간 수백억원어치의 지분을 보유하기는 쉽지 않다”며 “요건을 완화해 보다 쉽게 주주대표소송을 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셋째, 소송과 관련된 정보의 불평등을 해소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주주대표소송의 상대는 대개 회사를 장악하고 있는 이사진인 경우가 많다. 따라서 불리한 증거는 감추고 유리한 증거만 내놓을 개연성이 크다. 이상승 서울대 교수는 “이를 방지하려면 대표소송에 근거가 있다고 법원이 판단하는 경우 회사 측이 관련 자료를 원고 측에 제공하도록 하는 미국식 디스커버리 제도를 도입해 소송 당사자 간 무기 대등의 원칙을 구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넷째, 회사가 주주대표소송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처하게 하는 장치의 필요성이다. 일본의 경우 주주가 회사에 소송을 요구한 뒤 60일 내에 소송 제기 여부를 밝히도록 하고 있다. 그 기간이 끝나면 주주가 회사를 대신해 주주대표소송을 낼 수 있다. 회사에 충분한 조사 기간을 주고 사회적 압력도 가하는 방법이다.
박경서 고려대 교수는 “주주대표소송이 활성화되면 사전 규제를 최소화할 수 있다”며 “기업은 지배구조 선택의 폭을 넓히고 기업 내부자의 사익 추구 행위에 대한 엄격한 처벌을 통해 국내 기업의 지배구조를 개선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나현철 논설위원 tigerace@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리셋 코리아] 대주주 견제 위해 주주대표소송 자격 대폭 완화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