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20년째 반복…‘이익 카르텔’이 KT 장악[대혼돈의 KT]
작성자: 최종관리자 | 조회: 242회 | 작성: 2023년 4월 12일 9:41 오전20년째 반복…‘이익 카르텔’이 KT 장악[대혼돈의 KT]
‘대리인 비용’ 급증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KT의 지배구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외부 평가기관은 KT 지배구조에 대해 후한 점수를 준다. 그러나 KT그룹 안팎에서 바라본 시선은 외부 평가기관과 온도 차가 적지 않다.
KT 같은 소유분산기업에서는 ‘대리인 문제’가 자주 입길에 오른다. 대리인 문제는 주주와 경영자 간 이해관계가 서로 다를 수 있다는 데서 출발하는데, 소유분산기업일수록 ‘대리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리인 비용’도 커진다는 게 학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주식회사 소유권이 분산돼 있으면 경영자를 향한 견제와 감시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기 힘들다. 일반적으로 소액 주주는 경영자에 대한 모니터링 비용(Monitoring Cost)이 견제와 감시로 인해 예상되는 이익보다 크다. 모니터링 비용은 소액 주주가 전적으로 부담하지만, 모니터링에 따른 이익은 지분율에 비례해서다. 견제와 감시에 허점이 존재하므로, 소유분산기업의 경영자 입장에서는 회사를 지배하고픈 유인으로 작동할 수 있다.
세간 입길에 오른 대목은 KT의 이사회 운영이다. 현재 KT 이사회 정원은 총 11명으로, 사내 3명, 사외 8명이다. 구현모 대표 체제에서는 사내 2명, 사외 8명이 이사회를 이끌었다. 형식적으로는 외부 출신 사외이사 비중이 사내이사보다 훨씬 높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실질적으로 이사회를 움직이는 ‘힘’은 소수 사내이사가 틀어쥐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황인태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소유분산기업 이사회는 사외이사 비율이 높은데, 이들은 대부분 대표 거수기 역할을 하면서 대표를 포함한 일부 사내이사에게 힘이 집중되는 구조였다”고 진단했다.
이런 시각을 뒷받침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는 게 통신업계 시각이다.
실제 지난해 KT 이사회에서 이뤄진 총 512회의 투표 가운데 사외이사가 상정된 안건에 반대하거나 기권한 횟수는 6회에 불과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지난해 KT는 총 23차례 이사회를 열었고 64개 안건을 다뤘다. 이 가운데 사외이사 8명이 512표를 던졌고 반대·기권은 각각 3회에 불과했다. 일각에서는 이사회에서의 반대·기권 횟수만을 헤아려 기계적으로 이사회 독립성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편다. ‘사전에 의견이 조율된 안건이 이사회에 상정되므로 반대·기권 횟수만으로 이사회의 독립성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다.
일리 있는 주장이지만 KT 이사회 문제는 다소 결이 다르다. 구현모 대표 체제 아래 반대·기권 표를 던졌던 사외이사 일부는 연임에 실패했다. 반대·기권 표를 던진 사외이사는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반대 1회·기권 2회), 박찬희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기권 1회), 김용헌 전 헌법재판소 사무처장(반대 1회), 벤자민 홍 라이나생명보험 이사회 의장(반대 1회)이다.
이들 가운데 성 교수와 박 교수는 지난해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연임이 불발됐다. 특히 두 교수의 연임 불발을 두고 KT 안팎에서는 구현모 대표 인센티브 지급을 두고 이견을 보인 게 발단이 된 게 아니냐는 뒷말이 따랐다. 당시 성 교수는 KT 이사회 내 평가·보상위원회 위원장을, 박 교수는 평가·보상위원을 맡고 있었다. 대표이사 인센티브 지급에 대해 사실상 반대 의견을 낸 직후 사외이사직 연장이 불발된 것이다. 당시 구 대표는 2021년 급여 5억5600만원과 상여 9억4600만원 등 총 15억2200만원의 보수를 받았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구 대표가 속칭 ‘상품권깡’으로 비자금을 조성해 국회의원에게 후원한 혐의(횡령 및 정치자금법 위반)로 재판을 받고 있었기에 일부 사외이사들이 이를 문제 삼았는데, 구 대표 쪽으로 분류되는 사외이사가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자 분위기가 바뀐 것으로 안다”고 돌아봤다.
사외이사 독립성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것은 KT 사외이사제가 실질적으로는 대표이사 영향 아래 놓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현재 KT 정관 제42조는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를 사내이사 1인, 사외이사 전원으로 구성하도록 한다. 대표이사 후보 심사 대상자들을 심사하기 위한 대표이사후보심사위원회에도 사외이사 전원과 사내이사 1인이 참여한다. 물론 기업 내부자인 사내이사는 외부 이해관계자인 사외이사와 소통하며 정보 비대칭을 완화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사내이사가 포함된 것 자체를 비판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현재 KT에서는 사내이사 1인이 누가 되든 대표이사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롭기 힘든 구조다. 지금처럼 사외이사 후보군이 대표이사 영향 아래 관리되는 구조로는 사외이사와 대표이사 간 얽히고설킨 이해관계의 연결고리를 끊어내는 것이 여간 힘들지 않다. KT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KT 사외이사, 감사의 1인당 평균 보수액은 1억원 정도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사외이사가 자신을 추천해준 대표이사 연임에 암묵적으로 동의해주면 연 1억원의 소득이 보장되는데, 이런 구조로는 독립적인 이사회 운영이 사실상 힘든 구조”라고 지적했다.
임승태·윤정식 지명은 ‘惡手’
통신업계에서는 KT 대표이사 연쇄 사퇴 파동 이면에 이강철 전 사외이사와 남중수 전 KT 사장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이 전 사외이사는 노무현 대통령 시절 참여정부에서 정무특별보좌관과 시민사회수석(전 정무특보)을 지낸 인물로 대표적인 진보 진영 인사로 분류된다. 이 전 이사는 남중수 전 KT 사장과도 연이 닿는다. 그는 노무현정부 시절 남 전 사장이 KT 수장으로 임명됐을 때 인연을 맺었다. 이 전 이사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황창규 당시 회장 체제에서 영입된 ‘코드인사’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이 전 이사는 황 회장에 이어 구 대표 취임 후 사외이사직 연임에 성공했다.
이 전 이사는 막후에서 구 대표가 KT 수장에 오르는 과정에도 큰 기여를 한 것으로 알려진다. 2019년 2월 KT 대표이사 후보를 심사할 때, 박윤영 부사장과 구현모 사장 간 경합 구도에서, 첫 투표 때는 박 부사장이 1표 앞섰으나, 일부 이사들이 황 회장 측의 박 부사장 밀어주기 의혹을 제기하며 재투표를 밀어붙인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재투표 강행을 주도한 사외이사가 이 전 이사였고 그 덕에 구 대표가 KT CEO로 선임될 수 있었다는 소문이 통신업계에 파다했다. KT 사외이사 출신 교수는 “문재인정부의 상징적인 코드인사였던 이 전 이사가 목소리를 낸 것이 다른 이사들에게는 당시 청와대 의중이 담긴 신호로 해석됐을 것”이라 짚었다.
이 전 이사의 ‘구현모 챙기기’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성태윤 교수가 이사회 산하 평가보상위원회 위원장으로 있던 당시, 성 교수를 포함한 일부 사외이사가 구 대표 검찰 수사 등의 이유로 경영 성과 평가에 이의를 제기했는데, 이 결과를 뒤집는 데 이 전 이사가 적지 않은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다.
통신업계를 한참 떠나 있던 남 전 사장의 이름이 KT 안팎에서 입길에 오르기 시작한 것도 지난해 하반기부터로 구 대표 연임이 임박한 때와 겹친다. 당시 KT 내부에서는 윤석열정부와 연결고리가 거의 없던 구 대표가 연임을 마음먹고 모종의 역할을 해줄 인물로 남 전 사장을 염두에 두고 일종의 자문을 구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오갔다. 실제 남 전 사장은 구 대표의 처지와 여러모로 겹치는 대목이 많다. 남 전 사장 역시 KT 내부 출신으로 대표이사가 됐고 노무현정부 때 연임에 성공했지만 이명박정부로 교체된 후 배임 혐의로 구속돼 불명예 퇴진했다. 전직 KT 임원은 “내부 출신 CEO, 정권 교체기 연임 등 구 대표 입장에서는 오버랩 되는 대목이 많아 남 전 사장에게 자문을 구하고 싶었을 것”이라 촌평했다.
공교롭게도 구 대표의 사퇴 후 그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윤경림 사장이 대표이사 후보로 결정되자 대표이사 권한으로 추천하는 사내이사에 송경민 KT SAT 사장이 선임됐다. 송 사장은 남 전 사장이 KT 대표 시절 비서실장을 지낸 인물이다. KT그룹 안팎에서는 ‘이강철·남중수-구현모-윤경림’으로 이어지는 ‘이익 카르텔’이 입방아에 올랐다.
무엇보다 구 대표 사퇴 뒤 차기 대표이사 후보자로 지목된 윤경림 사장이 임승태 전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을 사외이사로, 윤정식 한국블록체인협회 부회장을 KT스카이라이프 대표이사로 각각 내정한 것은 윤석열정부의 반감을 더 키운 ‘최악의 한 수’였다는 평가다. 임 전 금통위원은 지난 대선 기간 ‘윤석열 후보 캠프’에 특보로 참여했다. 윤 부회장은 윤석열 대통령의 충암고 선배지만 별다른 인연은 없는 것으로 알려진다. 통신업계와 정치권에서는 임 전 금통위원과 윤 부회장이 내정되는 데 역할을 한 인물로 남 전 사장을 지목하는 시선이 존재한다. 임 전 금통위원은 경기고 출신이라는 점에서 남 전 사장과 겹친다. 윤 부회장은 과거 박근혜정부 초반 KT 대외총괄 부사장을 지냈다. 대기업 대외협력 담당 임원은 “대통령실 주변에서는 ‘대통령과 연결고리가 있는 인물을 사외이사와 계열사 대표로 내정했으니 본 게임인 KT 대표이사 선임은 우리가 알아서 하겠다’는 신호로 읽혀 더 큰 반감을 자극한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대주주 포용 노력 부재
독이 된 ‘탈통신’ 프레임
소유분산기업일수록 의사 결정 구조에 주주 대표성을 접목하려는 노력이 필요하지만, KT는 이런 측면에서도 주주들에게 정당성(Legitimacy)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존재한다. 지난해 말 기준, KT 주요 주주는 최대주주인 국민연금(10.12%)을 비롯해 지분 7.8%를 보유한 현대차그룹 등이 있다. 현대차 지분이 4.7%, 현대모비스가 3.1%다. 신한은행은 5.6%다. 현재 KT 정관에는 사외이사 추천 등 주요 의사 결정 과정에 주주의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는 통로가 마련돼 있지 않다.
실제 구현모 대표가 연임 의사를 공식화한 뒤 현대차그룹이 구 대표 우군으로 분류된다는 취지의 언급이 나오자 양재동에서는 불편한 기류가 감돈 것으로 알려진다. 한 재계 관계자는 “소유분산기업 주요 주주라면 이들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는 게 주주 대표성을 갖추는 건데, KT에서 현대차 측으로 사외이사 추천 등에 관해 사전에 의견을 구하는 과정이 없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외부에서 제기된 ‘탈통신’ 프레임에 소극적으로 대응한 것도 KT 운신의 폭을 더욱 좁혔다는 지적이다. 최근 통신업계에서는 AI, 플랫폼 비즈니스 등으로 사업 구조를 다각화하려는 움직임이 유행처럼 확산했다. 기존 통신 사업에서는 투입되는 설비 투자에 비해 비용 회수가 녹록지 않자 사업 구조를 고도화하려는 전략적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는 엄밀히 말해, ‘탈통신’이 아니라 재계에서 유행하는 ‘양손잡이 조직’ 전략으로 볼 수 있다. 기존 주력 사업의 효율성을 높이는 한편, 주력 사업과 연계성이 높은 신사업을 택해 모험적인 시도를 도모한다는 게 양손잡이 조직 전략의 골자다. 주력 사업과 모험적인 신사업 간 통합(Integration)을 통해 시너지를 제고한다는 게 이 전략의 핵심인데, ‘탈통신’ 프레임에 갇히면서 마치 ‘이제 더는 통신 사업에 대한 투자를 하지 않는다’는 그릇된 신호로 정치권에 읽혔다는 분석이다.
대통령실 안팎에서는 “통신사들이 국가기간 인프라로 막대한 돈을 벌면서 망 설비 고도화에는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는 불만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구 대표 체제에서 KT는 시장 전략 측면에서는 남다른 성과를 냈지만 비시장 전략(Non-market Strategy)에서 잇단 악수를 둔 게 정부 개입의 빌미가 됐다는 지적이다.
한편, KT는 ‘뉴거버넌스 태스크포스(TF)’에 참여할 외부 전문가 추천을 주요 주주에게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 TF는 신규 사외이사진 선임을 주된 목표로 한다. KT는 5명 정도 뉴거버넌스 TF에 참여할 전문가를 확정하기 위해 국민연금, 현대차 등 지분율 1% 이상의 국내외 주요 주주를 대상으로 전문가 추천을 요청하는 공문을 발송했다. 4월 12일까지 추천을 받으며 주주당 최대 2명까지 추천할 수 있다. KT는 TF에 참여할 외부 전문가의 자격 요건으로 기업 지배구조 관련 학계 전문가, 의결권 자문기관·연구소 등 지배구조 관련 전문기관 경력자, 글로벌 스탠더드 지배구조 전문가 등으로 규정했다. 다만, 외부에서는 신임 경영진 선출에 6개월가량 소요될 것이라는 KT의 예상에 물음표를 다는 시선도 있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6개월 뒤면 정치권에서도 사실상 내년 총선 모드로 KT 사태가 현안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릴 가능성이 있다”며 “총선 국면에서는 정치권에서도 더는 KT를 향해 거센 공박이 힘들지 않겠냐는 정무적 판단이 깔려 있을 것”이라 해석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04호 (2023.04.12~2023.04.1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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