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이제 집사 노릇 하겠다” 국민연금이 KT와 한판 붙은 이유는?
작성자: 최종관리자 | 조회: 157회 | 작성: 2023년 1월 15일 7:42 오후“이제 집사 노릇 하겠다” 국민연금이 KT와 한판 붙은 이유는?
요즘 국민연금과 관련된 소식이 심심치 않게 보도되죠. 국민연금공단이 관리하는 국민연금이 고갈될 위기에 처했고, ‘1990년대생부터는 연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잖아요.
국민연금이 최근 또 다른 논란의 주인공이 됐어요. 통신 3사 중 하나인 KT의 최고경영자(CEO) 선임을 두고 KT와 갈등을 빚는다는 내용인데요. KT는 오는 3월 임기가 끝나는 구현모 CEO의 연임을 추진하는데, 국민연금이 거세게 반대하고 있죠.
국민연금은 국민의 노후 소득을 보장하기 위해 국가가 시행하는 ‘사회보험’ 제도예요. 젊을 때 소득의 일부를 보험료로 내면, 나이가 들거나 사고·질병으로 돈을 벌기 어려워졌을 때 연금을 지급해 최소한의 생활수준을 보장하겠다는 건데요. 우리가 예기치 못한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 보험에 가입하는 것처럼, 국가가 사회 구성원들을 위해 만든 보험이라는 의미에서 사회보험이라고 부르죠. 지난해를 기준으로 약 2200만명이 국민연금에 가입해 있어요.
많은 사람이 가입한 보험인 만큼 그 규모도 엄청나요. 국민연금이 굴리는 돈만 900조원이 넘죠. 국민들이 낸 돈을 잘 불려서 나중에 돌려줘야 하니까 여기저기 투자도 많이 했는데요. 국민연금은 국내 주식시장 전체 주식 가치(시가총액)의 약 7%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죠. 이런 국민연금은 카카오나 현대자동차, 네이버 같은 우리나라 대표 기업들의 주요 주주예요.
국민연금은 KT의 최대주주이기도 해요. KT의 CEO 연임에 반대 목소리를 낼 자격은 있는 거죠.
국민연금이 기업의 CEO 선임을 두고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낸 건 이례적인 일이에요. 물론 국민연금이 보유한 여러 기업들의 지분율만 놓고 보면 의견을 밝힐 자격이 충분하지만, 예전엔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우린 투자만 잘하면 된다’라는 입장이었죠.
이랬던 국민연금이 최근 생각을 바꿨어요. 가만히 앉아 투자만 하는 걸로는 부족하다는 건데요. 투자 대상 회사를 주기적으로 점검하고, 회사가 잘못하는 게 있으면 적극적으로 개입하겠다는 뜻을 밝힌 거죠.
국민연금이 생각을 바꾼 근거는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라고 불리는 투자 지침이에요. 2010년에 영국에서 처음 등장한 개념인데요. 코드(code)는 ‘지침’이나 ‘규범’이란 뜻이고, 스튜어드(steward)는 ‘집사’라는 의미예요.
큰 저택을 꼼꼼하게 관리하는 집사처럼, 남의 돈을 맡아 잘 투자하려면 투자한 기업의 의사결정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거죠. 국민연금이 관리하는 돈의 주인은 국민들이잖아요. 국민의 뜻을 잘 받들어서 집사처럼 연금을 잘 관리하겠다는 거예요.
특히 국민연금이 주목하는 건 KT 같은 ‘소유분산 기업’이에요. 소유분산 기업은 말 그대로 압도적인 지분을 보유한 주주가 없는, 딱히 주인이 존재하지 않는 회사들을 의미해요. 특정 재벌가의 소유도 아니고요.
앞서 국민연금이 KT의 최대주주라고 했지만, 지분율은 10% 남짓이에요. 2대 주주와의 지분율 차이도 크지 않죠. 또 지금까진 국민연금이 딱히 목소리를 내지 않았으니 KT는 ‘주인 없는 회사’나 다름없었다는 게 국민연금의 주장이에요.
국민연금은 ‘소유분산 기업은 CEO의 선임 과정이 공정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라고 주장해요. 기존 CEO의 입김이 들어갈 여지가 크다는 건데요.
회사의 중요한 일들을 결정하는 기관을 이사회라고 해요. 사업 계획은 물론 CEO 선임에도 관여하죠. 이런 이사회는 주주들이 선임한 이사들로 구성되는 게 원칙이에요. 그런데 회사 지분을 보유한 주주들이 분산돼 있으면, 이사회가 주주보다는 CEO 같은 경영진의 눈치를 더 많이 볼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그럼 기존 CEO가 연임을 하거나, 원하는 사람을 차기 CEO에 앉히는 게 용이할 테고요.
CEO는 회사의 주인인 주주들의 뜻에 따라 회사의 경영을 책임지는 사람인데, 차기 CEO 선임 과정에 개입할 수 있으면 더 이상 주주들을 무서워할 이유가 없겠죠. 이런 상황을 방관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겠다는 게 국민연금의 입장이고요.
지난달에 KT 이사회는 ‘구 CEO가 연임하는 게 KT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며 그를 차기 CEO 후보로 단독 추대했는데요. 국민연금은 ‘주인 없는 기업’인 KT의 이사회가 결정한 CEO 후보를 인정할 수 없다고 반대해요. 그를 CEO 후보로 추천하게 된 과정과 이유를 투명하게 공개하라는 요구죠.
KT는 국민연금이 명분 없는 반대를 한다고 주장해요. CEO 후보 선임은 정당한 절차를 거친 결과이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죠. 구 CEO의 경영 성과도 아주 좋고요. 그가 KT CEO로 취임한 건 2020년 3월인데요. 당시와 비교해 KT의 주가는 70% 이상 상승했고 경영 실적도 크게 개선됐죠. 국민들의 돈을 잘 굴리는 ‘집사’ 역할을 하겠다는 국민연금은 KT 주가를 올려준 구 CEO에게 오히려 감사해야 한다는 거예요.
국민연금이 정부를 대신해 KT의 CEO 선임에 개입하려는 게 아니냐고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국민연금공단은 정부 부처인 보건복지부가 관할하는 조직인데요. KT는 과거에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권 입맛에 따라 CEO도 교체되는 것 아니냐는 의혹에 휩싸인 적이 있죠.
KT는 원래 정부 조직으로 만들어졌다가 공기업으로 바뀌고, 2002년에 들어서 민영화를 통해 민간 기업이 된 회사예요. 2002년 이후 총 5명이 KT의 CEO로 부임했는데요. 공교롭게도 정권이 바뀔 때 KT의 CEO도 교체된 경우가 많았어요. 정권과 가까운 인물이 ‘낙하산’으로 CEO 자리에 올랐다는 비판을 받은 적도 있죠.
결국 국민연금이 문제 삼은 CEO 후보 선임 절차의 공정성은 핑계일 뿐이고, 국민연금이 앞장서서 정부 입맛에 맞는 인물을 KT CEO 자리에 앉히려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어요. ‘기금 고갈 위기를 맞은 국민연금은 딴 데 신경 쓰지 말고 투자나 잘해라’는 비판도 제기됐고요.
또 국민연금이 KT나 소유분산 기업뿐 아니라 더 많은 기업들의 경영에 과도하게 개입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와요. 정부가 국민연금을 동원해 기업들을 압박하기 시작하면, 사실상 대부분의 회사가 정부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주장이죠.
논란이 커지고 있지만 국민연금은 여전히 구 CEO의 연임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에요. 이사회가 추대한 후보인 그의 연임 여부는 오는 3월 주주총회에서 주주들의 투표를 통해 결정될 예정인데요. 국민연금은 의결권을 ‘연임 반대’에 쓸 거라고 예고했죠.
결국 KT의 2대 주주인 현대자동차그룹, 3대 주주인 신한은행의 뜻이 중요해졌는데요. 이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에 대해선 전망이 엇갈려요.
KT는 현대자동차그룹과 신한은행이 CEO 연임에 힘을 실어줄 것으로 기대해요. 작년에 이들과 각각 ‘전략적 동맹’을 맺었거든요. 사업상 필요한 게 있으면 서로 적극적으로 돕자는 건데요. 동맹을 맺으면서 동시에 ‘피를 나눈 사이’가 됐어요. 서로의 지분을 맞교환한 거죠. 현대자동차그룹과 신한은행이 KT의 2대, 3대 주주가 된 것도 이 지분 맞교환의 결과고요.
하지만 이들 역시 국민연금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에요. 국민연금은 현대자동차와 현대모비스의 2대 주주이자 신한은행의 지주회사인 신한금융지주의 최대 주주이기도 하거든요.
구 CEO는 연임에 성공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국민연금은 적극적인 집사 노릇을 하며 국민들의 연금을 잘 관리할 수 있을까요?
<뉴미디어팀 디그(di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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