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 후보 경선 절차를 거쳐 차기 케이티(KT) 대표이사 최종 후보로 현직 구현모 대표가 선출됐다. 그러나 경선 경쟁자가 누구였는지, 후보자 공모는 언제 어떤 절차를 거쳤는지 등이 공개되지 않아 ‘셀프 연임’, ‘깜깜이 경선’이란 지적이 나온다. 케이티 최대 주주인 국민연금이 경선의 기본원칙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입장을 밝히며 구 대표의 연임에 사실상 반대 의사를 밝혔다케이티 이사회는 28일 오전 서울 한 호텔에서 비공개 회의를 열고 구 대표를 차기 대표이사 최종 후보로 확정했다고 밝혔다. 이사회는 “구 대표를 포함한 복수 후보에 대한 심사 끝에 구 대표가 재임 기간 동안 16조원이 넘는 서비스 매출을 냈고, 주가를 90% 가까이 올리는 등 주주 가치를 높인 점으로 보아 지속 성장을 이끌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구 대표가 복수 후보 심사를 요청한 뒤 케이티 이사회는 회사 안팎에서 경선 후보자를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구체적인 후보 선정 방식과 일정 및 이사회 장소조차 공개하지 않았다. 케이티 지배구조위원회는 사외 인사 14명과 구 대표를 포함한 사내 후보자 13명을 검토해 심사 대상자를 선정했고, 이후 대표이사후보심사위원회가 이들을 비교 심사했다고 케이티 쪽은 설명했다. 다만 케이티 쪽은 “당사자들이 원치 않는다”며 구 대표 외에 다른 후보는 공개하지 않았다. 익명을 요청한 케이티 관계자는 “이사회가 국외 헤드헌팅 기업 두어 곳에서 후보자를 급히 추천받았다”며 “구 대표를 최종 후보에 낙점해 두고 ‘들러리’를 세운 게 아니냐”고 말했다.국민연금 쪽은 구 대표의 후보 확정을 정면 비판하고 나섰다. 국민연금은 ‘기금이사’ 명의로 입장문을 내어 “케이티 대표이사 최종 후보 결정이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는 경선 기본 원칙에 부합하지 못했다”며 “앞으로 의결권행사 등 수탁자책임활동 이행과정에서 이러한 사항을 충분히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내년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반대표를 행사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지난 27일 서원주 신임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기금이사)은 취임 직후 기자간담회를 열어, 구 대표의 ‘셀프 연임’ 우려가 해소되지 않을 경우 국민연금이 대표이사 선임 절차에 제동을 걸겠다고 경고했다.앞서 구 대표가 이사회의 단일 후보 우선 심사에서 ‘적격’ 판정을 받았음에도 경선을 역제안한 걸 두고도, 국민연금 쪽을 의식한 선제 조처라는 해석이 나온 바 있다. 구 대표가 임원 재직 시절 회삿돈을 유용해 국회의원들에게 ‘쪼개기 후원’을 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어, 국민연금이 반대표를 던질 가능성을 미리 막기 위해 경선의 형식만이라도 급히 갖추려 했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이 반대 의사를 명확히 함에 따라 구 대표의 연임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커졌다. 국민연금은 지난 3월 케이티 주주총회에서 ‘카드깡’ 관련 횡령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던 박종욱 당시 경영부문 사장의 사내이사 연임을 반대해 무산시킨 바 있다.케이티 이사회 쪽은 “구 대표의 법적 이슈와 관련한 자격 요건을 면밀히 검토한 결과, 정관 및 관련 규정 상의 이사 자격 요건 등을 고려할 때 차기 대표이사직 수행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며 “주요 주주가 요청하는 지배구조 기준과 원칙 정립에 대해서도 철저히 준비하겠다”고 밝혔다.정인선 기자 re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