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MB 정부 국정원 주도 ‘노조 파괴’…법원 “노동자에 배상하라”

MB 정부 국정원 주도 ‘노조 파괴’…법원 “노동자에 배상하라”

이혜리 기자

민주노총 등 국가에 손배소

검경·주무부처 등과 결합
공무원 노조 파업 중단 압박
“단결권·제반 권리 등 침해”
2억6천만원 국가 배상 책임

이명박 정부 때 벌어진 국가기관들의 ‘노조 파괴’ 행위에 대해 국가가 피해 노동조합 단체들과 노동자에게 총 2억6000만원을 배상하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국가기관의 조직적 노조 파괴 공작으로 노동자들의 ‘노조할 권리’가 침해된 사건에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판결은 이번이 처음으로 알려졌다.

서울중앙지법 민사30부(재판장 정찬우)는 8일 민주노총 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국가가 민주노총에 1억원, 전국교직원노조에 7000만원, 전국공무원노조에 5000만원, 금속노조에 3000만원, 서울교통공사 노조에 1000만원 등을 정신적 피해에 대한 배상금으로 지급해야 한다고 했다.

재판부는 “공무원들에게 노조 탈퇴를 종용하고 언론을 이용해 노조를 비방한 행위는 노조의 단결권을 비롯한 제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헌법 제33조1항은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해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고 규정한다.

원고들은 이명박 정부 때 국가정보원이 주도해 노조의 하부조직 탈퇴 유도, 선거·총회 결의 등 노조 활동 방해, 노조 비난 여론 조성 등의 공작을 벌여 단결권을 침해했다며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원고들이 소송 과정에서 확보한 2010~2011년 국정원 문건들을 보면 국정원은 경찰, 검찰, 노조 관련 주무부처들과 긴밀히 결합해 노조 활동을 방해하기 위한 전략을 수립했다.

예를 들어 노조가 집회를 개시할 경우 경찰을 통해 금지 통보를 발령하고, 검찰로 하여금 파업에 참여한 조합원의 체포·구속영장을 청구하게 하는 식이다. 주무부처는 사용자를 접촉해 노무관리 강도를 강화하고 노조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유도해 파업 중단을 압박하도록 했다.

문건에는 “전국에서 두 번째로 규모가 큰 KT 노조를 5월 중 민주노총에서 탈퇴시켜 춘투 열기를 가라앉히고 민주노총을 무력화시키겠음”이라는 대목이 등장한다. 원세훈 당시 국정원장이 회의에서 “공무원이 민노총에 가입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이를 막지 못하면 원(국정원) 국내 정보 능력은 없는 것으로 평가하겠음”이라고 말했다는 대목도 있다. 국가 최고 정보기관이 노조 파괴에 발을 벗고 나선 것이다.

재판에서 국가 측은 당시 국정원 행위가 노조의 조직과 운영에 개입한 정도는 아니라며 민사상 불법행위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또 국가배상 청구의 소멸시효(5년)가 지났다고 했다. 이에 대해 원고들은 국정원 내부에서 계획된 불법행위를 외부에서 알기 어려웠다며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었던 객관적 장애가 존재했다고 반박했다. 재판부는 원고들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민주노총은 “윤석열 정권은 이번 판결을 계기로 국가가 노조에 대해 부담하는 단결권 보호의 책임을 다시 한 번 기억해야 한다”며 “국가가 단결권 보호 의무를 망각한 채 현재와 같은 노동조합 탄압 기조를 계속할 경우 언젠가 또 다른 손해배상 책임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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