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보상조치 없는 임금피크제는 위법”

“보상조치 없는 임금피크제는 위법”

박용필 기자

대법 “임금 삭감에도 정년 연장·업무 감경 등 없으면 연령 차별”

‘55세 이상 별도 임금체계’ 연구원 직원, 소송 내 1·2심 이어 승소

사업장별 적용되는 고령자 임피제, 위법성 여부 판단 기준 제시

정년 연장 등 보상조치 없이 임금피크제를 시행하는 것은 연령에 따른 차별에 해당해 위법하다는 대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면 임금이 삭감되는데,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정년 연장과 같은 보상조치가 반드시 수반돼야 한다는 취지이다. 사업장별로 적용되는 임금피크제의 위법성 여부를 판단할 기준을 제시한 것이다. | 관련기사 3면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A씨가 B연구원을 상대로 낸 임금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한 원심을 26일 확정했다.

B연구원은 2008년 노사합의를 거쳐 취업규칙을 변경하고 2009년부터 만 55세 이상 연구원에 대한 별도의 급여체계를 도입했다. 일정 연령에 도달하면 임금을 삭감하는 임금피크제였다. 도입 후 만 55세 이상 직원들의 월 급여는 평가 등급에 따라 93만원에서 283만원가량 줄었다. 51~55세 미만 직원들보다 업무평가가 좋았음에도 급여는 더 적었다.

A씨도 2011년부터 임금피크제를 적용받았는데, 그는 명예퇴직을 한 뒤 B연구원의 임금피크제가 연령에 따른 차별을 금지한 고령자고용법에 위배돼 무효라며 B연구원을 상대로 미지급 임금을 달라는 소송을 냈다.

1·2·3심 모두 A씨의 청구를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우선 ‘합리적 이유 없이 연령을 이유로 급여나 처우 등에서의 차별을 금지’한 고령자고용법 제4조의 조항이 강행규정(지켜야만 하는 규정)이라고 전제했다. 헌법상 평등권을 구현하기 위해 마련된 조항이고, 위반 시 시정명령과 과태료 처분이 가능하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이어 B연구원의 임금피크제가 비록 노사합의로 도입됐지만 이 강행규정의 취지에 위배되기 때문에 무효라고 했다.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면 임금이 줄어드는데, 그에 대한 보상조치를 마련하지 않아 결과적으로 고령자가 고용상 차별을 받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재판부는 “일반적으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때는 정년 연장·보장 또는 정년 후 재고용을 통한 근로기간 연장 등의 조치를 예정한다”고 했다. 그런데 B연구원의 경우 정년은 61세로 임금피크제 도입 전보다 연장되지 않았고, 재고용을 통한 근로기간 연장 등의 조치도 없었다고 했다. 임금이 줄어든 대신 업무량이나 강도가 줄었다는 증거도 없고, 평가 방법이 완화됐다고 볼 수도 없다고 했다. 임금피크제 도입에 따른 경제적 손해를 벌충할 만한 아무런 보상조치가 없었다는 것이다.

B연구원은 ‘보조금이나 출연금 없이 자력으로 운영비를 확보해야 하는 처지라 임금피크제 도입이 불가피했다’고 했지만 재판부는 “이런 사정만으로 임금피크제 도입의 합리적 이유가 충족될 수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임금피크 적법성 판단
구체적인 기준 제시

임금피크제를 통해 마련한 재원을 임금피크제 도입의 본래 목적을 위해 사용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 점도 B연구원의 주장을 배척한 이유로 들었다.

대법원은 정년 연장 없는 임금피크제 도입이 고령자에 대한 고용상 차별에 해당하는지 처음 판단한 이번 판례를 통해 임금피크제의 적법성 여부를 판단하는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했다. 현재 진행 중이거나 앞으로 있을 유사 사건에서 정년 연장 등 근로기간 연장 여부, 업무 강도나 평가 방법 등에서의 보상조치 여부 등에 따라 적법성 여부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이번 판결이 각급 사업장의 임금피크제 운용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14년 기준 전체 사업장 9034곳 중 9.4%(849곳)가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는데, 정년 연장 등 보상조치 없이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사업장은 많지 않은 것으로 노동계는 파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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