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유료방송 시장 1위인 KT가 지난 2019년 3월부터 올해 4월까지 종합유선방송(SO·케이블TV) 업체 ‘딜라이브’ 인수설(說)을 두고 거래소에 주기적으로 답변 중인 내용이다. 3년 동안 8차례 동안 이뤄진 공시 답변은 모두 똑같고, 공시책임자마저 같다. 애초 유료방송 시장 1위 자리를 굳히기 위해 추진했던 인수합병(M&A) 계획이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급부상 등 시장 변화로 지지부진해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딜라이브가 속한 SO 시장이 IPTV는 물론, OTT 등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하는 분위기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딜라이브의 재무구조도 악화해 매력이 떨어지는 매물이 됐다는 시각도 있다.

KT의 광화문 사옥 앞 조형물. /IT조선
KT의 광화문 사옥 앞 조형물. /IT조선

28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KT는 이달 초 ‘딜라이브 인수추진 보도에 대한 조회공시 답변’을 통해 “인수를 검토하고 있으나, 구체적으로 결정된 바 없다”라고 밝혔다. 지난 2019년 3월 첫 공시를 시작으로, 같은 해 4월과 10월, 2020년 4월과 10월, 지난해 4월과 10월에 이어 올해까지 총 8번째 같은 공시다.

애초 KT는 딜라이브 인수를 통해 기존 유료방송 시장 1위를 굳히겠다는 계획이었다. 유료방송은 IPTV(인터넷TV), SO, 위성방송 등 크게 3개로 구분된다. 지난해 상반기 기준 KT는 IPTV 시장 점유율 23.19%를 기록 중이며, 위성방송에서는 KT스카이라이프가 8.71% 점유율을 나타냈다. 지난해 KT스카이라이프가 인수한 HCN(옛 현대HCN)의 SO 점유율 3.63%까지 더할 경우 KT그룹의 유료방송 시장 점유율은 35.53%에 달한다. 2, 3위를 다투는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와의 격차는 10%포인트가량 난다. 여기에 SO에서 5.71%의 점유율을 보유한 딜라이브까지 품으면 40%를 웃도는 압도적인 점유율을 기록하게 된다.

/딜라이브
/딜라이브

그러나 딜라이브가 속한 SO 시장은 최근 몇 년 동안 침체기다. 지난 2017년 11월 처음으로 SO는 IPTV 가입자 수에 밀렸다. 당시 12만3158명의 격차는 지난해 상반기 기준 633만명까지 벌어졌다. 수년 동안 IPTV 가입자는 꾸준히 늘어난 반면, SO 가입자가 지속해서 감소한 여파다.

KT가 딜라이브 인수에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는 배경으로는 넷플릭스를 비롯해 글로벌 OTT와 토종 OTT 등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틈타 미디어 시장 주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점도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방송통신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OTT 서비스 이용률은 69.5%로, 전년(66.3%)보다 3.2%포인트 증가했다. 앞서 2017년 36.1%에 머물렀던 OTT 이용률은 2018년(42.7%)에 이어 2019년 52%를 기록하는 등 증가 추세다.

국내 한 통신사 관계자는 “과거 통신사들이 차례로 M&A를 통해 몸집을 불려온 만큼 추가 인수 필요성이 크지는 않을 것이다”라며 “이미 고착화된 시장에서 굳이 비용을 써가며 인수를 추진할 이유도 없고, 통신사로서는 시간이 갈수록 매물 가격이 내려가는 상황에서 서두를 필요가 없다”라고 말했다.

앞서 SK브로드밴드는 지난 2020년 티브로드를 인수했고, LG유플러스 역시 CJ헬로를 품었다. KT 역시 자회사인 KT스카이라이프를 통해 HCN으로 몸집을 키웠다. 실제 구현모 KT 대표도 지난해 기자간담회에서 “딜라이브 인수는 진행이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지켜봐야 할 것 같다”라고 했다.

KT의 지지부진한 인수에 속이 타들어 가는 것은 딜라이브다. 지난해 딜라이브의 연결재무제표 감사를 진행한 삼정회계법인은 “보고기간 종료일 기준 회사 유동부채가 유동자산보다 3304억원 더 많다”라며 “이는 계속기업으로서의 존속 능력에 의문을 제기할 만한 불확실성이 존재함을 나타낸다”라고 했다. 유동부채가 유동자산보다 많다는 것은 1년 내 갚아야 할 부채가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보다 많다는 의미다. 부채비율 역시 지난해 364.6%로, 전년(293.9%)보다 상승했다.

딜라이브 관계자는 “1년 이내 도래하는 차입금에 대해 만기 연장에 대한 협의를 진행 중에 있으며 정상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고 있다”라고 했다. 직접고용 형태로 1000명 이상의 직원을 보유하고 있는 딜라이브의 인력도 KT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