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봐주기·부실 수사”
황창규 전 케이티(KT) 회장과 구현모 대표이사.
케이티(KT)임원들의 ‘국회의원 쪼개기 후원’ 의혹과 관련해 황창규 전 회장이 재임 당시 대관담당 임원들로부터 정치자금 후원 관련 보고를 두 차례나 받은 사실을 검찰이 파악한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은 황 전 회장이 정치 후원금과 협찬 내역이 구분된 보고서를 받거나 국회의원 후원 계획 보고를 승인한 정황도 발견했지만, ‘직접 증거가 부족하다’며 그를 불기소 처분해 봐주기 수사 의혹이 제기된다.
9일 <한겨레>가 입수한 황 전 회장의 불기소 처분 결정서를 보면, 맹아무개 전 케이티 대관담당 부서장과 최아무개 전 대관담당부서 지원실장은 2016년 3월과 5월 황 전 회장에게 두 차례에 걸쳐 국회의원 정치자금 후원 관련 사항을 보고했다. 그해 9월 구현모 당시 부사장급 임원(현 대표이사) 등 임원 10명이 자신의 이름으로 국회의원들에게 정치자금을 기부하기 전이다.
맹씨와 최씨는 그해 3월 황 전 회장에게 ‘2015년 하반기 기부금 집행내역 보고’를 하면서 정치자금 후원 관련 첫 보고를 했다. 이들은 당시 구두로 “2014년과 2015년 정치후원금이 1억9천만원가량이 된다”며 이런 내용이 적힌 보고서를 황 전 회장에게 제출했다. 보고서에는 집행 내역이 △정치후원금 △기부(지역단체나 엔지오(NGO) 대상) △협찬(국회의원 소속 지역구 행사 지원 등) 등으로 구분돼 기재됐다. 이들은 황 전 회장에게 단순 기부나 협찬이 아닌, 회사 차원의 정치자금 후원이 2014년과 2015년에도 있었다는 사실을 보고한 것이다.
그해 5월에도 맹씨와 최씨는 회장 접견실에서 ‘20대 국회 대응방향’을 보고하며 정치자금 후원 관련 보고를 이어갔다. △정치후원금 규모 △케이티와 관련성 높은 상임위 소속 의원 등에게 예산의 60%를 후원 ·협찬한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황 전 회장은 이를 승인했고, 이들은 계획대로 총 기부금액의 51%가량을 국회의원 후원금으로 냈다.
검찰은 황 전 회장이 케이티 그룹사까지 동원해 국회 대응을 하라고 지시했다는 점까지 파악했다. 그해 4월 최씨가 ‘20대 국회는 예상과 달리 여소야대가 됐고, 국회의원 절반 정도가 교체돼 국회 대응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국회 협력 네트워크를 강화해야 한다’고 보고하자, 황 전 회장이 “케이티 내부와 그룹사까지 확대시켜서 미션을 줘라”라는 취지로 지시했다는 것이다. 맹씨와 최씨도 그해 9월 계열사 임원들까지 동원해 정치자금을 기부한 것은 황 전 사장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했다. 검찰 역시 “(당시) 정치자금 기부 범행은 대관담당 임직원뿐만 아니라 경영지원총괄 등 다른 부문의 임원, 자회사 임원들까지 동원하여 전사적으로 실행됐다. 황 전 회장 지시가 이행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하지만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부장 유경필)는 지난 4일 구현모 현 대표이사 등 임원 10명을 정치자금법 위반 및 업무상 횡령 혐의로 약식기소하면서 황 전 회장은 무혐의 처분했다. 정치자금 후원을 보고받은 뒤 이를 승인했고, 기부행위를 지시했다고 볼만한 정황이 있었는데도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고 본 것이다. 수사팀은 맹씨와 최씨의 보고가 구체적이지 않아 황 전 회장이 범행과 합법적인 기부·협찬 등을 구분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보고서에 기부‧후원‧협찬 등의 용어가 혼용됐고, 맹씨가 정치후원금 규모 정도만을 구두로 짧게 설명해 황 전 회장이 정치자금 기부 범행과 통상적인 협찬 등을 구분해 인식했다고 보기 어려웠을 것이란 점을 증거 불충분의 근거로 삼았다. “그룹사까지 확대해 미션을 주라”는 황 전 회장 발언을 두고도, 검찰은 전후 맥락상 정치자금 기부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 임원 인맥 등을 이용해 국회의원을 설득하라는 의미일 수 있다고 봤다.
시민사회는 반발하고 있다. 조태욱 케이티노동인권센터 집행위원장은 “검찰의 불기소결정서는 검사가 쓴 게 아니고 황 전 회장 변호인이 썼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작정하고 봐주기를 한 것 같다”고 했다.
검찰은 ‘봐주기 수사 의혹’에 대해 “다수 사건관계인들 조사, 관련 자료를 면밀하게 분석했지만 모두 종합해도 불법정치자금 기부 등이 (황 전 회장에게) 보고됐거나 이를 인식한채 지시, 승인했다고 볼만한 증거가 발견되지 않아 불기소한 것이다. 증거에 따라 판단한 것이지 특정인을 봐주기 위한 수사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강재구 기자 j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