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KT 유·무선 네트워크 마비가 약 37분간 진행된 끝에 정상화 순서를 밟고 있지만, 지난 2018년 ‘KT 아현 사태’ 이후 전혀 나아진 게 없다는 비판이 나온다. KT 측은 이번 사태 원인을 초기에는 대규모 분산 서비스 거부 공격(디도스·DDoS)으로 추정했다가 네트워크 경로설정(라우터) 오류로 정정했다.
25일 KT에 따르면 이번 유·무선 통신 대란은 이날 오전 11시 30분쯤 발생해 낮 12시쯤부터 일부 정상화가 이뤄지고 있다. KT 유·무선 네트워크에서는 통신 장애가 나타나 데이터 전송이 전혀 이뤄지지 않는 이른바 ‘먹통’이 됐다. 또 다른 통신사 인터넷망을 쓰는 곳도 인터넷 속도가 일부 느려지는 현상이 발견됐고, KT엠모바일 등 KT망을 쓰는 알뜰폰까지 마비된 것으로 나타났다.
KT는 통신 먹통 사태에 대해 1차적으로 “오전 11시쯤 KT 네트워크에 대규모 디도스 공격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라며 “KT 위기관리위원회를 즉시 가동해 신속하게 조치 중이고, 빠른 복구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다만 후에 “초기에는 트래픽 과부하가 발생해 디도스로 추정했으나, 면밀히 확인한 결과 라우터 오류를 원인으로 파악했다”라고 원인을 번복했다.
이번 일은 특정 사건으로 인터넷망 마비에 이르렀다는 점에서 지난 2018년 11월 24일 있었던 ‘KT 아현 화재’를 떠올리게 한다.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3가 KT 아현지사에서는 대형 화재가 발생해 인근 마포구와 용산구, 서대문구 지역의 휴대전화, 유선전화, 초고속인터넷, IPTV 서비스 등 유·무선 통신이 모두 두절된 것이다. KT 유선망을 사용하는 상점이 많아 주변 지역 상권이 거의 마비됐으며, 다음 날까지도 인터넷이 복구되지 않아 거주자들의 불편이 상당했다.
당시 사건은 2000년대 KT가 ‘탈통신’이라는 목표 아래 이석채 회장 체제에서 있었던 장비 집중과 부동산 개발이 원인이 됐다는 분석이 있었다. 투가가치가 높은 부동산을 매각하고, 장비와 설비를 특정 지사에 몰아넣는 방식으로 사업을 펼쳐왔던 것이다. 아현지사에도 용산구 원효지사를 비롯해 인근 지사 4곳이 관할하던 통신망과 통신설비가 모두 물려 있었다.
안전설비나 비상시설은 ‘장비 집중화’를 따라가지 못했다. 아현지사에는 당시 스프링클러도 설치돼 있지 않았고, 비상사태에 대비해 통신을 우회할 수 있는 백업시스템도 없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통신시설을 A·B·C·D등급으로 나누는데, 아현지사는 가장 등급이 낮은 D등급이었다.
하지만 KT는 투자가 신통치 않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지난 2019년 아현 화재와 같은 ‘통신 대란’ 재발 방지책으로 같은 해 연말까지 94개 주요 통신시설의 통신망을 이원화하겠다고 정부에 보고한 KT는 실제로 51개 시설만 이원화해 과기정통부의 시정명령을 받았다. 시정명령 이후 KT는 지난해 말까지 시설의 80%의 이원화를 완료했고, 올해 연말까지 100%를 달성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통신 업계 관계자는 “아현 화재 사태 이후에도 정신을 차리지 않다가, 정부 시정명령 이후 계획을 실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KT는 매년 전체 설비투자액의 규모도 축소하고 있다. KT의 연도별 설비투자액(CAPEX)을 보면 2012년 3조7110억원이었던 설비투자액은 2018년 1조9770억원으로 줄었고, 2019년에는 3조2570억원으로 잠깐 늘었다가 지난해 다시 2조8720억원으로 줄었다.
2012년은 4세대 이동통신(LTE) 상용화 이듬해, 2019년 5세대 이동통신(5G) 상용화 시기라는 점을 고려하면 차세대 이동통신 상용화 전후를 제외하면 매년 투자액을 줄여 왔다는 분석이 나왔다. 심지어 5G 상용화 때는 이전 세대와 비교해 투자액이 5000억원가량 적었다.
다른 통신사와 비교해도 KT 시설투자액은 적다는 평가가 있다. 통신 업계에 따르면 KT의 지난해 설비투자액 2조8720억원은 SK텔레콤 계열의 시설투자액 3조236억원보다 약 1500억원 적다. LG유플러스의 경우 2조3800억원으로 KT보다 5000억원이 적었지만, KT 23조9000억원, LG유플러스 13조4000억원으로 두 회사의 매출 차이가 10조원 이상 난다는 점을 고려하면 KT 투자액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통신 업계 관계자는 “결국은 소극적인 설비투자가 통신 대란의 진짜 원인일 것이다”라며 “‘탈통신’이든 ‘다시 통신’이든 KT가 공기업으로 출발했고, 또 현재에도 국가통신망의 지위를 갖고 있다면 이에 걸맞은 시설투자를 하길 바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