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1] ‘통신사의 탈통신’이라는 형용모순이 비극이 될 때

 [기자의눈] ‘통신사의 탈통신’이라는 형용모순이 비극이 될 때

설비투자 감축·기가인터넷 사태…징후·징조는 있었다
국민이 키워준 KT, 본업 소홀한 탈통신은 환영받을 수 없어

(서울=뉴스1) 김정현 기자 | 2021-10-27 07:25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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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없는 아우성’, ‘찬란한 슬픔’, ‘침묵의 소리’…

‘형용모순’은 상반된 단어를 결합시키는 수사법으로 의외성과 놀라움을 준다. 이같은 형용모순적인 표현은 IT업계에서도 쓰인다. 바로 ‘통신사의 탈통신’이다. 통신사가 존재의 이유에 해당하는 통신 서비스에서 벗어나겠다는 것을 천명하는 슬로건이다.

물론 통신사가 수익성있는 새로운 사업에 진출하고 사업을 확장하는 자체는 나쁜 일이 아니다. 구글도 검색엔진으로 시작해 글로벌 IT 기업으로 성장했고, 애플도 컴퓨터 제조사에서 MP3, 태블릿, 스마트폰까지 새로운 분야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지 않았나. KT라고 글로벌 AI 기업이 되지 말란 법은 없다.

그런데 이같은 미래 먹거리 찾기가 본업의 소홀함으로 이어질 경우는 문제가 된다. 특히, ‘보편적 서비스’인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는 국가기간통신망 사업자이자, 공기업 시절을 거치며 국민이 고스란히 키워준 KT라면 더욱 더.

대부분의 인재들이 그에 앞서 여러 ‘징후’와 ‘징조’들로 자신의 출현을 예고하듯, 이번 KT 인터넷 마비 사태도 마찬가지였다고 생각한다. 대표적인 ‘징후’는 꾸준히 줄어드는 KT의 설비투자비(CAPEX)였고, 대표적인 ‘징조’는 지난 4월 터진 ‘기가인터넷 속도 저하 사태’였다.

현재 KT는 망을 깔고 관리하는 비용인 설비투자비를 지속적으로 감축하고 있다. KT의 설비투자비는 지난 2013년 3조3130억원에서 지난 2018년에는 1조9770억원으로 꾸준히 줄었다. 공교롭게도 2018년은 ‘KT 아현 사태’가 발생한 해다.

KT의 설비투자비는 지난 2019년에는 다시 3조2570억원으로 늘었지만 이는 새로 도입한 5세대(5G) 때문이었을 뿐, 2019년 이후로도 설비투자비를 꾸준히 줄이고 있다. 올해 상반기 KT의 설비투자비는 8640억원으로 지난해 상반기 투자액인 9673억보다도 줄였다.

이번 KT 사태가 디도스 같은 외부 공격 때문이 아니라 라우터 경로설정 내부적 문제로 인한 것이라면 결국 이같은 지속적인 설비투자비 감축이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높다. 장비 문제나 유지보수 과정에서의 잘못으로 발생하는 문제기 때문이다.

기가인터넷 품질 사태도 마찬가지였다. 당초 KT는 대외적으로 ‘속도 설정이 잘못된 문제’라고 발표했다. 구 대표도 해당 사태에 대해 사과하며 문제의 원인을 “KT의 기가인터넷 시설을 이전하면서 속도 설정이 잘못됐었고, 고객의 소리(VOC)가 제기됐는데 응대도 잘못됐었다”고만 말했다.

그러나 방송통신위원회와 과기정통부 조사 결과 인터넷 개통시 품질이 떨어지는데도 불구하고 개통을 강행한 사례들이 KT에서만 압도적으로 많이 드러났다. 적발된 사례는 KT만 2만4221건이었으며, LG유플러스는 1401건, SK텔레콤과 SK브로드밴드는 각각 86건, 69건이다.

구 대표는 26일 발표한 이번 인터넷 마비 사태에 대한 사과문에서 ‘공교롭게도’ 문제의 원인을 또 “서비스 고도화를 위한 최신 설비 교체작업 중 발생한 네트워크 경로설정 오류 때문”이라고 지목했다.

인터넷 마비 사태가 발생해 여러 소상공인들이 피해를 입은 시간, KT는 또 ‘공교롭게도’ 소상공인을 위한 보편적 AI 서비스 출시를 발표하고 있었다. 이날 취재를 위해 돌아다니며 만난 소상공인들은 “기본적인 통신 관리도 안되는 통신사가 AI 서비스를 내놓으면 언제 끊길줄 알고 뭘 믿고 쓰겠냐”며 냉소를 지었다.

통신사가 통신말고 다른 것도 잘하는 ‘탈통신’은 좋은 것이지만, 통신에 소홀하고 다른 것에 한눈을 파는 ‘탈통신’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환영하기 어렵다.

탈통신을 통한 수익 사업도 좋지만 통신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대형 사고’가 터지고 있는 KT는 업의 근원인 통신 서비스의 품질을 되돌아봐야 할 시점이 아닐까. 이번 인터넷 마비 사태도 더 큰 재난을 예고하는 하나의 ‘징조’가 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Kri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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