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정보기관장으로 재직하며 각종 정치공작을 벌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70)이 17일 파기환송심에서 형량이 가중돼 징역 9년을 선고받았다. 재상고할 수 있지만 대법원의 파기환송에 따른 사실상 최종 선고다. 2013년 재판이 처음 열린 뒤 8년 만에 나온 결론이다.
서울고법 형사1-2부(재판장 엄상필)는 이날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국고손실,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원 전 원장에게 징역 9년과 자격정지 7년을 선고했다. 원 전 원장은 파기환송 전 2심에서 징역 7년과 자격정지 5년이 선고됐었다.
원 전 원장은 국정원 예산으로 민간인 댓글부대를 운영한 혐의, 고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위 풍문을 확인하는 데 예산을 쓴 혐의, 이명박 전 대통령 등에게 국정원 특수활동비 2억원을 건넨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1심은 원 전 원장의 혐의 대부분을 유죄로 인정해 징역 7년과 자격정지 7년을 선고했다. 다만 직권남용 13건 중 권양숙 여사와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미행을 지시한 부분만 유죄로 보고 나머지 12건은 무죄로 봤다. 2심은 1심 판단을 대부분 유지하면서도 1심과 달리 직권남용 혐의를 모두 무죄로 판단했다.
대법원은 지난 3월 직권남용 혐의를 모두 무죄로 판단한 원심은 잘못됐다며 유죄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내 다시 재판하도록 했다. 파기환송심에서는 2심에서 무죄로 판단했던 일부 직권남용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고, 이에 따라 형량도 가중됐다.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무죄가 선고된 직권남용 혐의 일부를 유죄로 판단했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2012년 국회의원·대통령 선거 등에서 당시 야권 등 정치권 정보를 수집하고, 여당 승리를 위한 대응 논리를 마련하라는 지시를 한 혐의와 야권 지자체장의 국정운영 저해 실태 등을 분석해 대응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혐의, 명진 스님에 대한 불법사찰 혐의 등에 대해 죄가 인정됐다.
재판부는 “다수의 국정원 직원들이 의무 없는 일을 마지못해 하거나 범죄에 가담해 형사처벌까지 받게 됐다”며 “대통령의 요구를 사실상 거부하기 어려웠던 사정이 보이고 개인적으로 얻은 이득은 확인되지 않으며 이미 확정된 형사판결에 이 사건 관련 부분이 양형에 반영됐다”고 했다.
원 전 원장과 함께 재판에 넘겨졌던 국정원 관계자 민모씨와 박모씨에 대해서는 각각 징역 3년·자격정지 3년, 징역 2년4개월·자격정지 3년이 선고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