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불법 후원금 사건 연루된 구현모 사장
미 SEC, KT 회계조사 2년째 현재 진행형
FCPA 위반으로 결정나면 천문학적 벌금
구현모식 컴플라이언스 경영, 열매 맺을까

KT가 올 1분기 깜짝 실적을 달성했다. KT가 지난 11일 공개한 잠정실적에 따르면 매출액은 4조5745억원, 영업이익은 366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3.3%, 21.4% 증가했다. 미디어에선 취임 1년 만에 놀라운 성과를 달성한 구현모 사장에게 찬사를 보냈다.

하지만 실적이 모든 위험요인을 덮을 순 없다. KT는 쪼개기 후원금, 단말기 개통 고의 지연, 인터넷 품질 저하, 고객명의 도용 등 숱한 논란을 빚고 있다. 검찰은 물론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까지 나서 2년째 KT를 조사 중이다. 구 사장이 취임 직후 ‘컴플라이언스(일종의 윤리경영) 시스템’을 개편하면서 전관前官을 영입한 것도 이런 리스크들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만족할 만한 혁신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KT 리스크’와 ‘구현모 컴플라이언스’의 현주소를 살펴봤다.

구현모 사장이 사내 컴플라이언스를 강화하고 있는데도 KT를 둘러싼 잡음은 끊이지 않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구현모 사장이 사내 컴플라이언스를 강화하고 있는데도 KT를 둘러싼 잡음은 끊이지 않고 있다.[사진=연합뉴스]

2018년 1월, KT의 ‘쪼개기 후원금’ 논란이 불거졌다. KT 내부에서 “회삿돈으로 상품권을 구매했다가 되파는 ‘상품권 깡’으로 비자금을 조성한 뒤, 이를 국회의원을 불법 후원하는 데 썼다”는 첩보가 나왔고,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수사 결과, KT는 2014년 5월부터 2017년 11월까지 국회의원 99명에게 총 4억3790만원을 후원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듬해엔 사건에 연루된 KT 전ㆍ현직 임원 7명이 정치자금법 위반ㆍ업무상 횡령 혐의로 검찰에 넘겨졌다.

그 중엔 황창규 전 KT 회장도 있었다. KT 안팎에선 황 회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빗발쳤고 2020년 3월 끝내 KT 수장이 교체됐다. 중도 사퇴한 건 아니었지만 “불법 후원 논란으로 황 회장을 향한 여론이 급격히 악화하면서 사실상 연임에 실패했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황 회장이 물러난 KT 수장 자리엔 구현모 사장이 올랐다. KT가 한국통신이었던 시절부터 33년간 근무해온 정통 KT맨이었다. 하지만 구 사장 역시 ‘쪼개기 후원금’ 논란의 중심에 서 있었다. 불법 후원금이 오갔던 시기에 황창규 전 회장의 비서실장과 경영기획부문장을 지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그는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는 7명 중 1명이다.

그럼에도 구 사장은 순조롭게 대표 자리에 올랐고, 이사회는 이를 눈감아줬다. 경영계약서상 문제 될 게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KT 측이 밝힌 경영계약서에 따르면 이사회는 3가지 조건 중 1가지 이상이 충족될 때 대표의 사임을 요구할 수 있다.

그 조건은 이렇다. ▲재임기간 업무와 관련해 불법 행위를 저질렀을 때 ▲회사에 재산상 손해를 끼쳤을 때 ▲1심에서 금고 이상의 형을 받았을 때다. 이사회의 주장처럼 대표로 취임하기 전 구 사장의 혐의는 사퇴 요구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 정관에 따르면 구 사장이 대표 자리에 못 오를 이유도 없다.

문제는 말 많고 탈 많은 ‘구현모 리스크’가 현재 진행형이라는 거다. 무엇보다 1년여간 진척이 없던 검찰 수사가 최근 재개됐다. 구 사장의 혐의가 인정되면 사퇴 요구를 피할 수 없다. 더 심각한 리스크도 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회계조사다. 미국 SEC는 2019년 말 KT가 해외부패방지법(FCPA)을 위반했는지 조사에 나섰다. 이유는 KT가 정치자금 후원 관련 내역을 적정하게 회계처리했는지, 불법후원이 있었는지 등을 파악하겠다는 거다.

미국 SEC는 사실상 미국 법무부(DOJ), 연방검찰 등 수사기관에 준하는 막강한 권한을 쥐고 있어 FCPA를 위반한 사실이 밝혀지면 KT로선 강력한 제재를 피할 수 없다. [※참고: KT는 미국 증시에 주식예탁증서(DR)를 상장했기 때문에 미 SEC의 조사 대상이다.]

장대현 한국컴플라이언스아카데미㈜ 대표는 “KT의 회계자료에서 비정상적인 자금 조성이나 재무회계 기준을 따르지 않은 내역이 발견되면 FCPA 위반으로 제재를 받을 것”이라면서 “통상 분식ㆍ회계 문제를 조사하는 SEC의 제재는 징벌적 성향이 강해 뇌물죄 성립 여부를 조사하는 미 법무부의 처벌보다 수위가 높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FCPA를 위반해 벌금을 지불한 기업 사례를 보면 처벌 수위가 매우 높다. 해외 관료ㆍ기업에 뇌물을 제공했다 적발된 미국 골드만삭스와 프랑스 에어버스가 지난해 지불한 벌금은 각각 33억 달러(약 3조7000억원), 20억9000만 달러(약 2조3500억원)에 육박했다.

미국 SEC의 조사 결과, FCPA 위반 혐의가 인정되면 KT로선 상당한 타격을 입을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KT 관계자는 “미국 SEC의 조사는 아직 진행 중이며 최대한 협조하고 있다”면서 “결론이 어떻게 날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사실 구 사장이 취임하면서 ‘컴플라이언스(Compliance) 경영’을 내세운 것도 이런 위험요인을 헤지(hedgeㆍ회피)하기 위해서였을 가능성이 높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구 사장의 불법 후원금 리스크가 여전히 남아있을 뿐만 아니라 구 사장이 대표로 선임되는 데 황창규 전 회장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컴플라이언스 경영을 내세운 데는 이런 논란을 잠재우겠다는 의중이 담겨 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컴플라이언스는 법을 지키는 것뿐만 아니라 회사 내규와 사회 규범을 준수하고 나아가 윤리의식을 제고하는 경영활동을 말한다. 구 사장은 취임과 동시에 KT의 컴플라이언스 시스템에 메스를 댔다. 기존에 있던 ‘법무실 컴플라이언스사무국’과 ‘윤리경영실 컴플라이언스 리스크 진단 조직’을 ‘컴플라이언스위원회’로 통합했다. 한발 더 나아가 검찰 출신 인사도 영입했다. 컴플라이언스위원장 자리엔 김희관 전 법무연수원장, 법무실장엔 안상돈 전 검사장을 앉혔다.

하지만 구 사장의 컴플라이언스 개편 작업을 둘러싼 실효성 논란이 적지 않다. 구 사장이 추진한 변화가 KT에 산적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이유에서다. 다시 장대현 대표의 설명을 들어보자. “컴플라이언스 경영을 제대로 펼치기 위해 필요한 건 크게 두가지다. 시스템과 문화다. KT 같은 대기업에는 이미 컴플라이언스 시스템이 잘 구축돼 있다. 문제는 임직원에게 올바른 가치와 신념을 심어줄 문화를 조성할 수 있느냐다. 이는 ‘법률기술자’나 ‘슈퍼스타’ 몇명 영입한다고 바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되레 내부에서 발견하지 못하는 문제를 외부 전문 컨설턴트를 통해 검열하는 게 더 효과적이다.”

그런 이유에선지 구 사장의 컴플라이언스 개편을 두고 “법적 대응을 위해 기능적 측면에만 힘을 싣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반적으로 회사에 큰 법적 이슈가 있을 때 ‘전관前官’을 영입하는 경우가 많은데, 구 사장이 검찰 출신 인사를 영입한 것도 급한 불을 끄기 위한 게 목적이 아니냐는 거다.

이는 국내 검찰 수사에만 해당하는 얘기가 아니다. ‘컴플라이언스를 강화하고 있다’는 시그널을 보여주면, FCPA 위반에 따른 처벌도 감경받을 여지가 커진다. 이런 맥락에서 조직 개편과 인사 영입은 상대적으로 KT의 ‘급진적인 변화’를 보여주기 쉽다.

KT 안팎에서도 구 사장의 컴플라이언스가 ‘쇼잉(showing)’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최근 KT가 단말기 개통을 임의로 지연했다가 과징금을 얻어맞은 데 이어, 인터넷 속도 고의 저하 의혹, 고객 명의도용 문제 등 잇따른 논란을 빚은 것도 ‘구현모식 컴플라이언스’가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다.

KT 측은 이런 논란을 일축했다. 회사 관계자는 “다른 기업들도 지속가능한 경영을 위해 컴플라이언스를 강화하는 추세이기 때문에 KT에 다른 의도가 있다고 보긴 어렵다”면서 “이제 막 (컴플라이언스를) 시작하는 단계인데 하루아침에 이뤄질 수 있겠느냐”고 반박했다.

KT 측의 주장을 십분 받아들인다고 해도 아쉬운 점이 많다. 장대현 대표는 “기업 내 컴플라이언스 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가장 중요하면서도 확실한 방법은 대표의 진정성 있고 결연한 의지를 내외부에 분명하게 표명하는 것”이라면서 “KT를 둘러싼 부정행위가 끊이지 않는다는 건 구 사장의 의지가 KT 내부에 먹히지 않았다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검찰과 미국 SEC의 칼끝이 여전히 KT를 향하고 있고, ‘구현모 리스크’는 현재 진행형이다. 구 사장의 컴플라이언스 경영이 KT의 고질적 문제를 해결하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을지, 자기방어수단에 그칠지는 결국 ‘구현모’에게 달렸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