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승호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반역의 피맺힌 반도의 땅에 눈물과 한숨으로 살아온 겨레

민중 민주 통일 세상 국가보안법에 막혀

캄캄한 어둠의 늪 속에서 최루탄 군화발에 울고 있구나

이 땅 위에 양심들이여 온몸으로 타오르라

이 세상 어느 곳 어느 땅에 반공에 짓눌린 땅 있는가

정치사상의 자유마저도 결사 표현의 자유마저도

아아 권력에 자본가 독점에 난자당한 이 산하에

건설하리라 민중의 새 세상 철폐 국가보안법

(중략)

아아 독재에 쪽바리 양키에 난자당한 이 산하에

건설하리라 민중의 새 세상 철폐 국가보안법’

1990년대 초 널리 불리던 ‘국가보안법 철폐가’ 가사다. 그러나 1990년대에도 2000년대에도 국가보안법은 철폐되지 않았다. 2020년대가 된 지금 다시 국가보안법 철폐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4월1일 김일성 북한 주석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영인본이 출간됐다. 그러자 4월23일 한 보수단체에서 이 책의 판매·반포를 금지해 달라며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냈다. 논란이 확산하자 25일 서점들은 ‘고객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책 판매를 중지했다. 같은달 27일 서울경찰청 보안수사대는 ‘세기와 더불어’에 대해 국가보안법 및 남북교류협력법 위반 혐의로 조사에 들어갔다. 그리고 5월15일 법원은 이 가처분신청을 기각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판매금지 기각과 별개로 “국가보안법 등에 따라 국가형벌권 내지 행정권을 발동해 관련자들을 처벌 내지 행정조치 하는 것은 별론”이라고 했다. 이에 앞서 대법원은 2011년 이 책을 이적표현물로 규정하고 소지한 사람에게는 찬양고무죄를 적용해 유죄를 확정한 판례를 남겼다.

진보성향 사회단체들이 결성한 ‘국가보안법 폐지 국민행동’은 지난 5월10일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국가보안법 폐지 10만 국민청원운동에 돌입했다. 국민행동은 “국가보안법은 진보적 사상과 민중 지향의 정책을 ‘불온한 것’으로 간주하고 아예 생각조차 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차단하는 반인권 악법”이라고 규정했다.

언제부터 얘기해 온 국가보안법 철폐인가. 이 법은 제정 당시부터 폐기 주장이 있었다. 제주 4·3항쟁과 10월 여순항쟁이 일어나던 1948년 12월1일 이승만이 이 법을 제정하자 초대 대법원장 김병로씨는 “국가보안법은 일제 잔재의 악습을 그대로 이어받은 법이니 폐기해야 한다” “이적행위에 대한 처벌은 형법으로 얼마든지 대체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군사독재정권 하에서는 철폐 주장이 숨죽이고 있다가 앞의 노래에서 보았듯이 1980년대 말~1990년대 초에 민주변혁운동이 고양되면서 대표적인 반민주악법인 국보법을 폐지하라는 요구가 거세게 터져 나왔다. 그러나 이 요구는 구소련이 붕괴하는 분위기에서 일시 잠잠해졌다. 그러던 중 2004년 민중운동의 힘으로 탄핵에서 구출된 노무현 대통령이 그해 9월 국가보안법 폐지를 치고 나왔다. 그러나 수구세력의 완강한 반대와 집권당 내 온건파들의 부분개정론에 밀려 국보법 폐지는 수포로 돌아갔다. 그리고 나서 18년 만에 다시 국보법철폐운동이 터져 나오고 있다.

이번에는 이 악법이 철폐될까? 솔직히 회의적이다. 국회를 장악하고 있는 집권여당은 이 법을 폐지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 자신이 국보법 폐지에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다. 그는 2004년 노무현 정권 당시의 국가보안법 폐지 파동에 대해 법7조 찬양·고무죄 조항만을 부분적으로 수정하는 개정이 옳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총선에서 압승한 후 위성정당에서 국보법 폐지가 거론되자 당시 이인영 원내대표가 “나중의 일”이라며 눌러버린 바 있다. 현재 국회에는 이규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작년 12월 발의한 국가보안법 찬양·고무죄 폐지 법안이 계류돼 있다. 3분의 2에 가까운 국회의석을 가진 집권여당의 태도가 이러할진대 10만명 청원으로 국보법 폐지가 국회에서 논의된다고 해도 관철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은 7조 개정을 가지고 대단한 개혁으로 선전하면서 대선에 이용하고자 할 것이다. 이는 마치 김대중 대통령 시절 안기부를 국정원으로 이름을 바꾸고 고문을 못 하게 했지만 국가비밀경찰 기구로서 계속 존속시킨 것, 그리고 문재인 정권이 작년 말 국정원 대공수사권을 폐지하지 않고 3년 유보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사실 국가보안법과 국정원은 한 묶음이다. 박정희 정권은 5·16쿠데타 직후인 7월3일 보안법에 더해 반공법을 제정했다. 반공법은 장면 정권이 미국의 요구로 데모규제법과 함께 제정하려다가 민중의 저항으로 무산된 바 있다. 박정희는 장면 정권의 이 무능을 구실로 군사정변을 일으키고 반공태세 재정비·강화를 혁명공약 1호로 내세웠다. 그리고 쿠데타 성공 직후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첫 번째 안건으로 중앙정보부 창설을 결정하고 6월10일 관련법을 제정했다. 반공법은 행위만이 아니라 머릿속에 들어 있는 사상까지 처벌할 수 있는 악법 중이 악법이었다. 자본론 책을 소지하기만 해도 공산주의 사상을 품은 자로 규정돼 중형에 처했다. 그래서 ‘막걸리 반공법’이라는 말이 나왔다. 전두환 정권이 집권 이후 이 반공법을 국가보안법에 통합시켰다. 그러면서 중앙정보부를 국가안전기획부로 이름을 바꿨다. 이처럼 국가보안법을 집행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국가비밀경찰인 국정원이 필요하고 국가비밀경찰인 국정원을 위해서는 국가보안법이 필요하다. 이 두 파쇼억압기구와 파쇼악법은 개선해서 써먹을 수 있는 도구가 아니다. 그러므로 차제에 국보법 폐지와 함께 국정원을 폐지하는 운동이 전개돼야 한다. 그리고 또 하나의 치안유지법인 노동악법을 철폐하는 운동과 함께 추진돼야 한다. 억압기구와 악법의 철폐는 가짜 민주주의 세력인 자유주의 세력이 아니라 오로지 진짜 민주주의 세력인 노동자·민중이 민중권력을 전취할 때 비로소 실현될 것이다.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seung7427@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