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주도로 설립된 ‘어용노조’는 노조로서 자주성이나 주체성 같은 실질적 요건을 갖추지 못해 설립 자체를 무효로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복수노조 사업장에서 한 노조가 소송을 통해 다른 노조의 설립이 무효라는 확인을 받은 최초의 대법원 판결이다.
소송 통해 노조설립 무효라는 확인 구한 최초 판시
대법원 3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25일 금속노조가 유성기업과 유성기업노조를 상대로 제기한 노조설립 무효확인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사용자가 노조의 조직이나 운영을 지배하거나 개입하려는 부당노동행위에 의해 노조가 설립된 것에 불과한 경우 등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주체성과 자주성 등 실질적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면 노조로서의 지위를 갖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고 판시했다.
원심도 “유성기업노조는 회사의 사전계획에 따라 설립되고 운영됐다”며 “지회의 세력을 약화시키고 새로운 노조를 설립해 교섭대표노조의 지위를 확보하도록 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운영된 유성기업노조는 자주성 및 독립성을 갖추지 못했다고 할 것이어서 노조설립은 무효”라고 판단했다.
노조를 대리한 김상은 변호사(법률사무소 새날)는 “유성기업 노조탄압에 가장 핵심적 수단이 된 어용노조 설립 자체를 무효로 판단함으로써 부당성을 인정한 것”이라며 “어용노조 설립 시도 자체가 이번 판결로 제동이 걸릴 것”이라고 평가했다.
회사 주도의 복수노조 설립은 ‘유성기업 노조파괴’의 핵심 수단 중 하나로 지목된다. 2011년 5월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가 주간연속 2교대제를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하자 회사는 직장폐쇄로 맞섰다. 이 과정에서 노무법인 창조컨설팅을 통해 자문받은 내용에 따라 회사는 같은해 7월 유성기업노조를 설립했다. 창조컨설팅이 작성한 ‘노사관계 안정화 컨설팅 제안서’에는 회사의 대응전략으로 ‘온건·합리적인 2노조 출범’이라는 내용과 함께 구체적인 실행방안이 적시돼 있다.
“노동자야말로 노조설립 주체라는 것을 다시금 확인”
노조는 2013년 1월 유성기업과 유성기업노조를 상대로 노조설립 무효확인 소송을 냈다. 노조가 2016년 4월 1심에서 승소한 이후 유성기업에는 3노조가 설립됐다. 법원에서 노조설립 무효 판결을 받자 유성기업노조 간부들이 노조를 유지하려고 유성기업새노조를 설립한 것이다. 김 변호사는 “이번 판결로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진 않지만 인적 조직이 그대로 승계된 새노조의 정당성 자체는 훼손됐다고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성기업아산·영동지회는 이날 성명서를 통해 “어용노조는 임금인상·단체협약 체결 및 시행에서 가이드라인 역할을 했다”며 “판결은 무효로 나왔으나 한 회사에 노조가 세 개나 되는 기형적인 노사관계가 형성되고 말았다”고 밝혔다.
도성대 유성기업아산지회장은 “노동자야말로 노조를 만들 수 있는 주체라는 것을 다시금 확인한 판결”이라며 “끈질기게 싸우니 어떤 방법으로든 밝혀지게 돼 있다. 이번 판결이 다른 복수노조 사업장에 희망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손배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을 잡고(손잡고)도 이날 “유성기업지회는 10년에 걸친 회사의 노조파괴에 맞서는 동안 ‘노조파괴가 범죄행위’라는 것과, 기업이 노조파괴 목적으로 설립한 노조는 ‘가짜노조’라는 것을 명백히 입증해 냈다”고 논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