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는 대선을 내다보며 기본소득제를 주요 정책공약으로 내세운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다른 후보자들 사이에서 날카로운 공방이 진행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수년 전 박원순·이재명 등 진보성향의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청년수당·청년배당을 지급했다. 지난해 4·15총선에서는 용혜인 기본소득당 후보가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로 출마, 당선했다. 또 코로나19를 계기로 재난기본소득이라는 용어가 사용되면서 덩달아 기본소득제 개념이 확산했다.
4·15총선 후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영입된 김종인은 기본소득제를 지지하는 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미래통합당 초선의원 모임에서 “보수가 지향하는 가치인 자유는 말로만 하는 형식적인 자유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전혀 의미가 없다” “배고픈 사람이 빵집을 지나다 김이 나는 빵을 먹고 싶은데 돈이 없어서 먹을 수가 없다면 그 사람에게 무슨 자유가 있겠냐”며 기본소득제 찬성을 공식화했다.
그런데 최근 진보를 자처하는 여당 안에서 기본소득제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유력한 대선 후보자인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최근 ‘국민생활기준 2030’을 발표하면서 기본소득제는 “알래스카 외에는 하는 곳이 없고 기존 복지제도의 대체재가 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잠재적 대선 후보자인 정세균·임종석·김경수도 일제히 이 비판에 가세했다. 임종석은 “이 지사가 중장기목표로 제시하는 ‘월 50만원’을 지급하기 위해서는 약 317조의 예산이 소요된다. 월 50만원이 아직 생계비에 터무니없이 부족한데도 이미 어마어마한 규모의 증세가 필요하다”고 비판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올해 우리가 100조원의 국채를 발행한다” “지금은 재난지원금을 얘기할 때지 기본소득을 말할 타이밍이 아니라고 본다”고 했다. 김경수 경남도지사는 “이 지사가 기승전 기본소득만 계속 주장하면 정책논의가 왜곡될 우려가 있다” “포퓰리즘 공약을 쏟아붓는 것으로 대선을 치르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여권 내 대선주자들의 이런 비판에 이재명 지사는 “다른 나라가 안 하는데 우리가 감히 할 수 있겠냐는 사대적 열패의식을 버려야 한다”고 반박하면서 “기본소득은 그 자체보다 그 정책이 품고 있는 비전과 방향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며 자신의 기본소득제 공약을 옹호했다.
보수정치인들이 펼치는 이 논쟁은 매우 한가하다. 그들에게는 대한민국이 사회·경제적 양극화가 극에 달해 있는 ‘헬조선’이라는 절박한 인식을 찾아볼 수 없다. 다른 한편 이재명 지사의 기본소득제는 재정적인 면에서의 실현 가능성만이 아니라 ‘비전과 방향’에서도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데 이 지점은 거의 지적되지 않고 있다.
이 지사가 주장하는 기본소득제는 우선 민생문제를 해결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는 “한국형 기본소득은 너무 서두를 필요도 없지만 너무 미뤄서도 안 된다” “1인당 연간 100만원(분기별 25만원씩) 기본소득은 결단만 하면 수년 내 얼마든지 시행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면 월 10만원이 안 되는 알량한 소득으로 지금 당장 벼랑 끝에 몰려 있는 청년·실업자와 노인들의 생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이재명의 기본소득제는 이와 같이 화급한 빈곤 문제는 해결하지 못하면서 정책논쟁을 엉뚱하게 기본소득제 찬반으로 끌고 가고 있다. 다른 대선주자들은 ‘헬조선’으로 표현되는 한국 사회 구조적 문제의 심각성을 외면하고 있는 점에서 더욱 비판받아 마땅하다.
문제를 올바로 해결하려면 원인을 올바로 진단해야 한다. 왜 빈부가 이처럼 양극화하고 빈곤 문제가 왜 이토록 심각해졌는가. 기본소득제를 주장하는 쪽에서도 반대하는 쪽에서도 말이 없다. 사회양극화와 빈곤은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필연적 산물이다. 소수의 자본가가 다수의 임금노동자를 착취하는 자본주의 생산양식하에서 자본가는 점점 더 소수의 독점자본으로 부유해진다. 반면 근로대중은 점점 더 임금노동자와 상대적 과잉인구로 전락한다. 빈곤은 일반화한다. 켄 로치 감독이 만든 영화 <미안해요 리키>를 보라. 이런 조건하에서 자본주의 생산관계를 변혁하지 않고 소득분배만 손대는 것으로 양극화와 빈곤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더구나 지금은 세계적 범위에서 대불황이 진행 중이고 그 근본원인은 자본의 이윤율 저하에 있다. 이런 상태에서 전면적으로든 부분적으로든 자본주의 생산관계를 변혁해야만 분배를 개선할 수 있다. 체제변혁 없이 분배를 개선하면 이미 낮은 이윤율이 더 낮아지기 때문에 자본가계급은 그것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황금기가 아닌 쇠퇴기 자본주의에서 보편적 복지는 불가능하다. 자본주의는 기껏해야 굶어 죽지 않게 하는 수준의 사회안전망을 제공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런 사회안전망조차 전 국민에게 보편적으로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방식으로는 달성할 수 없다. 너무 많은 예산이 소요되거나 너무 적은 금액이 지급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본소득은 생계가 불가능한 사람들에게 국한해서 제공돼야 한다. 허나 이는 더 이상 ‘기본소득제’가 아니다.
기본소득제를 주장하는 이재명의 방향은 아주 잘못돼 있다. 자본은 4차 산업혁명에 적응하라고 강요한다. 이재명 지사는 “기본소득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비하기 위한 유일한 대안”이라고 주장한다. “필요하다면 포기하기보다 조금이라도 하는 것이 낫고, 그것이 바로 혁명가가 아닌 실사구시 개혁가의 모습”이란다. 혁명이 요구되는 시대에 자본의 착취전략인 4차 산업혁명을 상수로 받아들이면서 현실에 굴종하는 방향을 실사구시란다. 그의 주장이 얼마나 친자본적인지는 단적으로 수구정당 수장인 김종인이나 초국적 자본가인 빌 게이츠·마크 저커버그·일론 머스크가 기본소득제를 찬성하고 있는 데서 엿볼 수 있다. 지금 필요한 논쟁은 기본소득제 찬반이 아니라 혁명이냐 개혁이냐, 혁명이라면 어떤 혁명이냐에 관한 것이다.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seung7427@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