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댓글부대 운영, 민간인 불법사찰, 국가정보원 예산 청와대 상납 등 재임 시절 저지른 각종 정치개입 사건으로 기소된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68·수감 중)이 항소심에서도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서울고법 형사13부(재판장 구회근)는 31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국고 등 손실 등 혐의로 기소된 원 전 원장에게 징역 7년과 자격정지 5년을 선고했다. 1심 형량(징역 7년·자격정지 7년)보다 자격정지 기간만 2년 줄었다.
재판부는 “우리나라 역사상 정보기관의 정치 관여 문제로 수많은 폐해가 있었고, 정보기관의 명칭이나 업무범위를 수차례 바꿔온 사정을 비춰보면 국정원의 정치 관여 행위는 매우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특히 정치 관여 목적이 명백해보이는 ‘국가발전미래협의회(국발협)’라는 민간단체를 국정원 주도로 설립하고 자금까지 지원한 것은 굉장히 잘못됐다”며 “더욱이 차장, 국장 등 다수의 국정원 직원이 원 전 원장의 위법한 지시를 거부하지 못하고 여러 범죄에 연루돼 형사처벌까지 받게 됐다”고 지적했다.
다만 재판부는 1심에서 유죄가 선고된 혐의 일부가 무죄로 뒤집힌 점, 원 전 원장이 2013년 기소된 국정원 댓글 사건으로 2018년 징역 4년을 확정받고 복역중인 점 등을 고려해 양형을 정했다고 밝혔다.
원 전 원장은 2017년 12월 민간인 댓글부대 운영에 국정원 예산을 사용한 혐의(특가법상 국고 등 손실) 등으로 처음 기소됐다. 이후 8차례 추가 기소가 이뤄져 원 전 원장은 총 9개 사건으로 재판을 받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국정원 예산(10만달러)을 교부한 혐의(뇌물공여·국고 등 손실), 박승춘 전 국가보훈처장(당시 국가발전미래교육협의회 초대 회장) 등과 공모해 국발협을 설립·운영하며 정치편향적 안보교육을 실시한 혐의(국정원법 위반), 이채필 전 고용노동부 장관 등과 공모해 제3노총(국민노총)을 설립해 민주노총 분열공작을 벌인 혐의(국정원법 위반), 김재철 전 MBC 사장과 공모해 김미화·김여진씨 등을 MBC에 출연하지 못하게 한 혐의(직권남용) 등이다.
지난 2월 1심 재판부는 이러한 혐의들에 대해 대부분 유죄를 선고했다. 다만 MBC에 고정 출연자 취소를 요구하는 행위는 국정원의 권한이 아니기 때문에 직권남용죄가 성립될 수 없다며 ‘방송 장악’ 혐의는 무죄가 선고됐다. 같은 이유로 국정원 직원들에게 배우 문성근씨, 명진 스님 등의 동향을 파악하도록 한 직권남용 혐의 대부분에 무죄가 선고됐다.
2심 재판부는 1심 판단을 대부분 유지했으나 일부 혐의에서 유무죄가 뒤집혔다. 메리어트호텔 임대차보증금 명목으로 국정원 예산 28억원을 사용한 국고손실죄 혐의 등이 무죄에서 유죄가 됐다. 국정원 직원들에게 권양숙 여사, 박원순 서울시장을 미행·감시하도록 한 직권남용 혐의는 유죄에서 무죄가 됐다.
김재철 전 MBC 사장은 MBC 노조원들에게 불리한 인사평정을 해 노조 탈퇴를 유도하는 등 노조 운영에 개입한 혐의(노동조합법 위반)에 대해 1심과 같이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이채필 전 장관은 1심과 같이 징역 1년2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박승춘 전 국가보훈처장도 1심처럼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자격정지 2년을 선고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