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WP “CIA, 암호장비 업체 차려 120개국 기밀 털었다” 

WP “CIA, 암호장비 업체 차려 120개국 기밀 털었다”

입력 : 2020-02-12 18:50:32 수정 : 2020-02-12 22:26:48

WP·獨 ZDF 폭로 / 스위스 장비업체 극비리에 소유 / 통신장비에 기밀해제 장치 심어 / 韓·日·바티칸 등 무차별적 수집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0일(현지시간) 뉴햄프셔 주 맨체스터 유세장에서 지지자들을 향해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고 있다. 맨체스터 AP=연합뉴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스위스의 암호 장비 회사를 이용해 동맹국과 적국을 가리지 않고 한국 포함 120개국을 대상으로 수십년 동안 무차별적으로 비밀정보를 수집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중국의 통신장비업체인 화웨이를 통해 중국으로 기밀정보가 유출될 수 있다며 화웨이 제품을 쓰지 못하도록 동맹국을 압박해온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이중성이 드러났다는 비판이 나온다.

 

워싱턴포스트(WP)는 11일(현지시간) 독일 방송사 ZDF와 함께 CIA의 작전 자료를 입수, 2차대전 이후 최근까지 각국에 암호 장비를 판매해온 스위스 회사 ‘크립토AG’를 CIA와 당시 서독 정보기관 BND가 극비리에 소유하고 있었다고 폭로했다.

이 회사는 지난 수십년 동안 기계와 전자회로 파장 추적, 실리콘 칩과 소프트웨어에 이르기까지 암호 장비를 생산, 판매하는 독보적인 업체로, 각국이 정보요원과 외교관, 군과의 비밀 연락 업무를 수행하면서 이 회사 장비를 사용해 왔다. CIA와 BND는 이 암호 장비에 미리 기밀정보를 쉽게 해제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심어놓고 세계 주요국에서 오가는 기밀정보를 손쉽게 취득해 온 것으로 밝혀졌다.

이 회사 장비를 이용해 온 국가는 120개국이 넘는데, 이 가운데 확인된 62개국에 한국과 일본도 있다. 1981년 기준 최대 고객은 사우디아라비아이고 이란, 이탈리아, 인도네시아, 이라크, 리비아, 요르단 등에 이어 한국도 10대 고객에 포함됐다. 옛 소련과 중국, 북한은 이 회사 제품을 사용하지 않았으나 이 회사 장비를 사용하는 다른 나라와 교신할 때는 그 내용이 미국 정보기관에 고스란히 흘러들어갔다.

독일의 BND는 1990년대 초에 스파이활동이 노출될 위험성이 크다고 보고 손을 뗐으나 CIA가 독일 지분까지 매입해 2018년까지 운영했다. 기밀 탈취 의혹을 제기하며 화웨이를 맹비난해 온 트럼프정부가 2018년까지도 크립토AG를 이용해 적국은 물론 동맹국의 기밀까지 털어낸 것이다.

미국은 이 회사를 이용한 스파이활동 작전을 ‘유의어사전’을 뜻하는 ‘시소러스’(Thesaurus)라고 하다가 1980년대에 ‘루비콘’으로 바꿨다. 미국 국가안보국(NSA)은 1970년부터 CIA와 함께 크립토AG의 직원 채용 과정 등에 직접 개입하면서 이 작전을 진두지휘했다. 1978년 미국 대통령의 별장 캠프 데이비드에서 이집트와 이스라엘, 미국이 모여 중동평화협정을 맺을 때 NSA는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과 본국의 기밀통신을 몰래 모니터했다. 이집트 역시 크립토AG의 고객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1986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독일 베를린 나이트클럽 폭탄테러에 대응해 리비아 공습을 지시할 수 있었던 것도 루비콘작전 덕분이었다.

한편 스위스 당국은 크립토AG와 관련한 이 같은 의혹에 대해 조사에 착수했다. 캐롤리나 보렌 스위스 국방부 대변인은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지난달 15일 해당 사안을 검토하기 위해 전직 대법원 판사를 임명했다고 밝혔다.

워싱턴=국기연 특파원 kuk@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언론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