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드림] “나와 보니 나의 길은 없었다”

 

“나와 보니 나의 길은 없었다”

2014년 KT 퇴출된 8304명…그 그늘

‘반인권적 퇴출 광주전남 피해자 증언’

황해윤 nabi@gjdreaam.com
기사 게재일 : 2019-03-04 06:05:01
 

▲ 지난 2월28일 국가인권위 광주사무소 인권교육센터에서 KT노동인권센터 주최로 진행된 ‘8304명 KT 반인권적 강제퇴출 광주전남지역 피해자 증언대회’.
 몇 마디 목소리를 내지 않았음에도 이 씨는 눈물을 흘렸다.

“돌아보면 서러움이 앞선다. 지금은 건강이 좋지 않다.”

KT가 명예퇴직을 통해 8304명이라는 단일사업장 역대 최대 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했던 2014년, 당시 나이 50이었던 그 역시 KT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KT광산지사가 그의 마지막 일터가 됐다. 실적도 좋았던 그였다. 그런 그에게 팀장이 면담을 요청했다. 그는 그 때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사직서는 그의 손으로 직접 쓰지 않았다. 관리자가 작성해 온 서류에 서명만 했다. 출근하면 불러서 명퇴를 강요했다. 버텨봤자 학자금도 없어지고 임금피크제 도입되면 월급도 삭감된다고 떠날 것을 종용했다. 팀장이 불러서 안되면 부장이 부르고 부장이 안되면 지사장이 불렀다.

“지사장까지 만날 필요 없겠다, 그냥 나의 길을 가겠다고 관리자에 전했다. 하지만 나와 보니 나의 길 같은 건 없었다.”

30년 동안 일했던 KT를 나와야만 했던 이 씨는 이틀 뒤 처음으로 인력대기소란 데에 갔다.

▲만 60세 전 사망 51명

“하루 일당 10만 원, 알선료가 1만 원이었다. 그렇게 해서 번 돈 135만 원을 집 탁자 위에 놔두었다. 대학 졸업 후 취직을 못하고 있던 아들이 그 돈으로 면접을 보러갔다. 생활고가 찾아왔다. 계획 없이 나왔는데 당장 의료보험이 32만 원이 나왔다. 어떻게 살아야할지 막막했다.”

그런 그에게 막막한 일은 더 일어났다. 2014년 KT를 떠나고 2017년 희귀난치병인 ‘소뇌위축증’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그에게 5년을 이야기 했다. 30년 동안 KT에서 헌신했던 그에게 남은 건 생활고와 난치병. 얼마남지 않았을 지도 모르는 생.

이미 그렇게 KT를 떠난 많은 동료들과 선·후배들이 명을 달리했다. KT노동인권센터가 집계한 결과에 따르면 2014년 4월 KT에서 명예퇴직한 8304명 가운데 정년 연령인 만 60세가 되기 전에 사망한 사람이 지난해 말까지 51명이었다. 사망원인은 암과 돌연사가 대부분을 차지했고 자살도 있었다.

이 씨는 자신의 병 역시 KT에서 겪었던 일과 무관치 않다고 생각했다.

95년 KT에 입사했던 김 씨 역시 2014년 떠밀리듯 KT를 나와야했다. 그 때 나이 44세였다. 그 때만 생각하면 숨이 막히고 죽을 것 같다고 그는 말했다. 2014년 명퇴 대상에 포함됐을 때 그는 2005년 일이 떠올랐다고.

“114에서 일하시던 누님들이 제가 일하던 마케팅 국으로 왔다. 반가운 마음에 커피를 뽑아 드렸는데 관리자가 봤는지 나를 불러 반성문을 쓰게 하고 무릎 꿇고 빌라고 했다. 말을 섞었다는 이유였다. 밥도 같이 먹지 말고 말도 섞지 말라고 했다. 그 때 그 누님들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누님들이 당했던 일을 내가 당하게 되는구나 생각하니 가슴이 막혀왔다.”

2001년 114가 KT에서 분사됐을 당시 분사를 거부하고 남았던 여성 노동자들이 받았던 ‘탄압’을 그는 기억했다. 그 때 눈감을 수밖에 없었던 자신이 떠올랐다고. 결국 그런 일이 내게도 일어나는구나 했다고.

▲퇴출 이후 생계·건강 막막

그렇게 KT를 떠나게 된 그 역시 당장 ‘생활고’가 찾아왔다. 돌봐야 하는 자식들이 5명이었다. 치매에 걸린 모친의 병원비도 어깨를 짓눌렀다. 가족들은 왜 좀더 참지 못했냐고 그를 원망했다. 이혼 위기도 여러차례 겪었다. 마음 고생이 심했다.

다 잊어버리고 농사나 짓자며 시작한 하우스 일도 생활하기엔 빠듯한 수입이라고.

“회사 다닐 땐 출근하는 게 고통이었다. 팀장이고 부장이고 사람으로 안보였다. 그래도 가끔 그 때 좀 참았더라면 하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 현재 하는 일이 6개월 단위로 수입이 생기는데 생활하기엔 많이 어렵다. 막내가 네살이고 큰 애가 열일곱살이다. 나는 아직 젊고 아이들 키우는 일도 한참 남았다.”

정신적으로 이상해져 버렸다는 김 씨. 그는 우울증으로 병원에 다니면서 약을 복용하고 있다고 했다. KT에 남아있는 사람들도 걱정 된다고 했다.

지난 2월28일 국가인권위 광주사무소 인권교육센터에서 KT노동인권센터 주최로 진행된 ‘8304명 KT 반인권적 강제퇴출 광주전남지역 피해자 증언대회’에 참석한 이 씨와 김 씨. 이날 가슴에 담고 있는 모든 말을 다 할 수는 없었다. 어떤 이는 ‘생계’에, 어떤 이는 ‘건강’에 발목을 잡혔다.

이 씨와 김 씨를 비롯해 KT 명예퇴직자 256명이 회사를 상대로 집단 해고무효확인 소송에 참여 중이다. 2014년 행해진 8304명에 대한 대규모 구조조정이 강요에 의한 불법적인 구조조정이었던 만큼 무효로 해야 한다는 취지다.

황해윤 기자 nabi@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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