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버스도 3대나 현장 출동
일부 주주들 앞자리 위해 노숙
‘비표’ 없다는 이유로 저지당해
황창규 케이티 회장이 23일 서울 우면동 케이티연구개발센터에서 주총을 진행하고 있다. 케이티 제공
23일 오전 9시 열린 케이티(KT) 정기 주주총회에선 몸싸움과 고함이 난무했다. 케이티가 직원 가운데 ‘착출’한 주주들을 먼저 주총장에 먼저 들여보내 앞자리를 장악하게 하면서 주총이 열리는 서울 우면동 케이티연구개발센터 정문부터 황창규 회장 퇴진을 주장하는 다른 주주들과 드잡이가 벌어졌고, 이 과정에서 몸싸움과 고성이 오갔다. 경찰 버스 3대가 출동하기도 했다.주총장 모습도 ‘난장판’ 수준이었다. 앞에서는 황창규 회장이 앞자리 앉은 주주들과 총회를 진행하고, 회사 쪽의 전략에 따라 뒷자리로 밀려난 주주들은 황창규 퇴진을 요구하는 펼침막을 펴쳐들고 구호를 외쳤다. 황 회장 퇴진을 촉구한 주주들은 전날 밤 10시부터 케이티연구개발센터 앞에 텐트를 치고 노숙을 하기까지 했다. 주총은 안건을 모두 원안대로 승인하고 43분만에 종료됐다.경찰 버스가 3대나 출동할 정도로 긴박했던 케이티 주총장 안팎 상황을 시간대별로 정리했다.
#5시30분
오전 9시 케이티(KT) 정기 주주총회가 열릴 예정인 서울 우면동 케이티연구개발센터 정문 앞. “비표 보여주세요.” 건장한 케이티 직원이 차를 가로막으며 기자에게도 ‘비표’를 제시할 것을 요구했다. “주총 취재하러 온 기자입니다.” “8시 이후에나 들어갈 수 있습니다. 기다리세요.” “다른 차들은 다 들여보내면서 취재차량만 왜 안돼요?” “비표 보유한 주주나 직원 차량만 들어갈 수 있어요.”앞서 케이티는 주총장에 우리사주를 가진 직원들을 동원하며 비표를 지급했다.
오전 5시40분경 케이티연구개발센터 정문 출입구 풍경.
케이티 민동회 회원, 케이티노동인권센터 활동가, 새노조 조합원 등이 주총장 앞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케이티연구개발센터 앞에 텐트를 치고 노숙을 하고 있다.
같은 시각 연구개발센터 정문 출입구. 주총까지는 한참 남았고, 직원들이 출근하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지만 사람들로 붐볐다. 사방은 아직 어둡다. 사람이 도착할 때마다 “비표 제시하세요” “비표 있는 분이예요. 통과시키세요”라는 고함이 이어졌다.반면 케이티노동자인권센터·케이티새노조·케이티전국민주동지회 등 이른바 ‘민주계열’ 활동가와 케이티 직원들의 출입은 철저히 차단됐다. 주주라고 해도 막무가냈다. 이들은 주총장 앞자리에 앉기 위해 어제 밤 10시부터 연구개발센터 앞 길에 텐트를 치고 노숙까지 했다. 하지만 비표가 없다는 이유로 철저하게 걸러졌다.이에 일찍 들어가려는 주주들과 이들을 제지하는 케이티 청원경찰 사이에 몸싸움이 이어졌다. “나도 주주야. 들여보내줘.” “비표 없으면 안돼요. 알면서 왜 이러세요. 저희 사정도 좀 봐주세요.”
케이티노동인권센터 활동가, 케이티전국민주동지회 회원, 케이티새노조 조합원들이 아침 일찍 주총이 열리는 건물로 들어가려다 회사 쪽 직원들과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정연용 케이티 본사지방노조위원장이 케이티연구개발본부 노조사무실로 들어가려다 저지당하자 농성을 하고 있다.
케이티연구개발센터 앞 도로 풍경. 케이티가 비표를 소지하지 않은 주주 차를 막으면서 앞 길이 막히면서 경찰차까지 출동했다.
#6시30분경
경찰 버스 3대가 도착했다. 무전기를 소지한 경찰들이 연구개발센터 앞에 포진했다. 비슷한 시각, ‘경호’란 명찰을 단 건장한 청년 50여명이 연구개발센터 정문 바리케이트 뒤에 배치됐다. 동시에 정문 출입구는 더욱 소란스러워졌다. “비표 보여주세요.” “우리도 좀 들어갑시다.”차량 출입이 원활하지 못하면서 연구개발센터 앞 도로가 주차장처럼 바뀌었다. 교통경찰이 배치돼 차량 소통을 도왔으나 다들 한참씩 서 있다 가는 모습이었다.이후 진풍경이 벌어졌다. 케이티 청원경찰들은 민동회 회원들과 새노조 조합원들의 진입을 막고, 민동회 회원들과 새노조 조합원들은 반대로 비표가 있다며 정문을 통과하는 차량을 ‘검문’했다. “비자금 조성과 불법 정치자금 제공 행위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는 피의자 신분의 황 회장이 주총 의장을 맡는 것을 막아야 한다. 주총장에 못들어가게 할 것이다.”하지만 황 회장이 이날 정문을 통과하지 않으면서 이들의 계획은 실패했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출동하는 경찰 병력을 실은 버스 3대가 케이티연구개발센터로 들어가고 있다.
#7시30분경
갑자기 정문 출입구 앞에서 심한 몸싸움이 일었다. 케이티 노조의 정연용 본사지방노조위원장이 비표를 소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정문 출입을 저지당한 것이다. “노조위원장이 노조 사무실 가는 것까지 막냐.” “노조탄압이다” 등의 고함이 나왔다. 정 위원장은 차량이 들어가는 틈이나 바리케이트 위 등으로 진입을 계속 시도했으나 번번이 청원경찰에 이끌려 밖으로 내처졌다.케이티 민동회 회원과 새노조 조합원 등이 연구개발센터 정문 앞길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박철우 민동회 의장은 “황창규 회장은 최순실 국정농단에 부역하고, 상품권 깡으로 비자금을 만들어 국회의원들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하는 등 불법을 저질렀다. 불법·비리의 주범이다. 그런데도 케이티는 우리사주를 가진 직원들을 차출해 며칠 전부터 훈련시키고, 어제는 리허설까지 했다고 한다. 직접 참석한 직원이 알려줬다”고 밝혔다.정연용 본사지방노조위원장은 “황창규 회장은 퇴진해 자연인으로 경찰수사를 받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새노조 위원장은 “불법행위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는 피의자가 주총 의장을 맡는 게 말이 되느냐”고 말했다.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케이티 새노조 조합원과 민동회 회원 등이 밖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7시50분경
케이티 연구개발센터 1층 주주 확인 데스크. “나도 주주인데 왜 못 들어가게 해.” “근거를 대봐.” 정문 봉쇄가 풀리면서 건물 안으로 들어온 민동회 회원들이 이번에는 주주 확인 문제로 다시 언성을 높였다. “사주조합장한테 위임이 돼 있어요. 사주조합장한테 위임을 받아와야 들어갈 수 있어요.” “내 주식이고, 나는 사주조합장한테 위임한 적이 없고, 내가 직접 참석해서 의사 표시를 하겠다는데 왜 안돼. 근거가 뭐야.” 우리사주 60주를 갖고 있다는 김규화(케이티 직원)씨는 “일반 주주들은 문제없이 입장하고 있는데, 유독 민동회 회원들만 저지당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주총 시작 시간이 가까워질 즈음, 이들도 모두 주총장에 입장했다. 케이티 새노조 조합원은 “이따가 주총장 들어가서 봐라. 주총장 가운데 앞 절반은 비표를 받아 아침 일찍 입장한 회사 동원 사원 주주들이 앉고, 그 뒤에는 일반 주주, 그리고 맨 뒤나 입석으로 민동회나 새노조 조합원 주주들이 배치될 것이다. 용역들이 복도를 막아 앞으로 갈 수도 없다”고 말했다.
#9시
황창규 회장의 개회 선언으로 케이티 제36기 정기 주주총회가 시작됐다. 민동회 소속 조합원 주주들이 뒷편에서 ‘불법 정치자금 피의자 황창규 회장 즉각 퇴진’ ‘부당 노동행위 책임지고 황창규는 퇴진하라’는 펼침막을 펴고 “황창규 회장 물러나라” 등의 구호를 외쳤으나 주총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주총 내내 민동회 회원 주주들의 구호 속에 황 회장이 “조용하세요” “정숙해주세요” “질서유지권 발동합니다”고 경고하는 상황이 주총 내내 이어졌다.의장이 안건을 상정해 주주들의 의견을 물으면서 앞자리에 꼿꼿하게 앉은 주주들에게 발언 기회를 주고, 발언 기회를 얻은 주주는 ‘언론 보도를 보니 불안한 생각도 듭니다. 앞으로는 잘해 주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이번 안건에 동의합니다. 박수로 주주들의 의견을 묻고, 다음 안건으로 넘어갔으면 합니다’라고 하면, 의장이 “출석 주주의 과반수와 발행 주식 수의 4분의 1이 찬성했습니다”며 다음 안건으로 넘어가기를 반복했다.민동회 의장이 발언권을 얻어 상품권 깡으로 비자금을 만들어 국회의원들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한 부분을 따졌으나, 앞자리에 앉은 주주들의 야유와 황 회장의 “수사중”이라는 답변이 다였다.이날 케이티 주총에서는 회장과 사외이사 선임 절차를 바꾸는 지배구조개편안을 담은 정관 변경안, 참여정부 청와대 출신의 이강철·김대유씨 사외이사로 선임안, 이사 보수한도 65억원 승인안 등이 원안대로 승인됐다.
#9시43분
황 회장의 폐회 선언으로 케이티 주총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