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표동양시멘트가 하청노동자를 불법파견 형식으로 사용했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이들 하청노동자들은 노동위원회에서 위장도급 판정을 받고도 정규직으로 전환되지 못한 채 해고됐다. 법원은 불법파견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하청노동자들과 동양시멘트 간의 묵시적 근로계약관계는 부인했다.
위장도급 판정 후 해고된 동양시멘트 하청노동자들
서울중앙지법 제48민사부(부장판사 김범준)는 20일 민주노총 강원영동지역노조 동양시멘트지부가 제기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지부가 소송에서 주장한 내용은 크게 두 가지다. 자신들이 동양시멘트의 정규직이라는 사실을 고용노동부와 노동위가 인정한 만큼 해고자들을 정규직으로 복직시키고, 정규직에 해당하는 임금을 제대로 계산해 지급해 달라는 것이다.
지부는 재판 과정에서 “동양시멘트 사내하청업체들은 업무수행 독자성이나 사업경영 독립성을 갖추지 못한 노무대행기관에 불과하다”는 중부지방고용노동청 태백지청의 결정을 인용하면서 “하청노동자들은 원청과 묵시적 근로계약관계에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원청인 동양시멘트가 실체도 없는 유령업체인 하청업체와 도급계약을 맺고 하청노동자들을 부려 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재판부는 묵시적 근로계약관계로 판단해 달라는 지부의 주장을 기각했다. 재판부는 “묵시적 근로계약관계가 인정되기 위해서는 협력업체인 하청업체의 존재가 형식적·명목적이어야 하나 이를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다만 재판부는 원청과 하청노동자들이 불법파견 관계에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제반 사정을 고려해 원고들과 동양시멘트 사이에 근로자파견 관계는 인정된다”며 “일부 원고들이 동양시멘트의 근로자 지위에 있거나(고용간주), 동양시멘트가 일부 원고들을 고용할 의무(고용의무)를 부담하게 됐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동양시멘트는 원고들과 동종·유사업무를 수행하는 정규직과의 임금 차액을 하청노동자들에게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2005년 7월 전후 입사시기 따라 처지 갈려
노동자들의 고용형태는 입사시기에 따라 엇갈리게 됐다. 2007년 7월 시행된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은 2년 이상 고용된 파견노동자의 고용의무를 사용자에게 부여한다. 그 전에는 이 경우 고용된 것으로 간주하는 고용의제를 적용했다.
이번 소송에 참여한 하청노동자는 모두 48명이다. 이 중 2007년 7월에 이미 2년 이상 근무한 18명은 고용의제조항이 적용됐다. 별도의 근로계약 없이도 근로관계가 성립된다는 뜻이다. 나머지 30명은 고용의무가 발생했다. 3천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내면 직접고용하지 않아도 된다.
동양시멘트 하청노동자들은 원청과 묵시적 근로관계를 인정받지 못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토로했다. 동양시멘트 투쟁 승리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법률대응팀 이용우 변호사(법무법인 창조)는 “재판부가 원청이 하청노동자들을 실제 지휘·감독했다는 사실까지는 부정하지 못하고 불법파견으로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며 “동양시멘트가 하청노동자를 정규직으로 대하고 신분보장·법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점이 확인된 것은 성과”라고 말했다.
안영철 지부 사무국장은 “노동부 조사를 통해 실체가 없는 것으로 확인된 하청업체의 존재를 재판부가 인정했다는 점이 아쉽다”며 “대책위 회의를 열고 항소를 포함한 이후 대책을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해 2월 동양시멘트는 하청업체 동일기업·두성기업 노동자들이 원청과 묵시적 근로계약 관계에 있다는 노동부 판정이 나오자 두 회사와 도급계약을 해지했다. 101명의 하청노동자들이 하루아침이 일자리를 잃었다. 지부는 같은해 3월 해고자와 조합원 등 모두 120여명의 소송인단을 꾸려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냈다. 지난해 9월 동양시멘트를 인수한 삼표그룹이 노조를 탈퇴하고 소송을 취하한 노동자들에게만 자회사 일자리를 주기로 하자 일부 소송참가자들이 이탈하기도 했다. 현재 23명의 하청노동자들은 삼표 본사 앞에서 천막농성을 벌이며 복직투쟁을 이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