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최순실’로 끝날까..미르·K재단 의혹 총정리
작성자: 최종관리자 | 조회: 199회 | 작성: 2016년 9월 26일 12:15 오후'최순실'로 끝날까..미르·K재단 의혹 총정리
한겨레 입력 2016.09.26. 11:16 수정 2016.09.26. 11:46[한겨레] [더(THE) 친절한 기자들]
끊이지 않는 ‘비선 실세’ 논란, 진짜 몸통은 누구?
미르·K스포츠 재단 배후로 지목된 최순실을 주목하는 이유
청와대의 ‘비선 실세’ 논란이야말로 이 정권을 관통하는 이슈라 할 만 합니다. 박근혜 정권에서는 유독 “흙 속에 숨은 진주”같은 인물을 발굴해내는 ‘깜짝 인사’가 잦았습니다. 집권 여당 내에서, 행정부에서, 심지어 청와대 내부에서조차도 이유를 모르는 ‘불통’ 행보도 많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공식 라인이 아닌 ‘비선 실세’의 존재를 의심했습니다. 국무총리 인선에 두 차례나 실패한 ‘인사 참극’ 이후, 비선 실세로 정윤회씨가 지목됐던 데는 그런 배경이 있습니다. (▶관련기사 : 한눈에 딱 들어오는 정윤회 파문 총정리 2탄) 정씨는 1998년부터 2004년까지 박근혜 당시 국회의원을 보좌했던 인물입니다. 그가 막후에서 실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의혹이 터져나온 것이 2014년 ‘정윤회 게이트’였습니다.
세간에 떠도는 ‘비선 실세론’을 청와대에 보고했던 박관천 전 대통령공직기강비서관실 행정관은 내부 문건 유출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 “우리나라 권력 서열 1위는 최순실, 2위가 정윤회, 3위가 대통령”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최씨는 정씨의 전 부인입니다.
하지만 최순실(이혼 뒤 최서원으로 개명)이라는 이름은 2년간 물 밑에 가라앉아 있었습니다. 보고서에 직접적으로 거론된 인물이 정씨였던 까닭입니다. 2년 만에 최순실씨를 다시 끄집어낸 시발점은, 역시 청와대의 ‘인사 실패’였습니다.
■ 진경준 ‘공짜 주식’ 이 불러온 나비효과
7월로 돌아가봅시다. 시작은 68년 검찰 역사상 최악의 비리 스캔들로 꼽히는 ‘진경준 사건’입니다. 7월18일, 진경준 전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검사장·49)이 현직 검사장급으로는 최초로 구속됐습니다.
진 검사장은 3월25일 공직자 재산공개에서 156억원을 신고했는데, 이 중 주식을 팔아치워 단 번에 벌어올린 수익이 무려 126억원이었습니다. 재산 증가액으로 치면 공무원 가운데 1위. 일반인은 접근할 수도 없는 넥슨의 비상장주식을 2005년 구입해 상장 후인 2015년 팔아치워 ‘주식 대박’을 터뜨린 때문입니다. (▶관련 기사 : [단독] 진경준 검사장 ‘수상한 주식대박')
공직자윤리위원회가 조사에 나섰고, 성난 여론에 떠밀려 검찰도 수사에 나선 결과, 현직 검사장급 검사가 뇌물 수수 혐의로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에 이릅니다. 검찰 내에서 ‘검사장급’에 오르는 것은 굉장히 어렵습니다. 기업으로 치면 고위 임원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검사장 대우를 받는 이는 검찰 조직 내 54명밖에 없는데요, 검찰과 법무부·청와대에 걸친 엄격한 승진 심사를 받아야 합니다.
여기서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이 등장합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고위 공직자의 인사 검증을 맡는데요, 검사장 승진 후보 심사를 받는 검사가 업무연관성이 있는 기업의 비상장 주식을 대량 보유하고 있는데도 민정수석실이 그냥 보아넘긴 것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 수석과 진 검사장은 서울대 법대 선후배 사이고, 법무부에서도 비교적 가깝게 근무하며 진 검사장이 승진하는 데도 도움을 줬다는 설이 파다했습니다. (▶관련기사 : 우병우-진경준 특별한 검찰 인연)
■ ‘부실검증’ 우병우 수석 비리 의혹 불붙어
우 수석에 대한 공세의 포문은 <조선일보>가 열었습니다. 조선일보는 7월18일치(월요일) 1면에 ‘우병우 민정수석의 처가 부동산… 넥슨, 5년 전 1326억원에 사줬다’는 기사를 냅니다. 진 검사장이 다리를 놔주어 우 수석 처가의 ‘골칫거리 땅’을 넥슨이 사도록 주선했고, 우 수석은 대신 진 검사장의 넥슨 주식 보유를 눈 감아 줬다는 이야깁니다. ‘부실검증 책임론’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본격적인 비리의 주체로 우 수석을 지목한 것입니다.
<한겨레>를 비롯한 잇딴 언론의 취재로 우 수석 아들의 의경 보직과 국회 인턴 특혜, 가족회사 설립을 통한 횡령·탈세 논란, 처가의 농지법 위반 실태, 차명 의혹 땅 보유 등의 비리들이 무더기로 드러났습니다. (▶관련기사 : 그런데 우병우는 무슨 죄야? 의혹 총정리)
조선일보가 ‘우병우 때리기’의 선봉에 섰다는 것은 청와대와 보수언론의 ‘밀월’이 끝났다는 신호로 볼 수 있습니다. 우 수석은 청와대의 ‘실세 수석’이라고 불립니다. 2014년 민정수석비서관으로 일할 당시, 정윤회 사건을 ‘일반인의 국정 농단 사건’이 아닌 ‘청와대 문건유출 사건’으로 프레임을 전환하고 사건을 마무리한 공으로 박 대통령의 신임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 직후인 2015년, 40대에 사상 최연소 민정수석직에 오르는 파격 인사의 당사자가 됩니다. 우 수석이 검찰 19기 출신인 반면, 동일 선상에서 국무를 처리하는 검찰총장이 당시 14기(김진태 전 검찰총장), 법무부장관은 13기(황교안 전 법무부 장관)라는 점이 화제를 모았습니다.
■ 청와대는 왜 조선일보에 ‘전쟁’ 선포했나
이처럼 청와대의 신임을 얻고 있는 ‘실세 수석’을 보수언론의 대표격인 조선일보가 정면 공격한 것은, 4월 총선 참패 이후 차기 정권 재창출을 위해서라도 청와대가 이쯤에서 ‘쇄신’할 필요가 있다는 보수 세력의 신호이기도 했습니다.
청와대는 총선 당시 당내 공천에 적극 개입했다는 의혹과 총선 참패 이후 전면개각 요구 등에 침묵하면서 ‘불통’ 이미지가 굳어지고 있었습니다. 우 수석이 인사 검증 문제를 비롯한 국정운영 실패를 책임지고 물러서는 선에서 쇄신이 이뤄질 법도 했습니다. 실제로 새누리당 쪽에서도 “(대통령의) 국정운영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물러나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나왔습니다. (▶관련기사 : 새누리 원내지도부, ‘우병우 사퇴’ 거듭 주장)
하지만 청와대는 정반대의 강수를 둡니다. 대통령은 21일, 우 수석 비리 의혹이 폭로된 지 3일 만에 이렇게 말합니다.
사실상 우 수석에게 ‘흔들리지 말라’고 주문한 것이죠. 이후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비리 의혹들과 숱한 경질설에도 청와대는 침묵으로 맞섰고, 우 수석은 지금까지 민정수석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공직자의 비위를 조사하고 검증하는 민정수석 자신이 수많은 비리 의혹을 받고 있는 상황이 두 달 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청와대의 ‘버티기’는 왜일까요. 청와대의 상황 인식을 보다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발언은 같은 날 청와대 관계자의 입에서 나왔습니다. (▶관련보도 보기)
즉, 우 수석에 대한 공격을 ‘청와대 흔들기’로 간주하고 있는 것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일부 언론 등 부패기득권 세력’이라는 말로 조선일보를 지칭한 것이었습니다. 그냥 기득권 세력도 아닌 ‘부패’ 기득권 세력이라는 거론은, 청와대가 조선일보의 어떤 “부패” 사실을 알고 있으며 이를 반격 카드로 활용하겠다는 암시였습니다.
■ 우병우 비리폭로 와중 등장한, ‘재단 비리’
조선일보는 이때 우병우의 비리 폭로와는 별개로 또 다른 의미심장한 보도를 내놓습니다. 7월 26일, 조선일보 계열사인 종편 은 ‘청와대 안종범 수석, 문화재단 미르 500억 모금 지원’ 이라는 보도를 합니다. ‘문화재단 미르’ 라는 곳이 설립되면서 기업들로부터 486억원에 이르는 거액을 후원받았는데, 사실상 청와대의 압력이 있었다는 보도였습니다. 또 안종범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재단 설립과 내부 인사까지 간여한 의혹이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안 수석은 부인했습니다.
이어 8월2일에는 K스포츠 재단에도 380억원을 모아줬다는 보도(▶관련기사 보기)를 내보냈습니다. 8월12일까지도 TV조선은 청와대가 두 재단과 연루되어 있다는 의혹을 지속적으로 보도했습니다. (▶관련기사 : 박 대통령 행사마다 등장하는 미르·케이스포츠)
전두환 대통령이 퇴임 후의 비자금 마련을 위해 ‘일해재단’을 만들었던 것처럼, 기업들의 팔을 비틀어 권력 비자금을 마련하려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어났습니다. 우 수석이 아닌 대통령 자신 또는 비선들의 비리 문제로 흘러갈 수 있다는 점에서 타격이 클 수 있는 보도였습니다. 하지만 이 때만 해도 우 수석 의혹에 가려 이 보도가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고, ‘최순실’이라는 키워드도 등장하지 않아 파장이 크지 않았습니다.
■ “이석수 나가” 청와대의 ‘반격’
이 때쯤 위기감을 느꼈던 것일까요? 청와대의 반격은 8월 중순 시작됐습니다. 8월16일 청와대는 3개 부처 장관을 개각하며 우 수석을 재신임했습니다. 조선일보는 17일치 사설에서 “검찰은 ‘우병우 비리 의혹’ 왜 수사하지 않는가” “이런 맥빠지는 개각”이라며 실망을 드러냅니다.
-조선일보 8월17일치 사설
그 다음으로 청와대는 내부에서 우 수석의 비리 의혹을 감찰 중이었던 이석수 특별감찰관을 쳐냈습니다. 17일 저녁 가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조선일보 기자에게 감찰 내용을 흘렸다’는 보도를 내보냅니다. 조선일보 기자와 이석 특별감찰관 간의 ‘SNS’를 입수했다는 건데요. 이 특감이 조선일보 기자에게 “우 수석의 가족회사 정강에 대해 조사하고 있고 우 수석이 계속 버틸 경우 특별감찰활동 만기(8월19일) 이후 검찰에 사건을 넘기겠다”고 전했다는 내용입니다. (▶관련기사 보기) 카카오톡으로 보이는 이 내용을 MBC가 어디에서 입수했는지에도 의혹의 눈길이 갔습니다.
<동아일보>도 18일치 보도(사진)를 통해 “감찰 착수 당시부터 우 수석의 사퇴를 전제로 감찰을 진행해 공정성을 훼손”했다며 이 특감을 비판했습니다.
19일엔 청와대가 직접 나서서 “중대한 위법행위이고 묵과할 수 없는 사항으로 국기를 흔드는 일”이라며 “배후에 어떤 의도가 숨겨져 있는지 밝혀져야 한다”(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고, 이 특감을 겨냥했습니다. 일종의 프레임 전환 시도입니다.
■ ‘건드려서는 안 될 것을 건드렸다’
미처 예상하기 어려웠던 전개였습니다. 특별감찰관 제도는 박 대통령 자신이 대선 후보 당시 친인척이나 청와대 고위간부의 자체 감찰을 맡기겠다며 고안한 것이었고, 이석수 변호사를 특별감찰관으로 선임한 것도 역시 박 대통령이었기 때문입니다. 우 수석 비리 진상규명 요구가 거세진 7월25일 특별감찰이 시작됐지만, 적당한 선에서 무마해 주고 끝나는 것은 아닐지 의구심을 갖는 사람이 더 많았습니다.
하지만 당시 조사가 ‘청와대가 바라는 선’을 넘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한겨레> 취재 결과 드러났습니다. 이 특감이 우 수석 비리 뿐 아니라 미르재단과 K스포츠 재단의 모금 비리를 수사하고 있었고, 때문에 박 대통령에게 ‘미운털’이 박혔다는 것입니다. (▶관련기사 : [단독] 이석수 특감, ‘재단 강제모금’ 안종범 수석 내사했다)
그러니까 이 특감이 건드려서는 안 될 것, 건드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건드렸고, 그래서 청와대의 노여움을 샀다, 여기서 건드려서는 안 될 것이란 바로 ‘미르재단과 K스포츠’라는 얘기입니다.
■ 검찰·김진태, 조선일보에 ‘부패 언론’ 프레임
이 특감을 쳐낸 청와대는 8월 22일, 조선일보를 향해 가늠쇠를 조준합니다. 방아쇠를 당긴 것은 검찰이었습니다.
검찰은 올 1월 대형비리수사를 전담하는 ‘검찰 부패범죄특별수사단’을 꾸리고 6월 첫 수사를 시작했는데, 대상이 대우조선해양이었습니다. 최대 경제현안인 해운업 부실경영을 파헤친다는 의미도 있었지만, 대우조선해양 비리 문제가 이명박 정권의 핵심인사들과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이전 정권을 흔드는 수사라는 평을 받았습니다. 박근혜 정부로서는 ‘이명박 정권 사정수사’는 일석삼조의 효과입니다. 정권 말기 레임덕에 맞서 기업들을 다잡고, 부패 수사라는 점에서 여론의 지지도 얻으며, 차기 대선을 앞두고 당내 친박계의 결집을 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대우조선해양을 수사하던 검찰이 8월22일 갑자기 박수환(58) 뉴스커뮤니케이션스 대표를 불러서 조사하겠다고 언론에 공표합니다. 대우조선해양의 홍보대행사였던 뉴스컴의 박 대표가, 정·재계와 ‘유력일간지 고위간부들’과의 친분을 바탕으로 ‘대우조선해양 사장 연임로비’를 했다는 의혹이었습니다. 예상하시다시피, 유력일간지란 바로 조선일보였습니다. (▶관련기사 보기) 기업 사장의 치부를 감싸준 ‘부패언론’이라는 프레임이 잡히면서 조선일보는 주춤합니다. 18일 보도를 마지막으로 미르재단·K스포츠 재단에 대한 TV조선의 후속보도는 끊깁니다.
결정타는 여당이 날렸습니다. 26일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은 “유력 언론인이 2011년 대우조선으로부터 골프 접대를 받았다”며 공세를 펼친 데 이어, 대체 ‘유력언론인이 누구냐’는 의혹이 치솟았던 29일 “조선일보의 송희영 주필이 호화요트 접대를 받았다”고 실명을 공개해 쐐기를 박았습니다. (▶관련기사 보기)
같은 날 검찰은 이석수 특별감찰관과 조선일보 기자의 휴대전화를 압수수색하였습니다. 이날 이 특감은 청와대에 사표를 냈습니다. 조선일보는 송희영 주필의 사표를 수리했습니다. 이후 조선일보는 ‘쌍둥이 재단’ 보도에 침묵했습니다. 청와대의 완승이었습니다.
■ ‘청와대 왜 저럴까’ 할 때마다 등장하는 ‘비선실세’
여기까지만 봐서는 청와대가 조선일보와의 정면 대결을 불사할 정도로 우 수석을 감싸고 도는 것 같습니다. 비리가 공공연하게 드러난 인물을 민정수석으로 유지하는 것은 여러가지 의구심을 샀습니다. 각종 검증을 맡고 있는 우 수석이 박근혜 정권의 ‘약점’을 잡고 있는 게 아니냐는 추측이 돈 것도 이 때문입니다. 청와대의 ‘약점’이라는 것이 ‘쌍둥이 재단’과 관련한 ‘비선’의 존재라는 ‘카더라’도 돌았습니다.
박근혜 정부에서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일들이 벌어질 때, 사람들은 늘 ‘비선 실세’를 의심했습니다. 재단 설립을 빙자해 전경련과 문체부까지 휘두를 수 있는 이 또한 비선실세가 아니겠느냐는 추측이 정·재계를 중심으로 떠돌고 있었습니다. 바로 박 대통령과 절친한 사이로 알려진 최순실씨를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두 재단 문제는 국내에선 TV조선 외엔 보도하는 곳이 거의 없다시피 했습니다. 오히려 외국에 적을 둔 언론인 <선데이저널USA>가 8월18일 “청와대 내부에서 파다하게 퍼지고 있는 소문이 최순실 배후설”이라며 “구체적 증거는 드러난 것이 없지만 정황상 설득력 있게 들린다”고 보도(사진)했습니다. 그럼에도 재단의 배경을 차츰 깊이 더듬어가고 있던 조선일보가 이즈음 후속보도를 중단하면서, 이 두 재단에 대한 국내 보도는 잠잠해졌습니다.
■ ‘최순실’ 배후설 확인한 한겨레의 특종 릴레이
그대로 수그러들 법 했던 두 재단 문제를 ‘메가톤급 이슈’로 부활시킨 것이 바로 <한겨레>입니다. 한겨레 특별취재팀은 9월20일, K스포츠의 이사장을 실제로 임명한 사람이 박 대통령의 측근인 최순실씨라는 청와대 관계자의 증언과, 실제로 최씨가 재단 인사에 관여한 정황을 확보해 대대적으로 보도했습니다.
<한겨레>는 최씨가 체육계의 지인들에게 K스포츠재단의 기획 취지를 설명하며 재단이사장직 등을 제안하고 다녔다는 다수의 증언을 확보했습니다. (▶관련기사 : [단독] 최순실 오랜 지인 “내게 이사장직 제안했지만 거절” … K스포츠 재단이사장 누가 앉혔나 / [단독] 최순실, K스포츠 설립 수개월 전 기획단계부터 주도)
수백억 재단 출연금을 운영하는 K스포츠 재단의 정동춘 이사장은 체육계에서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어서 의구심을 샀었습니다. 이 역시 <한겨레> 취재 결과, 최순실씨가 다니는 스포츠마사지센터의 원장으로 인연을 맺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최씨가 지난해까지 살았던 신사동 집과 이 마사지센터가 불과 50미터 거리에 있다고 하니, ‘동네 사람’을 중책에 앉힌 셈입니다. (▶관련기사 : [단독] K스포츠 이사장은 최순실 단골 마사지 센터장)
특별취재팀은 “신생 재단이 기업 돈을 끌어모으고 대통령 순방에 따라다닐 정도면 정권의 입김이 있었을 것이고, 그 배후를 의혹 수준 이상에서 취재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취재 착수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한겨레는 정·재계와 스포츠계까지 다방면의 취재를 한 달 넘게 진행했고 최종 확인을 거친 뒤 9월20일 첫 보도를 내보낼 수 있었습니다.
‘최순실’이라는 이름은 지금까지 불거졌던 모든 의혹을 맞추는 마지막 퍼즐과도 같았습니다. 기업들이 두 재단에 800억여원에 달하는 돈을 몰아주고, 문체부가 다섯시간 만에 설립 허가를 내줬으며, 전경련이 “자체적으로 기획”했다는 재단에 전경련 출신 이사가 하나도 없는 점 등의 수수께끼가 풀립니다. 한류문화재단인 미르와 흡사한 순서로 설립된 두 번째 재단이 ‘스포츠’ 재단인 것도, 승마선수인 딸의 영향으로 스포츠에 관심이 많은 최씨와 부합합니다.
■ 메가톤급 후폭풍 … 최순실은 누구인가
최순실은 어떤 인물이기에, 박 대통령의 ‘측근 실세’로 꼽는 데 아무도 주저하지 않는 것일까요?
최씨는 최태민 목사의 다섯째 딸입니다. 최태민 목사는 70년대 ‘새마음봉사단’을, 80년대엔 ‘육영재단’을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 운영하며 ‘멘토’ 노릇을 했던 인물입니다. (▶관련기사 : 이름 7개, 부인 6명, 승려 목사 ‘최태민 미스터리’) 최씨는 이때부터 박 대통령을 ‘언니’라고 부를 정도로 친분을 쌓았고, 10·26 뒤 모두가 권력을 잃은 박 대통령 곁을 떠났을 때도 옆을 지키면서 40년간 고락을 함께 했습니다. 1998년 박 대통령이 정계에 등장했을 때 보좌관이 바로 최씨의 전 남편인 정윤회씨입니다. 박 대통령의 보좌진인 ‘문고리 3인방’이 구성된 것도 이 때입니다.
문제는 최순실씨가 아무 직위도 없는 ‘시스템 밖’의 인물이라는 점입니다. 공직에 오른 인사가 아니므로 청문회를 거칠 필요도 없습니다. 대통령에게 영향을 끼치고자 하는 인물들이 로비를 펼쳐도 국민들이 알 도리가 없습니다. ‘깜깜 인사’ ‘밀실 청탁’이 만들어지기 쉽습니다.
지금까지 이런 ‘약한 고리’는 대개 대통령의 친인척이었습니다. 김영삼 대통령 때는 차남 김현철씨가 ‘황태자’로 거론됐고, 노무현·이명박 대통령 때는 대통령의 형들이 구설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미혼에다가 동생들과도 1980년대 육영재단 운영권 다툼을 벌이며 사이가 멀어진 박 대통령에게는 최씨가 혈육이나 다름없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얼마나 사이가 친밀하냐구요? 최순실·정윤회 부부의 딸인 승마선수 정아무개씨가 국가대표 선발을 결정짓는 승마대회에서 2위로 밀려난 일이 있었습니다. 이후 승마협회는 문체부의 감사를 받았습니다. 감사 결과가 입맛에 맞지 않았던 탓일까요? 박 대통령은 문체부 장관을 불러 해당 감사를 진행한 문체부 과장과 국장의 이름까지 ‘콕’ 찍어 경질 압박을 가한 사실(▶관련 기사 : [단독] 박 대통령 수첩 보면서 “문체부 국·과장 나쁜 사람이라더라”)이 한겨레 취재 결과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최순실씨의 이름이 공론화되며, 야당의 공세도 거셉니다.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일 국회 대정부질문을 통해 “(변호사로 활동 중이던) 우병우 민정수석의 민정비서관 발탁과 윤전추 행정관의 청와대 입성도 최씨와의 인연이 작용했다는 얘기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윤전추 행정관은 유명 연예인과 재계 인사들의 헬스 트레이너로 활동하다 2013년 3급 행정관으로 청와대 제2부속실에 채용됐는데, 개인 트레이너를 공무원으로 채용했다는 비판 여론이 있었습니다. 한 마디로 청와대 인사에 ‘최순실의 입김’이 작용한다는 이야깁니다.
최씨와 친분이 있는 ‘사람들’로 두 재단이 채워졌다는 정황은 추가로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미르재단 이사인 김영석씨는 박 대통령이 취임식 당시 입었던 한복의 디자이너인데, 이 주문을 넣은 것이 최씨였다고 합니다. 미르재단의 실권을 쥔 인물로 알려진 차은택 문화창조융합본부장도 최씨와 막역한 사이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사실상 두 재단 설립 배후에 최씨가 있었다는 설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두 재단은 창립 초기엔 그럭저럭 이름이 있는 인물들로 이사진을 채웠다가, 나중에 입맛에 맞는 사람들로 물갈이를 하면서 내홍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관련기사 : 1년도 안된 미르재단, 이사 3명 교체…그 안에선 무슨 일이)
■ 대통령의 분노 … “나요” 뒤늦게 손든 전경련
9월22일 박 대통령은 그간의 무대응 원칙을 깨고, 정면 돌파에 나섰습니다. 그동안 청와대는 한겨레 보도를 “언급할 가치가 없다”며 무시해 왔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22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 기조연설
직접적으로 재단 이름을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두 재단 논란과 최순실씨의 비선실세 의혹을 두고 ‘비방’이라는 입장을 확실히 했습니다. 청와대 관계자는 “최근 논란을 대통령이 청와대를 흔들려는 공세로 보고 있고 분노가 상당하다”고 전하기도 했습니다. (▶관련기사 보기)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자, 전경련이 황급히 수습에 나섰습니다. 9월23일 이승철 전경련 상근부회장은 언론과의 통화에서 “두 재단은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설립한 것”이며 안종범 청와대 수석과도 관계가 없다고 부인했습니다.
“안종범 청와대 수석에게는 두 재단의 출연 규모나 방법 등이 거의 결정됐을 시점에 알렸다. 안 수석은 ‘좋은 아이디어다. 열심히 해 달라’며 격려를 했을뿐 사전 지시는 받은 바 없다.”
“사회적 필요성이 공감되고 논의 과정만 마무리되면 모금에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천안함 성금은 사흘 만에 170억이 모였고 1000억이 넘는 세월호 성금도 짧은 기간에 모금됐다.”
하지만 천안함 성금이나 세월호 성금이 당시 가슴 아픈 비극으로 언론의 관심과 전국민적인 성원이 함께했던 것과 견줘, 대다수 국민들은 있는 줄도 몰랐던 ‘미르재단’ ‘K스포츠재단’을 같은 선상에 놓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또 애초에 미르재단 등이 입길에 오르기 시작한 것도, 두 차례나 거금을 내야 했던 기업들의 ‘볼멘 소리’에서 기인했다는 사실도 간과하는 것입니다. 현재 개별 기업들은 ‘입이 있어도 할 말이 없다’는 자세로 입을 닫은 상태입니다.
■ 국무총리 “유언비어 엄단”
전경련이 부랴부랴 진화에 나선 23일, 황교안 국무총리도 “의혹은 누구든 이야기할 수 있지만 의혹제기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유언비어, 불법에 해당하는 것은 의법조치도 가능한 게 아니냐”며 압박을 가합니다.
이날 저녁, 박 대통령은 이석수 특감의 사표를 전격 수리합니다. 이 특감은 8월29일 사표를 냈는데, 당시만 해도 ‘(특감의 내사정보 유출에 대해) 검찰 조사를 해본 뒤에 사표를 수리하겠다’고 버티던 청와대가 한 달이 다 지나 갑자기 사표를 수리한 까닭은 뭘까요? 9월3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국정감사에 이 특감을 피감기관증인 자격으로 불러 안종범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을 내사한 내용을 캐물을 예정이기 때문입니다. 이 특감의 사표가 수리된 뒤 민간인 신분으로 증인에 채택하려면 여야 합의를 거쳐야 하니, 사실상 국감장에 부르기 어려워지는 점을 노린 ‘꼼수’입니다. 사표 수리를 사람들이 비교적 뉴스를 많이 보지 않는 금요일에 했다는 점도 뉴스의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처로 보입니다. (▶관련 기사 : 이석수 특감 사표 전격 수리…국감 증언 막기 ‘꼼수’)
■ 최순실 넘어선 ‘창조경제 게이트’
일련의 보도가 지목하는 것이 최순실씨 일개 개인의 비리가 아니라는 점에서 문제는 향후 거대한 ‘권력형 비리 게이트’로 비화할 수 있습니다. ‘최순실’로 대표되는 ‘권력형 비리’는 바로 청와대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한겨레>가 확보한 두 재단의 법인 등기와 이사록을 보면,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이 모은 774억원의 출연금 가운데 80%가 별도의 관리감독 없이 지출할 수 있는 ‘운영재산’이었습니다. 즉 620억원이 재단 운영자의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이라는 얘깁니다.
제2의 ‘일해재단’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그래서입니다. 과거 전두환 정부는 아웅산테러 희생자 유족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겠다며 ‘일해재단’을 만들었습니다. 대통령 퇴임 이후를 대비한 ‘전두환 비자금’ 조성 목적이었습니다. 기업들에게서 무려 600억여원에 달하는 돈을 받았는데, 대표적인 5공 비리로 역사에 남았습니다.
“비선”이라는 자극적인 키워드로 최순실씨가 주목받고 있지만, 앞으로는 안종범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역할을 따져보는 것이 관건이 될 것입니다. 청와대가 기업 ‘강제 모금’에 개입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정권 말기를 뒤흔드는 권력형 비리 추문으로 거듭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권 내내 ‘창조경제’를 부르짖었고, 대통령의 창조경제에 화답하겠다며 탄생한 재단이 실은 기업들로부터 비자금을 받는 수단이 될 수 있다니요. “독재 시절의 부정부패를 떠올리게 한다”는 비판이 거셉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번 사건을 ‘최순실 게이트’가 아닌 ‘창조경제 게이트’라고 불러야 한다고도 말합니다.
정유경 기자 edg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