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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일 국회 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공공부문 성과연봉제의 문제점과 노동조합의 대응방향 국제토론회에서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이 발제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
정부가 공공부문 개혁의 금과옥조로 여기는 공공부문 성과연봉제가 국제적으로는 이미 효용성을 다해 축소·수정·폐기 수순을 밟고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한국보다 먼저 공공부문에 성과연봉제를 도입했던 선진국들에서는 공공기관은 물론 민간기업에서조차 성과연봉제가 퇴출되는 추세라는 지적이다.
17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공공부문 성과연봉제의 문제점과 노동조합의 대응방향 국제토론회'에서 매리 로버트슨 국제공공노련 연구소(PSIRU) 객원연구원은 "성과연봉제에 대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경험에서 얻은 한 가지 결론은 어떤 나라에서도 이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국제공공노련은 각국 공공부문 노조들이 모인 국제조직이다. 세계 148개국 650개 노조 2천만명이 가입해 있다. 이날 토론회는 국제공공노련 한국가맹조직협의회(PSI-KC)에 속한 공공노련·공공운수노조·보건의료노조·공무원노조·전교조·소방발전협의회와 추미애·김현미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공동으로 주최했다. 양대 노총이 주관했다.
◇"성과연봉제 도입국은 많은데 성과는 없어"=매리 로버트슨 연구원에 따르면 성과연봉제는 1980년 민간부문에서 시작해 공공부문으로 확대됐다. 현재 OECD 국가 중에서 3분의 2가 공공부문에 성과연봉제를 적용하고 있다.
로버트슨 연구원은 "고용주들이 능력 있는 직원을 고용하는 데 있어 성과연봉제가 도움이 됐다는 사례는 일부 있지만, 이로 인해 직원들이 더 열심히 일을 해서 조직의 성과를 개선했다는 증거는 없다"며 "성과연봉제가 현장에서 별로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성과연봉제가 (여러 나라에서) 계속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매우 이상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 세계에서 공공부문 성과연봉제 적용이 지속적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기는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공공부문에 대한 성과연봉제 적용의 효과성이나 지속가능성에 대해 의문을 던지는 이론적이고 실증적 연구가 많이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로버트슨 연구원은 한국 정부를 비롯한 각국 정부가 "동기부여가 되고 효율성이 높아진다"는 명목으로 공공부문에 성과연봉제를 도입하고 있는 것에 대해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성과연봉제가 노동자들의 노력을 독려함에도 성과 향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증거를 내놓았다. 그는 "2012년 국제노동기구(ILO)가 영국 교육 분야 성과연봉제를 연구했더니 '학생의 학습성과에 기반한 성과급이 교사의 의욕과 협동 및 팀워크에 부정적으로 영향을 끼쳤으며, 개인주의적 성향과 태도를 부추겼다'는 결과가 나왔다"며 "미국에서는 학생들의 성적과 교사들의 성과평가를 연계시키자 교사가 성적이 낮은 학생을 배제시키고, 학생들의 시험성적을 올리기 위해 시험 당일 학생들에게 고칼로리 음식과 음료를 먹이는 일까지 생겼다"고 전했다.
로버트슨 연구원은 이어 "영국에서는 버스 운전자들에게 성과연봉제를 도입해 정해진 운행시간을 지키는지를 평가하면서부터 정류장마다 버스를 제대로 세우지 않고 운행시간 맞추는 데 급급해 공공서비스 질을 떨어뜨렸다"며 "병원에서도 의사들이 얼마나 수술대기시간을 줄이느냐가 성과평가와 연계되면서 환자에게 적합한 수술보다는 단지 수술대기시간을 줄이기 위한 수술이 제공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공공부문 성과주의 임금체계의 문제점이 속출하면서 각 나라들이 제도를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OECD 국가들도 성과주의 임금체계를 개인이 아닌 팀 중심 평가로 변경하고 있고, 기존 성과평가지표가 부정확하다는 점을 인정해 다양한 평가지표를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로버트슨 연구원은 "원래 성과주의 임금체계는 공공부문보다 민간부문에 더 적합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심지어 민간기업에서도 성과연봉제를 퇴출시키고 있다"며 "포춘(Fortune) 500대 기업의 6%가 성과연봉제를 폐기했고, 성과연봉제의 최대 지지기업 중 하나였던 마이크로소프트사와 휴렛 팩커드(HP)에서도 협치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성과연봉제를 포기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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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훈 기자 |
◇"한국 정부 안대로 성과연봉제 도입되는 것은 막아야"=세계적인 추세 속에서 한국 정부가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성과연봉제 광풍은 이해하기 힘든 일이라는 게 그의 시각이다. 심지어 "한국은 가장 악랄한 형태로 성과연봉제를 도입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부가 올해 1월28일 발표한 '공공부문 성과연봉제 권고안'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권고안은 간부직 성과연봉제를 비간부직까지 확대하고, 고성과자와 저성과자의 기본연봉을 평균 3%까지 차등적으로 지급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로버트슨 연구원은 이와 관련해 "일정 비율 노동자를 무조건 저성과자로 분류해 퇴출제도와 연계시키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이런 시스템은 직업안정성을 약화시킬 뿐 아니라 노동자가 관리자의 변덕에 휘둘리게 만들고 노동자에게 스트레스를 줘서 성과개선에 비효율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에 따라 "결론적으로 한국 정부가 내놓은 권고안대로 시행되는 것만은 막아 내야 한다"며 "평가에 투명성을 기하든, 개별평가가 아닌 팀별평가로 하든, 강제할당을 저지하든 간에 중요한 것은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회 공공부문특위서 임금체계·낙하산 문제 다루자"=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장은 공공부문 노동계가 성과주의 담론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주문했다. 언뜻 보면 성과를 평가해 임금을 책정한다는 프레임이 합리적이고 효과적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공공기관 개혁=성과연봉제'라는 포장을 벗겨 내고, 공공기관 낙하산 문제 근절방안과 지배구조 개혁, 좋은 일자리 창출이라는 담론을 형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 소장은 "지난 3년 동안 공공부문노조의 투쟁은 수세적이고 방어적 대응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며 "노동시장 유연화 공세에 맞서기 위해 공공성·연대 프레임을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공공기관 임금체계가 비정상적인 것은 노동자들의 임금수준이 높아서가 아니라 공공기관 간에도 힘의 우위에 따라 종사자들의 임금이 턱없이 차이가 난다는 점에 있다"며 "국회에 공공부문특별위원회를 만들어 임금체계와 낙하산 인사·지배구조 문제를 논의하고 새로운 비전을 만들자"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