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의 추억

                                                                                          내란의 추억

 

2013.8.30. 경향신문

 

 

 

1965년 11월20일 어마어마한 사건이 일간지에 대서특필됐다.

 ‘5단계 폭력혁명 모의’ ‘폭발물 100여 제조, 북한산성서 실험’ 등 제목도 섬뜩했다.

 ‘한독당 내란음모 사건’이다.

한독당은 그해 11·9 보궐선거를 앞두고 급조돼 서울 용산구에서 김두한 후보가 유일하게 당선된 원내 1석 정당이었다. 여기에는 박상원·이영일 등 4·19세대가 결합돼 있었다. 이들은 5단계 혁명이론에 따라 학생 시위에 편승해 정부 전복을 음모했고 이를 뒷받침할 폭발물 제조 등 구체적인 모의를 했다는 게 수사당국의 발표 내용이었다.

내란은 형법 제87조가 규정하듯이 국토를 참절(僭竊)하거나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키는 것을 일컫는다. 국토 참절이란 ‘국가 영토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점거하여 그 국가의 주권 행사를 사실상 배제하고 국가의 존립, 안전을 침해하는 일’(국립국어원)이고, 국헌 문란은 ‘헌법 또는 법률에 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 헌법 또는 법률의 기능을 소멸시키거나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을 강압에 의하여 전복 또는 그 권능 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형법 제91조)이다.

영토를 점거하고 헌법 기능을 정지시킬 정도의 엄청난 일은 명확한 목적, 구체적 계획, 실행 능력이라는 3박자를 모두 갖춰야 가능하다(이호중 서강대 교수).

그 어느 것 하나 변변하지 못했던 한독당 사건은 코미디로 흐를 수밖에 없었다.

이를테면 이영일 피고인은 국헌 문란과 국토 참절에 대한 검찰의 논고를 다음과 같이 반박했다.

 “나는 4·19혁명에 앞장섰기 때문에 국헌을 문란케 한 게 아니라 수호했고, 저기 계시는 김두한·박치덕·김상진 선생처럼 광산업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국토를 참절한 적도 없으며….” 이때 피고석에 있던 김두한 의원이 벌컥 소리쳤다. “아니, 이영일 동지! 그럼 내가 국토를 참절했다는 말이오?” 순간 법정이 ‘빵’ 터졌다. 방청객은 물론 판사도 검사도 웃지 않을 수 없었다.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 수사를 계기로 ‘내란의 추억’을 떠올려 보았다.
적법한 정부가 강압에 의해 실제로 전복된 때가 언제였던가.
참고로 한독당 사건은 기소된 10명 전원이 무죄 판결을 받았고, 그 가운데 한 명은 경찰이 심은 프락치로 드러났으며, 무죄 확정에 따른 형사보상금은 김모씨가 일괄수령해 잠적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신동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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