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사내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지난 3일 KT 인사에서 MB낙하산으로 지목된 인사들과 이석채의 사람들이 요직을 차지하고 정통 KT 출신들이 내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권력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던 KT가 대선을 보름 앞둔 시점에 대규모 승진 인사를 단행한 점도 사람들의 입길에 오르내리고 있다.
먼저 MBC 앵커 출신으로 청와대 대변인을 지낸 뒤 KT에 합류해 GMC전략실 실장을 맡아왔던 김은혜 전무가 커뮤니케이션 실장으로 옮겨 간 게 눈에 띈다.
김은혜 실장은 이명박 정부 들어 KT 낙하산 인사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2년 전인 2010년 12월 처음 부임했을 때부터 자질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김 실장을 위해 그룹 콘텐츠 전략담당이라는 자리를 신설한 것도 이례적이었지만 전무 자리가 대졸 사원이 최소 20년 이상 일해야 올라갈 수 있는 자리기 때문이었다. 김 실장의 인사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던 KT 직원이 보복 인사 조치를 당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김 실장이 대외홍보업무를 총괄하는 커뮤니케이션 실장자리를 차지한 것을 두고, 언론계에서는 김 실장이 친정인 MBC 보도국 내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어 KT의 홍보업무를 얼마나 잘 할 수 있을 지 의문이라는 평가도 있다.
김은혜 KT 전무
무엇보다도 김홍진 글로벌&엔터테인먼트(G&E) 부문 사장이 눈길을 끈다. 김 사장은 브리티시텔레콤 글로벌서비스코리아 대표로 재직하던 도중 2010년 9월 KT에 합류해 부사장으로 재직해 왔다. KT 의 한 관계자는 "김 본부장은 사장 대행 시절, 다른 기업에 전직하려다가 뜻대로 되지 않아 이석채 회장으로부터 상당한 질책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이런 사람이 사장이 된 것을 두고, 사내에서는 어떤 큰 배경이 있길래 승진했는지 모두들 의아해 하고 있다"고 말했다.
G&E 부문 운영총괄과 시스템 사업본부 본부장을 겸임하게 된 임수경 전무의 인사도 파격적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국세청 출신의 임 전무는 2009년 국세청 최초의 여성 국장으로 승진해 주목을 받다가 올해 2월 KT로 옮겨와 1년도 안 돼 중책을 맡게 됐다.
신사업본부 본부장에 부임한 오세현 코퍼레이트센터(이하 CC) 신사업전략담당 상무는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동생이다. 오 전무는 IBM 유비쿼터스 컴퓨팅 연구소 상무에서 일하다 지난해 1월 KT 상무로 자리를 옮긴지 1년 만에 승진했다. 오 본부장에 대해서도 KT의 또다른 관계자는 "CC에 있으면서 별 실적이 없었다는 게 일반적인 사내 평가"라며 " 오 시장의 동생이라는 점 말고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인사"라고 평가했다.
자회사 인사도 튄다. 부동산 운영 전문 자회사 KT에스테이트 대표이사에 이창배 전 롯데건설 사장이 부임했다. 신설된 미디어콘텐츠 자회사 KT미디어허브 초대 대표이사에는 김주성 미디어콘텐츠(M&C)부문 부문장이 선임됐다. 위성사업 전문 자회사 KT샛 초대 대표이사에는 김일영 코퍼레이트센터 센터장이 선임됐다. KT는 “전문성과 역량을 갖춘 신임 대표이사를 주축으로 부동산, 콘텐츠, 위성사업 강화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라고 발표했지만 KT 안팎에서는 이석채의 사람들 자리 만들기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KT는 시너지경영실을 신설하고 출자경영 담당에 김성만 부사장과 전인성 부사장, 또한 홍보실에서 오랜 경력을 쌓아온 이길주 전무를 부사장으로 승진 발령했다.
서유열 KT 홈고객 부문 사장은 부회장 승진을 통보 받았으나 고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 사장은 이석채 회장의 오른팔이자 KT내부의 범 영포라인 핵심실세로 통한다. 서 사장은 2010년 7월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의 부탁을 받고 KT 대리점 사장의 자녀 명의로 대포폰을 만들어 최종석 전 청와대 행정관을 통해 장진수 전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에게 건넨 혐의를 받은 바 있다. 서 사장은 지난 10월 국회 국정감사 출석 요청에도 응하지 않았다.
이석채 KT 회장
이치열 기자 truth710@
낙하산 인사들이 잇따라 자회사로 치고 내려오면서 자회사 임원들의 대규모 물갈이도 예상된다. 수십 년을 일했던 정통 KT 인사들을 배제하고 이석채의 사람들이 초고속 승진을 거듭하면서 내부적으로 불만이 쌓여가는 상황이다.
유무선 통신이 이미 포화상태에 이른 상황에서 미디어 등 외연을 확장하는 이석채 회장의 전략에 긍정적인 평가도 있지만 KT 내부에서는 "통신을 잘 모르는 외부 인사들이 무분별한 사업 다각화를 벌이면서 KT의 성장 잠재력이 크게 훼손됐다"는 불만이 팽배한 상황이다. 미디어 부문에서 주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LTE 부문에서 만년 3위였던 LGU+에 뒤쳐지는 등 경쟁력이 크게 약화됐다는 평가도 많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캠프 김혁 부대변인은 “신용섭 전 방통위 상임위원의 한국교육방송 사장 선임, 김은혜 전 청와대 대변인의 KT 홍보실장 임명 등은 정권 말기 핵심 측근 인사에 대한 밥줄 챙기기의 대표적 사례”라고 비판했다. 청와대는 최근 건설공제회 이사장에 이진규 청와대 정무1비서관을 내정했다가 노동조합과 이사회 등의 반발로 무산되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KT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이석채 회장이 보은 인사를 남발하는 건 정권이 바뀌더라도 확실한 자기 사람을 미리 심어두고 장기 집권 체제로 가기 위한 포석”이라고 비판했다. 이 관계자는 “이석채 회장이 부임하지 마자 전임 사장을 몰아내고 자기 사람 심기에 나섰던 것처럼 이번 인사는 정권의 변화가 있기 전에 영포 라인을 중심으로 확실한 친정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KT는 임원 인사 관련 뒷말이 나도는 데 대해 매우 부담스러워하는 눈치다. 전자신문을 비롯한 일부 경제지들까지 이번 인사에 대해 부정적인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KT 홍보실 관계자는 “김홍진 사장이 다른 기업에 전직을 하려다 실패한 적 있다는 이야기는 전혀 사실 무근”이라며 “이번 인사는 내년 초 정기 인사를 앞두고 일부 조직 개선 차원으로 이해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김은혜 실장에 대해서도 “MBC를 떠난지 오래됐기 때문에 MBC 내부의 평가가 홍보 업무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