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문건 입수, 수백억 적자 예상됐지만 강행… KT “구속된 실무자 보고 근거로 사업 진행, 사업 전망 틀렸다”
박장준 기자 | weshe@mediatoday.co.kr
KT가 지하철 5~8호선 스크린도어 광고사업을 추진하면서 수백억 원의 적자를 예상하고도 이석채 회장 지시에 따라 이 사업을 강행하고, 당초 5억 원만 투자한 특수목적법인을 계열사로 편입한 사실이 확인됐다.
‘적자 투자’를 한 셈으로 배임 의혹이 제기된다. 특히 이 회장이 취임 초기 사내 경영설명회에 사업파트너를 초청해 임직원들에게 소개한 뒤 사업이 급격하게 진행돼 그 배경이 주목된다.
2008년 KT는 광고대행사 ㈜퍼프컴, 포스데이터 등과 함께 컨소시엄을 구성해 이듬해 지하철 5~8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도시철도공사로부터 148개 역사 및 본사 광고사업권을 따냈다. 계약금만 1404억 원에 이르는 대규모 사업이다. 2010년 3월 당시 KT는 이 사업 매출을 10년 동안 6118억 원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KT는 이후 이 사업 매출전망을 두 차례 이상 하향 조정했다. 30일 미디어오늘이 입수한 KT 내부문건 ‘SMRT Mall 사업 지분출자 및 경영정상화 방안’, ‘SMRT Mall사업 업무추진 및 관리운영 검토’에 따르면 KT는 하향 조정의 이유로 광고시장 성장률, 계약내용 변경 등을 들었다.
2010년 3월 금융약정 당시 설정한 ‘10년 간 매출전망’ 6118억 원은 같은 해 11월 4351억 원이 됐고, 2011년 3930억 원이 됐다. 매출액 3930억 원 기준으로 10년 동안 KT는 1595억 원을 투자해야 한다. 현재 KT는 이중 절반 이상을 투자한 상황으로 알려졌다.
문건에 따르면, 매출전망 기준 4351억 원 중 KT 매출액은 1429억 원. 이때 잉여현금흐름(Free Cash Flow)은 (-)75억 원으로 계산됐다. FCF는 세금 등 각종 비용을 제외하고 남은 현금 흐름으로 업계에서는 사실상 이익으로 생각하는 개념이다. 또한 KT는 이 사업의 예상수익규모를 추정할 수 있는 순현재가치(Net Present Value)를 (?)165억 원으로 평가했다.
▲ 미디어오늘이 입수한 KT 내부 문건. 'SMRT Mall사업 지분출자 및 경영정상화 방안' 중 갈무리.
문제는 KT 내부에서도 독소조항으로 평가된 공동 연대책임 및 금융약정 상의 의무가 CEO 보고 뒤에도 유지되면서 오히려 투자가 늘었다는 점이다. 2010년 11월 적자 전망을 보고 받은 뒤 이석채 회장의 지시사항은 “지배구조 개선”이었다. SPC(㈜스마트채널) 내 KT 지분을 늘려 실질적 경영권을 행사하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당시 출자경영담당자의 생각은 달랐다. 문건에 따르면, 이 담당자는 KT가 퍼프컴의 보유지분을 매입해 대주주가 될 경우 “대표이사 선임 및 실질적 경영권은 확보 가능하나 계열사 편입 문제가 발생(한다)”고 밝혔다. 적자폭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스마트채널에 더 투자를 하는 것은 그룹 차원의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 그러나 KT는 2011년 7월 65억 원을 추가로 투자해 스마트채널을 계열사로 편입했다.
CEO 보고 뒤 사업 전망은 더 부정적으로 기울었다. 2011년 4월 KT는 매출을 3930억 원으로 다시 조정하면서 NPV를 (-)375억 원으로 내다봤다. KT는 2010년 이석채 회장 보고문건에서 ‘2011년 준공 후 해지시’ 손실규모를 351억 원으로 추정했다. 사업을 계속 추진할 경우 165억 원을 손해 볼 것이라고 했다. KT는 이 회장의 ‘지배구조 개선’ 지시 이후에도 ‘사업 해지시’ 손실규모를 종전보다 200억 원 가량 늘어난 542억 원으로 계산했다. 이 손실규모 증가분 191억 원은 당초 ‘계속 추진시’ 예상 적자 165억 원보다 많다.
스마트채널의 외부감사를 맡은 지성회계법인은 2012년 감사보고서에서 스마트채널의 2011년 재무제표 등을 검토하면서 △2011년 순손실 93억 7600만 원 발생했고 △2011년 당기말 현재 유동부채가 유동자산을 375억 3100만 원 초과하며 △총부채가 총자산보다 69억 2300만 원 초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성회계법인은 “이러한 상황은 회사의 계속기업으로서의 존속능력에 유의적 의문을 불러 일으킬 만한 중요한 불확실성이 존재함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KT는 적자폭을 줄이기 위한 방안으로 그룹 차원에서 245억 원 가량의 광고를 지원할 필요성까지 제기했다. 실제 KT는 5호선 광화문역사에서 이 같은 방안을 시행했다. 이밖에도 KT는 △광고 판매망 구축 및 광고매체 간 제휴 추진 △대형 광고주 및 대행사 대상 Bulk형 상품개발 판매 △브랜드스테이션 및 지역광고 모델 등 ‘광고매출 Make Up 전략 실행’ 방안을 검토했다. 여기에 관리운영사업 효율화를 더한 결과 KT는 보고서에서 총 매출 4756억 원, KT 매출액 1820억 원, NPV (-)118억 원으로 계산했다.
▲ 미디어오늘이 입수한 KT 내부 문건. 'SMRT Mall사업 지분출자 및 경영정상화 방안' 중 갈무리.
이석채 회장의 지배구조 개선 지시는 비합리적인 경영행위, 배임으로 풀이할 수 있는 대목이다. 서울도시철도공사 관계자는 “스마트폰 활성화 등 지하철 광고 사업 전망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KT 홍보실 관계자도 “광고 전망이 틀린 것 같다”고 털어놨다. KT 사정에 밝은 관계자는 옥외광고에 대한 부정적 전망 등 전체적인 광고시장 전망을 고려했다면 2010년 계약을 해지한 것이 합리적인 경영행위라며 “적자가 예상되는 회사에 수십 억 원을 더 투자해 계열사로 편입한 것은 이석채 회장의 배임으로 볼 수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이 회장은 취임 석 달 뒤인 2009년 4월 사업파트너라고 할 수 있는 음성직 당시 서울도시철도공사 사장을 경기도 분당 본사에서 연 경영설명회에 초대했다. 다음 달 스마트채널이 설립됐다. 이후 컨소시엄에 참여한 다른 회사들이 탈퇴를 결정하거나 경영난에 빠져 대표이사가 사임하는 경우까지 있었다. 2010년 3월에는 ‘자금보충의 연대책임 의무’가 포함된 금융약정이 체결됐다. 특수목적법인에 출자한 다른 법인이 자본금이나 증자를 하지 못할 경우, KT가 이를 공동으로 부담한다는 내용으로 KT는 이를 독소조항이라고 평가했다. KT 내 이 사업 실무자는 같은 해 9월 하도급 비리 건으로 구속됐다.
이석채 회장과 음성직 전 사장의 모두 MB 정권의 수혜자라는 점에서 사업이 강행된 배경에 의혹이 제기된다. ‘MB 최측근’ 음성직 전 사장은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 재직 당시 2005년 서울시 교통국장에서 도시철도공사 사장직에 올랐다. 이석채 회장은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KT 회장이 됐다. 당시 ‘낙하산’ 논란이 제기된 바 있다. KT 홍보실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서울도시철도공사는 KT 휴대전화를 대량으로 구입해 ‘스마트 오피스’를 추진하는 등 “KT와 우호적인 관계”였다.
2010년 8월 참여연대는 음성직 당시 사장을 이 사업과 관련 비리, 배임 혐의 등으로 검찰에 고발했다. 음 전 사장은 당시 무혐의 처분을 받았으나, 그해 말 감사원은 검찰에 재수사를 의뢰했다. 음 전 사장은 2011년 2월 공사 측에 사표를 제출했고, 현재 음 전 사장은 뇌물수수 혐의 등으로 재판을 받고 있다.
이석채 KT 회장
KT는 사업 실패를 인정하면서도 이석채 회장 배임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김철기 언론홍보팀장은 “사업 과정에서 뇌물을 받아 구속된 직원의 보고를 근거로 추진된 사업”이라며 “이석채 회장이 사인을 했지만 경영상 배임을 거론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말했다. 김 팀장은 “예상 매출이 줄고, 손실 규모가 커진 것은 계약내용 때문”이라면서도 “KT가 다각화한 모든 사업에서 수익률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고 여러 시도를 하는 과정에서 생긴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계약관계 대문에 그만 둘 경우 손실이 커진다고 판단했다”면서 “현 상황에서 매출을 늘릴 수 있는 방안을 찾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서울도시철도공사 홍보팀에 따르면, KT는 손실을 줄이기 위해 서울도시철도공사 측과 기본보장금 감액을 협의하고 있다. KT는 내부 문건에서 설계변경에 따른 추가 비용 128.5억 원과 광고매체 감소에 따른 매출감소 예상분 111억 원 중 50% 수준인 64.3억 원과 55.4억 원을 기본보장금에서 감액할 경우 총 119억 원을 KT 매출로 회수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