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1월 6일자] ‘세계 7대 자연경관’ 의혹 폭로 이해관 전 KT새노조 위원장

[서화숙의 만남] '세계 7대 자연경관' 의혹 폭로 이해관 전 KT새노조 위원장

 

프랑스텔레콤은 우리보다 더 가혹하게 구조조정을 했지만 올랑드 정부가 들어서자 프랑스텔레콤 사장을 정신적 학대혐의로 검찰이 기소를 했어요. 이익만 추구하는 것은 책임을 물어야 해요."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k.co.kr

 

대통령 선거 이후 정치뉴스가 지면을 장식하던 지난달 28일 이해관(50) 케이티(KT) 새노조 위원장이 해고됐다. 회사 측 명분은 무단결근이라는데 허리디스크를 오래 앓아 온 데다 병가요청과 진단서조차 상사가 받으려 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세계 7대자연경관 선정 전화투표를 케이티가 주관하면서 소비자들에게 국내전화에 국제전화 요금을 청구했다는 의혹을 이 위원장이 작년 2월에 폭로한 사실과 더 관련 있어 보인다. 전화투표로 결정된 세계 7대자연경관 선정은 세븐원더스라는 '듣보잡'국제단체가 주도한 것이나 정운찬씨가 2010년 범국민추진위원장을 맡았고 대통령 부인 김윤옥씨까지 나서서 전화투표를 권장했다. 제주도는 도청직원에게 투표를 독려, 행정전화비가 211억원 이상 나오기도 했다. 이 위원장은 작년 2월에 이 사실을 폭로한 후 7월에 집(안양)과는 시외버스로 2시간 반 거리인 가평지사로 발령이 났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이 위원장을 공익신고자로 인정하고 출퇴근이 쉬운 지역으로 다시 인사발령 내라 결정했지만 케이티는 이에 맞서 행정소송을 제기한 상태이다. 감사원은 3일 케이티의 해외착신번호는 없다는 점을 밝히며 케이티가 전기통신번호관리세칙을 어겼다고 지적했다. 이 위원장의 폭로가 확실한 공익신고라고 손들어 준 것. 대통령 인수위 앞에서 사건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해 1인 시위를 할 거라는 그를 만났다.

-케이티에는 언제 입사하셨어요?

"1989년에 처음 입사했어요. 대학(서울대 식물학과 82학번)때 감옥 갔다 나와서는 공장에 위장취업 했다 87년에 쫓겨났어요. 전국노동운동단체협의회를 만들어 활동하는데 소련이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운동권 친구들이 많이 전향을 하고 유학을 가더군요. 명분상 집에서 납치고 내용상 동조였는데 사업을 하시던 저희 아버지는 '네가 유학을 가겠다면 다 지원해 주겠다, 그런데 하던 일이 그렇게 꺾여 버리면 평생 사람 구실을 못할 것'이라면서 스스로 선택하라 하셨어요. 저는 당연히 노동운동을 선택했는데 위장취업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감옥 갔다 온 운동권 출신에게 사법고시 합격을 시켜 주더라고요. 그렇다면 국영기업에서도 뽑아 주겠구나, 거기 가서 노조운동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당시 최대 국영기업인 한국통신(한통: 케이티의 전신)에 입사했어요. 공기업의 임금가이드라인을 없애고 민영화 반대투쟁을 하다 1995년에 해고가 됐어요. 2006년 노무현 정부 때 민주화운동보상심의위가 열려서 민주화운동으로 인정을 받고 2007년에 복직을 했어요. 해고된 11년 동안은 노조에서 임금이 나와서 사는 것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힘든 것은 민영화 이후 노조가 바뀌어가는 것을 참는 것이었는데 어용짓이라고 계속 비판했더니 결국 마지막에는 임금지원을 끊더군요."

-어용노조와 아닌 노조의 차이가 뭔가요?

"노동조합이라는 건 기본적으로 자주성은 있어야 하는데 회사에서 요구하는 걸 그대로 다 받아들여 주면 어용노조지요. 통신산업은 원래 엄청난 노동집약적인 산업이었어요. 전화교환도 과거에는 일일이 사람이 하고 전화번호 많이 외우는 게 대단한 기능이었잖아요. IT기술이 발전하고 기술집약적인 산업으로 바뀌면서 노동자 입장에서는 평생 배운 게 쓸모 없어진 게 된 겁니다. 그러면 최소한의 배려는 해 줘야 하는데 재활기회도 없이 무조건 내몰아요. 노조는 그런 구조조정에 합의를 하고 자기들은 빠져 버리거든요. 이건 장치산업이라 여기서 써먹은 기술을 나가서 써먹을 수가 없어요. 전화번호 1만 개 외우면 뭐합니까. 국민연금 의료보험공단 기록을 뒤져서 케이티에서 나간 사람을 추적했더니 모두 빈곤층으로 추락했어요. 케이티는 단 한 번도 적자였던 적이 없기 때문에 합법적인 정리해고나 감원이 불가능해요. 그래서 노사합의로 명예퇴직을 하는 거죠. 명예퇴직에도 안 나가니까 'CP프로그램'이라는, 강제퇴출프로그램을 만들었어요. 사업장으로도 돌리고 직무로도 돌리고 결국 못 견뎌서 스스로 사표를 쓰게 만드는 거지요. 그런데 이걸 노조에서 나몰라라 하고 구조조정을 합의하면 어용노조지요."

-통신사업의 인력감소는 세계적인 추세인데 어떻게 막겠어요.

"2002년 민영화 후 11명이 자살했어요. 케이티가 적자였다면 몰라요. 케이티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적자였던 적이 없고 1조원을 버는 회사에요. 제가 사회봉사대오라도 만들라고 계속 주장했어요. 사회봉사대오 1만명 만들어서 월급은 60~70% 주면 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흑자를 내면서도 이게 왜 안 되냐면 외국계 주주들이 지배하면서 주주가치가 최우선인 회사가 됐어요. 노동자도 소비자도 신경 안 쓰고 주주배당만 신경쓰는 회사가 됐거든요."

-케이티가 외국계 회사던가요?.

"사실상 그런 셈이지요. 민간의 경쟁체제를 도입하겠다 했지만 통신은 국가의 기간산업이니까 정부가 지분의 33%는 갖고 있겠다가 김영삼 정부 때까지의 계획이었어요. 그런데 IMF가 터지니까 외환조달이 목표가 됩니다. 미국 증시에 직상장을 해요. 물론 안전장치 했어요. 누구도 3% 이상 못 갖는다, 외국인지분은 49% 이하로 제한한다. 그런데 이 두 개가 다 무력화돼요. 한국증시 상황이 나쁘니까 정부 지분의 23%가 안 팔려요. 그래서 23%를 자사주로 케이티가 사게 해요.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어요. 그러니까 외국인 지분은 49%지만 의결가능주식으로는 절반을 안 넘은 적이 없습니다. 2002년 민영화 이후에는 펀드가 산 주식 때문에 3% 룰도 적용이 안 되지요. 외국인 주주들은 통신을 잘하냐 못하냐는 관심사항이 아니에요. 수익만 가져가면 되니까. 그래서 계속 고배당을 하는 거예요. 2009년에는 그해 번 돈의 94%를 배당했고요. 최근에는 공기업 시절에 확보한 알짜 부동산까지 매각을 해요. 통신산업은 규제산업이니까 정부하고는 척지려고 하지 않지요. 그래서 정부에서 낙하산을 내려보내는 걸 반대하지 않고요. 통신비 인하요인이 생겨도 절대로 통신비가 안 내리지요. 정권 해외주주 낙하산 삼자동맹이 소비자 노동자 국민경제를 우롱하고 착취하는 구조가 만들어지는 거지요. 세계 7대경관의 사기사건도 이런 전형이거든요. 소비자를 속이고 국제요금 물려도 돈만 벌면 잘하는 경영이 되고."

-2007년에 복직하고는 어디에 근무하셨어요?

"1년 단위로 일이 바뀌었어요. 처음에 (서울) 혜화에 가서 전송장비 유지보수라는 걸 했어요. 1년도 안되어서 청량리로 갔어요. 다시 을지로 가서 영업을 했어요. 1년 만에 영업할만큼 되니까 전화랑 인터넷 AS하라고 했어요. 7대경관 터지자 가평으로 보냈어요."

-7대경관 문제는 언제 알게 됐어요?

"작년 1월에 KBS 추적60분팀이 저를 찾아왔어요. 그분들이 저한테 왜 한국만 국제전화로 투표를 했냐고 해요. 너무 황당해서 알아보기 시작했어요. 그 사실을 알았을 때는 이미 서비스는 종료된 상태였어요. 관련된 사람들이 말은 해 줬지만 제가 폭로한다고 나타나 줄 사람들이 아니잖아요. 내가 케이티라는 대기업을 상대로 이 사실을 입증할 수 있을까, 나만 늑대소년(거짓으로 늑대가 나타났다 외친 양치기소년)이 되는 건 아닐까. 그런 두려움이 가장 컸어요."

-그래도 믿었던 건 뭐예요?

"정황증거는 확실했으니까요. 케이티 주장대로라면 제주도에서만도 하루에 2백만통이 영국으로 국제전화가 걸려갔다는 거잖아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국제전화 피크치가 예외없이 구정때 추석때인데 1백만통이 넘는 수준이었어요. 또 요금도 국가별 사업자끼리 정산을 하는데 영국이랑 그 정도 정산을 하면 신기록이 잡혀야 하거든요. 그걸 터뜨리자 회사가 반박자료를 내는데 그게 사실을 밝히는 게 되는 거에요. 네티즌파워가 이런 거구나 처음 느꼈어요. 영국이 아니라 일본에 서버를 두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영국이라고 통화상세내역을 적은 요금명세서를 보내 줘요. 세계에서 두 번째로 싼 값에 서비스를 제공했다 하니까 우리나라보다 싼 나라가 여섯 나라가 있다는 걸 가져와요. 공익제보자로 권익위에 신고하라는 것도 참여연대가 가르쳐줬어요. 감사원 감사청구도 참여연대가 했고 케이티를 사기혐의로 검찰에 신고한 것도, 이석채 회장을 고소한 것도 시민단체였어요."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부정에 관여하면서 가만히 있을 수가 있을까요?

"이게 프리픽스(prefix) 번호란 말이에요. 단축번호. 모든 교환기 번호에 이 번호를 누르면 투표가 되도록 세팅을 해줘야 하는 거니까 분명 굉장히 많은 사람이 작업에 참여했어요. 그런데 이런 게 하루에도 몇 백개씩 생겨나니까 각자 자기가 맡은 일만 하는 상태에서는 전체적으로 문제가 있는 걸 알기가 어려워요. 제가 여러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서 정보를 모아 보니까 그림이 잡히는 거잖아요. 일부는 알고 있었지만 함구령이 내려서 말할 수 없었고요. 소수의 과두들이 음모를 저지르면 관철이 될 수 있어요. 신자유주의에 매몰되어서 회사가 요구하는 실적을 내는 일에만 파묻혀 사니까 전체가 보이지 않는 거지요."

-지금 혜택과 떨어져 나갔을 때의 격차가 너무 크니까 어려운 점도 있겠지요. 그건 노동자들 스스로 선택한 것이기도 하고.

"제가 그런 말을 많이 해요. 노동의 소외를 극복해야 하는데 보상받으려고 하니까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분명 노동운동의 책임이 있지요. 그런데 노동자의 경영참여가 불법으로 되어 있는 상황에서 임금협상만 할 수밖에 없어요. 제가 케이티와 경영방향 낙하산 인사 가지고 이야기를 하자고 하면 그건 노사협의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래요. 경영문제도 바로잡자고 2011년 7월에 새노조 만들었는데 지금까지 조합원이 30명이에요. 이러니까 소외는 심해지고 소외가 심할수록 보상을 요구하고. 대기업 다니는 젊은 후배가 정말 못 다니겠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연말성과급 받고 천만원짜리 명품 핸드백 하나 사면 1년 더 다닐 용기가 생긴다...이거 참 슬픈 이야기거든요. 거기에 저항하면 저같이 해고자가 되는 거니까요."

-이렇게 분절된 사회에서 한국노동자들에게 희망이 있을까요?

"95년 한통 노조가 민영화 반대를 갖고 싸울 때 평범한 노조원들한테도 반상회에 가서 민영화 반대 서명을 받아 오게 했어요. 그런데 노동자들이 그걸 해요. 그때 노동자들이 이런 말을 해요. 우리가 임금만 올릴라 그러면 얌체짓인데 진짜 민영화를 막아서 복지를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활동해야 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없으면 자기 것이라도 챙기려고 굴지만 믿는 구석이 생기면 전체를 보게 됩니다. 노동자들이 IMF를 거치면서 전체를 보는 자신감을 많이 잃었다고 봅니다. 나라도 살겠다 그래서 옆에 있는 사람을 안 돌보지요. 그런데 7대경관 사건에서 두려워 떨면서도 저한테 진실을 말해 준 사람들이 있거든요. 사람들이 올바르게 살려고 하는 거기서 희망을 찾아야 한다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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