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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중자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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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월 2일 12:16 오전
?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마라!”
강신주 | 철학자
“인간은 기계가 아니다.”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마라!” 1970년 11월 전태일은 자신을 횃불 삼아 박정희의 경제개발이 감추고 있던 치부를 백일하에 보여주었다. 그렇지만 1972년 10월 박정희는 인간답게 살아야 한다는 전태일의 외침에 유신헌법으로 응답한다. 40년이 흐른 지금, 이번 겨울은 유독 춥게만 느껴진다. 대통령으로 당선된 독재자의 딸이 보내는 득의만면의 미소가 매서운 겨울바람과 함께 더욱 우리의 옷깃을 세우게 만든다. 이제 박정희의 묘지에 누가 당당하게 침을 뱉을 수 있을 것인가? 이제 누가 얼굴을 들고 전태일의 묘소에 참배할 수 있다는 말인가? 유권자의 과반수가 전태일이 아니라 박정희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1970년대가 아니라 2012년 올해 벌어진 사건이자 남기고 뺄 것도 없는 바로 우리 의식의 현주소다. 상생과 통합의 미사여구가 캐럴 속에서 울려 퍼지지만, 어디 이것이 가당키나 한 말인가. 상생과 통합의 주체는 자본가나 보수 여당, 혹은 대통령이니까 말이다.
독재자의 딸을 지지했던 보수적 성향의 유권자들은 지금 자신들이 무엇을 했는지 알고나 있을까. 아마 그들은 선거 결과에 득의양양해 있을지도, 혹은 이제 경제가 회복되어서 박정희 개발독재 시대의 영화가 다시 열릴 것이라고 믿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그들의 백일몽은 박정희 시대에 비인간적인 피와 땀을 흘려야만 했던 수많은 전태일을 망각했을 때에만 가능한 것이다. 돌아보면 그들은 박정희 개발독재 시절에서부터 1997년 IMF 구제 금융 사태 때까지 물질적 풍요를 만끽했거나, 아니면 그 시대에 물질적 기반을 얻는 데 성공했던 사람들을 부모로 두었을 것이다. 여기서 자본주의의 공식 하나를 언급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풍요를 구가하던 자본이 위기에 빠져 불황에 이르게 되면, 사람들은 자본주의 체제에 의문을 달기보다는 오히려 거의 미친 듯이 돈, 그러니까 현금을 수중에 넣으려는 경향을 보인다. 과거보다 재산이 줄어드는 순간, 재산이 더 줄어들까 노심초사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반응일지도 모를 일이다. 바로 여기에 보수적 성향 유권자들의 유례없는 단결력이 발생한 원인이 있다.
아무리 과거보다 재산이 줄어들었다고 해도, 줄어들 재산이나마 있다는 것은 어쩌면 행운 아닌가. 그렇지만 불행히도 행운을 행운이라고 느낄 여유는 우리들에게는 증발한 지 오래이다. 더군다나 더 심각한 것은 자신이 가진 재산에 노심초사할수록, 우리들의 시야는 점점 좁아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헤어진 임을 오매불망 그리워하는데, 어떻게 가족이나 친구가 눈에 들어올 수 있다는 말인가. 잃어버린 돈에 안타까워하는데, 어떻게 이웃의 하소연이 귀에 들어올 수 있다는 말인가. 이것이 바로 보수적 감수성이 탄생하는 심리적 메커니즘이자, 동시에 보수적인 사람들이 왜 공동체의 삶을 도외시하고 자신의 기득권에만 연연하게 되는지를 설명해주는 핵심적인 논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보수적인 사람들의 눈에 1997년 IMF 구제 금융 시대 이후 대학을 다녔던 88만원 세대의 감당하기 어려운 아픔과 쓰디쓴 분노가 들어설 여지가 없는 것이다.
우리 젊은이들에게는 대학과 청춘의 낭만은 어느 사인엔가 사치가 되어버린 지 이미 오래다. 과거 사법시험처럼 정규직 직장을 구하기가 힘이 드는 시대에 그들 대부분은 비정규직이라는 불안한 근무 조건과 열악한 주거환경 속에 던져져 있다. 젊은이들에게 더 가혹한 삶의 환경을 제공했던 MB 정권에서 그들의 절망은 깊어만 갔지만, 그래도 그들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온 사회 성원들을 비인간적인 경쟁으로 내몰고 민영화라는 미명하에 공적 안전망을 차근차근 자본에 양도했던 MB 정권도 언젠가는 막을 내릴 수밖에 없을 테니까. 우리 젊은이들은 자본이 아니라 사람을 품어주는 정권, 그러니까 보편적 복지의 방향으로 공동체가 재편되기를 간절히 원했으며, 자신들의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는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니 우리 젊은이들이 보편적 복지에 저항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일 것이라고 꿈에라도 생각했겠는가.
▲ “‘박정희’라는 형식을 그의 딸이 채우자마자, ‘전태일’이란 형식을 전도유망한 우리 젊은이가 채워버렸다”
선거가 끝난 뒤 우리 젊은이들의 충격은 상상 이상이었다. 박정희를 선택한 사람들은 다른 누구도 아닌 그들의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삼촌, 이모, 고모였으니까 말이다. 아들과 딸, 혹은 손자와 손녀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리라 믿었던 사람들로부터 당한 배신이었으니 얼마나 충격이 컸을까. 전태일의 편을 들어주리라 믿었는데, 우리 어른들은 박정희를 선택한 것이다. 소수의 기득권자라면 그럴 수도 있다. 어떻게 제2의 ‘전태일’이 되도록 내몰리고 있는 아들과 딸, 그리고 손자와 손녀의 간절한 소망을 그들의 부모와 조부모가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말인가? 그만큼 보수 이데올로기가 극성을 부리며, 우리의 선량한 이웃들에게 자본이 성장하고 발전해야 아들과 딸이, 그리고 손자와 손녀가 잘살 것이라는 믿음을 각인시켰던 것이다.
과반수의 우리 이웃들 대부분이 선의를 갖고 독재자의 딸을 권좌에 올렸다는 것은 어김없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들의 선의를 조롱하는 사건이 하루도 되지 않아 일어났다. 새 권력자에 서치라이트를 비추고 있는 언론들의 외면을 받아 더욱 쓸쓸하기만 했던 한 젊은이의 죽음이다. 2012년 12월20일 오후 7시, 더 이상 구원의 희망이 보이지 않는 지독한 절망 속에 35살의 어느 젊은이가 자살이란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 “나는 회사를 증오한다. 자본, 아니 가진 자들의 횡포에 졌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심장이 터지는 것 같다. 내가 못 가진 것이 한이 된다. 민주노조 사수하라! 손해배상 철회하라! 태어나 듣지도 보지도 못한 돈 158억원. 죽어라고 밀어내는 한진악질자본.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고 5년을 또… 못하겠다. 지회로 돌아오세요. 동지들. 여태껏 어떻게 지켜낸 민주노조입니까. 꼭 돌아와서 승리해주십시오. 돈이 전부인 세상에, 없어서 더 힘들다….”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이다.
‘박정희’라는 형식은 ‘전태일’이란 형식으로 완성된다. 아니면 전태일이란 형식에 수많은 이웃들을 가두어야만 박정희란 형식이 작동할 수 있다고 말해도 좋다. 우리 현대사의 비극적인 구조는 바로 이것이다. ‘박정희’라는 형식을 그의 딸이 채우자마자, ‘전태일’이란 형식을 전도유망한 우리 젊은이가 채워버린 것이다. 바로 이것이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상관이 없었던 것이 아니었다. 프로야구 경기결과를 복기하듯이 선거가 끝나자마자 승인과 패인을 쿨하게 분석하고 넘어갈 문제는 더욱이 아니었다. 왜냐고. 우리 젊은이들에게 그것은 생사의 문제이자 희망과 절망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전태일’이란 형식을 다시 만든 사람들은 누구인가. 바로 우리들이다. 이 업보를 어떻게 우리가 다 갚을 수 있을까. 이제 절망하는 젊은이들과 함께하면서 우리의 업보를 씻어나가자. 그리고 인간다운 삶을 위해 홀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도록 하자. 오직 그럴 때에만 우리는 과거 어느 선비처럼 젊은이들을 진정으로 위로할 수가 있을 것이다.
자본이 목적이 아니라 인간적 삶의 수단이 되는 그날까지 “가야 할 길이 머니,
부디 자중자애하기를 바란다(政遠, 切祈珍重)”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