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의 ‘노동자 살생부’ 법원 “본사에서 지시”
등록 : 2013.01.08 20:36 수정 : 2013.01.08 21:48
퇴출 노동자 항소심 전향적 판결 부당해고와 연관성도 인정 1심 뒤집고 “1000만원 배상하라”
법원이 강도 높은 인력 구조조정 탓에 자살이나 돌연사 등으로 해마다 10여명의 노동자들이 숨지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케이티(KT)에 대해, 해고 노동자에게 1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부당한 부진인력 퇴출 프로그램이 시행돼 근로자가 육체적·정신적으로 상당한 스트레스를 겪었을 것으로 보인다”는 이유에서다. 법원이 케이티의 인력 퇴출 프로그램 실행 사실을 인정해, 노동자에게 손해배상을 해주라고 판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청주지법 민사1부(재판장 이영욱)는 8일, 케이티에서 해고됐다 복직한 한아무개(53·여)씨가 “부진인력 퇴출 프로그램으로 부당해고 등 고통을 당한 만큼, 5000만원을 배상하라”며 케이티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1000만원을 지급하라”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앞서 1심 재판부는 케이티의 퇴출 프로그램과 한씨의 해고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고 판단했는데, 항소심에서 뒤집힌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우선 케이티가 지금까지도 부정하고 있는 부진인력 퇴출 프로그램이 본사의 지시로 실행됐다는 점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케이티가 산하 각 지역본부와 지사에 지시해 공통적인 기준에 따라 부진인력 관리계획을 마련해 시행하게 한 것으로 추인된다”고 밝혔다.
케이티는 흑자를 내는 기업이어서 법률상 정리해고를 할 수 없음에도, 그동안 비밀리에 퇴출 프로그램을 운용해 직원들을 쫓아내고 내부 경쟁을 강화했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항소심 판결문을 보면, 케이티 퇴출 프로그램의 실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1981년부터 약 20년 동안 114 전화번호 안내를 했던 한씨는 2001년 114업무 분사 과정에서 반대 투쟁에 참여했고, 고용을 보장받아 이때부터 상품판매 업무를 맡았다. 퇴출 명단에 오른 2005년부터 한씨의 고난이 시작된다. 2006년 3월 일방적인 전직명령을 받아 인터넷, 일반전화, 케이블 등의 현장개통 업무를 하게 됐는데 사무직 일만 해오던 한씨는 45살 여성의 몸으로 전봇대까지 올라야 했다. 당시 케이티 청주지사 현장개통 업무 직원 11명 중 여성은 한씨가 유일했다. 인사고과에서 계속 하위 등급인 ‘D’를 받았고, 한씨의 상사는 “1인당 생산성이 낮아 경영목표 달성에 저해 요인이 되고 있다”며 한씨에게 직무능력 향상 촉구서와 경고장을 ‘무차별적으로’ 보냈다. 사전에 말도 없이 시험을 실시해 한씨는 ‘0점’을 맞기도 했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2007년 7월 병원에서 불안장애, 적응장애, 불면증 등의 진단을 받았다. 결국 2008년 10월 파면을 당했으나, 이듬해 노동위원회에서 부당징계 판정을 받아 복직했다. 한씨는 “복직한 뒤 집에서 청주지사에서 왕복 3시간이 넘게 걸리는 충주지사로 발령이 났다. 고통은 계속되고 있다”고 호소했다.
케이티노동인권센터 조태욱 집행위원장은 “흑자 기업인 케이티가 인력 퇴출 프로그램을 가동해 사실상의 정리해고를 한 것은 부당해고에 해당한다. 법원을 통해 퇴출 프로그램의 실체가 드러난 만큼, 노동부와 검찰은 철저한 수사를 통해 강력한 처벌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케이티 관계자는 “퇴출 프로그램을 운영한 바 없다. 즉시 상고하겠다”고 말했다.
김소연 기자, 청주/오윤주 기자 dand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