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문 (교통사고 나기전에 산행한 내용)

지리산 산행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여름이다. 여름휴가를 맞아 지리산 단독산행을 결행했다. 8월 3일 아침, 맑은 하늘을 보며 전남 구례로 향하는 버스에 탄 나는 기분이 좋았다. 화엄사에서 성삼 재까지 가는 동안 차창 밖의 신선한 경치에 벌써 넋을 잃었는지 등산객 모두들 조용하기만 하다. 노고단 산장에 가니 마침 점심시간이라 분주한 모습들이다. 라면으로 허기 때우고 계획했던 산행을 하기 위해 뱀사골 산장을 향해 발길을 돌렸다.

본격적인 산행에 들어 임걸영을 지나 무거운 배낭으로 인해 쉬는 횟수가 잦아진다. 온몸이 땀으로 젖고 할딱거리는 숨을 몰아쉬며 계속 산행, 어느새 반야봉 삼도봉 갈림길에 들어선다. 망설여진다. 지리산의 제2봉인 반야봉에 올라가 보나? 삼도봉 쪽으로 편하게 바로 뱀사골로 가나? ‘안 돼!’ 등산화 끈을 졸라매며 ‘산에 왔으면 정상에 올라가 봐야지’ 하며 반야봉으로 오른다. 삼거리에서 2Km의 산행이지만 지친 몸에 가파른 길이라 힘이 든다. 그러나 결국은 반야봉에 올라서니. 지리산은 시원스레 부는 바람으로 나를 반기며, 넓고도 웅장한 모습을 드러낸다. 아래로 보이는 크고 작은 봉우리들과 계곡들은 아름답기만 하다. 맘이 편안해져 피로가 확 가신다. 귀찮고 피곤한 맘을 잘 극복했다는 생각이 든다.

반야봉은 10개월 전쯤인 가을에 일행과 함께 온 적이 있다. 그때도 날씨가 화창하여 반야봉에서 바라본 지리산은 넓고도 웅장하게 다 드러내 보여 편안한 맘으로 절경을 구경했다. 누군가 손가락으로 멀리 솜털구름사이로 희미하게 제일 높이 솟은 곳을 가리키며 “저곳이 천왕봉이다.”라고 가르쳐주어 “우리 다음에는 지리산을 종주하며 천왕봉에 가자.”고 하며 일행과 함께 천왕봉을 바라보며 예기를 나누었다. 그곳에서 다시 멀리 희미하게 제일 높이 솟은 천왕봉을 바라보며, ‘천왕봉아 지리산이 좋아 왔다. 이틀 후에 만나자.’라고 맘먹는다.

뱀사골을 향하여 가는데 하늘이 어두워지고 갑자기 천둥번개와 함께 소낙비가 온다. 화창한 날씨가 한나절도 지나지 않아 이렇게 변하다니 자연의 무서움이 새삼 느껴진다. 배낭은 차츰 무거워지고 바로 앞을 볼 수가 없을 지경이다. 그래, 이왕 젖은 몸 차라리 더욱더 세차게 내려라. 세상살이의 기쁨은 남겨두고 비야 내 고민만 함께 씻어가거라. 이젠 뱀사골은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면서 랜턴을 켜고 계속 산행을 한다. 텐트가 보인다. 반가움에 “텐트 안에 누구 없어요?” “왜 그러세요?” “물 있는 데 여기서 멀어요?” “약 300m쯤 가면 산장 옆에 물이 나와요!” 이젠 뱀사골까지 다 왔구나 하는 생각에 폭우의 두려움도 사라진다. 뱀사골 산장 주위에는 텐트를 많이 쳐 놓았고 모두들 지친 모습들이다. 폭우 속에 텐트를 치고 나니 바닥은 어느 새 물난리다. 수건으로 텐트 안의 물을 훔치고 간식과 초콜릿으로 저녁을 대신하고 피곤해서 침낭 속으로 몸을 넣는다. 그러나 텐트 위에 떨어지는 빗소리에 잠은커녕 걱정이 앞선다. 약 2시간 뒤에 밖에서 “텐트 안에 누구 없어요?” 하는 소리가 들린다. “왜 그러세요?” “물 있는 데 여기서 멀어요?” “약 300m쯤 가면 산장 옆에 물이 나와요!” 하고 아까 내가 경험한 바를 그대로 재연했다. ‘저분들은 밤늦은 시간에 폭우 때문에 고생 많이 했구나.’ 하는 생각에 애처롭기만 했다.

아침에 일어나니 비는 오지 않고 안개만 자욱이 끼었다. 아침을 먹은 후 세석산장까지를 하루의 목표로 정하고 산행하기로 마음먹는다. 토끼봉을 지나 연하천산장에 도착하니 하늘은 턱없이 맑은 터라 햇살이 눈부셨다. 점심은 여기서 해결하고 물에 젖은 텐트며 배낭 등을 말렸다. 배낭이 조금 가벼워진 느낌이다. 연하천산장을 멀리하고 부지런히 길을 갔지만 무거운 배낭은 산행에 많은 괴로움을 주었다. 간혹 여러 명이 한조가 되어 짐을 분산하여 배낭이 가벼운 등산객들을 보면 그들이 부러웠다. 오랜 시간을 산행을 해서인지 몹시도 피곤하여 제 정신이 아닌 것 같다. 쉬는 횟수가 잦아지고 산행이 늦어지게 된다. 비슷한 처지인 두 명이 한조인 등산객을 만나 같이 산행하게 되었다. 두 분 다 저보다 10년 이상 젊어 산을 잘 탈것 같았는데 한분은 산에 자주 다녔고 한분은 장시간 산행해본 경험이 없는데 자연이 좋아 왔다고 한다. 산행경험 없는 분 때문이다. 저녁 어두운 산속을 무섭지 않게 같이 산행하게 되어 그분께 감사했다. 아래쪽으로 세석산장 불빛이 보였다. 약 500m쯤 가면 된다는 안도로 그분과 나는 지친 몸을 숲속 바위 위에서 한참 쉬었다. 능선을 오르내리며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밤 10시가 넘어서야 저녁식사를 하고는 산행을 하면서 알았던 사람들과 커피 한 잔을 나누며 오늘 일들을 이야기하는 동안 지리산의 밤은 깊어만 갔다.

아침엔 피로가 풀어진 것 같다. 아침 식사를 하고 천왕봉을 그리며 산행을 한다. 촛대봉에서 아래로 보이는 지리산 운해는 너무도 장관이라 한참 동안을 구경했다. 같이 가자고 해도 가지 않던 후배 녀석에게 전화를 걸어 나는 지금 구름 위에 있다고 자랑하며 함께 오지 않은 것을 후회스럽게 만들어 주었다. 운해가 보이는 쪽으로 산행을 하는데 길이 너무도 가팔라서 다음에 이곳에 오면 등산객들이 산행을 하기 좋게 로프를 설치해 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연하봉, 제석봉을 지나 한참 기어 올라간 곳은 천왕봉. 자욱하게 깔린 안개 탓에 주위의 멋들어진 풍경을 보지 못한 아쉬움도 있었지만 지리산 정상에 올라선 기분을 어찌 말로 다할 수 있으리! 지리산 서쪽에서 동쪽으로 종주를 하면서 능선을 오르내리며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지금 이 자리에 있다는 사실이 스스로 대견해지며 ‘할 수 있다!’는 걸 절실히 느낀다. 더불어 자신감도 생긴다. 즉시 떠올랐던 감정들이 읊어진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힘이 들지만
지리산이 아름다워 좋아라.

한발한발 올라 드디어 천왕봉
“야호!” 반기는 메아리
세상살이에 지친 몸과 맘을 반갑게 맞이해
기쁨과 용기로 채워주네.

천왕봉아 다시 올게
그때도 기쁨과 용기로 채워 다오.
오늘 못 본 멋들어진 풍경도 보여 다오.

장터목산장으로 내려가는 길은 발걸음이 가벼워 힘든 줄 모른다. 올라오는 사람들에게 인사하는 여유도 생긴다. 산장에서 점심을 때우고 이젠 백무동으로 하산한다. 한참 내려가니 백무동 매표소까지 3.5Km 남았다는 표지판이 보인다. 하산하려니 아쉬운 생각이 든다. 산속의 신선한 바람과 햇살, 그리고 이름 모를 꽃들 새들의 노랫소리로 기분 좋고. 산 아래서 볼 수 없는 절경에 도취되어 머무르게 한다. 망설이다가 백무동 계곡의 아름답고 물 흐르는 소리가 좋아 텐트를 친다. 무사히 산행을 마친 데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이번 산행을 뒤돌아보며 행복한 휴식에 빠져든다. 백무동 계곡에서 산행의 마지막 밤을 보낸다.

누군가 ‘왜! 힘들게 산을 오르느냐’고 질문을 한다면, 일단 산에 한 번 다녀온 후에 물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아마 자연의 신비를 체험하고 어려움을 극복해가는 자신을 발견할 때 만족감을 느낄 수 있으리. 이런 경험자만이 산이 선택한 사람이며 자연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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