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기업별 복수노조 운영실태와 그 시사점

[쟁점과대안] 일본의 기업별 복수노조 운영실태와 그 시사점

보건의료산업을 중심으로
 
윤진호 (인하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ecoyoon@inha.ac.kr
 

1. 머리말

근로기준법 개정에 따른 기업별 복수노조 금지조항의 폐지로 2011년 7월1일부터 한국에서도 ‘기업별 복수노조 시대’가 개막되었다. 새로운 제도 변화와 관련하여 앞으로 노사관계에서 어떤 일이 발생할 것인가에 대해 노사 모두 지식과 경험이 거의 없는 상태라 우려의 목소리가 높은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복수노조 시대에 앞으로 전개될 노사관계의 전망과 관련하여 오래 전부터 복수노조제도를 운영해왔던 선진국의 경험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한 의미를 가질 것이다. 특히 일본은 한국과 유사한 노사관계를 가졌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된다. 잘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일본은 기업별노조와 기업별 노사관계를 배경으로 하여 복수노조제도가 운영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과 유사한 측면을 가지고 있을뿐더러, 한국의 노동법 개정 시 그 모델을 일본의 노동법에서 구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에서 우리로서는 큰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여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에서는 복수노조 사례 연구의 일환으로서 일본 방문조사를 실시하였다. 이 글은 이 일본 방문조사를 토대로 하여 일본의 기업별 복수노조의 운영 현황과, 이로부터 한국의 노동조합이 얻을 수 있는 시사점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2. 일본 복수노조의 개황

일본의 복수노조제도

일본의 노동법은 노동조합에 관해 ‘자유설립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즉 두 명 이상의 노동자만 모이면 노동조합을 결성할 수 있으며,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활동을 하기 위해 행정관청에 등록하거나 인가를 받을 필요도 일체 없고 사용자의 승인도 필요 없다. 단 노동조합이 법인으로 되려면 법인등기를 하여야 하는데, 이 등기를 위해서는 노동위원회로부터 자격심사를 받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법인으로 되는 것이 노동조합의 활동에 불가결한 것은 아니며, 단체교섭 등에도 아무런 영향이 없으므로 실제 법인격을 취득하는 경우는 드물다(下井隆史, 1995). 물론 노동조합이 그 실체를 갖추기 위해서는 단순히 노동조합이라는 명칭을 취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노조법상의 노동자가 주체로 되어 자주적으로 노동조건의 유지, 개선 및 기타 경제적 지위향상을 도모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하여 조직된 단체 혹은 연합단체여야 한다. 따라서 사용자의 이익을 대표하는 자의 참가를 허용하거나 단체운영을 위한 경비 지출에 사용자의 지원을 받거나 복리사업만을 목적으로 하거나 정치운동 혹은 사회운동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 것 등은 노동조합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러한 요건의 심사에서 통과되지 못한 노동조합은 ‘법외조합’으로 되어 일정한 불이익을 받는데,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노동위원회에 신청을 하여 구제를 받을 수 없다는 점이다.

한편 노동조합의 조직형태 면에서도 기업별노조, 지역노조, 직업별노조, 산별노조 등 어떠한 형태를 취할지는 노동조합의 자유에 맡겨져 있다. 이처럼 노동조합에 대한 자유설립주의를 택하고 있으므로 하나의 기업 안에 노조가 2개, 3개가 있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더욱이 일본은 단체교섭제도 면에서 모든 노동조합에 대해 단체교섭권을 부여하는 ‘자율교섭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한 기업 안에 노조가 몇 개가 존재하든 모든 노조는 단체교섭권을 가지며 사용자는 노조의 단체교섭 요구에 응하여야 한다. 따라서 사용자가 만약 한 기업 내에서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는 노동조합과 ‘유일교섭단체 조항’, 즉 “당해 조합만을 교섭상대로 한다”는 내용의 단체협약을 체결한 것을 이유로 하여 다른 조합과의 단체교섭에 응하지 않는 경우, 그러한 협약 조항은 법적으로 무효이며 사용자의 단체교섭 거부는 부당노동행위가 된다는 것이 법원의 일관적 판례이며 다수의 학설도 그러하다. 바로 이 점에서 일본의 교섭제도는 한국이나 미국의 ‘배타적 교섭제도’와는 다른 것이다.

이처럼 한 사업장 내에 복수의 노조가 존재할 경우, 각 노조는 그 규모나 성격에 상관없이 사용자에 대해 평등한 권리를 가지며(‘경쟁적 조합주의 원칙’), 사용자는 임금 및 근로조건에 관해 노조 간 차별을 할 수 없고(‘조합 간 차별금지의 원칙’), 특정한 노조의 운영에 개입하거나 세력의 약화를 도모하는 등의 행위가 금지된다(‘중립 유지 의무’)(김삼수, 2006).

현실은 제도와 다르다!

이처럼 일본의 법률제도는 노동조합 자유설립주의에 의해 한 사업장 내에서도 2명 이상의 조합원만 있으면 자유로이 노조 결성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으므로 복수노조가 난립할 우려가 있다. 더욱이 배타적 교섭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미국과는 달리 자율교섭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일본에서는 아무리 소수노조라 하더라도 교섭권을 가질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평등대우 원칙에 의해 기업으로부터 지배적 노조와 마찬가지의 대우(즉 사무소의 제공, 체크오프제 등의 편의 제공)를 받을 권리가 있으므로 생존 가능성도 크다. 이처럼 일본에서는 한 기업 내에 복수노조의 존재를 허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노조들이 단체교섭권을 가지고 있으므로, 쉽사리 복수노조가 난립하고 이에 따라 사용자는 복수노조의 단체교섭 요구에 응하여야 하므로 매우 힘든 상황이 초래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현실은 결코 그렇지 않다. 일본에서 실제로 한 사업장 내에 2개 이상의 노동조합이 존재하는 복수노조의 병존 사례는 극히 적다. 일본 후생노동성이 노동조합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의하면 “동일한 기업 내에 다른 노조가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2008년 현재 13.2%만이 “그렇다”고 대답하였으며, 나머지는 사업장별 단일노조로 드러났다. 그 추세를 보면 2000년대 초에는 복수노조가 있는 사업장 비율이 약 15% 수준이던 것이 점차 감소하여 2000년대 중반 10% 수준에 이르렀으나, 최근 들어 다소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표1] 참조). 이는 비정규직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복수노조의 출현 때문이라고 한다.



같은 조사에서 일본의 복수노조의 존재 양상을 살펴보면 [표2]와 같다. 이 표에서 보듯이 복수노조의 존재 확률은 산업별로 상당히 다른데, 특히 운수업에서는 근 40%, 정보통신업에서도 22%에 달하고 있으며, 그밖에 광업, 금융보험업, 부동산업, 의료복지업, 교육학습지원업 등에서 10%를 넘는 비교적 높은 비율을 보이고 있다. 반면 건설업, 제조업, 전기·가스·수도업, 도·소매업, 음식·숙박업, 기타서비스업 등에서는 10% 미만의 낮은 비율을 나타내고 있다.



한편 기업 규모별로 보면 기업 규모가 클수록 복수노조의 존재 확률이 커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종업원 5천 인 이상의 기업에서는 근 30% 가까운 기업에서 복수노조가 존재하고 있다. 반면 30~99인 기업에서는 4.8%만 복수노조이다. 이는 기업 규모가 클수록 조직 대상이 커진다는 점에서 당연한 결과라 하겠다. 노동조합은 일정한 조합원 수를 확보해야 교섭력 및 조합비 확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대체로 일본에서는 조합원 200~300명 이상이면 전임 종사자 1명이 확보 가능한 것으로 보고 있다(일본의노련 인터뷰 조사). 반면 영세기업에서는 두 개 이상의 노동조합이 존재할 수 있는 여유가 없는 편이다.

이에 비해 노동조합원 수 규모별로 보면 다소 상이한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 즉 조합원 수가 많으면 복수노조의 확률이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300~499인 규모를 기준으로 해서 그 이하에서도 오히려 복수노조의 존재 확률이 높아진다. 이를 후생노동성 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후생노동성 인터뷰 조사). 즉 조합원 수가 많은 곳에서 복수노조의 확률이 높은 것은 ‘규모의 경제’로 설명할 수 있지만, 반면 영세 규모의 노조에서도 기업 내에 다른 노조가 있다고 대답한 비율이 높은 이유는 한 사업체 내에서 거대 규모의 노조와 영세 규모의 노조가 ‘병존’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즉 과거에 노동조합의 분리에 의해 사용자의 지원을 받는 제2노조가 다수 노조로 되고, 기존의 전투적 노동조합이 조합원의 다수를 잃고도 여전히 소수 노조로서 존재하는 상황에 의해 이러한 결과가 나온 것이다. 따라서 일본에서 복수노조의 전형적인 모습은 한 사업체 내에 주로 친사용자적인 (‘연합’ 계열의) 거대 노조와 주로 반사용자적인 (‘전노련’ 계열의, 혹은 독립노조인) 소수파 노조가 병존하는 것이다.

이처럼 전체적으로 사업장별 복수노조제도가 법률로 보장되고 있음에도 현실적으로 그 비율이 극히 낮은 이유는 여러 가지 원인에서 찾을 수 있는데,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역사적 요인

제2차 세계대전 패전 후 미국 점령군 당국에 의한 일본 사회의 민주화 과정에서 노사관계의 민주화도 이루어졌다. 이에 따라 노동조합이 우후죽순 격으로 설립되었다. 그런데 전후 노동조합운동의 발생 당초부터 ‘1기업 1조합의 원칙’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즉 “기업별 직공혼합(職工混合), 전원조직”이 원칙이었던 것이다(秋澤淸彦, 1979). 이러한 1기업 1조합의 사상은 노동조합의 측으로부터 발생하였다. 일본의 노동조합은 19세기 말부터 시작되었지만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1920년대부터였다. 그러나 정부 및 사용자의 노동운동 분열 정책과 노동운동 내 각 정파들 간의 이데올로기적 대립으로 인해 결국 1924년 단일조직인 ‘총동맹’은 좌파-중간파-우파로 분열되었다. 이후 정파가 다른 노조 간에 격렬한 갈등을 되풀이 하였으며, 그 결과 군국주의의 대두와 노동운동의 전면 금지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채 공멸로 이어졌던 쓰라린 경험을 겪었다.

2차 대전 이전의 노동운동의 분열항쟁의 폐해를 몸으로 겪었던 노동운동가들에게 기업의 전체 종업원을 하나로 조직하는 것은 꿈과 같은 이상이었으며, 두 번 다시 분열을 되풀이 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깊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사용자 측으로부터 보면 1기업 1조합의 원칙은 ‘기업일가적(企業一家的) 사상’과 통한다. 즉 “기업은 하나의 가족과 같은 것”이며, 그 속에서 각 구성원은 가장인 기업경영자의 지도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단합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접근 방법은 임시공, 견습공 등을 별도로 하고 기업 내의 노동조건은 동질, 평등하여야만 한다는 내용을 전제하는데, 이는 종래 기업 노무관리의 기본 방침이기도 했기 때문에, 기업 측으로서도 1기업 1조합 원칙은 바람직한 것이었다. 즉 1기업 1조합은 전후 노동운동의 초창기에 노사 간 이해가 맞아 떨어진 결과로 보아야 할 것이다(秋澤淸彦, 1979).

2차 대전 후 1기업 1노조로 결성된 노조들은 대체로 좌익 지도부를 갖고 있었다. 이들은 기업의 틀을 넘어선 전체 노동계급의 단결을 희망하고 있었으며, 이를 구현할 가장 적절한 수단으로 산별노조운동을 벌였다. 이들이 모여 만든 노동운동의 내셔널센터가 1946년 결성된 전일본산업별노동조합회의(이하 ‘산별회의’)이며, 이는 정치적으로는 공산당과 연결되었다. 이리하여 일단 전후 이른 시기에 일본의 노동운동은 통일되었으며 기업별로도 대체로 1기업 1조합의 단일노조가 형성되었다.

따라서 일본에서 복수노조의 발생은 이후 주로 기업 내에 존재하던 단일조합이 분열하면서 두 개 이상으로 갈라지는 ‘노조 분열’의 문제로 파악할 수 있다. 그러한 분열은 여러 원인에 의해 일어났지만,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으로서 다음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그 첫 번째는 노동운동 스스로의 분열이다. 특히 전후부터 1960년대까지 노동운동의 고양기에 이데올로기나 지지정당, 노선에 따른 노동운동의 분열로 인한 기업 내 노조 분열 시대가 시작된다. 전후 산별회의로 결집했던 노동조합운동은 1947년의 ‘2?1 총파업’을 기점으로 하여 강?온파 간 분열을 시작하였다. 즉 산별회의의 좌익 공산당 계열 운동에 반발한 중도 및 우파계가 산별회의를 탈퇴하여 1948년 우파계의 전일본노동조합총동맹(이하, ‘동맹’)을 거쳐 1950년 중도 좌파계의 일본노동조합총평의회(이하 ‘총평’)를 결성하였다. 이에 따라 1952년부터 1954년에 걸쳐 전기, 탄광, 자동차, 철강 등 가장 선진적인 산별연맹 내에서도 잇달아 분열이 나타났으며, 이는 다시 기업별노조의 분열로 귀결되었다(河西宏祐, 1990). 이러한 이데올로기에 따른 분열은 일본 좌익운동이 공산당, 사회당, 사민당 등 다양한 정파로 분열된 데 기인한 것으로, 현재까지도 부분적으로 지속되고 있다. 이후 1989년의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이하, ‘연합’) 출범과 전국노동조합총연합(이하, ‘전노련’)의 출범 때도 노동조합은 다시 분열의 길을 걸었다.

두 번째는 사용자의 공격에 의한 분열이다. 즉 1950년대 중반 이후 일본에서는 본격적인 고도 경제성장 정책, 개방경제 체제에 대응하기 위한 자본의 과점화가 진행되었으며, 이에 따른 합리화와 구조조정이 전개되었다. 이 과정에서 쇠퇴 산업이나 합리화대상 산업, 또는 경기 침체기의 구조조정 등의 시기에 사용자는 노동조합에 대한 공격을 강화하였다. 이에 따라 사용자에 대항하는 기존의 제1조합을 무너뜨리기 위해 친사용자 성향의 제2조합이 설립되고, 이것이 자본의 원조를 받으면서 제1조합을 무너뜨리고 지배적 다수조합으로 되는 양상이 나타났다. 전형적인 패턴은 <자본의 합리화, 구조조정, 정리해고 → 제1노조의 파업투쟁 → 사용자의 강경한 대응 → 투쟁의 장기화 → 협조적인 제2노조의 결성 → 파업의 붕괴, 패배 → 제2노조에 대한 사용자 지원 → 제1노조의 약화 혹은 붕괴> 수순을 밟는 것이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닛산자동차(1953년), 프린스자동차(1965년), 미쓰이미이케 탄광(1960년), 미쓰비시중공업(1965년), 국철(JR)(1986년) 등이다.

그밖에 직종에 따른 분열, 회사통합에 의한 분열 등 다양한 복수노조 분열의 유형이 나타나고 있다.

그 어느 경우든 노조 분열의 결과로 복수노조가 된 노조들이 노조 간 경쟁을 거쳐 한 개로 다시 통합되든지, 아니면 두 개 이상의 노조가 기업 내에서 병존 상태로 남게 된다. 단, 이 경우에도 비슷한 규모로 병존하기보다는 지배적 노조와 소수노조로 분열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일본에서 사실상 복수노조의 의미는 그다지 크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제도적 요인: 기업별노조

앞에서 본 대로 일본에서는 노동조합의 설립이 자유롭고 또 소수노조라 하더라도 교섭권을 가질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평등대우 원칙에 의해 기업으로부터 지배적 노조와 마찬가지의 대우를 받을 권리가 있으므로 생존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실제로는 복수노조의 병존을 어렵게 만드는 현실적인 제도 요인들이 존재하고 있다.

우선 가장 중요한 제도적 요인은 역시 ‘기업별노조’이다. 일본의 복수노조제도는 어디까지나 기업별 노동조합을 전제로 한 제도임을 유의하여야 한다. 일본의 노동조합들은 전형적으로 기업별로 조직되고 운영된다. 산별연맹과 정상조직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그 역할은 매우 제한되어 있다. 기업별노조가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 등을 모두 가지며 독립적인 의사결정구조(집행기구, 대의기구)와 독립적 재정 및 인력 운용을 하고 있다. 따라서 어떤 특정한 요인, 특히 사용자의 공작에 의해 기업별노조가 그 기업 내에서 존재 근거를 잃는 경우, 그 노조는 소멸하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극히 소수노조로서 명맥만 이어가는 것이 대부분의 경우이다.

이에 비해 산별노조는 설혹 한 기업 내에서 조합원 획득 경쟁이나 대표권 획득 경쟁에서 상대 노조에게 패한다 하더라도, 기업 밖의 새로운 분야로 조직대상을 옮겨 조직화함으로써 생존이 가능하다. 예컨대 미국의 서비스노조(SEIU) 경우 초기에는 건물관리 노동자의 노조로 출발했지만 건물관리의 외주용역화 등으로 인해 조합원이 급속하게 감소하자 보건의료부문의 조직화로 대상을 옮겨 크게 성공한 것이 그 전형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산별노조는 또 인력이나 재정의 운용 면에서 집중성과 유연성을 꾀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즉 쇠락하는 분야로부터 노조 자원을 철수하여 새로 성장하는 분야로 재정과 인력을 집중함으로써 노조의 생존 가능성이 훨씬 높아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볼 때 일본에 있어서 노동조합운동의 급속한 쇄락은 복수노조 때문이라기보다는 기업별노조 구조에 더 큰 원인이 있다는 설명이 설득력을 가진다(리츠메이칸 대학 요시다(吉田美喜夫) 교수 인터뷰 조사).

한편 일본에서 복수노조가 적은 이유의 하나로서 유니온 숍 제도를 들고 있는 학자들도 많다(리츠메이칸 대학 요시다(吉田美喜夫) 교수 인터뷰 조사). 유니언 숍 제도란 일단 어떤 기업에 입사한 종업원은 자동적으로 노동조합에 가입하게 되며, 만약 해당 노동자가 노동조합으로부터 탈퇴하게 되면 종업원 자격도 잃게 되는 내용의 협약을 말한다. 그런데 일본 후생노동성이 실시한 <2008년 노동조합 실태조사>에 의하면 전체 조사대상 노조의 60.8%가 유니언 숍 협약을 맺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일본 노조의 유니언 숍 비율이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일본에서는 종업원의 50% 이상을 조직한 다수노조에 한해 유니온 숍 협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일단 회사에 입사한 노동자는 자신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회사와 노조가 맺은 유니언 숍 협약에 따라 자동적으로 지배적 노조의 노조원으로 된다. 만약 그 노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더라도 해고를 각오하지 않는 한 노조로부터 탈퇴할 수 없다.

그런데 만약 한 기업 내에 두 개 이상의 노조가 존재하는 복수노조 상황이라면 유니언 숍 협약과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현재 일본의 판례 및 법률 해석의 다수설은 유니언 숍 협약은 그 협약을 체결한 당사자인 해당 노동조합에만 적용되므로 만약 어떤 노동자가 유니언 숍 협약을 맺고 있는 ‘A노조’로부터 탈퇴하여 ‘B노조’로 옮긴다고 하더라도 유니언 숍 협약의 적용을 받지 않게 되며 따라서 해고되지 않는다고 해석하고 있다. 즉 유니언 숍 협약이 있다 하더라도 노조 간 이동은 자유롭다는 것이다. 다만 해당 노동자가 노조를 탈퇴하여 비노조원으로 남아 있는 경우에는 유니언 숍 협약의 적용을 받아 해고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법률 해석에도 현실적으로는 지배적인 A노조를 탈퇴하여 소수노조인 B노조로 옮기는 경우 인사상의 불이익이나 혹은 동료 노동자들로부터의 ‘왕따’를 각오해야 하므로 노조 간 이동은 자유롭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유니언 숍의 존재 자체가 소수노조의 존립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사용자의 개입

앞에서도 보았듯이 한 기업 내에 두 개 이상의 노동조합이 존재할 경우 사용자는 어느 노조도 차별해서는 안 되며 중립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 판례로서 확립되어 있다. 즉 1966년의 닛산자동자 사건에서 일본 최고재판소는 “한 기업 내에 2개 이상의 노동조합이 존재할 경우 사용자는 그 어느 쪽의 노동조합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성실하게 단체교섭에 응하여야 할 의무가 있으며, 또한 단순히 단체교섭의 경우에 한정되지 않고 노사관계의 모든 측면에서 사용자는 각 노조에 대해 중립적 태도를 유지해야 하며, 그 단결권을 평등하게 승인?존중하여야 하며, 각 조합의 성격과 경향 및 종래의 운동노선의 차이에 따라 차별적인 취급을 해서는 안 된다”고 판시하였다. 이를 ‘사용자의 중립유지 의무’라고 하며, 만약 사용자가 이를 어길 경우 부당노동행위 제소의 대상이 된다(橋詰洋三, 1991).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사용자는 친사용자적 노조를 지원하고 사용자에 대항하는 노조를 약화시키기 위해 빈번하게 노동조합 간의 관계에 개입하고 있다. 즉 복수노조 병존하의 부당노동행위 사건이 전체 부당노동행위 제소 건수의 30~50%를 차지할 정도로 사용자 개입이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國武輝久, 2000). 그 결과 친사용자적 노조가 과반수를 차지하는 지배노조가 되고 투쟁적 노조는 도태되거나 약체화되어 명목상의 소수노조로만 명맥을 이어가는 결과가 초래된 것이다. 사용자의 이러한 중립의무 위반에 따른 부당노동행위 의 유형은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는데, 법원의 판례나 노동위원회의 재정사례를 중심으로 크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은 네 가지 분쟁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國武輝久, 2000).

첫째, 임금?처우 등 노동조건에 관한 복수노조 간의 조합원 차별을 둘러싼 분쟁이다. 보너스 지급에 있어 “생산성 향상에 협력하는 것”을 전제조건으로 제시하고 이를 수락한 다수파 조합원에 대해서는 보너스를 지급하면서, 노동강도 강화를 이유로 이를 거부한 소수파 조합원에 대해서는 지급을 거부한 ‘일본메일오더 사건’, 다수파 조합원에 대해서만 계획된 잔업제도를 실시하고 소수파 조합원에 대해서는 잔업제도에서 제외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일체의 시간외 노동을 할 수 없도록 한 ‘닛산자동차 사건’ 등이 그 전형적인 예에 해당한다(國武輝久, 2000). 이들 사건에서 최고재판소는 모두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둘째, 사용자의 편의 제공을 둘러싼 노조 간 차별 분쟁이다. 이 유형에는 노조 사무소, 노조 게시판 등의 제공을 둘러싼 분쟁이 그 가장 전형적인 예이며, 그밖에도 유니언 숍 협정이나 체크오프 협정을 둘러싼 분쟁도 이 유형에 속한다. 예컨대 ‘닛산자동차 사건’에서는 회사 측이 다수파 조합에는 조합사무소 등을 대여하면서 소수파 조합에는 노조 전임 종사자의 직장복귀문제 해결이 선결되어야 한다는 것 등을 이유로 조합사무소 대여를 거부하였는데, 최고재판소는 이를 부당노동행위로 판결하였다. 또 ‘하이코오노다(灰孝小野田) 레미콘(주) 사건’에서도 A노조에 대해서는 아무런 문제없이 게시판을 대여하면서 B노조에 대해서는 사전에 회사의 허가를 얻는 경우에만 게시판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한 회사 측의 처사는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고 판시하였다(宮里邦雄, 1991).

셋째, 단체교섭 과정에서의 노조 간 차별을 둘러싼 분쟁이다. 이 유형에서는 복수노조 병존하에서 단체교섭의 결과로서, 각 노조의 조합원 간 노동조건의 격차가 발생한 경우 사용자에 대해 부당노동행위 책임을 물을 것인가 아닌가 하는 것이 최대의 쟁점을 형성하고 있다. 또한 단협 타결 시기를 둘러싼 분쟁도 이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특히 이 유형에서는 사용자가 단체교섭에서 전제조건을 제시하고 이것을 고집하는 경우 부당노동행위법상의 책임을 지게 되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쟁점이다. 앞에서 제시한 ‘일본메일오더 사건’에서 최고재판소는 사용자가 제시한 전제조건에 합리성이 결여되어 있고 소수파 조합이 거부할 것을 미리 예측하고서도 이를 사용자가 고집한 것은 소수파 조합의 조합원에 대한 차별일뿐만 아니라 조직의 동요, 약체화를 의도한 것이므로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고 판시하였다(國武輝久, 2000). 또 ‘일본치바가이기 사건’에서는 사용자가 하계 보너스의 단체교섭 과정에서 사용자의 요구를 거부한 소수파 조합원에 대한 보너스 지급을 다수파 조합원보다 4일 늦게 지급한 것에 대해 최고재판소는 사용자가 의도적으로 타결을 지연시켰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로 부당노동행위가 아니라는 판결을 내렸다(國武輝久, 2000).

넷째, 인사고과, 사정(査定), 승진, 승급 등 간접차별을 둘러싼 분쟁으로서, 이는 최근 증가하는 경향에 있다. 이 유형은 임금이나 노동조건 등을 직접적으로 차별하기보다는 회사의 인사제도를 통하여 특정한 노조 소속 노조원들을 우대하거나 회사에 비협조적인 노조 소속 노조원들을 차별하는 간접적 차별에 해당하므로 부당노동행위의 입증이 보다 까다롭다는 특징을 지닌다. 예컨대, ‘베니야쇼지(紅屋商事) 사건’에서는 보너스의 지급액을 산정할 때 회사 내에 존재하는 두 개의 노조 간에 인사고과율에 큰 차이가 있어 이것이 부당노동행위가 아닌가의 분쟁이 있었다. 이에 대해 노동위원회 및 최고재판소는 부당노동행위 성립을 인정하고 구제방법으로서 다른 노조 조합원과의 인사고과율의 차이를 다음 보너스 지급 시 가산하여 지급하도록 명령하였다(和田 肇, 1991).

노동자 의식의 저하

일본의 노동자들은 흔히 회사를 가족처럼 생각하는 기업주의, 기업일가의식(企業一家意識)을 가지고 있다고 일컬어진다(中原學, 1985). 즉 유럽의 노동자들이 자신의 계급적 성격을 우선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반면 일본의 노동자들은 회사의 종업원이라는 의식이 강하며, 따라서 노동조합 가입을 꺼리거나 혹은 복수노조 병존 상태하에서는 반사용자적인 소수노조에의 가입을 꺼린다는 것이다. 특히 이러한 의식은 청년들 사이에서 강해서, 청년 노동자들이 노조에 무관심하거나 노조 가입을 꺼릴 뿐만 아니라 복수노조가 있는 경우에 신입사원이 소수파 노조를 택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사실도 인터뷰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소수파 노조는 조합원의 재생산구조를 상실하고 점차 노쇠하여 자연소멸의 길을 걷게 된다는 것이다(쿄토 제 1적십자병원 노조 인터뷰 결과).

그러나 이러한 일반적인 서술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 해석에는 주의할 필요가 있다. 즉 일본 노동자들의 이러한 노조, 특히 독립적 노조에 대한 무관심이나 기피 현상이 그냥 발생한 것이 아니라 일본 특유의 기업별 노동조합, 기업별 노사관계와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노동자들의 ‘기업주의’는 노동자의 본성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 기업 측의 교육과 선전에 의해 노동자의 의식 속에 주입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또한 노동자의 생활이 “기업 내 인생”으로 설계되어 있는 상황에서 일단 기업을 그만둘 경우 동일한 조건의 다른 회사에 재취직하는 것이 어렵다는 현실이 노동자들의 기업의식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노사협조주의적인 기업 내 노조 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점도 강력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회사 측에 비협조적인 소수파 노조에 가입할 경우 눈에 보이지 않는 인사상의 차별을 받을 것이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 개별 노동자들이 소수파 노조를 택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극복되어야 할 것은 노동자들의 기업의식, 기업일가주의가 아니라 그러한 의식을 낳게 만든 제 환경, 특히 기업별노조와 기업별 노사관계 틀이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3. 복수노조 상황하의 노사관계 실태

1970년대 복수노조의 상황

 앞에서 서술한 대로 일본에서 복수노조가 크게 문제가 되었던 것은 1950년대 말~1960년대 초의 시기였다. 이후 친사용자적인 제2노조가 대다수 기업에서 지배적 노조로 되고 제1노조는 기업에서 소멸하거나 명맥만 유지하는 소수파 노조로 되면서 복수노조와 관련한 연구나 조사 자체가 크게 줄어들었다. 따라서 현재 복수노조가 어떠한 형태로 존재하고 있으며 어떠한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현황도 잘 파악되지 않고 있는 형편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1975년에 실시된 복수노조 실태조사를 통해 당시의 복수노조의 상황을 살펴보기로 한다. 이 조사에 따르면 [표3]에서와 같이 전체적으로 볼 때 조사대상이 된 복수노조의 이념적 성향은 좌파인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으며, 복수노조가 발생하는 계기는 압도적으로 조합 분열에 의한 것으로서 새로운 노조의 결성에 의해 복수노조가 된 경우는 매우 드물다. 또 조사대상 복수노조의 대부분은 소수파 노조로서 존재하고 있다. 한편 노조 분열의 주도권이 어디에 있었는가를 묻는 질문에 대해, 좌파 노조의 거의 대부분은 “분열 당했다”고 대답한 반면, 우파 노조는 모두 “적극적으로 분열했다”고 대답함으로써 분열의 주도권이 우파 노조에 있었음을 말해준다. 노조 분열의 시기에 대해서는 대부분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전반에 집중적으로 발생하였으며 이후 급속하게 줄어들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이를 종합하면 복수노조 발생은 좌파 노조로부터 우파 노조가 분열되어 나가는 과정에서 발생하였으며, 분열 후 좌파 노조는 소수파 노조로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한편 복수노조가 존재하는 경우 사용자가 과연 중립유지 의무를 지키고 있는지를 [표4]에서 살펴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즉 체크오프제, 노조 사무소 대여, 노조가 사용한 잡비(통신비 등 사무소 잡비)의 사용자 부담 등 편의제공 측면에서는 대부분의 복수노조가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하고 있으며, 이는 좌파 노조와 우파 노조, 혹은 다수파 노조와 소수파 노조를 막론하고 비슷한 응답 비율을 보였다. 반면 단체교섭의 경우에는 3분의 2를 넘는 노조들이 차이가 있다고 응답하였는데, 이는 좌/우파 노조와 다수/소수파 노조를 막론하고 비슷한 비율로 높았다. 단 임금인상 타결액이나 보너스 타결액 등 눈에 확연히 드러나는 금전 면에서는 복수노조 간에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는 좌/우파 노조나 다수/소수 노조를 막론하고 낮은 비율을 보였다. 반면 승진·승급, 인사고과, 업무의 배분 등 간접적 차별의 경우에는 좌파노조의 3분의 2를 넘는 비율에서 차별을 느꼈다고 응답한 반면, 우파 노조의 경우 별 차이가 없다고 응답함으로써 확연한 차이를 드러냈다. 이로부터 우리는 복수노조가 존재하는 경우 사용자가 임금이나 보너스 등 눈에 뚜렷이 드러나는 측면에서는 차별을 하지 않고 있으나, 승진·승급, 인사고과 등 눈에 잘 안 보이는 간접적 측면에서는 좌파 노조와 우파 노조 간에 상당한 차별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최근의 복수노조의 상황

일본 후생노동성이 정기적으로 조사하고 있는 『노사관계 종합조사(실태조사)』자료를 통해 보다 최근의 복수노조하의 노사관계의 실태를 알아보기로 한다. 먼저 [표5]에서 보듯이 2008년 현재 전체 단위노조의 13.2%가 자기 사업장 내에 다른 노조가 있다고 응답함으로써 복수노조 비율이 10%를 약간 넘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 가운데 사업장 단위로 조직된 단위조직조합(기업별노조)의 경우에는 8.3%, 상급조직(산별, 직업별노조)의 하부단위 조합인 지부 등의 경우에는 17.6%가 복수노조를 가지고 있다. 즉, 기업별노조보다는 산업별, 지역별, 직업별 등 횡단적 조직을 가진 노조의 지부인 경우에 복수노조가 될 가능성이 두 배가량 높다.



한편 [표6]에서 복수노조 유무별 노조원 범위를 살펴보면 몇 가지 흥미 있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첫째, 정규직 외의 노동자에 대해서는 조합원 자격을 부여하는 노조의 비율이 전체적으로 그다지 높지 않다. 즉 조합원 자격을 부여하는 비율이 높은 것부터 보면, <관련기업으로 간 출향자 → 촉탁노동자 → 관리직, 전문직 → 계약노동자 → 정년퇴직자 → 외국인 노동자 → 파트타임 노동자 → 임시노동자 → 관련기업에서 온 출향자 → 파견노동자 → 하청기업 노동자> 순으로, 기업에의 부착도가 높은 사람으로부터 낮은 순으로 비율이 낮아지고 있다. 그런데 정규직을 제외하면 조합원 자격 비율이 대부분 50% 미만으로 낮은 것을 알 수 있다.

둘째, 복수노조 유무에 따라 조합원 자격의 범위 면에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거의 모든 노동자 범주에서 복수노조 쪽이 보다 폭넓게 조합원 자격을 인정하고 있으며, 실제 조합원이 존재하고 있는 비율도 더 높다. 특히 관리직, 전문직, 계약노동자, 촉탁노동자, 정년퇴직자, 파견노동자, 외국인 노동자 등은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는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는데, 우선 비정규직이 많이 존재하는 곳에서 별도의 노조 설립이 더 용이하기 때문에 복수노조가 될 확률이 높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이 표에서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대부분의 범주에서 복수노조가 없는 사업장의 경우에 비정규직의 비율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어 이 가설은 성립하지 않는다. 다른 하나의 가설은 복수노조일수록 생존의 위기에 몰리기 때문에 비정규직을 조합원으로 조직하려고 더 많이 노력한다는 가설이다. 이 가설을 실제로 확인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셋째, 대부분의 경우에 조합원 자격이 있다는 비율보다 실제로 조합원이 있는 비율은 낮은 편이다. 특히 일부 범주에서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는 일단 형식상으로는 비정규직에게도 조합원 자격을 주었지만 비정규직의 취약한 상황으로 인해 노조가 비정규직을 적극적으로 조직하지 않았거나 혹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조합 가입을 회피한 결과로 해석된다.

한편 [표7]을 보면 복수노조하에서의 노조의 조직확대 정책의 내용을 보다 자세히 알 수 있다. 복수노조가 있는 경우든 없는 경우든, 일단은 조직확대 정책의 주요 대상은 기업 내의 정규노동자이다. 단, 이 경우에도 복수노조가 있는 경우에 더 활발하게 조직화 노력을 하고 있다. 한편 비정규직의 경우, 조직확대 정책의 대상으로 삼는 노조의 비율은 훨씬 낮다. 또한 파트타임을 제외한 대부분의 범주에서 복수노조가 있는 쪽이 없는 쪽에 비해 더 활발하게 조직화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조직화의 주 대상은 계약노동자, 정년퇴직자, 촉탁노동자, 관리직 등의 순으로 나타나고 있다.






[표8]에는 사항별로 회사규정 혹은 단체협약이 있는 노동조합의 비율이 표시되어 있다. 먼저 임금 및 복리후생에 관한 사항은 대부분의 노조에서 규정 혹은 단체협약으로 정하고 있다. 단, 경영에 관한 사항 및 고충처리기관 등은 그 비율이 약간 떨어지고 있다. 복수노조 유무별 차이를 살펴보면, 복수노조가 있는 경우에 단체협약으로 임금 및 복리후생에 관한 사항을 정하는 비율이 약간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조합활동에 관한 사항을 살펴보면 체크오프제, 취업시간 중 조합 활동, 조합의 기업시설 이용 등에 관한 규정의 비율이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전형적인 기업별노조가 가진 특성에 기인한다. 이러한 조항들에 대해서는 복수노조 유무에 따른 차이가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유니언 숍이나 유일교섭단체 조항 등은 복수노조가 없는 경우에 약 3분의 2 정도의 노조에서 규정이 있다고 응답한 반면, 복수노조가 있는 경우에는 그 비율이 50% 이하에 머물고 있다. 이는 역시 복수노조가 없는 경우에 유니언 숍 협정이나 유일교섭단체 협정을 체결하기가 더 용이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단체교섭 및 쟁의행위에 관한 사항들을 살펴보면, 단체교섭에 관한 사항 및 쟁의행위 예고 조항들은 70%가 넘는 노조에서 발견되고 있으며 복수노조 유무별로 큰 차이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합원 인사에 관한 조항들은 대부분 매우 높은 비율로 규정에 정해져 있다고 응답하였는데, 단체협약에 있는 비율은 50~60% 정도에 머물고 있다. 복수노조 유무별로 보면 대체로 큰 차이는 없지만 복수노조가 있는 경우에 단체협약에 의해 정하는 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표9]에서 복수노조 유무별로 회사의 편의제공 및 조합원 평균연령을 비교해 보면, 조합사무소, 조합비 체크오프제 등에서 모두 높은 비율을 나타내고 있으며, 복수노조 유무별로 큰 차이는 발견할 수 없다. 반면 유니언 숍 협정 면에서는 앞에서 본 대로 복수노조가 없을 경우가 있을 경우에 비해 훨씬 높은 비율을 보이고 있다.

복수노조 유무별로 가장 큰 차이를 나타내고 있는 것은 조합원 평균연령이다. 즉 복수노조가 있는 경우 조합원 평균연령이 훨씬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조합원 평균연령이 2, 30대인 경우에는 거의 대부분이 복수노조가 없다고 응답한 반면, 평균연령이 45세 이상인 경우 복수노조가 있는 비율이 20~30%에 달하고 있어 복수노조에서 조합원 노쇠화 현상이 훨씬 심각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4. 보건의료산업 복수노조의 사례

보건의료산업의 복수노조 상황

이 절에서는 일본의 복수노조 운영 실태를 알아보기 위해 보건의료산업의 복수노조 사례를 살펴보기로 한다. 앞의 [표2]에서 보았듯이 일본의 보건복지산업에서 기업별 복수노조의 비율은 10% 정도이다. 보건의료산업을 조직대상으로 하고 있는 노동조합은 [표10]에서 보는 바와 같이 △연합, △전노련, △기타 소속 등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 가운데 가장 세력이 큰 것은 전노련 소속의 ‘일본의노련’으로서, 노조 수 1,075개, 조합원 수 144,551명이다. 그 뒤를 ‘자치노’(연합 소속), ‘자치노련’(전노련 소속) 등이 뒤따르고 있다. 이들 노동조합 가운데 병원 노동조합은 약 2,000개에 달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복수노조가 있는 병원사업장은 약 100군데 정도로 나타나고 있다(일본의노련 인터뷰). 이들 중 복수노조가 가장 많은 곳은 적십자병원이다. 아래에서는 일본적십자병원을 중심으로 보건의료산업에서의 복수노조의 실태를 살펴보고자 한다.



일본적십자사는 1877년 창립된 박애사(博愛社)를 전신으로 하며, 1886년 일본정부가 제네바 조약에 가입함에 따라 1887년에 명칭을 ‘일본적십자사’로 개칭하였다. 일본적십자사는 일본적십자사법이라는 법률에 근거하여 설치된 특수법인으로서, 매년 일정한 자금을 납부하는 사원이 조직의 기초를 이루는데, 2009년 3월 말 현재 개인사원이 약 1,129만 명, 법인사원이 약 16만 개에 달하고 있다. 적십자사의 사업을 수행하기 위해 본사, 지부, 병원, 혈액센터, 사회복지시설 등 모두 414개소의 시설을 가지고 있으며, 전체 직원 수는 57,944명이고, 이 가운데 4만 9천여 명이 의료시설에 근무하고 있다. 그 가운데 의사는 5,163명, 간호사는 32,786명, 검사기사 및 약사 등은 7,974명이다. 직원과는 별도로 다양한 형태의 비정규직 약 1만 명이 근무하고 있다. 2010년도 일반회계 예산은 327억 엔이며 이와는 별도로 의료시설특별회계가 8,858억 엔, 혈액사업특별회계가 1,577억 엔에 달하고 있다(日本赤十字社, 2010).

일본적십자사에는 현재 3개의 노동조합이 존재하고 있는데 즉 전노련/일본의노련 가맹조직인 전일본적십자노동조합연합회(이하 ‘전일적’)가 60개 노조에 노조원 수 7,301명, 연합/헬스케어노협 가맹조직인 일본적십자노동조합(이하 ‘일적노’)이 조합원 6,500명, 그리고 상급단체에 가입하지 않은 독립노조인 일본적십자신노동조합연합회(이하 ‘일적신노’)가 47개 노조에 6,782명의 조합원을 가지고 있다.

일본적십자사의 복수노조 설립의 역사는 전형적인 노동조합 분열의 역사이기도 하다. 1945년 패전과 더불어 미군 점령군 당국에 의해 노동조합의 결성 및 활동이 자유화됨에 따라 동년 12월 일본적십자사 중앙병원에서 ‘일적중앙병원노동조합’이 결성되었는데, 이는 전후의 의료노동조합 결성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기도 했다(日本醫療勞動組合連合會, 2007). 노동조합 결성 움직임은 일본적십자사 본사, 지사 및 전국의 적십자병원으로 확산되었고, 1946년 3월에는 이들이 모여 적십자사 노조의 단일조직으로서 ‘전일적’이 결성되었다. 동년 4월에는 전일본의료종업원조합협의회(이하 ‘전의협’)가 결성됨에 따라 전일적은 여기에 가맹하였고 같은 해 5월에는 최초의 단체협약을 체결하였다.

최초 2,200명으로 시작한 전일적은 7,000명으로 조합원을 늘였으나, 1957년 의료산업에 종사하는 모든 노동자들의 산별 연맹조직으로서 ‘일본의료노동조합연락협의회’(공산당 계열)가 결성되면서 그 가맹 여부를 둘러싸고 전일적의 주류파(공산당)와 비주류파(사회당) 사이에 갈등이 발생함에 따라, 이들 비주류파가 노조를 탈퇴하여 ‘일적노’를 결성하였다. 따라서 당시의 분열은 좌파 내의 이데올로기에 따른 분열이라고 할 수 있다. 이어서 1961년에는 전일적의 잇달은 총파업에 반발한 본사 직원 중심의 사무직 노동자들이 노사협조주의 노선의 독립노조인 ‘일적신노’를 결성하였는데, 이는 사용자의 친사용자적 노조 설립 움직임을 배경으로 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 시기에 다른 산업에서도 다수가 결성되었던 사용자 지원하의 제2노조가 결국 다수파가 되고 투쟁적인 제1노조는 소수파 노조로 되는 일반적 경우와는 달리, 일본적십자사에서는 투쟁적인 제1노조가 비록 세력은 약화되었지만 다수파 노조로서 유지될 수 있었다. 이는 예외적인 경우라 할 수 있는데, 예외로 남을 수 있었던 이유로는, 첫째, 의료산업의 안정성으로 인해 투쟁적 노조원에 대한 징계나 해고, 사업장 폐쇄 등과 같은 극단적 조치를 취하기가 어려웠던 점, 둘째, 사용자가 민간부문이 아니라 특수법인 형태이며 더욱이 의료산업의 공공성으로 인해 노동조합에 대한 노골적인 탄압을 하기가 어려웠던 점, 셋째, 전체 종업원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간호사 직종의 동질성과 단결력, 그리고 넷째, 노동조합의 투쟁 등을 들 수 있다. 당시에도 사용자가 제1노조를 공격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며, 조합원에 대한 부당배치 등 온갖 부당노동행위를 자행하는 등 노골적인 탄압을 받았다. 그러나 조합원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투쟁함으로써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코토 제1적십자병원 노조 인터뷰). 그러한 점에서 전일적의 경험은 기업별노조라도 단결력과 투쟁력이 있을 경우 반드시 제2노조에 패배하는 것은 아니라는 좋은 사례를 제공해주고 있다.

일본적십자사의 복수노조 운영 상황

일본적십자사의 3개 노조는 각각 회사 측과 별도의 단체교섭을 진행하여 별도의 단체협약을 체결하고 있다. 이 때 회사 측은 3개 노조에 대해 평등하게 교섭하는 데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예컨대 단체교섭 시 주제, 날짜, 시간, 인원 수 등을 평등하게 하고 있다. 단체교섭은 모두 같은 날 진행하되, 각 노조에 2시간씩 배분하여 별도로 진행한다. 교섭 순서는 노조 규모에 따라 <전일적 → 일적노 → 일적신노> 순으로 하고, 다음 교섭 때는 순서를 바꾸게 된다. 이를 위해 일시, 조건 등을 미리 노동조합과 사전 조율을 하게 된다. 단체교섭 시 각 노조가 요구하는 내용이 다른 경우도 발생하는데, 이 때 회사 측은 노조의 요구와는 상관없이 동일한 내용을 제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결과 임금인상률, 보너스, 휴일, 잔업 등에서 기본적으로 같은 내용의 단체협약을 맺게 된다. 회사에 따라서는 약간의 차이가 발생할 수도 있지만, 일본적십자사의 경우에는 동일한 내용의 단체협약을 체결한다.

만약 세 개의 노동조합 가운데 다른 노동조합과는 타결되었는데 어느 하나와 단체협약의 체결에 합의를 하지 못하는 경우, 회사 측은 실무 조정을 통해 합의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래도 안 될 경우 약 1개월 정도 기다린 다음 취업규칙으로 밀고 나가거나 또는 노동위원회 조정에 맡기거나 하는 등의 조치를 취한다. 이는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경우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까지 가는 것은 극히 드물며 대부분은 다수 노조의 교섭결과에 소수파 노동조합이 따르게 된다는 것이 회사 측의 설명이다. “교섭은 성의껏 하지만 소수파 노조는 다수파 노조의 교섭 결과에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 회사 측의 확고한 입장이다(회사 측 인터뷰 결과). 그런데도 노사 간 마찰이 별로 없는 것은 일본 특유의 노사 간 ‘사전조율’ 때문이다. 즉 공식적인 단체교섭이 있기 약 1개월 전부터 회사 측과 노조 측의 실무자들이 만나서 몇 차례 사전조율을 하는데, 특히 임금과 관련된 부분은 대단히 상세하게 조율한다고 한다.

회사 측의 입장에서 볼 때 복수노조가 존재함에 따라 단체교섭을 여러 차례 해야 하는 등 불편이 있지 않은지, 또는 교섭창구 단일화를 희망하는지 등의 질문에 대해, 회사 측은 한 기업 내에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하고 이들이 각각 다른 노동조합을 만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실이므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복수교섭에 대해서도 그다지 불편하다거나 교섭창구 단일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변하였다.

한편 사무실, 게시판, 체크오프제 등 편의제공 면에서는 회사 측은 3개 노조에 대해 완전히 평등하게 대응하고 있다. 예컨대 일본 교토의 제1적십자병원의 경우 종업원 총 1,193명 가운데 노동조합원 수는 126명인데, 그 가운데 전일적 소속이 107명, 일적노조 소속이 19명으로서 전일적 측이 압도적으로 노조원 수가 많다. 그러나 노조 사무실 규모나 게시판 규모 등은 거의 동일하며, 기타 체크오프제 등도 동일하게 적용하고 있다.

이처럼 사용자 측에서는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단체교섭이나 편의제공 등의 면에서 복수노조 간에 평등한 대응을 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으며 노동조합 측도 이 점에 관한 한 큰 문제가 없다고 대답하였다. 그러나 이것이 곧 일본의 복수노조제도 운영상 아무런 문제도 발생하고 있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우선 이처럼 복수노조에 대한 평등대우 원칙이 확립되기까지는 상당한 혼란기를 거쳤다는 점을 지적해야 한다. 일본적십자사의 경우에도 복수노조가 발생했던 1950년대 말~1960년대 초의 시기에는 사용자 측이 노골적으로 전일적을 공격하면서 일적신노 등을 후원하는 경우도 많았고, 이에 대해 전일적 측도 열심히 투쟁하였다고 한다(노조 측 인터뷰 결과). 그러나 현재는 이러한 노골적인 노조 간 중립유지 의무 위반행위는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 대신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행위나 사용자 개입행위 등은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 예컨대 단체교섭 시 형식적으로는 노동조합 간 평등하게 대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회사 측과 협력적인 노동조합과 먼저 합의한 다음, 그 결과를 가지고 회사와 대립적인 노조(전일적)에 강요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전일적은 적십자사의 공익성과 병원 사업장의 특수성 등으로 인해 파업을 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결국 먼저 타결된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된다. 또 신입사원이 들어왔을 때 상급자 등이 특정한 노조에 가입하지 말도록 권유하기도 한다. 특히 사무직 남자의 경우 노골적으로 “노조에 가입하면 출세를 하지 못한다”고 위협하는 경우가 많다(노조 측 인터뷰 결과).

한편 복수노조 간에는 거의 아무런 협의나 공동행동도 존재하지 않으며, 서로 무관심한 상태이다. 교토 제1적십자병원의 경우 전일적 사무실과 일적노 사무실이 거의 붙어 있는데도 서로 간에 상대방 노조가 무슨 활동을 하고 있는지 모를 뿐만 아니라, 심지어 조합원 수나 단체교섭 내용과 같은 기본적인 사항조차 서로 모르고 있었다. 미국의 복수노조와는 달리 일본에서는 복수노조 간 치열한 조직화 경쟁이 존재하지 않고 있다. 기업별 노사관계에서는 조직화 경쟁을 벌이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회사 측에 의한 일본식 노무관리가 관철되고 있기 때문에 각 노조가 자기의 영역을 넘어서서 다른 노조 소속 노조원을 빼내려고 시도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각 노조는 서로 자기 영역 안에서 자기를 지키는 투쟁을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결국 일본에서 복수노조는 존재하더라도 노조 간 조직화 경쟁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기업별노조의 한계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리츠메이칸 대학교 요시다 교수 인터뷰 결과).

물론 일본의 노동조합들도 복수노조가 있으면 노동운동의 힘이 약화되기 때문에 단결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데는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일본의노련 및 헬스케어노협 인터뷰 결과). 그러나 복수노조가 단일노조로 통합하거나 혹은 공동행동을 취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반응이 많았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경영자 측이 노동조합의 단결을 싫어하므로 방해 행위를 한다는 것, 병원 내에 다양한 직종이 있기 때문에 이 상이한 요구들을 일치시키는 것이 어렵다는 점, 노조 간 이념이 다르고 노선이 다르며 이는 오랜 역사적 과정을 통해 굳어져 있다는 점 등을 들고 있다.

5. 요약과 시사점

일본은 여러 가지 면에서 한국의 노사관계의 ‘거울’ 구실을 하고 있다. 복수노조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기업별노조-기업별 노사관계를 전제로 하여 복수노조 제도가 운영되고 있는 일본의 상황은 한국에서 복수노조가 허용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지를 예측하는 데 있어 큰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물론 한국과 일본의 차이점에 대해서도 지적해 둘 필요가 있다. 먼저 제도적 측면에서, 일본에서는 자율교섭제도를 택하고 있는 반면, 한국에서는 배타적 교섭제도를 택하고 있는 점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또한 일본에서는 유니언 숍 협정의 체결이 비교적 쉬운 반면, 한국에서는 종업원 3분의 2 이상을 조직한 노조에 대해서만 유니언 숍 협정 체결이 가능하므로 보다 어렵다는 점도 차이이다. 한편 운동의 주체 면에서도, 일본의 노동조합들은 대부분 노사협력적 경향을 띠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비해 한국에서는 사용자와 대립적인 자세를 취하는 노동조합들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노동조합의 구조나 단체협약의 구조 측면에서도, 일본은 거의 대부분 기업별 노동조합-기업별 노사관계라는 구조를 취하고 있는 데 비해 한국에서는 비록 형식적으로나마 산별 노조화가 상당히 진행되었으며 일부에서는 산별 교섭을 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에도 일단 한국에서 사업장 단위의 복수노조가 허용될 경우 일본과 유사한 상황이 벌어질 것으로 전망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즉 사용자에게 대립하는 노동조합이 있는 사업장에서 사용자들이 지원하는 제2노조가 설립되고 반사용자적인 제1노조는 점차 약체화되어 소멸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국에서는 더욱이 배타적 교섭제도를 택하고 있으므로 소수파 노조가 기업 내에서 존재할 수 있는 여건이 더욱 열악하다. 단체교섭권을 잃어버리고 일본과 같은 평등대우도 받을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소수파 노조가 기업 내에서 잔존할 수 있는 확률은 매우 낮다는 것이다. 이러한 예측은 더 나아가 ‘산별노조의 위기설’로 이어지고 있다. 현행 법률이 기업별노조-기업별교섭을 전제로 하여 디자인되어 있을뿐더러, 일단 기업 내에서 복수노조 간 경쟁이 벌어질 경우 현장에 밀착되어 있고 사용자의 지원을 받기 쉬운 기업별노조가 산별노조에 비해 더 우위에 설 것이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이처럼 복수노조가 허용될 경우 투쟁적 노조의 위기론 내지 산별노조의 위기론의 배경이 되는 것이 일본의 복수노조 경험이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1950년대 말~1960년대 초에 걸쳐 기업 내의 기존 노조가 분열되면서 사용자의 지원을 받는 제2노조가 지배적 노조로 되고 기존의 투쟁적인 제1노조는 소멸하거나 혹은 소수파 노조로서 명맥만 유지하는 경우가 다수 발생하였다. 그 결과 비록 노동조합의 설립이 자유롭고 자율교섭제도까지 실시되고 있지만, 일본에서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의 존재 확률은 겨우 13% 정도에 머물고 있어 복수노조의 의미가 퇴색되어 있다.

그러나 한국에 소개되고 있는 일본의 복수노조 경험은 매우 일면적일뿐더러 일본의 노동운동의 쇠퇴 원인에 대해서도 잘못된 진단을 하고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우선 일본의노련이나 적십자병원의 사례에서 보듯이 일본에서도 반드시 투쟁적 노조가 기업 내에서 소멸하거나 혹은 소수파 노조로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상당수 노조들은 사용자의 탄압이나 노사협력적 노조와의 경쟁을 이겨내고 기업 내에서 다수파 노조로 존재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여 둔다. 뿐만 아니라 설혹 투쟁적 노조가 경쟁에서 패배하여 소수파 노조가 되었다 하더라도 단순히 명목상으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며, 임금투쟁, 반합리화 투쟁, 권리의 행사 투쟁, 안전 및 직업병 투쟁, 하청기업 종업원의 권리옹호 투쟁, 반공해 투쟁, 기업 외 제 조직과의 연대활동 등 다양한 영역에서 성과를 올리고 있다는 사실이 실태조사 결과 밝혀졌다(河西宏祐, 1990). 그러한 면에서 소수파 노조의 성과를 지나치게 무시했던 데 대한 반성도 나타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한편 일본의 노동운동의 쇠퇴 원인을 복수노조제도 및 이에 따른 노조 간 경쟁 격화로 돌리는 것 역시 잘못된 진단으로 생각한다. ‘단결의 자유 원칙’에 따라 노동조합의 설립을 자유롭게 허용하는 것은 국제노동기구(ILO) 등 국제사회가 인정하고 있는 대원칙이다. 뿐만 아니라 실제로 영국 등 여러 나라에서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제도가 존재하고 있음에도 별다른 문제없이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여야 한다. 따라서 일본에서 투쟁적 노동운동이 쇠퇴하고 노사협력주의 노조가 득세한 원인은 복수노조제도 그 자체보다는 기업별 노동조합-기업별 노사관계라는 요인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종래부터 기업별노조의 한계로서, 기업별노조가 기업별 의식에 묶여 있어 기업을 넘어선 노동조건의 횡단적 규제를 할 수 없다는 점, 기업을 넘어선 국가의 노동정책, 사회보험정책, 사회정책 등에 대해 전혀 영향을 끼칠 수 없다는 점, 노동조합이 기업 내 정규노동자의 조직화에만 집중함으로써 광범한 미조직 노동자를 조직할 수 없다는 점 등이 지적되어 왔다. 그런데 이에 더하여 복수노조하에서 기업별노조가 가진 한계로서 일단 기업 내의 복수노조 간 경쟁에서 패배할 경우 더 이상 기업 내에서 존립근거를 찾기 어렵기 때문에 노조가 소멸하거나 명맥만 유지할 수밖에 없게 된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반면 산별노조나 직업별노조 등 기업 밖에 근거를 가지고 있는 노동조합의 경우 어떤 한 기업에서 소수파 노조로 된다고 하더라도 노조가 가진 자원을 다른 분야로 집중시킴으로써 새로운 분야의 조직화를 통해 노조가 생존, 발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리한 측면이 있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일본의 사례는 한국의 노동운동에 ‘반면교사’의 역할을 하고 있다. 기업별로 묶여 있었던 일본의 노동운동이 사용자의 공세에 견디지 못하고 패배한 것과는 달리 한국의 노동조합들은 그동안 끊임없이 산별노조-산별교섭체제로의 전환을 위해 노력해 왔으며 또 상당한 성과를 올린 것도 사실이다. 이제 복수노조 시대를 맞아 이러한 성과가 한 순간에 물거품으로 사라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기업별노조 시대로 돌아갈 것이 아니라 진정한 의미에서의 산별노조-산별교섭체제가 자리 잡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얼핏 생각하면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제도 아래서 산별노조가 위기에 몰릴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오히려 기업의 틀을 벗어나 노조 자원을 보다 집중적이고도 유연하게 사용할 수 있고 단결력과 투쟁력 및 정치적, 사회적 영향력이 더 큰 산별노조가 기업 내의 노조에 비해서는 훨씬 발전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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