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복수노조 제도하의 노동조합 간 갈등과 협력


[기획] 미국의 복수노조 제도하의 노동조합 간 갈등과 협력

보건의료산업을 중심으로
 
윤진호 (인하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ecoyoon@inha.ac.kr
 

1. 머리말

2010년 1월1일의 노동조합법 개정에 따라 2011년 7월1일부터 한국에서도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가 허용됨으로써 조만간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 시대’가 열린다.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 금지는 우리 헌법과 노동관계법에 명시된 단결의 자유원칙에 부합되지 않는 제도로서 국제노동기구(ILO) 등으로부터 오랫동안 개정요구를 받아왔을 뿐만 아니라, 노동계의 오랜 숙원사항이었다는 점에서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 허용은 단결권 보장에 있어 노동기본권의 중요한 진전이라 하겠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는 허용하면서도 교섭창구는 단일화하도록 함으로써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이라는 또 다른 중요한 노동기본권에 근본적인 제약이 가해지게 될 것이라는 우려도 높은 실정이다. 실제로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 허용과 함께 교섭창구 단일화에 따른 배타적 교섭제도가 도입됨으로써 소수노조의 단체교섭권 박탈, 교섭창구 단일화를 둘러싼 노동조합 간 갈등, 노-노 간 갈등을 틈탄 사용자의 개입 및 어용노조 세우기, 공정대표의무제도의 실효성 등 다양한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이와 관련하여 노동조합은 그 동안 주로 배타적 교섭제도의 도입에 반대하면서 자율적 교섭제도의 도입을 주장하는 데 투쟁의 중심을 두어 왔다. 그러나 법률개정이 이미 이루어졌고 내년부터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 및 교섭창구 단일화가 현실화됨에 따라 이러한 제도 개정이 과연 노동조합과 단체교섭의 실제 운영에 어떠한 영향을 가져올 것인가, 그리고 이에 대해 노동조합이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하는 보다 현실적인 문제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한국의 노동조합들이 지금까지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 제도와 배타적 교섭제도 아래서 노동조합의 운동전략 방향을 수립하는 데 있어, 이미 유사한 제도를 도입, 시행하고 있는 다른 선진국들의 사례를 참고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일 것이다. 선진국의 경우 대체로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제도와 자유교섭제도를 택하고 있는 ‘유럽형’과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제도와 배타적 교섭제도를 택하고 있는 ‘미국형’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미국의 경우 사업장 단위의 복수노조를 허용하는 동시에 배타적 교섭제도를 취함으로써 주요 선진국 가운데 한국과 가장 유사한 제도를 가지고 있어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 글은 특히 미국의 보건의료산업을 대상으로 한정하여 복수노조 운영 실태와 그 시사점을 파악하는 데 목적이 있다. 특히 이 글에서는 주로 복수노조 제도하의 노동조합 간 갈등과 협력관계의 실태를 살펴보고자 한다.

2. 미국의 복수노조와 단체교섭제도 개관

미국에서 노동조합의 결성은 자유롭게 이루어진다. 특히 민간부문 노동자들은 1935년 입법된 전국노사관계법(NLRA)에 의해 자유롭게 단결하고 단체교섭 및 단체행동을 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일정한 자격요건만 구비하고 등록만 하면 노조의 결성 및 신규 노조원의 개별 가입 등을 자유롭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사업장 단위에서의 복수노조 존재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노동조합 형태 역시 기업별, 직업별, 산업별 등 어떠한 형태로든 가능하다. 그러나 노동조합이 존재한다고 해서 모두 사용자와의 단체교섭권을 인정받는 것은 아니다.

교섭단위별 배타적 단체교섭권 제도

미국은 이해관계를 같이 하는 노동자들로 구성되는 ‘교섭단위’(bargaining unit)별로 종업원 과반수의 지지를 받은 노동조합에 대해서만 단체교섭권을 부여하는 배타적 단체교섭권 제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교섭단위별로 하나의 노동조합만 교섭권을 가지게 된다. 이 때 ‘교섭단위’란 “공통의 이해관계를 가진 노동자들로 구성되는 단위”를 말하는데 예컨대 한 사업장 내에서 동일직종에 근무하는 노동자들의 집단을 말한다. 따라서 하나의 사업장 내에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노동자들로 구성된 여러 개의 교섭단위가 존재할 수 있으며, 각 교섭단위별 대표권을 가진 노동조합은 모두 단체교섭권을 가지고 있다.

교섭단위를 어떻게 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오랫동안 노사 간 쟁점으로 되어 왔는데, 병원의 경우 미국의 노사관계를 관할하는 정부기관인 전국노사관계위원회(NLRB)가 1991년 모두 8개의 교섭단위를 인정하였고 이는 대법원 판결로 확정되었다. 즉 전문직의 경우에는 의사, 등록간호사(RN), 기타 전문직 종사자(약제사, 의료기술자 등) 등 세 직종이, 비전문직의 경우에는 기술자(실무간호사(LPN), 실험실 기술자 등), 숙련된 설비유지노동자(skilled maintenance workers), 사무직, 기타 비전문직/서비스직, 경비직 등 5개 직종이 교섭단위를 구성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병원에서 8개의 교섭단위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고, 그때그때의 사정에 따라 교섭단위가 넓게 구성되기도 하고 좁게 구성되기도 한다.

이처럼 교섭단위별로 서로 다른 노동조합이 대표권을 가질 수 있으므로 한 병원 내에 교섭단위가 다른 두 개 이상의 노조가 존재할 수 있지만 이러한 경우는 일반적으로 복수노조라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미국의 상황에서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란 “특정한 직종이나 직업 내의 동일한 이해관계를 가진 노동자들에 대해 두 개 이상의 노동조합이 적극적으로 경쟁하면서 병존하고 있는 상태”(Pawlenko, 2006)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배타적 교섭권 인정 방법: 대표권 승인투표와 사용자 자발적 승인

한 노동조합이 배타적 교섭권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그 노조가 해당 교섭단위 노동자들을 대표하고 있음을 인정받아야 하는데 이는 주로 두 가지 방법으로 이루어진다. 첫째, NLRB 주관의 ‘대표권 승인투표’(certification vote)를 통하는 방법이 있다. 즉 노동조합이 특정한 교섭단위에 소속된 노동자들의 최저 30% 이상으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음을 증명하면(이는 주로 ‘노조 지지카드’에 서명을 받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NLRB에 대표권 승인투표 실시를 요구할 수 있고 여기에서 해당 교섭단위 노동자의 50% 이상의 지지를 얻으면 해당 교섭단위에서 배타적인 단체교섭 주체로서 인정받게 되는 것이다. 이때 선거는 하나의 노조만을 대상으로 진행될 수도 있고 혹은 서로 대표권을 주장하는 두 개 이상의 노조(각각 교섭단위 노동자의 30% 이상의 지지를 받았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를 대상으로 할 수도 있다. 예컨대 두 개의 노동조합이 참가하고 있는 경우에는 노동자는 “A 노조”, “B 노조”, “노조 없음” 등 세 가지 선택지 가운데 어느 하나를 투표하며, 어느 쪽의 선택지도 과반수를 획득하지 못한 경우에는 상위 두 가지 선택지에 대해 결선투표를 하게 된다. 어느 경우든 과반수 득표를 한 노조가 해당 교섭단위 전체에 대해 배타적 교섭대표권을 갖게 된다(Fraundorf, 1990).

둘째, 사용자의 자발적 승인을 통한 방법이 있다. 즉 어떤 노동조합이 해당 교섭단위의 노동자들을 대표하고 있다고 사용자가 인정할 경우(노조 요청에 의하든,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이유에 의하든 상관없다), 사용자는 지지서명 카드 제출 절차를 거치지 않고 직접 NLRB에 노조 승인투표를 요청할 수 있다. 이 투표에서 노조 지지가 50%를 넘게 되면 그 노동조합은 해당 교섭단위의 배타적 단체교섭 주체가 되는 것이지만, 민간부문에서 사용자의 자발적 승인은 드문 것이 사실이다.

절차 복잡하고 사용자 개입 쉬운 대표권 승인투표

그런데 노동조합 대표권 승인투표는 그 절차가 매우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며 사용자의 여러 방해공작이 있기 때문에 노조의 승리 가능성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그림1]에는 미국의 노동조합 대표권 투표 총수와 노조의 승리 수의 추세가 표시되어 있다. 



 이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노조 승인투표 총수는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는데, 1997년(3,261건) 대비 2009년 투표 수(1,304건)는 겨우 40%에 불과하여 이 12년 동안 약 60%의 감소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노조가 승리한 투표 수 역시 1997년의 1,656건으로부터 2009년에는 864건으로 거의 50% 가까이 감소하였다. 투표 수 대비 노조 승리 수의 비율은 1997년의 50.8%로부터 2009년에는 66.3%로 상승하였지만, 이는 투표 신청 수의 급격한 감소에 따른 효과일 뿐이다. 즉 노조는 조직화 드라이브를 통해 노조지지 카드 서명을 받는데, 법률적으로는 30% 이상 지지를 받으면 대표권 투표를 신청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교섭단위 노동자의 적어도 60% 이상 지지를 얻어야만 승리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이 목표에 미달하면 투표 신청 자체를 하지 않는다. 그 결과 투표 수 자체가 급격하게 감소하였다. 따라서 표면적인 승리율은 그다지 큰 의미는 없다 하겠다.

노조 승인투표는 보통 노동조합의 신청 후 4~8주가량 후에 이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때로는 상당 기간 연기될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사용자들은 노조 승인을 막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노조가 생기면 회사가 망할 것이라고 협박하거나 외부의 노조파괴 전문가나 상담업체, 변호사들을 고용하여 노조 결성을 막고자 한다. 특히 병원사업장의 경우 수간호사 등 관리직에 있는 간호사들은 간호직의 ‘전문성’을 앞세우면서, “노조는 광부, 트럭운전사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비난하면서 간호사들의 노조 가입을 막는다(Gordon, 2009). 사용자는 주로 협약단위의 적절성 여부(예컨대 한 기업이 여러 곳에 사업장을 가지고 있는 경우, 단일 사업장이 아니라 복수의 사업장이 협약단위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노조의 조직화 노력을 어렵게 만들려고 시도한다)나 노조지지 카드의 진실성 여부, 종업원 자격 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함으로써 노조 승인투표를 연기시키려고 시도하게 된다.

일단 노동조합이 대표권 승인투표에서 과반수를 획득하거나 사용자가 자발적으로 노동조합의 대표권을 승인하게 되면 NLRB는 당해 교섭단위의 단체교섭을 목적으로 하는 배타적 권리를 가진 자로 그 노동조합을 승인하게 되며, 일단 노조가 승인되면 사용자는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라 교섭을 해야 할 의무를 지니게 된다. 동시에 그 노동조합은 자신의 조합원뿐만 아니라 다른 소수 노조 소속 조합원, 혹은 더 나아가 비조합원의 이익까지도 성실하게 대표하여야 할 ‘공정대표의무’를 지게 되며, 만약 이를 어기게 될 경우 부당노동행위로 제소될 수 있다. 즉 사용자뿐만 아니라 노동조합도 부당노동행위의 제소대상이 된다는 것이 미국 노동법의 또 하나의 특징이다. 한편 종업원 과반수 획득에 실패한 소수 노조가 사용자에게 단체교섭을 요구할 경우, 사용자는 이에 응할 의무가 없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소수노조가 사용자에게 단체교섭을 강제하는 행위를 “부당노동행위”로 규정하여 처벌할 수 있게 함으로써 소수 노조의 존재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배타적 교섭권에 대한 법제도적 보호와 소수 노조 배제

이처럼 미국에서는 노동조합이 대표권을 승인받고 교섭권을 가지게 되는 절차가 매우 까다롭고, 따라서 사업장에서 노조가 설립되기가 어렵지만 일단 해당 교섭단위의 배타적 교섭권을 확보한 노동조합은 여러 가지 법적, 제도적 보호를 받게 되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무엇보다도 배타적 교섭제도 자체가 기존 노조를 보호하는 가장 중요한 기제로 작용하고 있다. 노동조합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사용자와의 단체교섭을 통해 조합원의 임금과 근로조건을 유지, 향상시키는 것인데, 교섭권이 없는 소수노조는 사업장 내에서 거의 아무런 역할을 할 수 없으므로 미국의 산별노조들은 해당 사업장에서 소수노조로 남기보다는 조직을 철수시키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미국에서는 사업장 단위에서 대표노조 외의 소수노조가 존재하는 경우가 드문데(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2010) 이는 배타적 교섭제도의 직접적 결과라 할 수 있다.

둘째, 노동조합의 대표권 승인이 이루어진 후 1년이 지나기 전까지는 새로운 대표권 선거를 할 수 없도록 NLRA은 규정하고 있다. 1년이 지난 후 해당 협약단위 노동자들이 기존의 노동조합의 대표권을 부정하거나 사용자가 기존의 노동조합의 대표권을 부정할 경우, 노동조합의 대표권을 재확인하기 위한 투표를 실시하는데 이를 ‘대표권 승인철회(decertification) 투표’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 승인철회 투표가 남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승인 후 1년간은 신청을 할 수 없도록 금지함으로써 기존 노동조합의 안정성을 보장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 일단 유효한 단체협약이 체결된 경우, 그 협약의 지속 기간(최장 3년간을 한도로) 동안은 새로운 대표권 승인 투표를 할 수 없도록 NLRA은 규정하고 있다. 미국의 단체협약은 보통 3년 정도의 장기에 걸친 유효기간을 가지는데 이 기간 동안은 기존 노조의 대표권이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일단 대표권을 획득한 노동조합은 단체협약 유효기간이 종료되더라도 새로운 대표권 확인 투표를 요구하는 청원이 없는 한 대표권을 자동적으로 유지하게 된다. 그러나 종종 사용자들이 종업원들의 30% 이상 서명을 받아 노조 승인철회 투표를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 노조 승인철회 투표에서 50% 이상의 지지를 받아야 대표권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넷째, NLRB는 일반적으로 직종별 교섭단위가 기존 산별 교섭단위에서 이탈하려고 할 경우 이에 대해 부정적 판정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노사관계의 안정성” 때문이다. 이처럼 직종별노조가 산별노조로부터 탈퇴하여 별도의 교섭단위를 구성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예컨대 어떤 병원에서 대표권을 가진 기존 노조가 아닌 다른 외부 노조가 대표권 경쟁을 하고 싶어도, 각각의 직종별 교섭단위가 아니라 모든 직종을 아우른 전체 교섭단위를 상대로 종업원 지지경쟁을 해야 하므로 경쟁에서 이기기 어려운 것이다(Pawlenko, 2006).

노조 간 공격금지협정

다섯째, 노동조합총연맹 스스로가 산하 노조 간, 혹은 다른 총연맹 소속 노조와의 경쟁을 피하기 위해 이른바 ‘노조 간 공격금지협정’(no-raid agreement)을 맺고 있는 경우가 많다. AFL과 CIO의 산하조직들은 1954년 조직 상호 간의 지나친 경쟁과 분규를 막기 위해 공격금지협정을 자발적으로 체결하였는데(AFL-CIO, 1954) 당시 AFL-CIO 산하 140개 연맹 가운데 105개 연맹이 여기에 참여할 정도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Cole, 1969). 이 협정은 초기에는 자발적이었지만 AFL-CIO 집행위원회는 1958년 공격금지협정을 전 산하조직이 지켜야 할 의무조항으로 규정하고, 이를 어길 경우 집행위원회에서 심의, 판정하도록 하였다. 이 규정은 초기에는 산하조직이 어기는 경우가 많아 상당한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차츰 전체 조직에 받아들여져서 거의 대부분 이 규정을 준수하게 되었다.

AFL-CIO는 1962년에 다시 정관 제 20조를 신설하였는데 여기서는 산하노조들이 다른 조직의 단체협약을 존중해야 할 뿐만 아니라, 특정 공장이나 사업장 단위의 조합원들이 관습적으로 행하는 작업까지도 존중하여 이를 공격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조직화 캠페인 과정에서 다른 조직에 대한 비방을 해서는 안 되며, 정관 20조를 어길 경우 집행위원회에 제소하여 판정을 받도록 하고 있다. 이 조항을 위반한 산하조직에 대한 처벌조항도 포함되어 있는데, 예컨대 해당 조직에 대해서는 공격금지조항을 적용하지 않고 다른 노조가 조직화를 할 수 있으며, 피해 노조에 대해 모든 산하노조가 지원을 제공하는 한편 위반노조에 대해서는 모든 지원을 중단한다는 등의 내용이다(Cole, 1969).

AFL-CIO 산하조직 뿐만 아니라 외부조직과도 노조 간 공격금지협정을 체결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2005년 서비스노동조합(SEIU)을 비롯한 7개 산별노조가 AFL-CIO를 탈퇴하여 새로운 총연맹인 ‘승리를 위한 변화연합’(Change to Win Coalition: CTW)을 설립하였을 때, 많은 사람들은 두 총연맹 산하조직 간에 격렬한 조직화 경쟁이 벌어질 것으로 생각하였다. CTW의 설립 명분이 AFL-CIO의 지나치게 소극적인 조직화 노력에 실망하였기 때문이었음을 생각할 때 이는 당연한 기대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CTW는 설립되자마자 그 정관에 ‘산업조정위원회’(ICC)를 두어 산하 노조 간 경쟁을 막았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일부 CTW 산하조직들이 AFL-CIO 소속 노조들과 공격금지협정을 체결함으로써 두 조직 간 경쟁은 실현되지 않게 되었다(Pawlenko, 2006).

1940년대 이후 노조 간 대표권 경쟁의 양상

이상의 여러 가지 법률적, 제도적 장벽으로 인해 미국에서는 사업장 단위의 복수노조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실제로 1954년 AFL-CIO에서 노조 간 공격금지협정이 체결된 이후 미국에서 복수노조 간 경쟁은 뚜렷이 감소하였다. 1940년대에 미국에서는 노조 대표권 투표 횟수의 급증과 더불어 기존노조에 도전하는 노조에 의해 대표권 경쟁이 벌어진 투표 건수 역시 급증하여, 1946년에는 502건에 이르렀으며 비율상으로는 전체의 10.1%를 차지했다. 그러나 이는 1955년에는 272건, 8.5%, 1958년에는 317건, 8.7%로 감소하였다([표1] 참조).



이러한 상황은 1960년대 이후에도 지속되었다. [표2]에서 보는 바와 같이 기존노조에 대한 공격투표 건수는 1965년의 313건으로부터 1985년에는 86건으로 떨어졌으며, 전체 노조 승인투표 가운데 극히 미미한 비율만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단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기존 노조 공격투표의 경우에 노조의 승리 비율이 전체 노조 대표권 투표에 비해 훨씬 높다는 사실이다. 즉 1985년의 경우 전체 대표권 투표 가운데 기존 노조 승리율이 46.5%, 공격노조 승리율이 40.7%로 두 노조를 합하면 87.2%에 달했는데 이는 일반적인 노조 승인투표의 노조 승리율이 50~60%인 것을 감안하면 매우 높은 셈이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는데 즉, 첫째, 노조 간 경쟁이 일어나는 분야 자체가 노조의 성공이 높을 것으로 기대되는 분야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노조 성공률이 높아졌다는 견해(Dworkin and Fain, 1989)이며, 둘째, 노조 간 경쟁으로 인해 노동자들에 대한 조직화 노력(인적, 물적 자원의 투입)이 일반적인 경우보다 더 강력해지기 때문에 노조 승리 비율이 높아진다는 설이다(Becker and Miller, 1981; Delaney, 1981; Hurd and McElwain, 1988; Levine, 1998). [표2]에서 보듯이 전체적으로는 기존노조의 승리 비율이 높지만 공격노조도 상당한 성공률을 보이고 있는데, 이는 즉 복수노조 투표 시 노조 간 경쟁이 치열하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Kerrissey(2007)는 단순히 자기 노조의 조직률을 높이겠다는 막연한 경쟁보다는 자신의 핵심적 조직대상 관할권을 지키기 위한 ‘관할권 분쟁’이 노조를 경쟁으로 모는 핵심적 요인이라는 점도 지적하고 있다.

다른 한편 ‘무노조’(노조 없음)의 승리율도 70년대 중반 이후 뚜렷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는 사실 역시 간과할 수 없다.

이러한 경쟁노조 선거에서의 높은 승리율은 곧 복수노조 간 경쟁이 반드시 노동운동 전체에 불리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만은 아니라는 증거로 인용되고 있다. 단일노조 투표 때보다 복수노조 투표 때 노조 승리율이 더 높아진다는 사실은 곧 복수노조하에서 노조 간 경쟁이 전체 조직률 향상에 기여할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보다 최근의 복수노조 대표권 경쟁 상황을 살펴보면 [표3]과 같다. 이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2009 회계연도 중 총 1,619건의 노조 대표권 투표(신규)가 이루어졌는데 그 가운데 8.3%에 해당하는 135건이 2개 노조, 0.7%에 해당하는 11건이 3개 이상 노조를 대상으로 이루어진 투표였다. 이는 2000 회계연도에 비하면 건수 면에서는 줄어들었으나 비율 면에서는 늘어난 것이다. 즉 언뜻 보면 복수노조 간 경쟁이 증가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노동조합 조직률의 하락에 따른 노조의 대표권 투표 건수 자체의 감소에 기인한 착시현상일 뿐, 건수 면에서는 복수노조 간 경쟁건수는 줄어들었음을 알 수 있다. 전체적으로 복수노조 간 경쟁투표는 전체 투표 수의 매우 적은 부분으로서 2000년 4.9%, 2009년 9.0%에 불과하다.



[표4]에서 2개 노조가 참여한 노조 승인 선거의 결과를 유형별로 살펴보면, 기존 노조가 있는 경우의 공격투표가 전체의 44.2%를 차지하고 있는 반면 기존 노조가 없는 신규 조직화 투표에서의 복수노조 간 대결은 55.8%를 차지하고 있다.



노조 성공률은 일반적인 노조 대표권 투표에 비해 훨씬 높은데 2009 회계연도 중 전체 대표권 투표 성공률은 63.8%이나 복수노조 참여 투표의 성공률은 88.5%에 달한다. 특히 기존 노조가 있는 경우의 성공률이 높은 편이다. 승인 성공 노조의 소속별 비율을 보면 AFL-CIO보다는 기타 노조의 성공 건수가 훨씬 많다. 이는 그만큼 새로 결성된 CTW나 독립노조 등의 조직화 활동이 활발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격투표에서 기존노조의 방어성공률을 보면 약 50%에 약간 못 미치는 수준으로서, 공격노조의 성공률이 상당히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다시 말해서 미국에서 노조 간 경쟁이 치열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환경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상에서 살펴본 대로 미국에서는 이론적으로는 사업장 단위의 복수노조가 존재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배타적 교섭제도를 비롯한 여러 가지 제도적 장치로 인해 한 사업장에는 하나의 대표적 노조만 존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따라서 미국에서는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제도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배타적 교섭제도로 인한 사업장 밖 노조 간 치열한 경쟁

그러나 이것이 곧 미국에서 노동조합 간 경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업장 내에서는 오직 단 하나의 노조만 존재할 수 있지만, 사업장 밖에서는 오히려 그 반대로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더 치열하게 노동조합 간 경쟁과 갈등이 나타나고 있다. 그 이유는 배타적 교섭제도 때문이다. 즉 자율교섭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들에서는 설혹 사업장에서 다수 노조가 되지 못한다 하더라도 교섭권은 유지가 되므로 소수 노조로서 살아남을 수 있지만, 배타적 교섭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경우 사업장에서 대표노조가 되지 못하는 경우 교섭권을 잃게 되며 따라서 노동조합으로서의 기능을 거의 상실하게 된다. 따라서 노동조합이 교섭권을 획득하느냐의 여부가 곧 해당 사업장에서 노동조합이 살아남을 수 있느냐의 여부와 직결되므로, 노동조합들은 사력을 다하여 대표권 획득경쟁에서 승리하고자 노력하게 된다.

이러한 노동조합 간 경쟁은 주로 다음 두 가지 경우에 나타난다. 첫째, 미조직 분야에서의 조직화 경쟁이다. 아직 조직이 안 된 분야에서 두 개 이상의 노동조합이 경쟁을 벌일 경우 양 조합이 동일한 총연맹(예컨대 AFL-CIO) 소속이라면 관할권 조정을 하겠지만 다른 총연맹 소속 노조 간이거나, 혹은 동일한 총연맹 소속이라고 하더라도 조직대상 구분이 불명확한 경우에는 노조 간 경쟁이 일어날 수 있다. 이 경우 종업원 30% 이상의 지지카드를 제출한 노동조합들이 모두 이름을 올려 대표권 투표를 하고 여기서 과반수를 획득한 노조가 대표권을 획득하게 된다.

둘째, 기존 노조가 조직되어 있는 사업장이라 하더라도 노조 승인 후 1년 간 단체협약을 체결하지 못하거나 혹은 단체협약 유효기간이 만료되면 대표권 승인 취소 투표를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노조가 대표권 획득을 위해 기존 노조에 도전하는 경우 노조 간 경쟁이 일어나게 된다. 도전노조는 △기존 단협이 종료되기 90일전부터 60일 전 사이에 NLRB에 선거 신청이 가능하며, △기존 단협의 유효기간이 종료된 경우 노사 당사자가 새로운 단협을 체결하기 전까지는 언제든지 신청이 가능하다.

복수노조 선거 과정에서 사용자는 ‘중립의무’를 지키도록 되어 있다. 즉 사용자는 특정 노조를 지지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예컨대 특정 노조에 유리한 혜택(사무실, 게시판, 선전활동, 타임오프 등)을 제공하거나, 직간접적으로 금전을 제공하는 행위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모든 사용자의 행동이 규제되는 것은 아니다. 미국 헌법에 규정된 언론자유의 원칙에 따라 사용자는 어떤 노조를 선호하는지 밝힐 수 있으며, 기존 노조를 선호할 경우 투표 기간 중이라도 기존 노조와의 단협 조항을 실행하는 것도 가능하다. 실제로 사용자는 자주 중립의무조항을 어기고 특정 노조를 선호하거나 차별하고 있다 (Scott and Odewahn, 1989).

3. 미국 보건의료산업에서의 복수노조 간 경쟁실태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미국에서의 노조 간 경쟁은 전국조직, 산별노조, 로컬, 사업장 단위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데, 이 글에서는 주로 캘리포니아 주의 보건의료산업에서의 노동조합 간 경쟁과 협력 상황을 살펴보고자 한다.

지속적으로 노조 활동이 강해져온 보건의료분야

미국의 다른 민간산업과 마찬가지로 민간의료산업 노동자들도 1935년 입법된 전국노사관계법(NLRA)에 따라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 등을 가지게 되었다. 미국의 보건의료산업에서 노동조합이 결성된 것은 NLRA 통과 직후인 1936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당시의 노동조합은 거의 활동이 없었다. 1947년 태프트-하틀리법(Taft-Hartley Act) 통과에 따라 비영리병원의 노동자들은 노동 3권을 박탈당했는데, 이는 의료산업이 대중의 복지를 위해 기본적인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의회의 믿음 때문이었다. 단, 영리병원 종사자들은 여전히 노조 결성권과 단체교섭권을 가지고 있었다. 1974년 의회는 태프트-하틀리법에 의한 예외조항을 폐지함으로써 27년 만에 비영리병원 노동자들도 노동 3권을 회복할 수 있게 되었다 (Krinsky, 1983).

이후 보건의료산업에서는 노조 활동이 지속적으로 증가해 왔다. 그러한 노조 활동의 증가는 특히 간호사의 경우에 뚜렷했는데 보건의료부문 조직률은 2000년 현재 13.5%이며 등록간호사 조직률은 16.9%로서 1995년에 비해 1.5% 포인트 상승하였다. 다른 민간부문 조직률이 7%에 불과한 점을 생각하면 보건의료부문에서 노조 활동이 상대적으로 활발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노조 조직률이 높을 뿐만 아니라 단체협약 적용률도 높은 편인데, 2000년 현재 전체 보건의료부문의 단체협약 적용률은 14.9%이며 등록간호사의 경우 19.1%에 달한다.

현재 미국 보건의료산업 노동자들을 조직대상으로 삼고 있는 노동조합은 무수히 많다. 이는 기존 노조들이 조직기반의 와해로 조합원 수가 줄어들자 상대적 성장산업이고 해외로 이전할 염려도 없는 보건의료산업으로 조직대상을 넓힌 결과이다. 이들 노조 가운데는 직업별, 산별, 일반노조 등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보건의료분야 최대노조, 서비스노동조합과 전미간호사연대

보건의료산업을 조직대상으로 삼고 있는 노조들 가운데 가장 조합원 수가 많은 것은 서비스노동조합(SEIU)이다. SEIU는 전체 190만 명 조합원 가운데 보건의료부문에서 90만 명의 조합원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노조의 구조와 운영 또한 산별노조의 본래의 모습에 가장 가깝다. SEIU의 조합원은 거의 모든 직종과 모든 직위에 다 포진해 있는데 그 중 8만 5천명이 간호사이다.

두 번째 노조는 전미간호사연대(National Nurses United: NNU)이다. NNU는 캘리포니아간호사협회(CNA), 매사추세츠간호사협회(MNA) 및 미국간호사연합(UAN) 등이 2009년 통합 결성한 등록간호사의 전국노조로서 15만 명의 조합원을 가지고 있다. UAN은 간호사들의 이익대변단체인 미국간호사협회(ANA)가 1999년 단체교섭을 위해 설립한 노조로서 총 9만 6천 명의 조합원을 가지고 있었으며 주로 등록간호사 중심으로 조직되어 있었다. 1999년 창설된 UAN은 실제로는 27개의 주별 간호사협회 조직의 연맹체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이 중 15개 주 협회만이 NNU 결성에 참가하였으며 나머지 주 협회 가운데 8개 주 협회는 UAN을 탈퇴하여 새로운 간호사 전국조직인 전국간호사연맹(NFN)을 결성하였다. 한편 CNA는 캘리포니아 주 간호사들을 조직한 직업별 노조로서 8만 명의 조합원을 가지고 있다.

보건의료산업에는 그밖에도 전국간호사연맹(NFN)이 7만 명, 미국교사노조(AFT)가 4만 명, 그밖에 식품상업노조(UFCW), 운수노조(Teamsters), 통신노조(CWA) 등이 수천 명씩의 간호사들을 중심으로 보건의료산업 노동자들을 조직하고 있다.

10여 년간 지속된 SEIU와 CNA의 격렬한 갈등

이 가운데 캘리포니아 주에서 보건의료산업 노동자의 조직화를 둘러싸고 격렬한 경쟁을 벌인 것은 SEIU와 CNA이다.

SEIU는 1921년 주로 빌딩관리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발족한 노조이지만 이후 보건의료산업 노동자들의 조직화로 방향을 전환하여 크게 성공한 산별노조이다. SEIU는 1990년대 이후 미국에서 가장 빨리 성장한 노조이자 최대 노조로 발전하였다. SEIU는 매우 전투적이고도 진보적인 노조로서 평판이 높다. 주로 저임금 노동자, 이민 노동자 등 소외계층 노동자들을 조직하고, 이들의 임금 및 근로조건을 크게 향상시킴으로써 명성을 떨쳤다. 현재는 보건의료분야의 지배적 노조이며, 특히 간호사 이외의 청소, 경비 등 병원에 종사하는 보조 인력을 포함한 모든 보건의료산업 노동자를 조직하고 있는 유일한 노조이다. 그러나 SEIU는 간호사의 조직화에서는 부분적인 성공만 거두고 있다. SEIU 소속 간호사 수는 8만 5천 명인데 전국에 흩어져 있다.

현재 SEIU는 거창한 목표를 세우고 있다. 즉 수백만 명에 달하는 노동자들을 신규 조직화하여 쇠퇴하고 있는 미국 노동운동을 부흥하고 중앙정치를 바꾸는 한편, 거대자본을 무력화시키며 세계 노동조직과 연대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야심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SEIU는 2005년 다른 6개 노조와 더불어 AFL-CIO를 탈퇴하여 ‘승리를 위한 변화연합’(CTW)이라는 새로운 노동조합총연맹을 설립하였는데, AFL-CIO가 조직화에 지나치게 소극적이라는 것이 탈퇴 이유였다. 이후 SEIU는 노동자 조직화, 공정 임금, 의료보험, 연금 등의 실현에 노력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SEIU는 효율적인 조직화를 위해 노조위원장 손에 거대한 권력을 집중시키는 방식을 사용하였다. 전체 선출직 임원과 및 임명직 직원 모두를 조직화에 투입하여 일종의 준군사적 작전과 같은 적극적 조직화에 나섰으며, 조직 외부뿐만 아니라 모든 조합원에 대해서도 하나의 목소리로 말하도록 지시하였다.

이러한 계획은 장점도 있겠지만 단점도 있다. 위원장 손에 거대한 권력을 집중시킴으로써 SEIU는 내부 민주주의가 결여되었다거나 지나치게 관료화되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다른 한편 SEIU는 산업 전체에 걸친 노조 조직화를 주장하면서, 이를 위한 자원 집중을 위해 조그만 노조들을 큰 노조로 합병하고 있는데, 이는 간호사들의 독립적인 권리 유지 요구와 정면충돌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간호사 조직화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Mnadmin,2010).

SEIU의 적극적인 조직화 노력은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노동조합과의 관할권 다툼을 일으키고 있다. 특히 캘리포니아 주에서 벌어진 SEIU와 CNA 간의 싸움은 매우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CNA는 1903년 미국간호사협회(ANA)의 캘리포니아 주 협회로서 창설되었다. CNA는 간호사들의 직종단체로서 오랫동안 소극적인 활동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 이후 병원의 구조조정이 본격화되자, CNA는 그 상급단체인 ANA가 구조조정 병원의 조합원들에 대해 충분한 지원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여, 1995년 ANA를 탈퇴하고 본격적인 간호사 노조로서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ANA를 탈퇴한 후 매우 공격적인 조직화 활동을 벌인 결과, CNA는 고용불안과 업무부담의 가중에 시달리던 간호사들을 대거 받아들임으로써 조합원 수가 1990년대 중반의 1만 7천여 명으로부터 현재 8만 5천여 명으로 급속하게 증가하였다. CNA는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하여 다른 주의 간호사 노조들과 연계하여 전국적인 간호사 단일노조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2004년 전국간호사조직화위원회(NNOC)를 구성하였으며, 그러한 노력의 결과물로서 2009년 12월 NNU를 결성하였다(Benson, 2009). CNA는 원래 상급단체가 없는 독립노조였으나 SEIU가 AFL-CIO를 탈퇴한 후 AFL-CIO에 가입하였다. SEIU와 갈등하고 있기 때문에 AFL-CIO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라고 한다.

SEIU와 CNA는 1990년대 후반 이후 지금까지 10여 년간에 걸쳐 30~40개의 사업장에서 격렬한 조직화 경쟁을 벌여왔다. 이러한 경쟁은 주로 노조 대표권 투표 시기에 발생하였으며, 누가 사업장을 대표할 것인가를 둘러싼 격렬한 대립과 갈등이 계속되었다. 갈등은 단계적으로 발생하였는데, 즉 초기에는 특정 체인 병원(카이저, CHUW 등)에서, 다음에는 캘리포니아 전체 간호사 대상으로,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전국적 규모에서 간호사를 대상으로 경쟁이 전개되었다. 이 과정에서 양 노조는 조직목표, 조직대상, 조직전략 등의 차원에서 상이한 모습을 보였다.

상이한 조직화 목표-대상-전략의 충돌

먼저 ‘조직목표’에서 SEIU는 앞에서 언급한 대로 산별조직화를 통해 산업 내 모든 노동자들의 임금, 근로조건, 복지혜택 등을 개선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미국의 경제구조와 정치구조를 바꾸겠다는 거창한 목표를 내세우고 있다. 반면 CNA는 철저하게 간호사들의 직종별 이해관계 증진을 목표로 하며, 그 일환으로 의료보험 개혁, 간호사 인력문제 해결 등의 사회개혁적 요구를 하고 있다.

‘조직대상’ 면에서 SEIU는 산별노조 원칙에 따라서 보건의료산업에 종사하는 모든 노동자는 단일노조로 조직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여기에는 의사, 등록간호사(RN), 의료기사 등 전문직뿐만 아니라 청소, 간병인, 경비 등 보건의료산업에 종사하는 모든 노동자들이 대상이 된다. 반면 CNA는 간호사들의 이익을 올바로 대변하기 위해서는 간호사만의 직종별노조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 주로 등록간호사만을 조직대상으로 삼고 있다. 즉 이들 간의 대결은 전형적인 ‘산별노조 대 직업별 노조의 대결’이라고 할 수 있다.

‘조직전략’ 면에서 SEIU는 산별노조 조직화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 즉, SEIU는 조합원 190만 명에 달하는 거대 산별노조로서의 이점을 충분히 활용하여, 산별노조 내 자원(자금, 인력)을 집중하고 이를 전략 조직화 대상에 집중 투입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이를 위해 SEIU는 산별노조 본부에 집중된 재정과 인력자원을, 기존 노조원에 대한 서비스 부문으로부터 미조직 노동자 조직화를 위한 부문으로 재배분하였다. 현재 SEIU는 전체 예산의 25% 정도를 조직화 예산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미국의 다른 산별노조들의 조직화 예산 평균 비율이 5% 정도인 데 비하면 매우 높은 것이다.

SEIU는 또한 신규 조직화를 위해 인력을 집중투입하고 있다. SEIU는 본격적인 조직화 작업을 하면서 기존의 노조 직원들의 기능을 재배치하여 거의 절반 정도의 인원을 조직화 작업에 돌렸다. 이들의 직책도 모두 ‘조직전문가’로 통일하였는데, 예컨대 밖에 나가서 직접 조직 활동을 하지 않고 노조 내부에서 사무를 보는 직원들도 ‘내부조직가’라는 타이틀로 불릴 정도로 전 직원의 조직전문가화에 힘을 기울였다. SEIU 본부에는 조직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한 ?SEIU 조직전문가 훈련소가 있다. 워싱턴에 있는 이 훈련소는 신규 조직전문가 양성을 비롯하여, 기존 직원 재훈련, 단기훈련 등 다양한 훈련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반면 CNA는 로컬조직을 갖고 있지 않으며 기본적으로 병원 사업장 단위조직과 CNA 본부로 구성된 단출한 조직 구조를 가지고 있다. 임직원의 수도 매우 적은 편이어서 전체 사무국 직원 수는 130명 정도이며, 그 가운데 약 40~50명 정도가 조직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전국보건의료노동조합, 2010). 따라서 노조 활동의 동력은 기본적으로 사업장 내 활동가나 평조합원으로부터 나온다. 간호사는 매우 동질적인 직종이며 연대의식이 강하고 당면 과제도 비슷한 편이다. 따라서 지부 조직이나 전문적인 노조 스태프가 없더라도 자발성에 의존하여 조직을 운영할 수 있다.

그런 까닭에 전문인력에 소요되는 자금이 필요 없으므로 조합비도 SEIU에 비해 훨씬 낮은 편이다. 이는 다시 간호사들을 노조로 유인하는 동기로 작용하고 있다. CNA는 SEIU가 워싱턴에 본부를 둔 거대조직, 관료조직으로서 현장 조합원과 유리된 조직이라고 비판하면서, 자신들의 조직은 현장과 훨씬 가깝고 오직 간호사만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조직이라고 선전하였다. 이러한 CNA의 논리가 많은 간호사들의 마음을 움직여 단기간에 급성장할 수 있었다.

아래에서는 SEIU와 CNA의 갈등양상을 몇 가지 사례를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사례1: 캘리포니아 주, 샌 가브리엘 밸리 병원에서의 조직화 경쟁

먼저 양 조직 간 경쟁초기에 개별 병원에서의 조직화를 둘러싼 경쟁사례로서, 2002년 벌어진 LA 교외의 샌 가브리엘 밸리 병원(San Gabriel Valley Medical Center)에서의 조직경쟁을 들 수 있다. 과거에 두 노조는 서로 조직대상이 달랐기 때문에 상호 협조적이었다. 즉 SEIU는 주로 등록간호사(RN)를 제외한 하급직 병원노동자들의 조직에 중점을 둔 반면, CNA는 오직 등록간호사들만을 조직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SEIU가 등록간호사에 대한 조직화를 시작하고, CNA 역시 이에 대항하여 등록간호사 외의 병원노동자들을 조직하기 위해 캘리포니아병원노동조합(California Hospital Employees Union: CHEU)이라는 새로운 노조를 만들면서 양  노조 간에 관할권 분쟁이 벌어졌는데, 그 중 가장격렬한 곳이 바로 샌 가브리엘 병원이다.

이 병원은 원래 SEIU가 신규노조를 결성하기 위해 오랫동안 공을 들여 온 곳이다. 이곳은 미국 전국에 병원 체인을 가진 테네트(Tenet) 병원그룹이 운영하는 병원의 하나이다. 테네트 병원그룹 소유의 병원 전체가 SEIU의 조직대상으로, 이를 조직하기 위해 집중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갑자기 CHEU가 뛰어들어 조직경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노동조합 대표권을 결정하기 위해 2002년 5월 이루어진 1차 투표 결과, 과반수를 득표한 노조가 없자 상위 득표 노조 두 개(SEIU와 CHEU)를 대상으로 7월 말에 2차 투표가 이루어졌다. 여기서 CHEU가 다수표를 얻음으로써 SEIU는 대표권을 상실해버렸다.

CHEU가 노조 지지선거에서 승리를 거둔 이유는 이 노조가 SEIU의 몇 가지 약점을 집중적으로 공격했기 때문이었다. 첫째, 이들은 SEIU가 워싱턴에 본부를 둔 “거대노조”로서 현장의 노동자들에 대한 관심이 적다고 공격했다. 당시 SEIU는 AFL-CIO 산하의 산별노조로서 캘리포니아 주에서만도 조합원 30만 명을 거느리고 있는 큰 노조인 반면, CNA는 AFL-CIO에 가맹하지 않고 있는 “독립노조”로서 조합원 4만 명 정도에 불과한 소규모 노조였다. 따라서 CNA는 자신들이 일반 노동자들에게 보다 가까운 반면, SEIU는 “거대한 공룡”이고 병원 밖에 존재하는 “제3자”에 불과하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 SEIU는 노조 규모가 큰 자신들이 보다 강력하며 경영진과의 관계에서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둘째, CNA 및 CHEU는 SEIU의 조합비가 너무 비싸다고 공격하였다. 당시 SEIU의 조합비는 월 평균 75달러(소득에 따라 다른데 최대액과 최소액이 있다)인 반면, CHEU는 39달러였다. 더욱이 SEIU의 조합비는 매년 자동적으로 인상되고 있었다. 이와 같은 조합비의 차이가 많은 노동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이에 대해 SEIU 측은 자신의 특수한 상황을 주장하였다. 즉, SEIU는 미국의 노동조합 중 유일하게 직급, 직종을 불문하고 산업 전체의 노동자들을 조직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따라서 많은 조직활동비가 들어간다, 이에 비해 CNA는 오직 등록간호사들만을 조직하고 있기  때문에 조직활동비가 적게 들어간다는 것이다. SEIU는 장기적으로는 등록간호사들뿐만 아니라 산업 전체의 모든 노동자들을 조직함으로써 노동자 전체의 교섭력을 강화시키는 것이 오히려 노동자들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였지만, 당장 조합비의 차이라는 점에 현혹된 노동자들은 이러한 설명에 귀를 잘 기울이지 않았다.

셋째, CHEU는 SEIU가 다른 조직화된 병원에서 경영진과 너무 가까우며,병원 인력증원 문제 등에 소극적이라고 비난하였다. 이에 대해 SEIU 측은 오히려 CHEU 측이 병원 경영진의 암묵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고 역공격하였다. 즉, 병원 경영진 입장에서 볼 때는 물론 노조가 없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이왕 노조가 생길 바에야 전국적인 조직을 갖고 있는 강력한 SEIU보다는 독립노조이며 등록간호사 중심인 CHEU 쪽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SEIU는 실제로 병원 측은 집회시 병원 회의실을 빌려준다든지, 감독자들을 동원해서 은근히 지지하도록 설득한다든지 하는 방법으로 CHEU를 지지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사례2: 네바다 주 세인트 로즈 병원 간호사 조직화 경쟁

SEIU와 CNA 간의 조직화를 둘러싼 경쟁은 처음에는 캘리포니아 주에서 시작되었으나 차츰 다른 주로 그 경쟁 범위를 넓혀가기 시작하였다. 2008년 네바다 주 세인트 로즈(Saint Rose) 병원 간호사 조직화를 둘러싸고 벌어진 양 조직 간의 경쟁은 그 전형적인 예이다.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둔 비영리 의료법인인 가톨릭 헬스케어 웨스트(Catholic Healthcare West)에서 운영하는 로즈 병원은 네바다 주 헨더슨(Henderson)과 라스베가스(Las Vegas)에 세 개의 분원을 가진 병원으로서, 1,100명의 간호사를 포함하여 2,200명의 직원을 가지고 있다. ‘SEIU 로컬 1107’은 2004년 조직화 캠페인을 벌여 세인트 로즈 병원 전체의 모든 직원을 하나의 교섭단위로 하는 조직화에 성공하였는데, 주로 환자-간호사 인력비율법(Patient-Nurses Staffing Ratios Act) 도입과 의무적인 초과근무제 폐지를 공약으로 하여 대표권 획득에 성공하였다. 그러나 이후 이들 공약사항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로컬노조 지도부 선거를 둘러싸고 대립 후보들 사이에 갈등이 생김에 따라, 로컬 지도부에 불만을 가진 일부 조합원들이 CNA에 세인트 로즈 병원의 조직화를 요청하기에 이르렀다(Mishak, M, 2008). 이들은 CNA가 캘리포니아 주에서 인력비율법을 도입하는 데 앞장섰던 성과를 평가하는 한편, CNA가 로즈 병원의 본사인 가톨릭 헬스케어 웨스트사와 ‘조직화 협약’(Organizing agreement)을 맺고 있으므로 로즈 병원 조직화도 용이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에 CNA는 2007년 말, 네바다 주에 조직전문가를 파견하여 세인트 로즈 병원 등록간호사들을 대상으로 한 조직화 캠페인에 들어갔다. CNA는 우선 인력비율법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등록간호사만을 위한 노동조합이 필요하며, CNA가 이미 캘리포니아 주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음을 강조하였다. CNA는 SEIU 전체 190만 조합원 가운데 등록간호사는 소수에 불과하며 따라서 등록간호사 문제에 대한 관심이 적다고 비판하였다. 아울러 CNA는 SEIU가 병원 경영자 측과 “밀실협상”을 벌여 조합원을 팔아넘겼다고 비판하였다.

이러한 비판에는 일정한 근거가 있다. SEIU는 초기에는 저임금 노동자의 적극적 조직화 과정에서 풀뿌리 운동을 중요시하였다. 방법도 전투적이어서 기업과의 대결, 시위, 연좌농성 등의 방식을 즐겨 사용하였다. 그러나 SEIU는 조직화가 일정한 성공을 거두면서 차츰 ‘기업전략’을 사용하는 데 치중하기 시작하였다. ‘기업전략’은 기업과의 대결보다는 교섭을 통해 노사분쟁 없이 조직화를 하는 방식을 말한다. 그 대표적인 것이 2003년의 테네트 병원그룹과의 교섭 및 카이저 병원그룹과의 교섭이다(McKersie, Eaton,and Kochan, 2004). 이러한 기업과의 교섭을 통해 노동조합은 기업으로부터 노동조합 조직화 과정에서 중립을 지키겠다는 ‘중립약속’을 받아내거나, 혹은 더 나아가 노사가 공동으로 대표권 투표신청을 하게 된다. 그 대신 노동조합은 기업과의 노사 파트너십 협정을 체결하거나 계열 병원 중 경영 측이 지정하는 병원만을 대상으로 조직화를 하겠다는 약속을 하는 등 일정한 양보를 하게 된다. 이것이 기업과의 담합이라거나 밀실협상이라는 CNA의 지적에 대해, 앤디 스턴(Andy Stern) SEIU 위원장은 SEIU가 결코 친기업 전략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며, 다만 조직화의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서 기업과의 교섭을 선택하고 있을 뿐이라고 주장하면서, 노조가 없는 것보다는 이쪽이 낫다고 주장하였다(Benson, 2009).

2008년 5월 벌어진 제 1차 투표에서는 CNA가 SEIU보다 2표를 더 얻었지만, 양쪽 모두 과반수를 획득하지 못함에 따라 투표무효가 되었다. 그러자 SEIU는 투표과정에서 CNA가 병원경영진 측과 담합을 하여 불법행위를 벌였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따르면 CNA는 세인트로즈 병원의 모기업인 가톨릭 헬스케어 웨스트사와 ‘중립협정’을 체결하였는데, 이는 CNA의 조직화 과정에서 경영 측이 반대 캠페인을 벌이지 않는다고 약속했을 뿐만 아니라, 조합원들에게 조직화 활동을 위한 무급휴가를 인정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중립협정에 따라 세인트로즈 병원은 CNA에게 병원의 회의실과 게시판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했을 뿐만 아니라, 간호사 2명이 반(反) SEIU 켐페인 활동에 참가할 수 있도록 휴가를 주었다는 것이다. SEIU는 또 CNA가 허위선전을 통해 조합원들에게 노조에 대한 불신을 심어주고 노동운동을 분열시키고 있다고 비난하였다. NLRB는 SEIU의 제소로 이 사건을 심리한 결과, 병원 경영 측이 정당한 대표권을 가진 SEIU와의 아무런 협의 없이 CNA에 일방적인 편의를 제공한 것은 연방노동법 위반이라고 판결하였다. 그러나 병원 측은 “경영 측이 고의적으로 공정한 투표를 저해할 수 있는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았다”는 성명을 발표하였다(Mishak, 2008).

2008년 12월 열린 제 2차 투표에서도 역시 CNA가 5표 차로 다수표를 획득하였지만 과반수 미달로 투표무효가 되었다. 그러한 가운데 2009년 3월 SEIU와 CNA 간의 ‘평화협정’(후술)이 체결됨에 따라, SEIU는 세인트 로즈 병원에서 CNA에 대한 제소를 철회하고 등록간호사 조직화에서도 손을 떼겠다는 협정에 서명하였다. 이에 따라 2009년 4월 열린 제 3차 투표에서는 CNA가 단독으로 입후보하여 76%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등록간호사 대표권을 획득하였다(Norman, 2009).

사례3: 오하이오 주, 가톨릭 병원에서의 격렬한 갈등

캘리포니아 주의 개별 병원 차원에서 벌어졌던 SEIU와 CNA 간의 조직화 경쟁은 차츰 발전하여 다른 주로 번지게 되는데, 그 가운데 가장 심각했던 갈등 사례가 바로 오하이오 주 가톨릭 병원에서 일어났던 사건이다. 이는 미국에서 일어난 노조 간 경쟁 가운데 최대의 사건의 하나로 일컬어지고 있다. SEIU는 1999년부터 오하이오 주에 있는 가톨릭계열 병원인 CHP(Catholic Healthcare Partners)의 간호사들에 대한 조직화 노력을 개시하였다. 이러한 SEIU의 조직화 노력에 대해 사용자 측은 격렬한 반노조 활동으로 대응하였다. 병원 측은 반(反)노조 전문가를 고용하여 적극적인 노조반대 운동을 벌였다. 간호사 회의 때에는 감독간호사들이 간호사들을 설득 및 위협하거나, 개인면담을 하였으며, 종교적인 위협까지 하였다(Kaplan, 2008). 그러한 위협 속에서도 SEIU는 일부 병원의 노조 대표권 승인투표에서 승리하였다. 그러나 사용자 측에서는 노조와의 단체교섭을 거부함으로써, 단협 획득을 위한 지리한 싸움이 계속되었다.

이 과정에서 SEIU는 ‘기업투쟁’(corporate campaign)으로 불리는 투쟁방식을 사용하였다. 즉 정치인, 종교계, 시민단체 등에 공정노동에 관한 책자를 우송하고, 주 의회에서 청문회를 개최하였으며, 지역사회단체 및 병원노동자 연합으로 병원 측에 공개편지를 보내거나, 노조 지지자 해고에 대한 항의행동 등을 벌였다. 결국 여론의 압력으로 사용자 측이 굴복하여 2008년 3월 CHP 소속 21개 병원 중 9개 병원에서 노조 대표권 승인투표를 하는 데 노사가 합의하였다. 이 과정에서 사용자, 노조 양측 모두 중립을 지키기로 약속하고, 노사 공동으로 서명한 투표통지서를 노동자들에게 발송하였다. 이 투표에는 SEIU만 참가하였으므로 당연히 승리할 것으로 기대되었다(Benson, 2009).

그러나 투표가 개최되기 불과 며칠 전에 돌연 CNA가 개입하였다. CNA는 십여 명의 활동가를 오하이오 주에 투입하여 반 SEIU 선전활동을 벌였다. 이들은 병원 근처의 카페나 식당, 병원 로비 등에서 간호사들을 대상으로 전단지를 배부하였는데, 그 내용은 SEIU가 기업과 밀착한 “친사용자 노조”라고 비난하는 것이었다. 전단지에는 “민주주의냐 독재냐”, “노조 승인투표는 노사 간 ‘밀실담합’의 산물”, “‘어용노조’를 간호사들에게 강요하는 것에 불과” 등의 자극적 문구로 가득 차 있었다. 이에 대해 SEIU는 사용자와 체결한 ‘중립유지’ 조항으로 인해 아무런 대응을 할 수 없었다. 결국 SEIU는 이대로는 노조 승인투표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투표를 무기한 연기하였다.

SEIU는 CNA의 이러한 행동을 노동운동에 대한 배신으로 규정하였으며, 이후 CNA와 SEIU 간의 갈등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이는 사실상 ‘전쟁상태’였다. 양측은 서로 상대방을 격렬하게 비난하는 선전활동을 벌였다. 조합원에 대한 전단지 우송, 조합간행물을 통한 상대조직 비난, 언론매체를 통한 비난, 상대방 관할 병원에 대한 승인철회 투표 운동 등을 벌였고, 심지어 상대방 조합간부를 스토킹하고, 직장과 가정에서 추격을 하며, 창문으로 감시하거나 문 두드리기, 고함지르기 등으로 괴롭히기도 하였다(Kaplan, 2008).

그 후 2008년 4월 미시간 주에서 열린 진보적 노동언론인 『Labor Note』 집회에서 CNA 위원장의 강연에 항의하여 SEIU 활동가들이 집단항의를 하다가 이것이 폭력사태로 발전하여 양쪽에서 다수가 부상하는 사건까지 발생하였으며, 이 사건으로 SEIU는 전체 진보적 지식인과 좌파 언론으로부터 일제히 비판을 받았다.

2009년 평화협정 맺으며 휴전한 SEIU와 CNA

이후 두 노조는 상대방 조직에 대한 상호 공격을 되풀이하였다. 1년 이상의 싸움 끝에 두 노조는 2009년 3월 전격적으로 ‘평화협정’에 사인하였다. 이 협정에서 두 노조는 상대방 조직에 대한 공격을 자제하고 공동으로 간호사를 비롯한 보건의료분야 미조직 노동자 조직화에 노력하기로 합의하였다. 특히 이 협정에 따르면 CNA는 등록간호사를, 그리고 SEIU는 나머지 보건의료분야 노동자들을 배타적으로 조직하되, 단 이미 조직된 부분에 대해서는 상호존중을 하도록 약속하였다(Greenhouse, 2009). 양측이 전격적으로 이러한 평화협정에 동의한 근거에는, CNA는 간호사에 관한 지배적 조직권 확보했고, SEIU는 CNA가 NUHW 등과 연합하여 전국적인 보건의료노조로 성장하려는 움직임 차단에 성공하였다는 판단이 자리했다. 결국 양자 간 관할권 영역을 나누기 위한 협정임을 알 수 있다(Shaw, 2009).

그러나 이러한 평화협정이 곧 양 노조 간의 영원한 평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단지 일시적인 휴전상태에 불과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평화협정과는 별도로 양 노조는 규모 확대와 전국적 규모의 조직으로의 통합을 통해 경쟁에 이기고자 노력하고 있다. 우선 SEIU는 소속 로컬들의 통합과 합병을 통해 조직을 대규모화함으로써 규모의 경제를 가지는 데 주력하고 있다. 2007년 SEIU는 보건의료분야를 전담하는 별개의 전국노조인 ‘SEIU Healthcare’를 창립하였다. 그 결과 이는 미국에서 최대의 보건의료노조가 되었다. 이 조직은 병원, 간호, 장기요양분야 노동자 등 기존 조직대상 분야 외에도 구급수술센터, 실험실, 개인병원 및 기타 보건의료분야 전체 노동자들을 조직대상 분야로 정하고 있다. 이에 대항하여 CNA는 다른 주의 간호사 노조들과의 통합을 통해 전국 규모의 조직으로 성장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2009년 CNA 및 NNOC는 미국간호사협회(UAN)(그 가운데 15개 주), 매사추세츠 간호사협회와 통합하였다. 그 결과 이는 15만 명의 조합원을 가진 조직으로 확대되었다. 반면 UAN 소속 8개 주 간호사협회는 이 통합에 반대하여 UAN을 탈퇴, 새로운 간호사 전국조직인 전국간호사협회(NFN)를 세웠다.

조직분화와 함께 새롭게 시작된 갈등

이러한 SEIU의 로컬 통합 방침은 내부, 특히 기존 로컬 지도부로부터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치게 되었다. 특히 15만 명의 조합원을 가진 United Healthcare Workers(UHW)-West 로컬로부터 6만 5천 명의 조합원을 떼어 내 새로운 간병인 노동조합 로컬에 통합시키려는 앤디 스턴 위원장의 시도에 대해, 종전부터 대립관계에 있던 살 로셀리(Sal Rosselli) UHW-West 위원장이 강력히 반발했다. 그러자 SEIU 본부는 로컬 지도부의 비협조 및 재정운영상의 비리를 이유로 신탁인(trustee)을 파견하여 로컬을 접수하고 로컬 지도부를 해고하였다. 이에 대해 로컬 지도부는 SEIU의 권력집중이며 사용자와 담합한다고 비판하면서, 2009년 1월, SEIU를 탈퇴하여 전국보건노동조합(National Union of Health Workers: NUHW)라는 새로운 노조를 만들었다.

이 두 노조들은 일부 병원과 요양원의 대표권을 둘러싸고 격렬한 경쟁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부당노동행위 신청, 노조대표권 부인 신청 등 법적 절차뿐만 아니라, 상대방에 대한 괴롭힘이 계속되었다(Pringle, 2009). 특히 2010년 캘리포니아 최대병원 체인인 카이저 병원 그룹(Kaiser Permanente)의 대표권을 둘러싼 분쟁은 양 노조 간의 최대분쟁이다. 4만 8천 명에 달하는 카이저 병원 노동자들은 SEIU를 떠나 NUHW에 가입하겠다고 NLRB에 청원하였다. 이에 대해 NLRB는 5년간의 단협 기간이 끝나기 전까지는 새로운 노조 대표권 선거는 없을 것이라고 판정하였다. 이에 따라 NUHW는 지지자들의 자발적 성금에 의존해서 생존을 이어가고 있다. CNA는 이에 대해 재정 및 인력을 지원하였다. CNA는 2009년 3월 SEIU와의 평화협정 조인 후 공식적으로는 NUHW와의 관계를 단절했으나, 비공식적으로는 간접적 지원을 계속하고 있다(인터뷰 결과).

4. 결론과 시사점

지금까지 우리는 미국 보건의료산업에서의 복수노조 간 경쟁실태를 살펴보았다. 우리는 이로부터 어떠한 시사점을 얻을 수 있을까?

복수노조 제도로 인한 경쟁의 장점과 단점

먼저 제도적 측면에서 복수노조와 배타적 교섭제도를 특징으로 하는 미국의 제도에 대해 평가해보기로 하자. 복수노조 제도는 치열한 노조 간 경쟁을 유발시키는데, 이는 노동운동에 있어 유익한 점도 있고 손해나는 점도 있다. 조직이론에서는 일반적으로 조직간 경쟁이 조직의 활력을 향상시킨다고 한다(Vickers, 1995). 경쟁에 따라 경쟁자들끼리 서로 상대방의 전략, 전술로부터 배울 수 있다는 학습효과가 있으며, ‘최선의 관행’에 관한 지식이 전체 조직 차원에서 향상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경쟁에 처한 조직은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며 이 과정에서 조합원을 끌어들이기 위해 내부 민주주의도 향상될 수 있다(Southworth and Stephen-Irvine, 2010). 이러한 노조 효율성 향상, 조직화 전술의 혁신, 전략-전술에 관한 지식의 향상, 새로운 노동시장구조에 대한 적응력 향상, 다각화, 에너지 증가 등은 더 많은 신규 노동자를 노조로 유인함으로써 조직률 향상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경쟁에는 부정적 측면도 따른다. 조직 간 경쟁은 노조 간 갈등을 증폭시키고 협력을 감소함으로써 노동운동의 연대를 해친다. 조직 간 경쟁과정에서 노동조합의 귀중한 인적, 물적 자원이 무익하게 허비됨으로써 노동운동의 힘을 감소시킬 수 있다. 더욱이 이 과정에서 사용자의 개입 여지가 늘어남으로써 노동자 연대를 저해하게 된다. 심한 경우 노조 간 상호 파괴적 행위를 하게 되어, 파업의 파괴, 폭력 행사, 사용자와의 담합 등의 현상이 나타날 우려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조합은 일반적으로 경쟁을 싫어한다. 따라서 복수노조에 대해 부정적 입장에 서는 경우 많다.

실제로 미국의 보건의료산업에서도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이 모두 나타났다. CNA와 SEIU의 경쟁과정에서 보건의료산업의 노조 조직률이 크게 향상되었다. 1995년부터 2008년까지 CNA 조직은 2만 명으로부터 8만 5천 명으로 4배 이상 증가하였으며, SEIU 역시 보건의료분야에서 조합원을 크게 증가시켰다. 보건의료산업 전체의 노조 조합원 수는 1995년부터 2004년 사이에 10만 명이 증가하였으며, 조직률은 15.4%로부터 16.7%로 향상되었다. 이러한 조직률 향상은 작아 보이지만 이 기간 동안 미국 전체 조직률이 크게 감소된 것을 생각하면 큰 성과라 할 수 있다. 이 기간 동안 대표권 투표 건수는 52.5%나 증가했으며 노조 승리율도 53.2%로부터 65.2%로 향상되었다(Pawlenko, 2005).

반면 부정적인 측면도 나타났다. 양 조직 간의 격렬한 경쟁과정에서 자원의 허비, 사용자 개입, 내부 민주주의의 부정적 양상 등이 나타났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떠한 종류의 경쟁이냐 하는 것이다. 즉 ‘좋은 경쟁’은 조직의 혁신, 전략의 개선, 노조의 성장 등을 가져오는 반면, ‘나쁜 경쟁’은 자원의 분산과 노조성장에 부정적인 효과를 미친다. 특히 좋은 경쟁과 나쁜 경쟁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들 가운데는 노동조합의 내부 전략과 더불어 경쟁을 둘러싼 환경의 문제, 즉 사용자의 개입이나 단체교섭제도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여기서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미국의 배타적 교섭제도이다.

경쟁을 극단화시키는 배타적 교섭제도

배타적 단체교섭제도 아래서는 노조 간 경쟁이 격렬하게 되어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로 된다. 이 과정에서 사용자의 개입도 빈번하게 일어나게 되며 노조의 자원 낭비도 심하다. 따라서 다수결에 의한 배타적 교섭제도가 미국 노조 조직률이 낮은 부분적 원인이라는 주장도 있다(Harcourt and Lam, 2010). 미국에서 노동조합이 특정 교섭단위의 대표권을 가지기 위해서는 두 가지 장애물을 넘어야 한다. 즉 우선 노동조합이 종업원 50% 이상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 노조가 50% 이상의 지지를 받지 못한 사업장의 노동자는 노조를 지지해도 노조에 가입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둘째, 배타적 교섭권을 가진 노조를 지지하지 않는 노동자들은 이 노조에의 가입을 회피하게 된다. 따라서 배타적 교섭제도로 인하여 노조에 가입하지 못하는 다수의 노동자가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개혁이 필요하다. 즉 한편으로는 노조 대표권 승인절차를 개선하여 50% 지지 없이도 노조가 지지 노동자들에 대한 대표권을 가지도록 하는 것이다. 현재 미국의 노동조합들은 ‘종업원자유선택법’(Employee Free Choice Act: EFCA)이란 이름의 입법운동을 벌이고 있는데, 그 핵심내용은 비밀투표에서 교섭단위 종업원의 30% 이상의 지지를 얻으면 노조를 승인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 법안은 오바마 대통령 초기에는 상당한 지지를 받았으나 현재로서는 입법가능성이 매우 희박한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한편으로는, 배타적 교섭권제도를 개선하여 ‘비례교섭권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다. 즉 일정한 지지 노동자를 확보한 모든 노동조합에 대해 그 지지비율에 비례해서 대표권을 주는 것이다. 만약 이렇게 된다면 미국의 노조 조합원 수는 약 30% 증가하고 조직률도 16~17%로 상승할 것으로 예측된다. 특히 보건의료, 교육, 제조업 등에서 상승폭이 클 것으로 보인다(Harcourt and Lam, 2010). 뿐만 아니라 비례교섭권 제도가 도입되면 노조 간 경쟁도 줄어들고 승자독식에 의한 부작용의 방지도 가능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공동교섭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가 허용되면서 동시에 미국과 유사한 배타적 교섭제도가 도입됨으로써 미국과 비슷한 문제점이 발생할 것으로 우려된다. 즉 배타적 교섭권을 획득하기 위한 노동조합 간 치열한 경쟁과 이로 인한 노동 연대의 분열, 노조 자원의 과다한 허비, 사용자의 개입에 의한 노조 파괴 및 친 사용자적 노조의 협력 유도 등이 그것이다. 따라서 미국과 마찬가지로 비례교섭권 제도를 포함한 자율교섭제로의 개혁을 위해 계속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일부에서는 이러한 문제점을 들어 복수노조제도까지도 도입을 유보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으나, 이는 그 동안 한국의 노동운동이 끈질기게 주장해 왔고 또 국제노동기구 등에서도 강조하고 있는 ‘노조 설립의 자유’ 원칙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주장이기 때문에 받아들여서는 안 될 것이다.

한편 미국의 제도와 우리나라의 제도에 상이한 측면이 있다는 점에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즉 미국에서는 노동조합의 설립은 자유이지만 교섭권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노동조합 대표권 승인투표라는 제도적 절차를 거쳐야 하며, 여기서 종업원 50% 이상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 따라서 대부분 사업장 단위에서 노조가 1개이거나 아니면 경쟁하는 경우라도 2개 노조 간의 경쟁에 그치게 된다. 반면 한국에서는 2인 이상만 있으면 노동조합의 설립이 자유로우며, 종업원이 아니라 조합원 과반수의 지지를 얻으면 교섭권을 획득할 수 있다. 이 점에서는 한국에서 노동조합 설립이 훨씬 용이하다고 할 수 있다. 반면 이는 동시에 한국에서 다수 노조 간 경쟁이 훨씬 빈번하게 발생할 수 있음을 뜻한다. 노조 간 경쟁이 심각해짐에 따라 사용자의 개입 가능성도 그 만큼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특히 사용자가 어용노조를 만들거나 보수적 노조를 만들어 기존의 노조와 경쟁을 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인터뷰 과정에서 미국의 노동조합 관계자들은 미국에서 발전한 사용자의 각종 개입 방식이 한국에도 도입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하면서, 이러한 사용자의 개입을 막기 위해 노조의 적극적 투쟁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였다(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2010).

단, 미국의 경우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노동자들로 구성된 교섭단위가 한 기업 안에 여러 개 존재할 수 있어 배타적 교섭제도의 문제점을 어느 정도 완화할 수 있다. 반면 한국에서는 사업장 단위로 교섭단위가 구성되며, 여기서 원칙적으로 단 하나의 노조만 교섭권을 가질 수 있다. 따라서 소수 직종은 스스로의 이익을 대변하는 노동조합을 구성하거나 교섭권을 가질 가능성이 낮게 되어 심각한 대표권의 갭이 발생할 수 있다.

예상되는 산별노조-직종/기업별노조의 충돌, 그리고 대응 방안

한편, 미국에서는 배타적 교섭권제도로 인해 사업장 단위에서는 실질적으로 노조가 한 개만 존재하게 되었지만, 그 대신 사업장 밖의 산업이나 직종 단위에서는 교섭권 획득을 위한 격렬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한 경쟁은 상이한 총연맹 간, 상이한 산별 간, 혹은 직종 간 등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캘리포니아 주의 보건의료산업에서 벌어진 CNA와 SEIU의 경쟁은 전형적인 직종별노조와 산별노조 간의 대결이라 할 수 있다.

이 대립과정에서 산별노조와 직종별노조의 장점과 단점이 뚜렷이 나타났다. SEIU는 조합원 190만 명을 가진 전국적 산별노조로서, 강력한 전국적 조직규모와 정치력, 사용자에 대한 영향력, 재정과 인력의 집중성 등의 강점을 조직화에 적극 이용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반면 노조의 거대화와 지도부로의 권력의 집중에 따른 관료화, 내부 민주주의의 결여 등이 심각한 문제로 등장하였으며, 기업과의 파트너십에 의존하는 조직화 방식으로 인해 “밀실협상”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기도 하다. 이에 비해 CNA는 등록간호사 직종만을 조직하는 직종별노조로서, 간호사들의 단결력과 노조 지도부에 대한 신뢰, 평노조원의 자발성 등의 강점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충분히 발휘하여 간호사 조직화에 큰 성공을 거두었다. 반면 인력과 재정 면에서의 열세로 인해 다른 직종이나 다른 지역으로의 조직 확대에는 매우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CNA는 매우 전투적인 노동조합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SEIU의 밀실협상을 비판하고 있지만, 스스로도 조직화의 주요수단으로서 ‘조직화 협정’이라 불리는 사용자와의 협정에 크게 의존하고 있어 모순을 드러내고 있다. 무엇보다도 저임금과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는 보건의료산업의 비간호사 직종 노동자들에 대해 아무런 지원조치를 하지 않고 있어, “엘리트 노조”라고 불리고 있는 것이 CNA의 큰 약점이다.

이러한 CNA와 SEIU의 갈등양상은 한국의 산별노조에도 큰 시사점을 던져준다. 한국의 산별노조들은 대부분 직종을 가리지 않고 산업 내의 모든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는 기업별 노조 아래에서 분산적, 파편적 상태에 놓여 있던 한국의 노동운동으로서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그러나 비록 형식적으로는 많은 기업별노조들이 산별노조로 전환하였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한국의 산별노조는 불안정하여 재정과 인력의 독립성이나 집중성이 낮고, 기업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에 따라 친사용자적 노동조합의 활동공간이 넒은 편이다. 다른 한편 산별노조로의 전환이 본격적으로 진행됨에 따라 한국에서도 산별노조의 현장으로부터의 괴리, 관료화, 내부 민주주의의 결여 등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산별노조에 대한 기층 노동자들의 불만은 일단 복수노조가 허용되면 조직분열이나 대립적인 직종별, 기업별 노조의 설립이라는 형태로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산별노조 및 산별교섭을 꺼리는 사용자 측의 적극적인 개입이 예상됨에 따라 그 가능성은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산별-직종별, 산별-기업별 노조 간의 대립은 결국 노동조합 자원의 집중을 저해하고 노동의 연대를 해침으로써, 전체 노동운동을 약화시키게 될 것이다. 따라서 노동조합은 지나친 노조 간 과당경쟁을 막기 위해 미국의 노동조합들처럼 ‘공격금지협정’을 체결하거나 신규노조 조직화 시 상호 협력하는 방안 등을 검토해 보아야 할 것이다. 또 기존의 산별노조들은 조직 간 경쟁 위협에 대처하여 내부적으로는 현장으로부터의 괴리나 관료화를 경계하고, 내부 민주주의 확립 및 현장과의 소통 강화를 통해 조합원들의 신뢰를 확보하여야 한다. 한편, 외부적으로는 산별노조가 가진 강점, 즉 전국적인 정치적 영향력이나 투쟁력의 확보, 재정과 인력의 집중 등을 통해 직업별노조나 기업별노조와의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복수노조 시대에 있어 산별노조가 지향해야 할 목표이자 강점은 기존의 조직화된 부분의 방어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분야로 진출하여 미조직 노동자의 조직화에 나설 수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산별노조는 정규직/비정규직을 가리지 않고 산업 내의 모든 노동자들을 하나의 노동조합으로 조직하고 임금과 근로조건의 격차를 완화함으로써, 강력한 투쟁력과 영향력을 가진 “진정한 의미에서의 산별조직”이 되어야 한다. 이렇게 될 때 어떠한 제도 변화, 어떠한 정부와 사용자의 개입에도 산별노조는 자주적이고 강력한 조직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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