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가 민영화된 지 20년이 지났지만 CEO들의 잔혹사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민영화 이후 5명의 수장(首長)이 KT를 이끌었지만 재임(再任)에 성공해 임기를 다 채운 인사는 황창규 회장이 유일하다. 민영화 후 첫 CEO였던 이용경 사장은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 정치권의 압력에 밀려 일찌감치 연임 도전을 포기했다. 후임 남중수 사장은 이명박 정부 출범 직전인 2008년 초 연임에 성공했지만, 새 정부 재가 없이 연임을 한 탓에 괘씸죄에 걸렸다. 그는 뇌물 수수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으며 중도 사퇴했고 구속까지 당하는 고초를 겪었다.
2012년 재임에 성공한 이석채 회장은 박근혜 정부로 보수 정권이 재집권했는데도 중도 사퇴했다. 그는 2013년 새 정권 출범 8개월 만에 배임·횡령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았고, 2018년 4월 대법원 파기 환송을 거쳐 무죄 선고를 받을 때까지 5년간이나 법적 리스크에 시달려야 했다. 유일하게 두 번째 임기를 채운 황 회장도 고난의 연속이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뒤 KT 임직원들이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불법 후원금을 전달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두 번째 임기 내내 경찰 수사에 시달렸다. 7번의 압수 수색과 소환 조사는 물론, 당시 여당과 친여 시민 단체들은 집요하게 황 회장을 물어뜯었다. 황 회장이 한국 메모리 반도체 산업을 일궜다는 공헌이 없었다면 그 역시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KT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역대 정부가 KT를 입맛대로 주무른 탓에 KT가 IT 산업을 이끄는 선도 기업 역할은커녕 갈수록 위축되고 있다고 비판한다. 글로벌 기업들처럼 장기간에 걸쳐 CEO 후보를 양성해도 부족할 판에 정권만 바뀌면 흔들어 대니 “이러려면 왜 민영화를 했느냐”는 불만이 쏟아진다. 민영화 전 한때 시가총액(한국통신 프리텔 포함 약 93조원) 국내 1위였던 KT가 현재 50위권(시가총액 8조원)으로 쪼그라든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KT 안팎에서는 ‘그들만의 리그’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의외로 많다. 윤경림 사장이 CEO 후보로 선임된 것과 관련, 여당 의원들이 “이권 카르텔” “윤경림은 구현모 현 사장의 아바타”라고 거칠 게 비판한 데 대해 거부감을 보이면서도, KT의 CEO 심사 요건이 내부자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하다는 데 대해서는 공감하는 목소리가 크다. 예컨대 KT 정관에는 ‘경영·경제 지식, 기업 경영 경험, 정보통신 분야 경험’을 CEO의 주요 자질로 심사하게 돼 있다. 하지만 정치권의 과도한 개입을 막기 위해 만든 이 조항들이 거꾸로 내부자들의 경영권 대물림 수단으로 악용된다는 것이다.
포스코 이사를 역임했던 한 재계 인사는 “비슷한 지배구조인 포스코에는 외부 인사를 배제하는 규정은 없다”면서 “KT가 CEO를 공정하게 선정했다고 말하려면 KT 정관부터 먼저 개정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보통신부 전직 고위관료도 “산업 간 경계가 무너지고 KT 스스로 탈(脫)통신을 내세우면서 CEO 후보를 사실상 KT 출신으로만 제한하니까 ‘그들만의 리그’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KT의 한 현직 임원은 “3년 전 구현모 사장 선임 때 전 청와대 수석인 이강철 사외이사가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는 소문이 파다했고 이어 KT와 계열사에 친노·친문 인사들이 대거 영입됐다”면서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후에도 최소한의 균형을 잡으려는 노력도 하지 않은 게 사실”이라고 했다.
7일 CEO 후보로 선임된 윤경림 사장은 여당의 분노를 의식한 듯, 첫 일성(一聲)으로 “지배 구조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또 윤석열 대통령 캠프에서 경제특보를 지낸 인사를 사외이사로 신규 선임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정권이 바뀔 때마다 무한 재생되는 CEO 잔혹극을 끝내기 위해서는 이 참에 보다 근본적인 해법을 찾아야 한다. 결국은 주인 없는 KT가 새 주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KT의 한 고위 임원은 “민영화를 통한 주인 없는 기업 KT는 사실상 실패한 모델”이라고 단언했다. 실제로 누군가가 국민연금(10%) 보유 지분만 인수해도 정부의 과도한 개입과 KT 내부자들만의 리그에 강력한 견제 장치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