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뉴스 사이트에 들어가기가 무섭다. 미군의 이란 공격이 개시 10분 전에 극적으로 정지됐다는 기사를 읽었을 때 하도 놀라서 심장이 뚝 떨어지는 듯했다. 이란 공격이 정말 개시됐다면 중동 지역에서 아마도 이미 수만명의 무고한 사람이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초대형 참극을 겨우겨우 모면한 셈인데 미국 사회는 이상하게 조용하다. 중동이라는 화약고에 불을 붙일 뻔한 전쟁광들의 불장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그다지 들리지 않는다. 군사 모험주의가 새로운 ‘상식’이 된 것일까?
최근 뉴스에서 가장 자주 눈에 들어오는 단어는 ‘제재’다. 각종 경제·무역 제재는 이제 만능의 외교 수단이 된 느낌이다. 지금 미국의 경제 제재나 무역 전쟁의 대상에 오른 나라만 해도 거의 20개국 정도 된다. 북한이나 이란, 러시아, 중국에 대한 제재 등은 잘 알려져 있지만, 실은 미국 제재의 대상국들은 베네수엘라부터 수단까지 참으로 다양하다. 그러나 미국뿐인가? 유럽 국가들이 중국에 대한 ‘민감한’ 기술 수출을 자제하는가 하면, 중국은 한국에 대한 사드 보복에 나선다. 미국과 유럽의 제재 대상이 된 러시아는 북한에 대한 제재를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하고, 최근에는 조지아 등 주변의 ‘지나치게 친미적인’ 약소국에 꽤나 아픈 제재를 또다시 가했다. 제재를 가하고 제재를 받는 것은 이제 다반사다. 제재는 열전(熱戰)과 다르지만 그 목적은 동일하다. 상대방을 (돈의) 힘으로 굴복시키는 것이다. 낮은 수준의 전쟁인 제재는 이제 지구촌의 일상이다.
이 지구촌에서 마이너리티로 사는 것은 늘 어렵다. 한데 그들에 대한 일상적인 차별이 최근에는 마녀사냥과 같은 광란으로 변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불법 이민자’들을 무조건 수용소에 집어넣으면서 부모와 영유아들을 떼어놓는 등의 반인륜 범죄를 저지른다. 그런가 하면 중국에서는 거의 100만명에 이르는 위구르족 등 이슬람 신자들이 각종 ‘재교육 캠프’에 강제 수용돼 반인도적 인권 유린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외신들은 보도한다. 미국의 공식 이념은 자유민주주의고 중국의 공식 이념은 사회주의지만, 양국의 마이너리티 정책에서는 민주주의나 사회주의의 흔적이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타자를 강제로 쫓아내거나 ‘우리’와 동화시키려는 국가의 폭력만 눈에 띌 뿐이다. 미증유의 생존권 위협에 놓인 위구르족에 대한 정책들은 한민족이 일제강점기 말에 겪은 민족말살책을 방불케 한다. 우리는 정말 1930년대나 제2차 세계대전과 같은 암흑기로 돌아가고 있는가? 역사는 그대로 돌아가는 법이야 없지만 1930년대의 ‘소프트’한 변종이 지금 다시 도래하고 있는 것은 사실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