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승호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 40%대로 추락했다. 한국갤럽이 지난 7일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문 대통령이 “잘하고 있다”는 긍정평가가 지난주 53%에서 4%포인트 하락해 49%로 내려앉았다. 문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은 이유로 응답자들은 “경제·민생문제 해결 부족”(41%)을 가장 많이 꼽았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지지율 추락은 충분히 예상됐던 바다. 문재인 대통령 개인 탓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그가 속한 당파와 그 당파가 대표하는 계급 탓이다. 그러므로 이 문제에 대해서는 그의 책임도 물어야 하지만 한층 더 깊은 층위에 책임을 묻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이 문제에 대한 대안을 이재명 경기도지사 같은, 그들 당파의 다른 인물에게 구하는 따위의 어리석음을 피할 수 있다.
반복되는 얘기지만 문재인 정부는 노동계급이 아니라 자본계급을 대표한다. 그중에서도 흔히 말하는 금수저인 1%의 최상층 ‘특권’ 부르주아보다 은수저인 그다음 상층 10%의 ‘비특권’ 부르주아를 대표한다. “특권과 반칙 반대”가 그들의 주 슬로건이다. 하지만 이들 은수저는 금수저에 비해 상대적으로 특권을 덜 누리고 있을 뿐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특권적 지위에 있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99%의 국민을 대표한다고 포장하고 ‘진보’라고 자칭한다. 이들은 자신들이 1%의 특권층을 대표하는 박정희 이후 역대 파쇼정권에 날카롭게 대립해 왔다는 사실을 그러한 포장의 근거로 든다. 그들이 파쇼정권에 맞서 싸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비특권 부르주아의 입장에서 그렇게 했을 뿐이다. 이로 인해 국민의 80~90%에 이르는 노동자·민중은 이들 은수저 정권하에서 정치적으로 대표됨이 없이 배제된다. 전교조 법외노조 문제를 보라. 집권 초기의 매우 높은 지지율은 그들이 노동자·민중을 대표할 것처럼 선전한 데 대한 노동자·민중의 소박한 기대의 표현이고, 최근의 지지율 추락은 그들이 노동자·민중을 대표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한 이들의 실망감·배반감의 표현이다. ‘그래도 특권계급에 맞서 민주주의를 주창하고 투쟁한 사람들인데 설마 노동자·민중을 배반하고 배제할까’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라는 생각이 올바르다.
1980년대 중반 운동권에서 총노선을 둘러싸고 논쟁이 있었다. 민중민주주의혁명(PDR)·민족민주주의혁명(NDR)·부르주아민주주의혁명(BDR) 노선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 부르주아민주주의혁명(BDR) 노선을 주장한 조류는 87년 대선에서 김영삼 후보 단일화파와 김대중 후보 비판적 지지파로 나뉘어 민중으로 하여금 부르주아민주주의 당파를 지지하도록 이끌었다. 그리고 이들은 이른바 ‘민주화 이행’ 이후 기성 종속파시즘 체제 안에서 권력 일부를 누릴 수 있게 되자 ‘혁명’에서 ‘개혁’으로 전략을 전환했으며 ‘부르주아민주주의개혁파’가 됐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선도한 사람 중 하나가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다. 노무현·문재인 전·현직 대통령도 그들과 행보를 같이했다. 나중에 소련 사회주의 붕괴 이후 민중민주·민족민주 정파나 이들보다 늦게 운동권에 등장한 민족해방파의 상당수가 변절해서 ‘부르주아민주주의개혁파’에 가담했다. 이것이 현 집권당파인 더불어민주당의 계보학이다.
부르주아민주주의개혁 당파의 지지율은 추락할 수밖에 없다. 이런 추락은 현재의 조건하에서 우연이 아니고 필연이다. 첫째, 친자본·반노동의 성격을 가진 부르주아민주주의는 현재의 한국 사회에서 광범위한 민중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 한국은 생산관계 면에서 전면적으로 자본주의화된 사회다. 경제활동인구 대부분이 임금노동자다. 임금노동자계급은 자본가계급과 일상적으로 대립·투쟁한다. 이런 사회에서 특권적이든 비특권적이든 부르주아계급을 대표하면서 광범한 민중의 지지를 받는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하다. 자본주의화가 덜 성숙돼 임금노동자가 민중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던 1980~1990년대까지는 몰라도 임금노동자가 민중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된 새천년 이후에는 분명히 그렇다.
둘째, 이 당파는 혁명노선을 버리고 개혁노선을 취하고 있다. 촛불혁명 직후 잠시 “문재인 정부는 촛불혁명의 통로” 운운했지만 말뿐이고 실제로는 구질서 내에서 개혁을 도모한다. 그러므로 사회개조는 원천적으로 불철저하다. 게다가 그들이 대표하는 은수저들은 기득권층으로서 개혁조차 별로 원하지 않는다. 이에 그들의 목표는 아파트값 대폭인하가 아니라 현상유지다. 그래서 피부에 와 닿는 개혁이 없다. 이명박·박근혜 정적 제거를 제외하고 적폐청산은 이렇다 할 것이 없다. 국가정보원·사법부 등 권력기관 개혁은 하는 둥 마는 둥이다. 노동·사회개혁과 재벌개혁은 아예 실종 상태다. 그 결과 노동소득 분배율은 오히려 저하했다. 남북관계 개선만 신경 쓴다.
그러므로 부르주아민주주의개혁 당파에 대한 노동자·민중의 지지 철회는 순리다.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 추락에 대한 대책은 부르주아민주주의개혁의 보다 적극적인 수행이나 후퇴하지 않는 부르주아민주주의개혁이 아니다. 그것에 매달릴 경우 과거처럼 수구세력에게 부활의 길을 열어 주게 될 것이다. 대안은 노동계급과 이를 대표하는 당파가 만드는 반자본·친노동의 급진적 민주주의다. 그것은 개혁을 통해 달성될 수 없고 변혁과 혁명을 통해야만 달성될 수 있다. 이 급진적 민주주의혁명은 그 자체로 사회주의혁명이나 민족해방혁명이 아니다. 급진적 민주주의혁명은 그런 근본적 변혁들 이전의 변혁으로서, 노동자계급이 정치권력을 쟁취하고 천민자본주의 토대와 종속파시즘 상부구조를 해체함으로써 그런 근본적 변혁을 향한 첫 계단을 놓는 혁명이다. 이 변혁·혁명의 관문을 통과하지 않고 사회주의든 민족해방이든 곧장 실현하려는 시도는 십중팔구 관념적 이상에 머무를 것이다. “가슴속엔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 그러나 우리 모두 현실주의자가 되자!”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seung7427@daum.net)
김승호 seung742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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