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文化)는 문화(麻+禾 禾)다. 좁쌀 문(麻+禾)이며 쌀벼 화(禾)다. 농경의 산물이다. 농경은 사실상 야만과 문화의 분수령이다. 그래서 농경(Agriculture)과 문화(Culture)는 맥이 같다.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인더스, 황허 문명은 인류의 4대 농경문화 발상지로 알려졌다. 그러나 더 많은 고대문명이 있다는 것이 확인됐다. 우선 1970년대 발굴된 중국 저장성의 허무두 유적이다. 또 멕시코 주변에는 고대 마야 문명과 아스테카 문명, 즉 메소아메리카(Mesoamerica)문명이 있다.
이런 농경만을 문명의 중심이라고 한다면 유목민들로서는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유목민에 관한 기록은 농경인의 것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기록자는 스스로를 ‘문명인’으로 상정하고 유목민을 으레 ‘침략자’, ‘비(非)문명’으로 채색했다.
유목민의 명칭부터 그랬다. 흉노(匈奴)는 시끄러운 종놈, 돌궐(突厥)은 날뛰는 켈트족, 몽고(蒙古)는 아둔한 옛것, 동이(東夷)는 동쪽 오랑캐라고 치부했다. 그러나 노마디즘(Nomadism), 유목생활은 인간 출현 이후 유구했고 또 농업이 등장한 후에도 동·서양에서 오래간 꽃피었다.
◇농경문화 못지않게 유목민의 문화도 중요해
로마제국 천년의 역사가 대표적이다. 로마제국은 ‘길’의 네트워크였다. 그리스인들은 ‘폴리스(Polis)’라는 도시국가 속에 살았다. 그래서 라틴어의 키빌리타스(civilitas:도시)에서 유래한 문명(civilization)으로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로마인들은 도시를 뛰어 넘어 대제국을 건설했다. 그것은 길로 이루어졌다.
길을 만드는 공법도 대단했다. 먼저 길의 너비에 맞춰 깊게 골을 팠다. 거기에 자갈을 차례로 덮었다. 그 위에 다각형의 돌을 박는 것으로 마무리 했다. 이 길에는 사두마차가 전속력을 내어 달릴 수 있었다. 이 도로(道路)에서 모든 것이 용해됐다. 웨이(Way), 도(道)에서는 신(神)과 사람과 소프트웨어가 오갔다.
원천기술(?)인 그리스의 헬레니즘과 기독교의 히브리즘이 세계에 전파됐다. 마치 원천 기술이 부족하지만 한국이 21세기 디지털 로드(Digital Road)를 창조하며 세계로 나아가는 것과 같다. 로드(Road), 로(路)에서는 재물과 하드웨어가 오갔다.
천하의 대한민국 서울 세종로에 세종대왕 동상은 없었다. 군사문화의 잔재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여하간 로마제국 전체가 잡종화(Hybridization)되었다. 그러면서 로마라는 새 문화를 창조했다.
칭기스칸 제국도 마찬가지다. 만주에서 페르시아에 이르는 광대한 제국을 건설했다. 당시 몽골고원 인구는 100만~200만이었다. 이 숫자가 150년 동안 중국, 이슬람, 유럽인 2억명을 거느렸다. 노마디즘의 ‘열린 사고’가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원래 한국인도 유목민이었다.
◇‘알타이 문화 연합’이나 “올레(Olleh)!” 모두 노마디즘
고구려, 발해는 동이(東夷)족으로 말과 활과 수렵의 나라였다. 어쩌면 나당 연합군에 의해 한반도가 통일된 것이 비극일지 모르겠다.
엊그제 몇몇 CEO들과 우리시대의 영원한 노마드, 황석영 작가와 만찬을 함께했다. 그는 한국의 대표 역마살이며 만주태생의 세계적 작가다. 당연히 북한을 포함시킨 ‘몽골+2코리아’ 그리고 중앙아시아를 포함하는 ‘알타이 문화연합’이 화제에 올랐다.
이명박 대통령이 현대건설 CEO때부터 관심을 갖고 있다는 프로젝트였다. 신 실크로드, 로(路)가 번창하기 위해서는 도(道)도 함께 해야 한다고 거들었다. 도(道)는 두말할 나위 없이 한글과 디지털이다.
얼마 전 KT 이석채 회장이 “올레(Olleh)!”를 TV-CF로 내보내면서 논평을 요청해 왔다. “헬로(hello)!”를 역순으로 뒤바꾼 콩글리시 감탄사다. 무늬만 민영화된 4만명의 공룡기업 KT를 세계속의 KT로 재창업 하겠다는 이석채 CEO의 의지라고 느꼈다.
“거친 애니메이션이지만 힘찬 외침이 있다”고 이 자리를 빌어 답하고 싶다. 노마디즘은 다소 거칠고 생소하다. 또 로크벌리즘(Locbalism, Local+Global)이라고 격찬하고 싶다. 콩글리시를 갖고 세계로 나가시라! 유목민의 질주처럼 디지털 제국건설에 앞장서시라!(한국CEO연구포럼 연구위원장)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인더스, 황허 문명은 인류의 4대 농경문화 발상지로 알려졌다. 그러나 더 많은 고대문명이 있다는 것이 확인됐다. 우선 1970년대 발굴된 중국 저장성의 허무두 유적이다. 또 멕시코 주변에는 고대 마야 문명과 아스테카 문명, 즉 메소아메리카(Mesoamerica)문명이 있다.
이런 농경만을 문명의 중심이라고 한다면 유목민들로서는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유목민에 관한 기록은 농경인의 것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기록자는 스스로를 ‘문명인’으로 상정하고 유목민을 으레 ‘침략자’, ‘비(非)문명’으로 채색했다.
유목민의 명칭부터 그랬다. 흉노(匈奴)는 시끄러운 종놈, 돌궐(突厥)은 날뛰는 켈트족, 몽고(蒙古)는 아둔한 옛것, 동이(東夷)는 동쪽 오랑캐라고 치부했다. 그러나 노마디즘(Nomadism), 유목생활은 인간 출현 이후 유구했고 또 농업이 등장한 후에도 동·서양에서 오래간 꽃피었다.
◇농경문화 못지않게 유목민의 문화도 중요해
로마제국 천년의 역사가 대표적이다. 로마제국은 ‘길’의 네트워크였다. 그리스인들은 ‘폴리스(Polis)’라는 도시국가 속에 살았다. 그래서 라틴어의 키빌리타스(civilitas:도시)에서 유래한 문명(civilization)으로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로마인들은 도시를 뛰어 넘어 대제국을 건설했다. 그것은 길로 이루어졌다.
길을 만드는 공법도 대단했다. 먼저 길의 너비에 맞춰 깊게 골을 팠다. 거기에 자갈을 차례로 덮었다. 그 위에 다각형의 돌을 박는 것으로 마무리 했다. 이 길에는 사두마차가 전속력을 내어 달릴 수 있었다. 이 도로(道路)에서 모든 것이 용해됐다. 웨이(Way), 도(道)에서는 신(神)과 사람과 소프트웨어가 오갔다.
원천기술(?)인 그리스의 헬레니즘과 기독교의 히브리즘이 세계에 전파됐다. 마치 원천 기술이 부족하지만 한국이 21세기 디지털 로드(Digital Road)를 창조하며 세계로 나아가는 것과 같다. 로드(Road), 로(路)에서는 재물과 하드웨어가 오갔다.
천하의 대한민국 서울 세종로에 세종대왕 동상은 없었다. 군사문화의 잔재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여하간 로마제국 전체가 잡종화(Hybridization)되었다. 그러면서 로마라는 새 문화를 창조했다.
칭기스칸 제국도 마찬가지다. 만주에서 페르시아에 이르는 광대한 제국을 건설했다. 당시 몽골고원 인구는 100만~200만이었다. 이 숫자가 150년 동안 중국, 이슬람, 유럽인 2억명을 거느렸다. 노마디즘의 ‘열린 사고’가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원래 한국인도 유목민이었다.
◇‘알타이 문화 연합’이나 “올레(Olleh)!” 모두 노마디즘
고구려, 발해는 동이(東夷)족으로 말과 활과 수렵의 나라였다. 어쩌면 나당 연합군에 의해 한반도가 통일된 것이 비극일지 모르겠다.
엊그제 몇몇 CEO들과 우리시대의 영원한 노마드, 황석영 작가와 만찬을 함께했다. 그는 한국의 대표 역마살이며 만주태생의 세계적 작가다. 당연히 북한을 포함시킨 ‘몽골+2코리아’ 그리고 중앙아시아를 포함하는 ‘알타이 문화연합’이 화제에 올랐다.
이명박 대통령이 현대건설 CEO때부터 관심을 갖고 있다는 프로젝트였다. 신 실크로드, 로(路)가 번창하기 위해서는 도(道)도 함께 해야 한다고 거들었다. 도(道)는 두말할 나위 없이 한글과 디지털이다.
얼마 전 KT 이석채 회장이 “올레(Olleh)!”를 TV-CF로 내보내면서 논평을 요청해 왔다. “헬로(hello)!”를 역순으로 뒤바꾼 콩글리시 감탄사다. 무늬만 민영화된 4만명의 공룡기업 KT를 세계속의 KT로 재창업 하겠다는 이석채 CEO의 의지라고 느꼈다.
“거친 애니메이션이지만 힘찬 외침이 있다”고 이 자리를 빌어 답하고 싶다. 노마디즘은 다소 거칠고 생소하다. 또 로크벌리즘(Locbalism, Local+Global)이라고 격찬하고 싶다. 콩글리시를 갖고 세계로 나가시라! 유목민의 질주처럼 디지털 제국건설에 앞장서시라!(한국CEO연구포럼 연구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