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9호선 파업투쟁에 연대와 지지를 보냅니다

지옥철을 개혁하라

  • 김승호
  • 승인 2017.12.04 08:00

▲ 김승호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지옥이라는 말이 복합명사로 자주 쓰여 왔다. 입시지옥·교통지옥에 이어 이번에는 ‘지옥철’이라는 말이 나왔다. 지옥 같은 지하철이라는 말의 줄임말이다. ‘헬조선’이 ‘지옥 같은 조선’이라는 말의 줄임말이듯이. 서울지하철 9호선을 노동자들은 이렇게 지옥철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이 지옥철 운행을 담당하는 노동자들이 파업에 들어갔다. 지옥철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다. 지옥철을 그대로 둔 채 회사를 떠남으로써 개별적으로 탈출하는 방법이 아니라 파업투쟁으로 지옥철을 개조해 모두가 집단적으로 탈출하는 방법을 단행한 것이다.

파업 출정식은 지난달 30일 오전 서울시청 옆에서 열렸다. 노동자들은 추운 날씨임에도 수백 명이 질서정연하게 대열을 지어 파업 출정식을 했다. 연단에 오른 파업 지도부의 연설은 힘찼고, 조합원들이 외치는 구호와 함성은 우렁찼으며, 집회 열기는 추운 날씨를 녹이려는 듯 뜨거웠다. 파업투쟁을 지지하고 연대하기 위해 단상에 오른 민주노총·공공운수노조·도시철도노조 지도부의 연설 또한 힘차고 우렁찼다.

우연의 일치인지 연사들이 모두 궤도노동자 출신이어서 마치 9호선 노동자인 것처럼 지옥철 현실을 생생하게 폭로하고 고발했다. 그러나 가장 가슴에 와 닿은 연설은 역시 파업 당사자인 지하철 9호선 노동자들의 파업결의 발표였다. 승무를 대표해 투쟁 의지를 밝힌 동지는 이렇게 분노와 결의를 토해 냈다.

“오늘은 매우 중요한 순간입니다. 지난 9년간 억압과 착취를 척결하고 새로운 내일을 맞이하려는 순간입니다. 생각하기도 싫은 지난날이 떠오릅니다. 대책 없이 밀어붙여진 비숙박제도. 우리는 이른 새벽 2시50분 알람에 깨어 곤히 자는 사랑하는 가족들을 뒤로한 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서울 시민의 안전한 발이 되기 위해 회사로 발걸음을 했습니다. 그리고 두세 시가 돼야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서울의 하늘이 아름답다고 누가 그랬습니까? 좁은 운전실에 갇혀 캄캄한 서울의 지하철에서, 선로 청소도 제대로 해 주지 않아 철가루와 먼지를 마시며 혼자 고독과 설움을 삼켰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안전운행을 했고, 그것을 자부심으로 여기며, 가족을 위해 용기를 내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자랑스러운 노동자입니다. 서울 시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기관사입니다. 낮은 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에서도 기관사라는 이름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겠다는 긍지 하나로 버텼습니다. 우리는 기관사인 것이 부끄럽지 않습니다. 그러나 회사는 배불러 갔고, 우리는 피폐해져 갔습니다. 기관사 동지들, 우리는 이제 싸움에 나섭니다. 우리는 충분히 용기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승리할 것입니다. 이 겨울이 지나고 따뜻한 봄이 오면, 아름다운 서울 하늘을 누립시다. 그 봄이 올 때까지 함께 싸웁시다. 투쟁!”

연설을 들으면서 1987년 7·8·9 노동자 대투쟁이 생각났다. 당시 필자는 전국 노동자들의 투쟁소식을 긴급하게 전하고자 <전국노동자신문>을 속보 형식으로 두 차례 발행했다. 그 신문을 발행하면서 전국에서 보내 준 투쟁 홍보물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울산 현대종합목재노조에서 나온 홍보물에 이렇게 쓰여 있었다. “아, 우리도 이제 하늘을 보고 살고 싶다!”라고. 그런데 87년 7·8·9 노동자 대투쟁 이후 30년이 지난 지금 서울의 지하철 노동자가 똑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슬펐다.

기술본부를 대표해 연단에 오른 동지는 이렇게 외쳤다.

“자랑스런 9호선 조합원 동지들! 투쟁의 구호로 인사를 드립니다. 투쟁! 우리 9호선 기술본부 조합원은 개통 이후 운영에 필요한 정예인력으로 서울 시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중추적 역할을 성실히 수행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선진 운영기법이라는 미명 아래 최소한의 인력으로 직원들의 업무는 해마다 가중되고, 각종 결원 발생에 대한 인력보충은 턱없이 부족한 것이 지금의 현실입니다. 여기에, 직원들의 건강을 생각하는 관리자는 한 명도 없습니다. 비번 날에도 연간 36번 야간업무에 시달려야 하는 살인적인 근무일정으로 우리 조합원들의 건강이 위협당하고 있습니다. 기술 조합원 동지들! 서울 시민의 안전과 9호선 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무환경 개선을 위해, 파업 대오를 유지하며 투쟁합시다. 하나 되어 함께 갑시다.”

그런데 출정식이 끝날 즈음 연단에 오른 어느 국회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들의 파업은 시민의 안전을 위해서죠? 여러분들의 임금을 올리기 위해서가 아니죠?”라고. 왜 지하철 노동자들은 자신의 임금을 올리기 위해 파업을 하면 안 되는가. 9호선 노동자들의 임금은 실제 노동 강도와 시간에 비례해 동종업계 평균에도 한참 못 미친다. 더구나 노동자가 자신의 건강을 위해, 건강을 위협하는 열악한 근무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파업을 하면 안 되는가? 소비자만 중하고 생산하는 노동자는 중하지 않은가. <곡성>이라는 영화로 유명해진 “뭣이 중헌디?”라는 말이 생각났다. 국회의원에게서 그런 발언을 파업출정식 현장에서 들으니 입맛이 썼다.

지하철 9호선이 지옥철이 된 이유는 무엇이고, 노동자들이 파업에 돌입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언론이나 정치권은 한결같이 노동자 파업으로 인한 ‘시민 불편’을 중요하게 취급했다. 거기에다 조금 나아가 9호선 지하철에 대한 시민들의 평소 불편을 거론했다. 그러나 편리한가 불편한가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의 건강과 안전과 생명이다. 시민으로 호명되지만 사실은 대부분이 노동자들인 소비자들의 안전과 생명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 지하철을 운행하는 생산노동자들의 생명과 안전도 중요하다. 그들은 의도적으로 이 둘을 분리시키고 생산하는 노동자들의 요구는 체계적으로 배제시킨다. 노동자가 먹고사는 문제도 배제시킨다.

지하철 9호선 문제는 그야말로 적폐다. 왜 공공운송인 지하철이 민간기업에 다단계로 맡겨져 빨대를 꽂고 이윤을 뽑아 가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돼야 했는가. 호주 자본 맥쿼리는 어떻게 9호선을 운영하게 됐으며, 프랑스 국영철도회사는 도대체 어떻게 9호선 운영사가 됐는가. 서울시메트로9호선㈜은 어떻게 9호선 시행사가 됐는가.

이런 정경유착이 진짜 적폐 아닌가? 서울시는 즉시 9호선 민영화를 철회하고 1~8호선에 통합해 더 이상 자본의 사냥터가 아니게 만들어야 할 것이다.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seung7427@daum.net)

김승호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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