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노무팀과 KT 어용노조는 어떻게 ‘부정선거’를 만들었나

얼마전 KT 사측이 노동조합 위원장 후보를 낙점했다는 녹취록이 공개됐습니다. 그간 ‘설’로만 떠돌았던 KT 고위층의 선거개입 정황이 포착된 것입니다. ‘민중의소리’는 관련 사건을 취재하다 KT에서 15년 이상 노무관리를 해왔던 관리자를 만났습니다.

그에게서 들은 KT 노무관리의 실체는 생각보다 충격적이었습니다. 노동조합 선거가 다가오면 사측은 직원의 성향을 분석해 이른바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리스트에 오른 직원은 불이익을 감수해야했습니다. 회사는 부정선거로 만든 노동조합과 손잡고 직원들을 마음대로 정리해고 하고 민주노조를 세우려는 세력은 탄압했습니다.

이 관리자는 “박근혜도 감옥에 간 마당에 이제 KT도 변해야 한다. 회사는 부정선거개입을 중단해야 한다”고 수차례 호소했습니다. 그의 호소를 3회에 걸쳐 보도합니다.

① KT 노무팀장의 양심고백 “우리는 작은 국정원이었습니다”
② KT 노무팀과 KT 어용노조는 어떻게 ‘부정선거’를 만들었나
③ 2014년, 황창규 취임과 삼성식 노무관리의 참사

‘보통·평등·직접·비밀’

민주사회라면 당연히 지켜야 할 ‘선거의 4대 원칙’이다. 하지만 KT에서는 지켜지지 않았다. KT 노무팀과 관리자, 어용노동조합은 서로 짜고 부정선거를 자행했다. 팀장이 팀원의 기표용지 사진을 요구하고 거부하면 휴가 보내 투표권을 박탈했다. 회사에 충성도가 가장 높은 직원이 선거관리위원이 되어 투표 용지를 바꿔치기했다. ‘부정선거’는 KT 노무팀이 진두지휘했다.

수도권의 한 KT 지사에서 노사업무 총괄팀장으로 15년 이상 근무한 이현규(가명)씨는 ‘민중의소리’와의 인터뷰에서 “KT 노동조합 선거는 부정선거의 결정판”이라고 말했다.

노동조합 위원장 선거, ‘민주파’ 당선을 막아라

3년에 한 번 돌아오는 KT 노동조합 위원장 선거는 이틀간 진행된다. 첫날에 중앙위원장과 12명의
지방위원장을 선출하고 3일 뒤 250여 개 지역지부장을 선출한다. 이현규 팀장은 “중앙위원장에 ‘민주파’가 당선되는 것을 막는 게 회사 노무팀의 목표”라고 말했다.

목표 달성을 위해 노무팀은 전국에서 취합된 직원 성향 분석결과와 과거 선거에서 ‘민주파’의 득표율 추이 등을 분석한다. 선거구를 경합지역과 비경합지역으로 분류하고 경합지역에 힘을 집중한다.

경합지역 노무관리 팀장들은 더 노골적으로 선거에 개입한다. 지역본부 노무팀 책임자가 경합지역에 상주하고 노사담당 팀장은 물론 지사장과 지점장도 득표전에 동원된다.

팀장급에서는 할 수 없는 ‘조합원 빼돌리기’ 같은 불법행위가 등장한다. 민주파 후보가 자신의 지사에 유세를 나오면 직원들을 빼돌린다. 외부 업무를 지시하거나 외근이 여의치 않은 직원들은 회의실이나 창고 등의 건물 외진 곳에 모아 대기시키는 식이다.

이 팀장은 “KT 대부분 사무실이 보안시설이라 안에서 지사 직원이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후보라고 하더라도 들어올 수 없다”며 “사무실에서 민주파 후보가 입장하려고 하는데 문을 열어주면 ‘지사장에게 찍히는 짓'”이라고 말했다.

경합지역의 경우 투표 날이 임박하면 성향이 확실히 파악되지 않는 직원을 더욱 압박한다. 팀장들은 위험을 감수하고 직접 직원을 만난다. “기표용지를 찍어서 나에게 보여달라”고 요구하거나 “정 안 되겠으면 그날 휴가를 내라”고 지시한다.

이 팀장은 “관리자들은 ‘너의 결백을 입증하라’고 요구한다”며 “실제 경합지역에서는 휴가를 내 투표에 불참시키면 결과가 뒤집어지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투표(자료사진)
투표(자료사진)ⓒ제공 : 뉴시스

투표가 끝나고 시작되는 ‘목표 득표율 검증’
압박 못 이겨 자신의 투표용지 찍어놓고 자살한 직원도

중앙위원장 투표 날이 되면 KT 각 지점과 지사에서는 팀장이 주재하는 ‘티타임’이 시작된다. 직원들의 투표 순서와 시간을 정하는 시간이다.

업무 성격을 고려해 바로 현장에 나가야 하는 직원들이 1순위, 오전 시간대 고객 민원을 처리하는 직원들이 2순위, 영업 직원들이 3순위다. 순위가 정해졌다고 해서 마음대로 개별 투표할 수 없다. 팀의 선임 직원인 ‘차석’이 나머지 직원들을 인솔해 우르르 투표장으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투표 순서를 정하고 꼭 팀별로 투표하도록 종용하는 이유는 ‘사후 점검’ 때문이다. 팀마다 제출한 ‘목표 득표’가 달성됐는지 확인하고 이를 지사장에게 보고해야 한다. 이현규 팀장은 “직원들 순서대로 투표해야 개표 시 어떤 팀의 몇 명이나 친 사용자 성향 후보에 투표했는지 확인하기 쉽다”고 말했다.

팀별로 투표를 하면 투표함에 순서대로 용지가 쌓인다. 개표 시 이 순서를 흩트리지 않고 그대로 위에서부터 개표하면 어느 팀의 몇 명이 친 사용자 후보에 투표했는지 검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언뜻 이해하기 힘든 방법이지만 ‘소규모 투표소 운영’ 방식을 알고나면 이해하기 쉽다.

KT에 투표권이 있는 직원은 1만8천여 명이다. 이들은 전국 230여 개 지사와 지점에서 각각 나뉘어 근무한다. 지점과 지사당 평균 인원은 80명이 채 되지 않는다. 적게는 수천 명에서 많게는 수만 명의 주민이 하나의 투표소에서 줄 서서 투표하는 방식이 아니다.

게다가 투표소는 500여 개에 달한다. 같은 지점에서 근무하는 직원조차 서로 투표소가 다르다. 역산해보면 1개 투표소당 평균 투표 인원은 30명 안팎이다. 30명이 순서에 맞춰 팀별로 투표를 하고 개표를 위에서부터 조심스럽게 한다면 각 팀에서 몇 명이 친 사용자 성향 후보에 투표했는지 그 추이를 확인할 수 있다.

투표의 자유를 빼앗기고 매번 관리자의 압박을 받는 것은 힘겨운 일이다. 2013년 전남본부의 한 직원은 이 가혹한 검증과정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자살한 직원의 유서에는 투표용지를 찍은 사진이 있었고 “투표 후 검표가 두려워 항상 사진으로 남긴다”고 적었다.

KT 전남본부 직원이 남긴 유서
KT 전남본부 직원이 남긴 유서ⓒ제공 : KT노동인권센터

부정선거 횡행하는 ‘지부장 투표’
“투표용지 바꿔치기한다고 누가 알겠나?”

이현규 팀장은 “중앙위원장 선거가 끝난 뒤 치러지는 지부장 선거는 수월하다”고 말했다. 지부장 선거가 수월한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하나는 회사 내에서 소수인 민주파 후보 숫자 자체가 많지 않다는 점이고 또 다른 하나는 전국 250여 개 지부에서 각각 투표용지를 제작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심판’인 선거관리위원들이 회사에 충성도가 가장 높은 직원이라는 게 “일이 수월한” 가장 큰 이유다.

민주파 후보가 출마하지 않았다는 것은 눈치를 봐야 할 상대 참관인이 없다는 이야기다. 친 사용자 성향의 후보만 있는 투표소와 개표소에서 직원들의 의사가 투명하게 반영된 선거와 개표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까?

이 팀장은 “투표권을 가진 직원이라면 누구나 개표를 참관할 수 있지만 개표장에 나타났다는 사실만으로도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첫날 중앙위원장 선거에 사용되는 투표용지는 본부에서 제작해 각 지부로 하달한다. 하지만 각 지부장 선거에 쓰이는 투표용지는 지부에서 자체 제작한다. 미리 투표용지를 넉넉하게 인쇄해 기표해 두고 진짜 표와 바꿔치기를 해도 적발할 수 없다.

이 팀장은 “민주파 후보의 참관인들은 밥도 투표소 안에서만 먹는다. 자리를 비우면 이상한 짓거리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목표 득표율을 검증하는 것도 지부장 선거에서는 수월하다. 투표용지 형태를 마음대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투표용지에 찍히는 선거관리위원회 직인의 ‘인’ 방향을 우측으로 10장 찍어서 10명이 있는 팀원에게 주고, 좌측으로 10장 찍어서 다른 팀에게 주는 식이다. 개표할 때 ‘인’의 방향대로 투표용지를 모아 숫자를 세어보면 어느 팀의 몇 명이 친 사용자 성향에 투표했는지 금방 알 수 있다.

개표와 투표 바꿔치기 등 부정선거의 핵심은 선거관리위원을 통해 이뤄진다. 지부 선거관리위원은 일반적으로 승진을 앞둔 ‘충성파’ 선임 직원이 맡는다. 이 팀장은 “지부장 선거는 당락은 물론 득표율까지 모든 것이 조작 가능하다”고 말했다.

가장 최근 위원장 선거인 2014년 선거에서 민주파 지부장 후보는 10여명 출마했으나 모두 낙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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