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폰으로 ‘페북’하기 느려져
KT서버 우회로 트래픽 폭증하자
홍콩 서버로 돌려 접속 속도 뚝
망사업자 대 콘텐츠사업자 ‘충돌’
KT “서버 설치 거절했더니 갑질”
페북 “우회로 막혀 제안했을 뿐”
구글 유튜브 서버 무상제공 ‘화근’
“페북이 ‘구글처럼 대우’ 요구” 분석
방통위 실태조사 방침 밝혔지만
정부는 “사업자간 문제” 뒷짐 태도
“페이스북이 ‘갑질’하는 거다.” “합리적인 방안을 제안한 것이다.”에스케이브로드밴드(SKB·이하 에스케이) 초고속인터넷 통신망에 페이스북의 ‘전용 캐시 서버’를 설치하는 문제를 두고 에스케이와 페이스북이 날선 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상도의가 없다고 상대를 헐뜯기까지 한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실태 조사 방침을 밝혔어도 둘 사이의 공방은 수그러들지 않고 오히려 확대되는 모습이다.에스케이는 우리나라 초고속인터넷 업계 2위 사업자(ISP)다. 페이스북은 미국의 세계적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업체다. 에스케이 쪽에서는 페이스북 서비스가 가입자들에게 인기를 끄는 콘텐츠이고, 페이스북 쪽에서는 초고속인터넷 덕분에 서비스가 가능하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 사업적으로 에스케이와 페이스북 모두 상대가 꼭 필요한 셈이다. 그런데 어쩌다 둘은 아옹다옹하게 됐을까. 그리고 케이티(KT)와 엘지유플러스(LGU+·이하 엘지)는 왜 전전긍긍하고 있고, 네이버·카카오·아프리카티브이 등은 왜 느닷없이 ‘역차별’ 목소리를 높이는 것일까.
페이스북 이용 속도 느려지며 불거져 이번 사태는 에스케이 가입자들이 “페이스북 페이지가 뜨는 데 5분 넘게 걸린다”는 불만을 제기하면서 불거졌다. 이게 초고속인터넷 품질 문제로 번지자, 에스케이는 “페이스북이 케이티 초고속인터넷 통신망에 달려 있는 서버를 이용하게 하던 경로를 바꿔 홍콩에 있는 서버를 쓰게 해서 접속 장애가 발생하고 있다”고 페이스북 탓으로 돌렸다. “페이스북이 전용 캐시 서버의 무상 설치·운영을 요청해왔는데 거절했더니 이렇게 한 것 같다”고도 했다. 이용자들이 페이스북을 향해 비난을 쏟아냈다. “이용자들을 볼모로 잡는 것이냐” “페이스북을 이용하지 말자” 같은 험한 말까지 쏟아졌다.급기야 페이스북도 입을 열었다. ‘페이스북과 에스케이의 통신망 이용과 관련해 설명드립니다’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내어 에스케이 쪽의 설명을 반박했다. “이번 사태는 상호접속 고시 개정에 따라 케이티 통신망에 달린 서버를 다른 사업자들이 더이상 이용할 수 없게 된 데서 비롯됐고, 에스케이 통신망에 페이스북 전용 서버를 설치하자고 한 것 역시 강요한 게 아니라 제안한 것”이라고 주장했다.케이티가 페이스북에 추가 대가 요구한 게 발단? 익명을 전제로 한 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국내 최대 초고속인터넷 사업자인 케이티가 페이스북에 추가 대가를 요구한 게 이번 사태의 직접적인 발단이 됐을 가능성이 크다. 현재 우리나라 초고속인터넷 사업자 중에서는 케이티가 유일하게 페이스북 전용 캐시 서버를 두고 있다. 케이티는 “정당한 대가를 받고 페이스북 전용 캐시 서버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용 캐시 서버(고속·고용량 데이터 저장·관리 컴퓨터)란 물류로 치면 중간 기착지와 같은 구실을 하는 것이다. 실제로 케이티 가입자가 페이스북의 국외 서버에 담긴 콘텐츠를 요청하면, 이 콘텐츠는 이용자 컴퓨터에 뜨는 동시에 캐시 서버에 자동 저장된다. 이후부터는 케이티의 다른 가입자가 이 콘텐츠를 요청하면 캐시 서버에 저장된 것을 보여준다.페이스북 서비스 초기에는 우리나라 이용자들도 미국에 있는 서버에 접속해 페이스북 서비스를 이용했다. 하지만 케이티 통신망에 페이스북 전용 캐시 서버가 설치된 뒤에는 에스케이·엘지와 케이블방송사 등 다른 초고속인터넷 가입자들도 이곳으로 접속됐다. 페이스북코리아 관계자는 “국가별로 하나의 캐시 서버만 둔다는 원칙이 있었다”고 말했다. 페이스북 이용이 많지 않을 때는 괜찮았다. 하지만 이용자가 늘고, 사진과 영상 등의 첨부로 트래픽(통신망을 오가는 데이터량)이 급증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케이티가 트래픽 급증을 이유로 페이스북 쪽에 추가 대가를 요구하고, 아니면 에스케이·엘지 가입자의 접속을 받아줄 수 없다고 했을 가능이 크다. 케이티 쪽에서는 경쟁 사업자들을 위해 트래픽 증가를 감수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에스케이 역시 케이티 통신망에 설치된 캐시 서버 접속이 막히면 엄청난 국제회선료를 부담해야 한다며 페이스북에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요구했고, 페이스북이 대안으로 에스케이와 엘지에 각각 페이스북 전용 캐시 서버 설치를 ‘제안’했다고 볼 수 있다.캐시 서버 설치는 페이스북 쪽도 필요 페이스북은 요즘 가상현실(VR) 콘텐츠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다.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인 마크 저커버그가 직접 나서서 공을 들이고 있다. 가상현실 콘텐츠는 용량이 무척 크다. 적정 속도로 제공되기 위해서는 이용자 가까이에 캐시 서버를 설치해 미리 콘텐츠를 갖다놓는 전략이 필요하다. 하지만 적잖은 비용이 든다. 그래서 생각해낸 게 “구글처럼 해보자”였을 수 있다. 페이스북 서비스도 구글의 유튜브처럼 누구나 이용하고 싶어 하는 반열에 올렸다. 초고속인터넷 사업자 쪽은 가입자를 유치하거나 이탈을 막기 위해 페이스북 서비스가 꼭 필요하다. 문제는 가입자들이 페이스북 서비스를 많이 이용해 트래픽이 늘어날수록 국제회선료 부담이 커진다는 것인데, 전용 캐시 서버로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다.페이스북 쪽에서는 이를 캐시 서버 설치·운영 비용 협상의 지렛대로 삼을 수 있다. 초고속인터넷 사업자가 추가로 물어야 하는 국제회선료 부담이 줄어드는 부분만큼 캐시 서버 설치·운영 비용을 감면해달라고 요구할 여지가 생기는 셈이다. 업계 전문가는 “케이티는 해저케이블과 위성을 갖고 있다. 트래픽이 늘어나면 오히려 국제회선료 사업 기회가 커진다. 따라서 케이티에는 이른바 ‘퉁치자’고 할 수가 없다. 이 때문에 페이스북이 케이티에는 정당한 대가를 주면서 에스케이와 엘지에는 무상 설치·운영을 요구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구글 때 첫 단추 잘못 끼운 게 화근 이런 상황은 앞서 구글 전용 캐시 서버가 설치될 때도 벌어졌다. 현재 초고속인터넷 3사 중에는 에스케이와 엘지 통신망에만 구글 캐시 서버가 설치돼 있다. 에스케이·엘지 초고속인터넷 가입자가 유튜브에 올려진 콘텐츠를 이용하겠다고 하면 캐시 서버부터 검색하고, 없으면 국외에 있는 서버에서 가져온다. 이에 비해 케이티 가입자들이 유튜브를 이용하면 모두 국외 서버에서 가져온다. 구글 역시 초고속인터넷 3사에 모두 캐시 서버의 무상 설치·운영을 요구했으나 케이티는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무상 설치·운영을 할 수 없다고 버틴 것이다. 에스케이와 엘지 쪽은 이와 관련해 “구글로부터 서버 설치·운영 대가를 받고 있다”고 강조하면서도 내역 공개는 꺼리고 있다. 계약 조건에 따른 것이란다.업계에선 “구글 캐시 서버를 무상으로 설치해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게 이번 사태를 불렀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게 두고두고 초고속인터넷 사업자들의 발목을 잡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구글과 페이스북뿐만이 아니라, 앞으로 가입자들에게 인기있는 콘텐츠가 등장할 때마다 캐시 서버 설치·운영 비용의 감면 요구를 받게 될 것이란다. 그때마다 이용자들이 볼모로 잡혀 불편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초고속인터넷 사업자들도 “답답하다”는 표정이다. 한 업체 임원은 “유튜브 속도가 느리다고 가정해봐라. 누가 우리 가입자로 남아 있으려고 하겠냐. 품질이 좋지 않다며 경쟁 업체로 옮겨갈 거 아니냐. 구글은 초고속인터넷 사업자들의 이런 약점을 잘 알아서 나라별로 유튜브 이용 속도를 측정해 초고속인터넷 품질을 평가하고 이를 공개까지 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에스케이가 우리나라와 홍콩 사이의 국제회선을 증설하면서 페이스북 이용자들의 속도 저하 불편은 상당 부분 해소된 상태이다. 하지만 임시방편 수준이다. 에스케이 관계자는 “페이스북 서비스 트래픽이 해마다 120%씩 증가하고 있다. 가상현실이 대중화하면 더 빠르게 늘어난다. 국제회선 증설로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고 말했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캐시 서버가 서둘러 설치되는 것이다. 페이스북코리아는 “조속한 해결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에스케이는 “방통위가 실태 조사를 하기로 했으니 중재안이나 가이드라인을 내놓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페이스북 쪽이 양보하지 않으니 정부의 중재를 기다려보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업계에선 “방통위가 실태 조사를 나서면 구글 건도 함께 들여다봐야 해 시간이 꽤 걸릴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내 콘텐츠사업자들엔 고액
“우리 미래산업 경쟁력 훼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