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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
1. 세상이 달라지긴 했나 보다. 대통령이 경총에 정부의 비정규직 정책을 비난 말라고 경고했다니. 내가 대통령의 발언을 옹호하다니. 이런 일이 일어났던 지난주였다. 촛불대선을 통해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은 그의 첫 번째 공약인 일자리 만들기 공약에서 이행방법으로 밝혔던 대로 비정규직 대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왔다. 취임 후 첫 외부 일정으로 인천국제공항공사를 방문해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고, 청와대 집무실에 일자리 상황판을 설치하고서 비정규직 현황까지 매일 점검해 왔다. 이 같은 대통령의 추진 의지에 공공기관들에서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계획 발표가 이어졌다. 이 같은 움직임에 이제 민간사업장에서 롯데·LG유플러스·SK브로드밴드·기업은행·신한은행 등 대기업도 정규직 전환 계획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이렇게 온 나라가 대통령의 방침에 따라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몰두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김영배 경총 부회장이 “노동시장이 경직돼서 기업들이 비정규직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며 “비정규직 정책은 현실도 모르는 편협한 발상”이라고 비난하고 나섰다고 언론에 보도됐던 것이고, 이에 문재인 대통령은 곧바로 대변인을 통해 “정부정책을 심각하게 잘못 이해하고 있다. 사회적 양극화를 만든 경총은 진지한 반성과 성찰부터 해야 한다”고 반박했는데, 이를 두고 언론은 대통령이 경총에 경고했다고 보도했다. 사용자들이 노동 문제에서 자신의 이해를 대변하기 위해 만든 경총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정책을 달갑지 않게 생각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일 테고 그래서 심사가 뒤틀려 부회장이 내뱉은 것일 텐데, 이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이 반박하며 경고했다는 것이 놀랍다. 그러니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을 나는 옹호하지 않을 수 없었다.
2. “정규직 임금이 높아서 비정규직을 쓴다. 정규직 해고하기 어려워서 비정규직을 쓴다. 정부의 비정규직 대책에 많은 기업이 우려한다.” 경총 부회장 김영배는 이런 취지로 지난 25일 경총포럼 인사말했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말한 부회장 김영배를 경총은 변명했다. 즉 문재인 대통령의 경고가 있자 정부의 노동정책을 비판한 것이 아니라 노동계의 획일적인 정규직 전환 주장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었다고 경총은 변명했다. 이에 대해 노동자들보다는 확실히 대통령이 무섭긴 무서운가 보다고 나는 읽었다. 그런데 김 부회장만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 대책을 비난했던 것이 아니었다. 박병원 경총 회장은 지난 11일 한 인터넷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새롭게 정부를 맡은 사람들이 기본을 알지 못하는 것 같다”고 한 후 “일자리위원회를 만들 것이 아니라 기업이 투자를 하게 해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며 “어떻게 투자를 해서 일자리를 만들 것인지를 고민해야 하는데 계속 근로시간단축 등 다른 얘기만 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방법으로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것은 다 거짓말이다”고 전날 취임한 문재인 정부의 정책을 비난했다. 그러니 경총의 위 변명은 진심이 아니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정책을 비난한 것이 아니라는 변명은 진심이 아니었다. 29일 김동욱 경총 기획홍보본부장은 “김 부회장의 인사말은 평소 경총의 기본 입장을 담은 것”이라며 “이는 김 부회장 개인의 생각이 아닌 경영계를 대변하는 경총의 입장이라는 점에서 변화될 가능성은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제 경총이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대통령도 무섭지 않다고 여기는 게 틀림없다.
3. “정규직 임금이 높아서 비정규직을 쓴다”는 말은 정규직 임금이 낮아야, 비정규직에 비해 높지 않아야 비정규직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참으로 용납할 수 없는 말이다. 파견법·기간제법 등 이 나라에서 비정규직법은 비정규 근로자의 정규직 근로자와의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파견법 21조, 기간제법 8조). 즉 법은 해당사업장의 동종 또는 유사한 업무에 종사하는 정규직에 비해 차별적 처우를 금지하고 있는 것인데, 이에 따라 “정규직 임금이 높아서 비정규직을 쓴다”는 사업장 사용자는 법적으로 용납이 되지 않는다. 고용에서는 차별하지만 임금 등 처우에서는 차별하지 못한다는 것이 비정규직법의 취지인 것인데, 비정규직 허용을 통한 고용상 차별에서 나아가 임금 등 처우까지도 차별해서 사용하고 있는 이 나라 사용자들의 의식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 “정규직 임금이 높아서 비정규직을 쓴다”는 말인 것이다. 도대체가 해서는 안 되는 말인데도, 박근혜 정권 때는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추진한다면서 비정규직법 개정논의에서 너무도 당연하게 사용됐다. 대기업 정규직 임금이 높아서 기업들이 비정규직을 사용한다고 대통령을 비롯해서 총리·장관 등이 시도 때도 없이 말했다. 법대로 ‘정규직 임금이 높으니 비정규직의 임금도 높아야 한다’고는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정규직을 해고하기 어려워서 비정규직을 쓴다”는 말이야말로 이 나라에서 법이 비정규직 고용을 보호하지 못한다는 걸 그대로 보여 주고 있다. 정규직을 해고하기 어렵기에 맘대로 쓰다 버릴 수 있는 비정규직을 쓴다고 사용자들의 단체 대표가 노골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고용에서 차별, 이것이 비정규직법 실체이고, 이 나라에서 사용자는 파견제·기간제·단시간제로 고용이 보호되지 않는 노동자를 합법적으로 사용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렇게 이 나라에서 사용자들에게 비정규직은 쓰다 버리는 노동자인 것이다.
그리고 사용자들은 ‘정규직을 비정규직처럼 해고할 수 있으면 비정규직을 쓸 이유가 없다’는 취지로 이 말을 하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는 정규직 문제가 되고 마는 것이다. 비정규직의 과소보호는 정규직의 과보호가 원인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고, 노동자를 맘대로 쓰다 버리는 사용자 자신의 탓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식이면 그 사업장에서 어떤 노동자가 해고되는 것도 다른 노동자가 해고되지 않아서고, 어떤 노동자가 낮은 임금을 받는 것도 다른 노동자가 높은 임금을 받아서라고 해야 한다. 정규직 사업장이든, 비정규직 사업장이든 다른 노동자의 탓이 되고 만다. 노동자를 쓰고 버리는 건 사용자인데 사용자의 탓이 아니라 노동자의 탓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 노동자는 정규직이라도 징계해고되고, 정리해고되며, 심지어 고용노동부는 업무능력이 부족하면 통상해고해도 된다고 해서 사용자는 해고하기가 어렵지 않다. 오히려 우리 노동자는 사용자의 해고로부터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 것이 현실이고, 이 때문에 정리해고 등 해고 제한을 위한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노동자들은 외쳐 왔다. “정규직을 해고하기 어려워서 비정규직을 쓰는 것”이 아니다. 정규직을 해고하기 쉬워도 비정규직을 쓴다. 정규직에 비해 적은 비용으로 사용할 수 있으니 비정규직을 쓴다고 매우 높은 비정규직 비율이 말해 주고 있다.
4. 이상과 같이 정규직의 임금이 높아서, 정규직의 해고가 어려워서 비정규직을 쓰고 있다는 경총의 말은 법을 무시한 말이고 법에 무지한 말이다. 그런데 이런 말로 경총 부회장이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정책을 비난하자 문재인 대통령은 즉시 경총을 비난했으니 나는 문재인을 옹호할 수밖에. 사실 나는 아직 문재인을 모른다. 중앙선관위에 신고된 대선후보 문재인의 공약에서 비정규직 정책이 비정규직 철폐인지, 비정규직 축소인지, 아니면 차별 해소인지 분명하게 읽을 수가 없었다. 다만 비정규직 철폐를 직접 말하지 않으니 그가 비정규직의 축소와 차별 해소를 말하고 있는 것이라고 읽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가 지금 몰두하고 있는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도 거기서 크게 벗어난 것은 아닐 거라고 추측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장차 이 나라 노동운동이 비정규직법 폐지 등 비정규직 철폐를 위해 나아가는 때가 되면 나는 문재인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때가 아닌 오늘 나는 비정규직 문제로 경총을 비난한 문재인의 발언을 옹호해서 경총을 비판하고 있다. 대통령으로서 노동자를 위한 말과 행동을 한 것이라서 나는 그런 것이다. 만약 그가 앞으로도 그런다면 나도 계속해서 그럴 거라고 말해야겠다.
사실 이것은, 노동자를 위한 문재인의 발언을 옹호한다고 말하는 것은 노동자를 위하지 않는 대통령 문재인을 나는 결코 옹호하지 않을 거라는 다짐이기도 하다. 오늘 노동운동이 그의 정책을 넘어서 비정규직을 위한 투쟁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어느새 대통령 문재인이 비정규직을 비롯한 노동자들의 희망이 돼 버렸다. 그러나 노동자권리를 위해 나아가야 하는 노동자 자신의 운동인 노동운동은 어떤 경우라도 노동자의 희망이 될 수 있어야 한다. 대통령 문재인을 옹호하지 않는, 노동운동의 세상은 노동자가 스스로를 희망으로 옹호하고서야 노동자에게 찾아올 수 있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