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없는 것, 정치적 선택의 자유

[박노자의 한국, 안과 밖] 우리에게 없는 것, 정치적 선택의 자유

등록 :2017-02-21 18:28수정 :2017-02-21 19:26

“우리가 다수의 아시아 대륙 국가들에 비해 더 민주적”이라고 주장하는 데는 두가지 문제점이 있다. 첫째는 표면적으로 일당 정치를 표방하는 국가들의 실질적인 정치적 다양성이나 역동성을 과소평가하는 문제다. 둘째는 한국의 형식적 민주주의가 실제로 유권자들에게 제공하는 정치적 선택 ‘폭’의 문제다.우리는 민주화에 긍지를 지니지만, 민주화된 한국에서 현실적인 정치적 선택의 폭은 초강경 보수부터 딱 온건 보수까지다. 오로지 극소수 대기업의 사익만을 챙겨주는 재벌공화국의 기본구조를 본질적으로 바꾸려는 정치인이 주류 정치 무대에 진출하지 못하도록 설정되어 있는 이 시스템은, 과연 민주주의 맞는가?

국내인들과 이야기할 때 자주 듣게 되는 주장이 하나 있다. 민주화를 이룬 대한민국은 대부분의 아시아 대륙 나라들과 다르다는 것이다. 중국이나 베트남, 북한 등이 사실상의 일당 독재를 유지하고 있는 반면, 한국에서는 다당제 의회 정치와 평화적 정권 교체, 공정 선거 등이 가능하다는 것이 국내인들에게 커다란 자긍심의 근거가 되고 있는 것 같다.물론 근거 없는 자긍심은 아니다. 중국이나 베트남의 이당치국(以黨治國), 즉 실력주의적 방식으로 선발, 배치된 영도 정당의 관료들이 제도적으로 통치하는 ‘대중 독재’에 비해, 훨씬 더 마피아 지배에 가까웠던 군부정치를 청산한 것은 당연히 한국 현대사의 자랑이다. 단, 이 자랑을 출발점으로 삼아 “우리가 다수의 아시아 대륙 국가들에 비해 더 민주적”이라고 주장하는 데는 두 가지 문제점이 있다.첫째는, 표면적으로 일당 정치를 표방하는 국가들의 실질적인 정치적 다양성이나 역동성을 과소평가하는 문제다. 사실, 일당 체제의 유일 영도 정당 내에서 표출되는 계파 간 정치적 견해차는, 경우에 따라서는 한국에서의 여야 사이의 차이 이상일 수 있다. 단, 이 계파 간 갈등은, 재벌의 정치자금을 기반으로 하는 유세 기간 동안의 ‘표심 잡기 전쟁’이 아니라, 관료 사회 내부에서의 세력 확대 방식 등으로 진행된다는 점이 다르다. 같은 당이라 해도, 정파싸움이 얼마나 치열한지는, 중국 보시라이나 북한 장성택의 운명을 보면 쉽게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숙청으로 귀결되는 정치 경쟁의 방식은 전혀 이상적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부자들로부터의 정치자금 지원을 떠나 존재할 수 없는 한국의 금권정치도 민주주의 이상에 근접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또 하나는, 한국의 형식적 민주주의가 실제로 유권자들에게 제공하는 정치적 선택 ‘폭’의 문제다. 겉으로 보기에 비민주적인 ‘대륙국가’라도, 속에서는 관료 정파 사이의 의견차가 대단히 클 수 있다. 예를 들어서 일부 전문가의 추측에 의하면 장성택은 수령주의적 유일지도체제보다 집단지도체제를 더 선호했던 인물이다. 1인 지도가 수십년간 이어져온 사회에서 이는 가히 혁명적 발상이라 하겠다. 수십년 동안 재벌 본위의 경제체제를 유지해온 남한으로 치면, 재벌 해체 정도가 되겠다. 그런데 과연 남한에서 선거제 민주주의 틀 안에서 정치 경쟁의 권리를 보장받은 야당이 어디까지 혁명적 발상을 들고나올 수 있을까?3년 전에 헌법재판소는 통합진보당을 해산시키고 정당 등록을 취소시키는 폭거를 감행했다. 그때 보수 언론들은 통진당을 마치 혁명정당쯤으로 묘사했다. 한데 실제로 통진당의 강령을 보면, 혁명은커녕 구미권이나 일본의 온건 (우파) 사민주의 정당들과 큰 차이가 없었다. ‘사회주의’ 같은 금칙어(?)들은, 통진당의 강령 전문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가장 핵심적인 문제인 생산수단 소유 문제에 있어서, 통진당은 수출형 재벌 본위의 경제체제 해체, 내수형 중소기업 중심의 경제체제 수립을 요구하면서 “물, 전력, 가스, 교육, 통신, 금융 등 국가 기간산업 및 사회 서비스의 민영화 추진을 중단하고, 국공유화 등 사회적 개입을 강화해 생산수단의 소유 구조를 다원화(…)한다”는 이야기를 덧붙였을 뿐이다. 재벌 기업들을 공유화하자는 이야기도 아니고, 기껏해야 개발주의 시절에 국유였던 국가기간산업의 민영화 중지를 요구하는 데 그쳤다. 서구 사회로 치면 이 정도는 ‘중도 좌파’가 될까 말까 하는 수위다. 한데 대한민국에서는 이 정도의 온건한 좌파도 정치 경쟁에 참여할 권리를 박탈당한다.현재로서 한국 의회에서 가장 왼쪽에 서 있는 소수 당파(6석)는 정의당이다. 강제 해산을 당한 통진당이 온건 중도 좌파에 해당한다면, 그나마 의회 정치 참여를 허가받은 정의당은 그것보다 약간 더 보수적인 면모를 드러낸다. 그 강령을 보면 “필수적인 식량·에너지·문화·교육·복지·의료·안전은 물론 전파와 정보통신망 등 공공의 재화와 서비스를 시장에만 맡기지 않을 것이다. 국가와 사회는 이러한 공공재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공정하게 분배할 것”이라는 부분은 통진당과 대동소이하지만, 재벌 본위의 경제모델을 본격적으로 손보겠다는 이야기까지는 없다(단, 재벌 세습을 방지하고 그 구조를 개혁하겠다고 한다). 비정규직 사용을 엄격히 제한하겠다는 말까지는 통진당의 강령과 마찬가지로 나오지만, 통진당의 “무상의료”와 달리 정의당은 “무상의료에 가까운” 의료시스템만을 약속한다. 정의당의 현실적인 모델 격인 독일 등 서구 복지 국가에서 이미 널리 실행되는 노동자의 기업경영 참여는 아예 언급도 없다. 상당히 보수적 성격의 사민주의로 분류될 만한 강령을 가진 정당이, 대한민국의 의회 정치에서는 ‘급진 좌파’에 가까운 대접을 받는다. 그 정도로 현실정치의 무대에서 허용되는 선택의 폭이 매우 좁은 것이다.총선에서 7% 정도의 득표율을 과시한 정의당은 비록 의회 정당이지만, 의회에서 비주류에 속한다. 한국에서 여태까지 주류로서 대접받을 수 있는 정치인은 오로지 두 부류, 즉 강경(내지 초강경) 보수와 자유주의 색깔의 온건 보수다. 박근혜 극우정권이 파산함에 따라서 현재 정치적 경쟁의 중심에는 각종 온건 보수 지향의 자유주의 정치인들이 서게 됐다. 그들이 정당하게도 사익 패거리에 불과했던 박근혜 정권의 실정과 폭정을 비판하고 있지만, 과연 정책이라는 핵심적 측면에서 저들과 강경 보수 사이의 차이는 그렇게까지 큰 것인가?가장 집권 가능성이 많아 보이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같은 경우는, 4대 재벌 개혁이나 복지 확대를 이야기하긴 한다. 그런데 그가 대표적 경제 공약으로 내세우는 부분(전자투표제, 다중대표소송제, 노동이사제 등)의 다수는, 이미 법률 개정안으로 발의돼 있는, 일찍이 당론으로 채택된 것들이다. 기초연금을 30만원으로 상향하겠다는 이야기나 아동·청년 수당을 도입하겠다는 이야기도 나오지만, 이 정도 가지고는 산업화된 국가들 중에 최악의 노인 빈곤 문제나 이미 남유럽 정도로 심각해진 청년 실업 내지 불완전고용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 문재인은 일종의 ‘사회적 자유주의’를 내세우고 ‘복지’를 자주 언급하지만, 과연 그 재정을 어떻게 마련하려 하는지 정확하게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가 예컨대 법인세율 인상에 상당히 부정적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법인세율(22%)은 미국(40%)이나 일본(30%)보다 훨씬 낮은데도 말이다. 문재인은 상시 고용의 경우 정규직 고용을 원칙으로 하자고 하지만, 기업에 허가하는 비정규직 고용의 범위를 법으로 제한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이미 유승민같이 좀더 보수적인 잠재적 대권 주자들도 한다.문재인을 보면 과연 한국에서 현실적인 정치적 선택의 폭을 이루는 온건 자유주의자와 강경 보수 사이의 차이가 그렇게까지 있는가를 의심하게 된다. 물론 문재인보다 약간 더 대담한(?) 이야기를 꺼내는 자유주의자들도 있다. 이재명 성남시장 같은 경우는 법인세를 일본 수준까지 끌어올리고 기본소득제를 도입하겠다고 말한다. 그 자체로는 물론 바람직한 방향이지만, 오로지 대주주들의 단기 이익을 목표로 삼는, 전체 고용의 5%도 담당하지 못하는 10대 재벌이 대한민국 국내총생산의 무려 80% 이상을 독점하고 있는 현재와 같은 상황을 이 정도의 개혁으로 과연 본질적으로 바꿀 수 있을까?우리는 민주화에 긍지를 지니지만, 민주화된 한국에서 현실적인 정치적 선택의 폭은 초강경 보수부터 딱 온건 보수까지다. 오로지 극소수 대기업의 사익만을 챙겨주는 재벌공화국의 기본구조를 본질적으로 바꾸려는 정치인이 주류 정치 무대에 진출하지 못하도록 설정되어 있는 이 시스템은, 과연 민주주의 맞는가? 몇 개의 대기업이 민주주의를 가장하면서 사실상 영구적으로 한 나라를 통치하는 모델이 왜 하필이면 유일 정당 통치보다 더 민주적이라고 생각해야 하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83617.html#csidx8a41e584431a8d39be71d2db46e9514




현장의 목소리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