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代 사무직 김씨가 전봇대 타는 사연

통신업체에 근무하는 김성근 씨(50)는 요즘 매일 전봇대에 오른다. 겨울비가 내린 8일 오전에도 김씨는 서울 강남 주택가에서 전봇대와 씨름을 하고 있었다. 3층짜리 건물에 인터넷선을 연결하기 위해서다.

김씨는 "젊은 사람도 하기 힘든 일"이라며 "몇 달 전에는 손에 쥐고 있던 케이블이 지나가는 트럭에 걸리는 바람에 전봇대에서 동료가 떨어져 다치는 사고가 있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무실에서 컴퓨터를 두드리던 책상물림이었다. 이 회사 영업팀장이었던 김씨는 지난달 회사의 경영 악화로 권고사직을 받았다. 김씨가 이를 거부하자 회사는 그를 인터넷 개통부서로 전출시켰다.

김씨는 "지금 밖으로 나가 봐야 받아주는 곳도 없어 이를 악물고 이 일을 하고 있다"며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지만 대학에 들어간 아들딸 학자금에 생활비를 생각하면서 꾹 참는다"고 말했다.

김씨가 하루에 처리하는 개통건수는 평균 6~7건에서 많을 때는 10건이 넘는다. 이 회사에서 김씨와 같이 개통부서에서 일하는 50대는 전국적으로 최소 100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경제위기로 구조조정 압력이 커지면서 '구조조정 대상' 1순위로 거론되고 있는 '50대'가 떨고 있다. 대기발령이나 지방으로 발령을 내는 방법은 명퇴를 거부하는 50대를 내보내기 위한 '단골 메뉴'다. 하지만 이런 '퇴직 압박'에도 불구하고 '50대'의 몸부림은 처절하다. '받아줄 곳이 없다'는 불안감과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 겹쳐서다.

같은 회사에 다니는 이 모씨(51) 사무실은 본사 지하에 자리 잡고 있다. 이씨는 이곳에서 말 상대도 없이 온종일 쓸쓸하게 시간을 보낸다. 가족이 부산에 있는 이씨는 지난 1년간 서울과 수원으로 지방발령을 세 번이나 받았다. 회사를 떠나라는 압력이다.

하지만 이씨는 떠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고 한다. "대안이 없잖아요. 지금 나가면 받아주는 곳도 없고, 또 아이들이 대학에 갈 때라서 가장 돈이 많이 들어가는 시기이기도 하고…."
불황으로 기업의 구조조정 움직임이 본격화하면서 '구조조정 대상의 1차 표적'이 되고 있는 50대 직장인들이 떨고 있다. 쉰이 넘은 나이에 회사를 떠나면 받아주는 곳도 없을 것 같아 이들은 '마지막 잎새'처럼 회사에 끝까지 남아 있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로 인해 재취업센터를 찾는 50대가 많아지고 있다. 그러나 이들을 받아줄 일자리는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찾기 어려운 실정이다.




현장의 목소리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