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사장 인사를 주목한다(기고)

기고] KT 사장 인사를 주목한다 / 최정표
기고
한겨레
? 최정표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최근 있었던 케이티(KT) 사장의 납품비리 사건을 두고 “주인 없는 기업이라서”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주인’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지만, 아마도 재벌과 비교해서 하는 말이 아닌가 한다. 재벌은 총수라는 주인이 있는데 케이티, 포스코(POSCO), 케이티앤지(KT&G) 등은 이런 사람들이 없으니까 그렇게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말에는 엄청난 오류와 모순이 들어 있다.

우선 재벌에서 총수가 주인이냐 하는 점이다. 기업의 법적 주인은 주주다. 총수는 수많은 주주 중 한 사람이고 단지 최대지분을 가진 사람일 뿐이다. 그런데 그 지분은 많아야 5% 정도다. 나머지 95% 정도는 남의 돈인데 기업제도를 교묘히 이용해 그 권한을 자기가 독차지하도록 만들어 놓은 것이 재벌이다. 이런 상황에서 총수를 과연 주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주인이라고 계속 우긴다면 일단 그렇게 받아들여 보자. 그렇다면 주인 있는 재벌은 깨끗했던가? 재벌 총수의 비자금 사건이 세상을 놀라게 한 적은 한두번이 아니다. 규모에서는 오히려 케이티 사건의 경우와 비교도 되지 않는다. 수천억원, 수조원의 비자금 사건이 비일비재했다. 그럼에도 총수는 구속도 되지 않았다. 이런 경우 돈을 빼먹은 총수가 기업의 주인이라서 괜찮다는 것인지?

기업 비리는 주인이 있느냐, 없느냐와는 관계없는 일이다. 비리 그 자체는 범죄이고 처벌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재벌 비자금에 대해서는 ‘주인 있는 기업이라서’라는 말을 하지 않으면서 전문경영인 기업에 대해서는 ‘주인 없는 기업이라서’라는 말을 왜 하는 것일까? 이 말은 ‘노예근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자들의 자기 비하적 표현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의 대기업은 한국전력과 같은 ‘공기업’과 재벌과 같은 ‘소유자 기업’, 케이티·포스코·케이티앤지 등과 같은 ‘경영자 기업’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이 중 어떤 기업제도가 더 우월한지에 대해서는 답이 있을 수 없다. 각기 나름대로 장단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발달사에서 나타난 기업의 진화 과정은 매우 분명하다. 공기업은 가능한 한 민영화하려는 현상이고, 소유자 기업은 경영자 기업으로 옮겨가려는 경향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성숙한 사회일수록 공기업보다는 민간기업의 비중이 높고, 대기업들에서는 소유자 기업보다 경영자 기업의 비중이 더 높다.

아쉽게도 우리나라는 이제 겨우 경영자 기업이 출현하는 단계이다. 그것도 공기업을 민영화하는 과정에서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어찌 되었건 경영자 기업으로 가는 것은 역사발전의 필연적 방향이다. 우리도 성숙된 선진경제를 만들자면 이런 방향으로 순풍이 불도록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진행 중인 케이티 사장 선임은 한국 기업제도의 미래를 결정지을 하나의 사건이다. 이제 케이티는 완벽한 민간기업이다. 정부가 재벌의 사장 인사에 개입하지 못하듯이 케이티의 사장 인사에도 개입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시장경제의 근간을 뿌리째 뒤흔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케이티에서 시급한 것은 힘들여 만들어 놓은 선진적 지배구조를 잘 살려 가는 일이다. 잘 만들어 놓은 선진적 제도가 권력의 힘에 의해 무력화되어 버린다면 우리 사회는 희망이 없다. 이번 케이티의 사장 인선은 우리나라에서도 선진형 기업제도가 제대로 발전해 갈 수 있을지를 판가름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정부는 물론 케이티 스스로도 뼈저리게 성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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